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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사진사’에게 배우는 마케팅 철학

안병민 | 245호 (2018년 3월 Issue 2)

스파이더맨이 따로 없습니다. 다리를 거의 찢듯이 벌려 한쪽은 뒤로 쭉 빼고 또 한쪽 무릎을 땅에 댑니다. 그 무릎에는 수건이 묶여 있습니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땅바닥에 댑니다. 자연히 얼굴과 상체도 땅에 닿을 듯 내려갑니다. 그렇게 그는 사진을 찍어 줍니다. 얼마 전 다녀온 말레이시아 여행 중 만난 현지 일일투어 가이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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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가이드가 그렇듯 그 역시 친절하고 유머러스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투어였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그의 모습에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사진이 잘 나올 만한 포토 스폿을 짚어주고 재미있는 포즈도 알려주며 사진까지 직접 찍어줍니다. 그런데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그 포즈가 압권입니다. 안 그래도 더운 나라에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땀을 뻘뻘 흘리며 그는 그렇게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별명이 ‘스파이더맨 가이드’입니다.

무언가를 진심을 다해 해준다는 건 이런 겁니다. 대충 찍어주는 게 아닌 겁니다. 기회가 생겨 슬쩍 물어봤습니다. 사진을 왜 그렇게까지 찍어주냐고.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서서 찍으면 작은 움직임에도 카메라 초점이 흐트러진다고. 특히 빛이 부족한 밤에 찍는 야경 사진은 더욱 그렇다고.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땅에다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거였다고. 그랬더니 사진 찍히는 손님들의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도 있더라고. 그렇게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카메라 앵글을 맞추려 자꾸 움직이다 보니 그의 스파이더맨 바지 한쪽 무릎이 닳아 찢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무릎에 수건을 묶어 덧댔고, 이를 훈장처럼 보여줬습니다. 가이드로서의 업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대답입니다. 그는 진정한 ‘고수’였고, ‘장인’이고, ‘프로’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사진도 잘 찍어주고, 가이드도 잘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거미가이드’ ‘#거미사진사’라는 해시태그도 보였습니다. 의도했건 아니건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른 가이드와 차별화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손님들이 그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이름은 조금씩 ‘브랜드’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지금껏 무언가를 살 때, 그 제품(혹은 서비스)을 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하신 적이 있나요? 아마 없을 겁니다. 어떤 고객도 그런 이유로 구매를 하지 않습니다. 나의 고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은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뭔가 가치가 있어야만 지갑을 여는 존재가 바로 고객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고 ‘실천’하면 되는 겁니다. 제대로 된 고객가치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고객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옵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그래서 ‘고객 행복’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고객을 유혹하고 현혹하려고만 합니다. 그리고 그걸 마케팅이라고 착각하고 오해합니다. 고객 가치는 증발하고 얄팍한 테크닉만 남습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 겁니다. 중요한 건 고객에 대한, 더 나아가 내 일과 삶에 대한 ‘진정성’입니다. 내 일의 목적에 대해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이 일을 통해 고객의 삶에 어떤 ‘가치’를 더해줄 것인지, 이 일을 통해 세상을 어떤 곳으로 바꾸어나갈 것인지 자문해야 합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이 바로 마케팅의 출발점입니다. 마케팅을 단지 홍보 혹은 돈 버는 기술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의 시각 교정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누구나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싶어 합니다. 어떤 분이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어왔습니다. 왜 유명해지려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유명인사가 되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답해줬습니다. 그러면 목표가 잘못됐다고 말입니다. 유명해지는 게 목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제대로 된 목표라고 말입니다. 유명해지는 건 ‘나’를 위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건 ‘타인’을 위한 목표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목표에 박수를 보내시겠습니까? 어떤 목표에 내 지갑을 열겠습니까? 그러니 ‘유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희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질문이 바뀌어야 하는 겁니다. 마케팅도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고객입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고객의 가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들 진정성, 진정성 하는 겁니다.

부산에 강의를 하러 갔다 알게 된 어느 칼국수집 사장님이 계십니다. 부부가 함께 오셔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 제 강의를 경청하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식당 주방에 써 놓으셨다는 한마디 문구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내가 먹는다!” 손님에게 낼 음식을 준비함에 있어 이보다 더 믿음직한 주방장의 마음가짐이 또 있을까요?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생각하는 진정성이란 이런 겁니다. 부산 덕포역에 있는 ‘해물왕창칼국수’ 박기대 사장님 얘기입니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 칼국수 팔아 번 돈 1억 원을 5년에 걸쳐 기부하기로 하셨다고 합니다.1 ‘마케팅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철학’이라 부르짖는 제게는 훌륭한 모범사례입니다.

홈페이지 잘 만들어 놓고 키워드 광고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마케팅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만 고민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마케팅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의 시선을 높여야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 가치는 어떻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따라가지 말고 따라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고객 행복을 위해 나만의 고유한 사유와 시선으로 빚어내는 차별적 가치가 핵심입니다. 마케팅은 그래서 단지 전략이 아닙니다. 전략을 넘어 철학입니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 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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