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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궁할 땐, 詩에 빠져보자

250호 (2018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시인은 특별한 존재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슬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희로애락을 몇 줄의 문장으로 강력하게 재현해낸다. 답답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삶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 남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시에 빠져보자. 시인의 눈으로 본 세상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잠수함이 잠수할 때 토끼를 함께 넣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공기가 희박해지는 걸 토끼가 가장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시인은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다. 감수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감수성이란 상대 입장에서 나를 보는 능력이다. 누구나 보지만 아무나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다. 자신의 기분은 물론 상대의 처지와 기분까지 살필 수 있는 능력이다. 리더십의 핵심능력이기도 하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지적 능력보다 더 필요한 능력인데 이를 키우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시를 읽는 것이다.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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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젊은 시절 윤형주가 작사한 ‘두 개의 작은 별’이란 번안 가요를 참 많이도 불렀다.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든 밤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 이슬 내릴 때까지.” 또 다른 하나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 『별』이다. 소설이지만 문장이 시와 같다.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외로이 양을 치는 목동,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주인집 따님 스테파네트를 흠모한다. 어느 날 뜻밖에도 그녀가 일꾼을 대신해 목동의 양식을 갖고 산으로 찾아온다. 오, 귀여운 모습!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 스커트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린다. 일부러 얄궂은 질문을 던지고는 내가 쩔쩔매는 꼴을 보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는다. 마침내 아가씨는 빈 바구니만 들고 떠난다. 한데 저녁 무렵, 아가씨가 다시 돌아온다. 돌아갈 길 없게 된 그녀, 이제 우리 둘만이 이 깊은 산중에 함께 있게 된 것이다. 기어이 밤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아가씨를 위해 울안에 새 짚과 모피를 깔아주고 나왔다. 이때까지 밤하늘이 그렇게도 유난히 깊고, 별들이 그렇게도 찬란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그때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가 밖으로 나온다.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 위에 걸쳐주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이 말없이 나란히 앉았다. 무슨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그녀는 바짝 내게로 다가왔다. 바로 그 찰나 아름다운 유성 한 줄기가 우리들 머리 위를 스쳐 갔다. 그녀에게 나는 밤하늘의 별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득 내 어깨에 그녀의 머리가 느껴졌다.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스럽게 비비대며 잠든 그녀의 얼굴을 지켜보며 나는 꼬박 밤을 새웠다.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은 맑은 밤하늘의 비호를 받아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이 글을 읽으면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이 연상된다. 주인집 따님은 윤초시네 손녀이고 목동은 소년 같다. 목동의 순수함과 설렘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별과 관련된 시 중에는 가요로 만들어진 것이 제법 된다. 김광섭의 ‘저녁에’란 시가 그렇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런 걸 보면 시의 속성은 특정 대상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별이란 소재는 시로 옮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별 관련 시의 대표 선수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별에 대한 연상이 추상에서 구체로, 관념에서 육체로, 시인은 어머니를 떠올린 순간부터 그리움에 몸서리를 친다. 그리운 사람이 많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고통인가. 별은 밝게 빛나 기쁘고 멀리 있어 슬프다. 그리움도 추억도 그렇다. 그리움 덕택에 살고, 그리움 때문에 힘들다. 별은 이상과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별은 결국 사람으로 이어진다. 영화 ‘라디오스타’는 과거의 스타 얘기를 그렸다. 스타 시절을 그리워하는 주인공 박중훈에게 매니저 안성기가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지”라고 말한다. 별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를 비추는 것이 별이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을 우러러보고 별이 되려고 한다. 요즈음은 별 보기가 어렵다. 밤에도 너무 밝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별이 늘 있지만 너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도 별은 늘 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 밝거나 너무 흔해 별이 별로 인식되지 않을 뿐이다.



별만큼 꽃도 시의 좋은 소재다. 작가들이 벤치마킹하는 소설가 김훈은 소설 『자전거여행』에서 꽃의 죽음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거의 시 수준이다. 아니, 시보다 낫다. 그는 다양한 꽃들의 다양한 죽음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다음과 같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산수유는 존재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추켜올린다. 목련은 질 때 남루하고 참혹하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목련꽃의 죽음은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 같다.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참 기막힌 표현이다.

인간의 모습과 꽃의 모습은 비슷하다. 꽃처럼 사람마다 사는 방법과 죽는 모습이 제각각이다. 이렇게 피어난 꽃은 이렇게 지고, 저렇게 피어난 꽃은 저렇게 진다. 동백처럼, 매화처럼, 목련처럼 살다 죽는다. 저자는 나이가 들수록 목련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고 고백한다. 오랜 병상의 세월을 보내는 노인이 있으면 그 모습을 추하다 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질 시간을 주기 위해 목련처럼 힘겹게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별은 이별다워야 한다.

이별

회자정리(會者定離)란 말이 있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해야 한다는 사자성어다. 인생이란 만남과 이별로 이뤄져 있는 만큼 이별은 시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소재다. 이별 중의 이별,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은 배우자의 죽음이다. 시인 김춘수는 나이가 들어 아내를 잃고 이런 시를 썼다. “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한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강우란 제목의 시다. 아내를 잃은 노인의 서글픈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이어 바람이란 시를 썼다. “자목련이 흔들린다. 바람이 왔나 보다. 바람이 왔기에 자목련이 흔들리는가 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자목련까지 길이 너무 멀어 이제 막 왔나 보다. 저렇게 자목련을 흔드는 저것이 바람이구나. 왠지 자목련은 조금 울상이 된다. 비죽비죽 입술을 비죽인다.” 작년 이맘때는 바람이 불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똑같이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시인이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이다. 근데 아내가 떠난 후 목련을 보니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김춘수는 바람을 통해 아내를 본 것이다. 아내의 손짓을 본 것이다. 바람 소리에서 “여보, 나 왔어요”란 목소리를 듣는다. “아내는 내 곁을 떠나자 천사가 됐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는 낯설고 신선하다. 아내는 지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아내는 그런 천사다.” 김춘수의 거울 속 천사다. 아내를 잃은 후 김춘수가 지은 시를 읽다 보면 목이 멘다. 남편을 두고 간 아내도 불쌍하고, 혼자 덩그러니 남은 김춘수도 불쌍하다. 하기야 ‘불쌍’이란 말의 어원은 ‘쌍을 잃었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짝을 잃은 사람이다.

기다림과 슬픔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늘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린다. 기다림 관련해서는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가 잘 알려져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가 불과 5분 만에 쓴 시라고 알려져 있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기다림이란 희망과 불안의 교차점이란 것을.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기다리는 동안 나 또한 너에게 가고 있다’는 말. 기다림은 사랑이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희망 때문에 기다리고, 절망 때문에, 또 희망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근데 다른 종류의 기다림도 있다. 피천득의 ‘기다림’이란 시가 그렇다. “아빠는 유리창으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귓머리 모습을 더듬어 아빠는 너를 금방 찾아냈다. 너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장에서 종 칠 때를 기다렸다.” 초등학교를 막 보내고 그 딸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몰래 교실을 엿보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는가?

사랑

뭐니 뭐니 해도 시의 넘버원 주제는 사랑이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의 바위란 시다. 이어 그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란 시를 쓴다.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청마 유치환은 유부남인데 통영여고에서 동료 교사 이영도를 만난다. 그녀는 일찍 남편이 죽어 혼자였는데 교무실에서 그녀에게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야말로 유부남과 과부의 스캔들인 셈이다. 매일 그녀에게 편지로 고백을 하는데 그게 바로 시가 된 것이다. 처음 3년간 그녀는 절대 흔들리지 않지만 나중에는 그녀도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녀의 다음 시를 보면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보다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리라” 서로가 존경했기에,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기에, 그저 하염없이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의 결실은 행복이란 시로 표현된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세상을 뜰 때까지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이영도에게 편지를 보낸다. 무려 5000통에 이른다. 그가 죽은 후 그중 200통을 뽑아 단행본을 출간하는데 바로 그 유명한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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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갈대’란 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다.

여러분은 답답할 때 어떻게 하는가? 뭔가 아이디어가 궁할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럴 때 시를 읽어보길 권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고 한다. 시는 상상력의 보고다. 시인은 남들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남들보다 예민한 센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또 시를 읽으면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박완서 선생의 ‘시를 읽는 이유’를 소개한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울 때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kthan@assist.ac.kr

필자는 서울대 섬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크론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핀란드 헬싱키경제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대우자동차 이사, IBS컨설팅그룹 상무, 한국리더십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89호 Boosting Creativity 2020년 1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