格의 경영

노인 즐길 곳 만드니, 상권이 살아났다

246호 (2018년 4월 Issue 1)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스가모역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꽤 큰 규모의 상점가 스가모 지조 도오리(巢鴨地藏通)가 나온다. 약 800m 길이의 거리엔 카페, 식당, 옷 가게가 즐비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 거리를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 대부분이 노인이다.

가격표나 안내문 글씨도 큼지막해 노인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점원들도 비슷한 또래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할머니들이 상점가 입구에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시식을 권한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하라주쿠에 빗대어 스가모를 ‘노인들의 하라주쿠’라 부르기도 한다.

스가모 지조 도오리를 방문한 노인들은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차도와 인도 간 경계선이나 턱이 없기 때문이다. 지팡이나 보행보조기의 바퀴가 틈에 끼지 않도록 배수구의 철망구조까지 특수한 구조로 설계했고, 노인들 보행속도에 맞추어 에스컬레이터도 정상 속도보다 30% 느리게 작동하도록 조정했다. 걷다가 힘들면 쉬어가도록 곳곳에 벤치를 마련해 뒀다.

상점가에는 어릴 적 향수를 부르는 재래 음식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다.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의 찻집도 많다. 노인 맞춤형 상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디자인의 안경, 건강과 행운을 불러온다는 빨간 내복 등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나 CD도 인기 아이템이다.

대형 쇼핑몰과 마트가 도쿄 시내에 속속 등장하면서 경쟁력을 잃은 스가모 상점가는 한때 폐쇄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상점가 진흥회는 타깃을 재설정하고 그에 맞는 분위기와 상점을 입점시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재래시장의 명성과 이미지를 살렸다. 시설에서부터 서비스, 상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노인 친화적으로 바꿨다. 매월 4, 14, 24일에만 열리는 장날 축제와 같은 이벤트 등도 홍보에 도움을 줬다. 입소문이 퍼지자 노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 호기심 많은 젊은이도 스가모를 찾게 됐다.

일본 경제에선 노인층의 소비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스가모 상점가뿐 아니라 백화점도 노인을 겨냥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보행보조기, 지팡이, 신고 벗기 쉬우면서 미끄럼까지 방지하는 노인 전용 신발 등을 취급하는 코너가 생겼다. 일부 쇼핑몰이나 마트의 식품코너에는 같은 종류의 음식도 정상인용, 틀니용(틀니로도 씹을 수 있는), 잇몸용(잇몸만으로도 씹을 수 있는), 연하곤란식용(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환자용) 등으로 구분해 판다. ‘실버 소비’가 일본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히 노인에게 맞춘 상품으론 성공하기 어렵다. 스가모 상점가는 노인들이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배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서비스와 분위기가 있어야 비로소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 kimjin@yuhs.ac

필자는 1989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중공업 기획실, 삼성 회장비서실 인력개발원, 삼성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 삼성전자, 호텔신라 등에서 인사교육, 전략수립과 현장 적용을 총괄한 HR 전문가다. 호텔신라 서비스 드림팀을 창단해 호텔 품격 서비스의 원형을 보여줬고 차병원그룹 차움의 최고운영총괄을 맡아 의료서비스 분야에도 품격 서비스를 도입했다. 현재는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겸 세브란스병원 창의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했고, 연세대에서 경영학 석사, 경희대에서 국제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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