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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SK루브리컨츠의 글로벌 전략

실무진 판단 믿고 글로벌 시장 돌진,‘틈새시장’ 고급 윤활기유 최강자로 우뚝

이미영,류주한 | 238호 (2017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SK루브리컨츠는 불과 20년 만에 내수용 윤활유 기업에서 글로벌 고급 윤활기유 시장 내 1등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SK루브리컨츠의 성공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이미 포화된 일반 윤활기유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고급 윤활기유 시장을 겨냥해 기술개발 역량과 투자를 집중했다.
2) 자사가 보유한 기술력과 마케팅 네트워크를 해외 주요 에너지회사의 잔사유(미전환유)·공장부지 등 생산역량과 결합한 합작법인(Joint Venture)을 통해 고급 윤활기유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했다.
3) 글로벌 인력을 전체 인력의 60%까지 확대, 미국, 유럽, 인도 등 6개 해외 법인 설립 등 해외 시장에 적합한 인력 및 조직 배치를 통해 마케팅 역량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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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1 는 SK이노베이션 계열사 중 수익률이 좋은 알짜기업이다. 뛰어난 기술력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5358억 원, 영업이익 4683억 원을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매출 3조1690억 원, 영업이익 513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SK루브리컨츠의 주력 상품은 ‘유베이스(Yubase)’라는 고급 윤활기유다. 사실 SK루브리컨츠제품 중 우리에게 익숙한 건 지크(ZIC)라는 윤활유 제품이다. 하지만 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지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3%에 불과하다. 그것도 국내 시장에서 대부분 판매된다. 나머지 87%는 윤활유 제품의 원료인 유베이스가 담당하고 있다. BP(British Petroleum), 셸(Shell) 등 글로벌 정유사들도 프리미엄 윤활유 제품을 만들 때 유베이스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엔 이런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SK루브리컨츠의 전신인 옛 유공의 윤활유 사업부는 해외에서 모든 원료를 납품받아 제조해 자신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윤활유 원료의 핵심인 윤활기유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국내 시장에만 집중해 글로벌 윤활유 업계에선 존재감이 미미했다.

하지만 1995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더니 공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했다. 이들이 주목한 건 틈새시장이었다. 현재 규모가 작더라도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에 세계 시장 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장 규모가 컸지만 이미 포화상태인 일반 윤활기유 시장에 진출하는 대신 시장 가능성은 있지만 누구도 선뜻 적극적으로 공략하지 않았던 고급 윤활기유 개발에 집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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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동맹 체제도 구축했다. 인도네시아, 일본, 스페인 등 해외 유력 정유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든 것이다. SK루브리컨츠의 기술력에 협력사가 보유한 원료와 공장 부지 등 생산력을 더했다. SK루브리컨츠는 이들과 함께 만든 해외 생산기지를 포함해 유베이스를 하루에 총 6만800배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40% 수준이다. 당분간 어떤 경쟁사도 넘볼 수 없는 리딩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20년까지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연평균 5∼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SK루브리컨츠의 전망은 더욱 밝다. SK이노베이션에서 분리된 자회사로는 최초로 기업공개(IPO)도 추진 중이다. SK루브리컨츠가 글로벌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던 비결을 DBR이 분석했다.

 

소매상에서 글로벌 틈새시장 선도주자로

1. 세계 최초 고급 윤활기유 개발

SK루브리컨츠의 전신은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사업부다. 1990년대 초까지 이 사업부는 회사 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윤활기유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제품을 만드는 핵심 원료를 글로벌 회사에서 수입해 만들었다. 국내 시장 규모도 다른 나라에 비해 작았기 때문에 ‘로컬 소매상’ 정도의 위상만 갖고 있었다.

독점적 지위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사업이 위기를 맞은 건 1990년대 초 산업자율화가 이뤄지면서다. 해외 기업들과 손잡고 국내 기업들이 윤활유 시장에 뛰어들었다. 차별화된 기술도, 가격 경쟁력도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국내 시장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특히 윤활기유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S-oil의 등장은 위협적이었다. 가격 경쟁력이 뒤져 자칫하면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상황이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당시 유공 윤활유 사업부는 윤활유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윤활유의 핵심 원료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생산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SK그룹은 1992년 3000억 원을 투자해 일반적으로 시장에 통용되고 있는 ‘일반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생각보다 윤활기유 생산을 위한 투자금이 많이 들었고 윤활기유는 정유사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도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초 예상액보다 적은 1200억 원을 투자해 이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에 도전하겠다고 경영진을 설득했다. 일부 경영진은 반대했다. 당시 일반 윤활기유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며 고급 윤활기유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글로벌 회사들도 뛰어들지 않는 사업에 도전하는 건 무모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일각에서는 승산이 있는 게임이란 의견도 나왔다. 이미 글로벌 정유회사들이 장악한 일반 윤활기유 생산 대신 아직은 미미하지만 앞으로 성장성이 큰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기존 시장에서 후발 주자로 고전하기보다 새로운 영역에서 1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게 전략적으로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었다.

결국 경영진은 연구진의 손을 들어줬다. 향후 고급 윤활기유에 대한 시장 수요가 늘어날 확률이 높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에서 선도자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고급 윤활기유는 점도(Viscosity Index)가 높아 휘발성이 낮아져 윤활유를 오래 쓸 수 있고 자동차의 엔진 마모를 더 효과적으로 줄여준다. 만약 대량 생산이 가능하면 엔진 피로도가 높은 일본 시장이나 환경규제가 엄격한 유럽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경영진도 미래 시장에 승부를 걸어볼 만한 기술이라고 생각해 투자를 결정했다. 국내 시장의 규모가 미미하더라도 선도적인 투자로 전 세계 윤활기유 시장에서 1%의 점유율만 확보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라고 판단한 것이다.

SK루브리컨츠는 1995년 고급 윤활기유 ‘유베이스’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유명 글로벌 정유회사도 도전했다가 경제성 등의 이유로 포기했던 고급 윤활기유 대량 생산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SK루브리컨츠는 고급 윤활기유 맞춤형 생산 공정을 만들었다. 일반 윤활기유와 고급 윤활기유의 성질이 다르다. 일반 윤활기유는 ‘상압 잔사유’에 탈왁싱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상압 잔사유는 원유를 상압식으로 증류해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하고 남은 원유를 뜻한다. 반면 고급 윤활기유는 여기에 공정을 한 단계 더 추가한 잔사유를 활용한다. 많은 정유사들은 상압 잔사유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추가로 생산하기 위해 수소화학분해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생산된 휘발유와 경유를 제외하고 남은 잔사유가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쓰이는 것이다.

두 윤활기유의 성질이 다르지만 정유사들은 각각의 생산설비를 따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급 윤활기유를 생산할 때에는 일반 윤활기유를 생산할 수 없었다. 고급 윤활기유 수요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일반 윤활기유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면 기업 입장에선 큰 손해였다.

SK루브리컨츠는 원유 정제 과정에 윤활기유 정제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공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반 윤활기유 생산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에 대비한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집중해 맞춤형 생산 공정을 만든 것이다.

휘발유와 경유 등을 추가로 생산하는 공정과 고급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공정에 공통적으로 수소화학분해 공정이 들어가는 점에 착안했다. 일반 윤활기유를 생산하지 않고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공정을 연결해 연료유와 고급 윤활기유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공정 절차가 끝나더라도 다시 처음 공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순환 형태로 설계해 공정을 거친 후에도 남은 잔사유는 다시 연료유 제조 공정으로 돌아가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 SK루브리컨츠는 원유정제 공장이 있는 울산공장에 고급 윤활기유 생산 공정을 추가로 연결했다.이렇게 유베이스가 탄생했다.

윤활기유 생산에서 중요한 공정인 탈왁싱 과정도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했다. 경쟁사들은 잔사유에 있는 왁스 성분을 용제(solvent)로 걸러내는 방식을 적용하는 반면 SK루브리컨츠는 촉매제를 이용해 왁스 성분을 다른 성질로 변화시켜 잔사유에서 걸러내지 않아도 됐다. 원료 손실이 적어지니 그만큼 수율이 더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SK루브리컨츠는 통합 공정을 통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수율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투자비용은 당초 예상했던 1200억 원에서 800억 원으로 줄었다. 기존 1배럴의 고급 기유를 생산하기 위해선 94배럴의 원유가 필요했는데 통합 공정을 이용하면 23배럴의 원유로 충분했다. 이 공정은 23개국에서 특허로 인정받았다.

또한 연구개발과 공장 설비 구축을 한꺼번에 진행해 준비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촉매를 이용한 탈왁싱 공정과정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선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가 필요했다. 문제는 파일럿 테스트를 하기 위한 설비를 만드는 데만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SK는 이 과정을 과감하게 아웃소싱으로 돌려 시험 설비를 갖추고 있는 미국 회사에 위탁했다. 여기서 생산된 시제품을 활용해 윤활유 제품을 개발했으며 유베이스 본격 양산 전 고객사들을 다니며 마케팅 활동을 수행했다.

파일럿 테스트가 진행될 동안 울산 공장에는 고급 윤활기유를 만들기 위한 공장이 동시에 건설됐다. 파일럿 테스트와 설계, 조달 및 시공(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EPC)을 한 번에 진행해 3년 만에 연구개발, 공장 건설을 모두 완료했다.

이후에도 관련 기술 개발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00년 고급기유 생산량이 1995년의 2배로 확대되자 SK는 2004년 울산 제2공장을 지었다. 제품라인도 다양화했고, 수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기술을 적용했다. 한때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맑아야 하는 윤활기유가 뿌옇게 된 것이다. 외국 메이저 업체에서 수입해 온 촉매제가 문제였다. SK루브리컨츠 연구진은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할 때 이런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요소 기술도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다.

2004년부터 25명의 연구진, 4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기약 없는 연구가 시작됐다. 촉매 관련 공정 기술은 전 세계를 통틀어 세 회사만이 가진 희소한 기술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2005년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생산지에 따라 성질이 조금씩 다른 원유의 특성상 공정 원료와 과정을 세밀하게 변화시켜야 했다. 다양한 조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촉매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그렇게 1000번도 넘는 실패가 반복됐다.

2011년 SK루브리컨츠는 촉매제 개발에 성공했다. 엑손모빌, 셰브런, 셸에 이어 세계적으로 윤활기유 촉매 기술을 보유한 4번째 회사로 이름을 올렸다.





2. 새로운 윤활기유 마케팅

고급 윤활기유를 개발했다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 건 아니었다. 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반 윤활기유로도 충분한데 굳이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 고급 윤활기유를 살 필요가 없었다.

SK루브리컨츠는 우선 유럽시장 공략에 나섰다. 환경 규제에 민감하고 차량 엔진이 다른 국가 자동차보다 작으나 출력이 높아 가동될 때 엔진 마모가 클 수밖에 없는 유럽에선 고급 윤활기유가 먹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시장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유럽에선 국가와 기업 인지도 모두 낮았다. 윤활기유 해외 마케팅을 담당했던 한 직원은 ‘남한 출신이냐, 북한 출신이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유럽 시장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다. 같은 유럽연합(EU) 내 국가라도 각 나라의 규제, 문화 등이 다른데 그저 막연하게 같은 시장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한 것이다.

시장이 쉽게 열리지 않자 실무진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유베이스를 활용해 윤활유를 제조할 수 있는 배합식을 같이 제공하는 게 해법이었다.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것만큼 이 원료를 윤활유 제품으로 만드는 데도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어떤 첨가제를 써야 하고, 어떤 상태에서, 어떤 비율로 윤활기유와 결합해야 하는지는 그 회사만이 지닌 독점적 노하우이자 기술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배합식을 찾아내고, 그 배합식이 안전하다는 것을 여러 시험기관으로부터 인증도 받아야 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원유의 상태, 공정 과정에 따라 배합식도 달라지기 때문에 고객사에 맞는 배합식을 제공하려면 수십, 수백 가지의 배합식을 개발해 인증을 받아야 한다. SK루브리컨츠의 비용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선 논란이 제기됐다. 여러 가지 배합식을 개발할 때 드는 비용을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실제로 이 전략이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영진은 실무진의 판단을 믿었다. 실무진은 유럽 국가를 찾아다니며 배합식 비용을 줄인 만큼 전체 비용이 절감되니 유베이스를 써보자며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SK루브리컨츠는 1995년 가을, 일반 윤활기유보다 두 배인 배럴당 100달러로 벨기에 등 5개국 기업과 30만 배럴 공급 계약을 맺었다. 아주 적은 규모였지만 이 거래가 글로벌 시장 확대의 물꼬를 터줬다. 이듬해엔 일본과 미국에 진출했다. 3년간 총 180만 배럴을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BP, 셸, 엑손모빌 등 해외 메이저사 윤활유에도 유베이스가 들어간다.

SK루브리컨츠는 현재 300여 개가 넘는 윤활유 배합식을 보유하고 있다. 뒤늦게 고급 윤활기유 시장에 합류한 경쟁사들보다 압도적인 수치다. 일반 윤활기유에는 없었던 새로운 마케팅이었다. 배합식을 함께 제공하는 것은 이제 다른 경쟁사들도 벤치마킹해 적용하고 있다.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새로운 ‘스탠더드’가 된 것이다.

조용래 SK이노베이션 윤활유기술 Lab장은 “우리가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사를 유인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 필요했다. 제품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제공한다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냈다. 한마디로 기술을 마케팅한 것이다. 고객사들도 윤활기유 자체는 원유와 같이 거래하는 트레이딩 제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접근하는 방식을 매우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생소한 방식임에도 경영진이 실무진의 판단을 믿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준 것이 시장 개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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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V를 통한 글로벌 생산기지 확보

SK루브리컨츠는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형성된 이후 시장 내에서 40%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경쟁사들이 2019년 이후 당분간 고급 윤활기유 생산 설비를 확대하기 어렵다.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 경쟁사들이 단기간에 생산 설비를 확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SK루브리컨츠는 2006년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2∼3년꼴로 해외에 생산기지를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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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미미했던 윤활기유 내 고급 윤활기유 시장점유율은 2010년엔 10%까지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인 클라인(Kline)이 2016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까지 고급 윤활기유 수요는 전체 윤활기유 시장의 20%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잠재력이 확인되자 경쟁사들도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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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는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다. 만약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공급을 하지 못한다면 어렵게 확보한 고급 윤활기유 시장의 주도권을 다른 경쟁사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 것이다. 경쟁사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당장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울산 제 1, 2공장은 이미 생산 능력을 꽉 채우고 있었고 SK루브리컨츠가 확보할 수 있는 잔사유도 한계에 달했다. SK에너지가 휘발유와 경유 등을 생산하고 남은 잔사유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 양으로는 세계 시장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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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는 해외 글로벌 기업과의 합작투자(Joint Venture)로 눈을 돌렸다. 해외 정유사가 제공하는 공장부지와 잔사유를 활용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외에 생산기지를 확보할 경우 운송비를 줄이는 것은 물론 해외 판매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 회사가 서로가 가진 자원을 결합한 일종의 동맹체제를 구축해 고급 윤활기유 시장 내 강력한 연합군 체제를 만든 셈이다.

글로벌 생산기지 확보 움직임은 2006년부터 공격적으로 이뤄졌다. 첫 파트너는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페르타미나(Pertamina)였다. 두 회사가 2008년 인도네시아 두마이에 세운 공장에서 하루 약 9000배럴의 고급 윤활기유가 생산됐다. 2011년 일본 JXTG(구 JX)와 손잡고 울산에 증설한 제3공장에선 2012년부터 하루 2만6000배럴, 2012년 스페인 렙솔(Repsol)과 협력해 스페인 카르타헤나에 지은 공장에선 2014년부터 하루 1만3300배럴의 고급 윤활기유가 생산되고 있다. 기존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윤활기유를 유럽 암스테르담 판매소까지 보내는 데 30일이 걸렸지만 카르테헤나 공장이 생기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빠른 운송이 가능해졌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 낸 파트너십이었다. 무엇보다 이해관계가 맞는 업체를 찾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었다. 지역마다 생산되는 원유의 특질이 다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SK루브리컨츠의 공정 과정을 적용해 윤활기유 생산이 가능한지, 어떤 배합식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따져봐야 했다. 조건에 맞는 해외 기업을 추려 협력 의사를 타진하는 데만 2년의 시간이 걸렸다. 파트너사를 확보한 이후에도 난관은 남아 있었다. 파트너사들과 ‘누가 사업의 주도권을 갖는가’를 두고 치열한 협상이 펼쳐졌다. 특히 대부분 SK루브리컨츠보다 덩치가 큰 글로벌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사업 주도권을 빼앗기려 하지 않았다.

SK루브리컨츠는 끈질기게 설득하며 사업 주도권을 얻어냈다. 크게 3가지 점을 들며 협력사들을 설득했다.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만큼 확실하게 수익성을 보장할 수 있고, 자사가 보유한 독자적인 기술이 있기 때문에 공정상 리스크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마케팅 역량도 갖춰 협력사가 큰 노력이나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강하게 어필했다.

집요한 협상 끝에 SK루브리컨츠는 대부분의 협력사 지분 70% 정도를 확보해 지배주주가 될 수 있었다. SK루브리컨츠가 사업의 핵심 요소를 갖추고 있었던 만큼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기 때문이다. 파트너사 입장에서도 고급 윤활기유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걸음 양보할 수 있었다.

SK루브리컨츠는 협력사와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스페인 렙솔과의 파트너십이 대표적 예다. SK루브리컨츠가 렙솔과의 합작회사 설립을 결정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을 비롯한 남유럽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때였다. 다른 해외 기업들이 투자를 철회할 때 SK루브리컨츠는 파트너와의 약속을 묵묵히 지켰다. 현지 언론에서 SK루브리컨츠는 스페인이 어려울 때 배신하지 않은 고마운 기업으로 소개됐다.

SK루브리컨츠는 일본 내 최대 에너지 기업인 JXTG와도 합작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2012년 이 두 기업은 울산에 제3 윤활기유 공장을 설립했다. 일본과의 합작회사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 세웠는데 이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일단 일본 내에는 지진 위험 때문에 공장이 소규모로 여러 곳에 산재돼 있어 대규모 윤활기유 공장을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JXTG는 SK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자회사인 SK화학과 이미 합작투자해 울산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인력 관리, 생산 관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울산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또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미전환유를 운송하는 데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어 굳이 일본 현지에 공장을 설립할 필요가 없었다.

공장 설립 이후에도 SK에너지와 JXTG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를 지원하며 신뢰 관계를 공고히 했다. 2012년 동일본 지진으로 JXTG가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위기를 겪었다. 그때 흔쾌히 SK루브리컨츠가 나서서 이들을 도왔다. JX에너지가 비축했던 원유를 SK루브리컨츠가 대신 보관해줬다. JX에너지가 생산이 중단돼 거래처에 제품을 납품하기 어렵게 되자 대신 제품을 공급했다.

이외에도 SK루브리컨츠는 파트너 회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고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방침도 마련했다. 합작 법인의 대표이사는 2∼3년마다 번갈아가면서 맡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각 공장의 재무와 엔지니어를 담당하는 직원은 SK루브리컨츠에서 파견해 현지 직원들과 업무를 조율한다. 또한 마케팅, 생산, 연구(Marketing, Production, Research, MPR) 관련 미팅도 합작사와 함께 매년 11월마다 3일간 진행하고 있다. 매년 합작회사 직원들이 서로의 회사를 방문하는 ‘간친회’를 열기도 한다. 간친회에는 핵심 경영진과 실무진이 함께 모여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서상혁 SK루브리컨츠 윤활기유팀 부장은 “협력사와의 관계가 사업을 지속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보다 협력사가 우리와 협력했을 때 어떠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접근했다. 또한 핵심 기술, 마케팅 노하우 등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서 확실하게 협력사에 줄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지분율 등의 문제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수년간 협력사와 인적 교류를 진행했고, 투명하게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차츰 신뢰가 쌓였다. 이제는 협력사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알고 먼저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때 부침도 있었다. 2011년 말 SK루브리컨츠가 울산 제3공장 가동을 시작했을 때였다. 경쟁사들의 고급 윤활기유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윤활기유 스프레드(윤활기유 재료와 제품 사이의 가격 차)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공급 과잉 현상으로 전체 공장 가동률도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SK루브리컨츠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회사 안팎에서 공격적인 투자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SK루브리컨츠 임직원들은 마음을 다잡고 때를 기다렸다. 분명히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고급 윤활기유 매출은 예상 범위 안에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완공 예정이었던 스페인 공장도 차질 없이 추진된 이유다.

2013년 말부터 고급 윤활기유 시장이 회복되더니 2014년부터 성장세를 기록했다. 개발도상국의 자동차 소비가 늘어나고 윤활기유 거래가격이 회복된 덕분이다. 이미 생산 역량을 확충했던 SK루브리컨츠는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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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DNA를 심다

생산량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제품을 잘 판매하는 것이다. 해외 매출이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만큼 SK루브리컨츠는 해외 마케팅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3개 국가에 5개 공장 외에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미국 휴스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본 도쿄, 인도 뉴델리 등 6개 지역에 현지 판매 법인을 세웠다.

글로벌 네트워크에 걸맞게 인력도 구성됐다. SK루브리컨츠에는 국내 인력보다 해외 인력이 더 많다. 전체 659명 중 391명이 해외 인력이다. 게다가 과장 직급 이상의 절반은 해외에서 3년 이상 체류하며 윤활기유와 윤활유 사업을 직접 경험했다. 직접 마케팅을 해외에서 해봤기 때문에 관리자가 됐을 때에도 현장에 나가 있는 실무진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현지 시장 공략에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민할 수 있다.

SK루브리컨츠는 현지 인력을 중시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선진국 시장과 제도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현지 시장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SK루브리컨츠가 현지 시장에 익숙한 인력을 채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영업을 담당하는 현지 인력에겐 최대한 자율권을 부여한다. 본사에서 파견된 한국 직원을 보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자신의 영업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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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법인의 기술 담당 매니저들은 매해 본사가 주재하는 글로벌기술위원회(Global Technical Committee)에 참여한다. 본사 연구개발(R&D)센터와 함께 글로벌 기술 트렌드와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SK루브리컨츠는 2009년 SK이노베이션에서 자회사로 분리되면서 글로벌 마케팅 역량을 더욱 확충할 수 있었다. 보다 빠르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투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유연한 조직 문화 구축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담당자의 의사결정 권한을 최대한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영진이 빠른 결정을 내려줬다. 조용래 Lab장은 “윤활기유 사업 자체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새로운 방법을 항상 시도해야 했다”며 “그럴 때마다 내부 반발이 많았지만 회사에선 담당자의 말을 먼저 듣고 존중해줬다”고 말했다.




보고를 위한 보고, 회의를 위한 회의가 없어진 지도 오래됐다. 해외 현장 위주로 비즈니스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본사 관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다고 해서 좋은 사업 전략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는 판단에서다.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나라도 더 해보는 것이 훨씬 보탬이 된다. 지금도 대리, 과장급 실무진이 해외에 파견을 나가 경험을 쌓고 해외 마케팅을 주도한다.

서상혁 SK루브리컨츠 기유사업팀 부장은 “우리는 마이너에서 성장했고,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끼리 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시장 확대를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우리가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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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요인 및 시사점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한중 간 사드 갈등으로 우리 기업들의 대외 사업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국내 시장 역시 일부 주력 분야를 제외하곤 회복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소비심리 역시 호전되지 않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의 관심사는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을 타개할 다변화된 글로벌 전략 수립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이 수출일변도의 글로벌 전략을 고도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시장 진출 의지는 강하지만 경험 부족과 실패에 따른 리스크 감내가 만만치 않은 과제다. SK루브리컨츠의 해외 시장 진출 사례는 비슷한 길을 걸어야 할 많은 다른 기업들에 참고할 만한 표본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국제경영 분야에서 해외 사업의 성공을 설명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틀은 [그림 1]로 표현될 수 있다. 즉 해당 기업이 처한 국제 환경 또는 목표로 삼고 있는 시장이나 산업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이를 반영한 경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 후에는 최적의 기업 아키텍처(조직, 통제, 문화, 프로세스, 사람 관리 등)를 수립해 실행에 옮길 운영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른바 시장상황, 전략, 운영이 서로 일관되고 적합하게 맞물려야 한다는 전략적 적합성(Strategic fit)을 성공적인 국제경영의 전제조건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시장 상황이 변함에 따라 전략과 운영 역시 새로운 현실에 지속적으로 맞춰가야 한다.


매우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제시한 각 꼭짓점의 항목들이 전체적으로 서로 적합하지 않아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거나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첫 단계는 시장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따른 5개 항목의 최적안을 도출하는 것인데 이 과정부터가 순탄치 않다. SK루브리컨츠는 불확실성과 시장성이 혼재된 고급 윤활기유시장에 사활을 걸었다. 기술력을 앞세운 시장 선점 전략을 세우고 조직구조를 유연하게 재구성했다. 아울러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과 기술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고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리더십을 발휘해 기술마케팅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과감한 현지인 핵심 인력 등용, 신뢰에 기반한 파트너사와의 협력 시스템 등 5개 항목이 서로 적합하게 조화를 이뤄냈다.

이러한 관점에서 SK루브리컨츠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다.

먼저 SK루브리컨츠의 빠른 판단과 과감하고 일관된 추진력을 들 수 있다. 윤활기유 산업은 반도체·패널·조선·화학산업 등과 함께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기간산업이다. 이 산업들의 특징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생산역량 확보가 사업성패의 핵심 요소이다. 이렇다 보니 업체 간 증설 경쟁이 빈번하고 공급량과 시장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수급이 늘 오르락내리락하는 비즈니스 사이클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를 사전에 예측하고 적절한(Timely) 생산량, 투자, 기술혁신 등이 선제적으로 감행될 경우 선발자로서의 이익을 크게 누릴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완전히 뒤처져버리는 승자독식의 산업구조를 띠고 있다.

1990년대 당시의 고급 윤활기유 시장은 산업생명주기(Industry Life Cycle)상 태동기에 있었다. 브랜드 충성도, 제품의 완성도가 완전한 기업이 없었다. 따라서 기술지식과 혁신을 바탕으로 선점자 우위(First mover advantage) 전략을 제대로 실현한다면 고성장과 고수익이 가능한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SK루브리컨츠가 고급 윤활기유 시장에서 독자기술로 해외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결단은 선점자 우위전략 측면에서 매우 유효하고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

두 번째, SK루브리컨츠는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독특한 마케팅 역량을 발휘했다. 태생적 글로벌 기업은 축적된 내재적 역량과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진입 초기 단계부터 해외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기술집약적 중소기업을 지칭한다.

최근 북유럽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해당 시장을 세분화해 자신만의 브랜드로 차별화된 가격정책, 홍보전략, 현지화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장 진입 초기부터 빠른 침투(Speed-to-Market)를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다.

SK루브리컨츠의 해외 시장 침투전략 역시 태생적 글로벌 기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SK루브리컨츠는 중소기업은 아니지만 단순히 원자재를 수입해서 재판매하는 기존 사업을 과감히 접고 자체 기술로 개발한 고급 윤활기유를 통해 해외 시장을 우선적으로 공략하려는 전략적 포지셔닝을 취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전무한 유럽을 상대로 고객사의 기호에 맞는 배합식을 개발해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는 ‘제품이 아닌 기술을 제공한다’는 이 회사만의 독특한 기술마케팅이 불모지와 다름없는 해외 시장에 빠르게 침투해 확장할 수 있게 한 비결이 됐다.

세 번째, SK루브리컨츠 글로벌 사업 전략의 백미는 해외 시장에서 선발자 이익을 공고히 하고 진입장벽을 쌓기 위해 해외 기업과의 JV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장치산업 특성상 타 기업과 협력을 통해 진입장벽을 쌓는 방안은 투자비용과 리스크를 경감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은 아니다.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한 해외 사업 수행 시 가장 근본이 되는 핵심 성패요소는 협력 회사 간에 가치사슬상 어떠한 부분을 서로 연결해야 상호보완이 가능하고 시너지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다. 그 외에도 파트너 선택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파트너와 지분 구성과 관리 방식 등 협력구조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신뢰는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들어 전략적 제휴나 합작투자를 얼마나 잘 이행해내는가 하는 협력역량(Alliance capability)이 기업의 주요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협력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도 없었던 SK루브리컨츠가 해외 합작사업을 추진하면서 초점을 뒀던 것도 앞서 언급한 핵심 사항들이다. 글로벌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한 최적의 파트너를 입지우위(Locational advantage)에 기반한 국가의 최고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관계를 수립했다. 기술, 마케팅, 재무는 SK루브리컨츠가, 생산은 파트너기업이 주도하는 분담방식을 선택했다. 파트너와의 신뢰형성은 태스크포스팀과 같은 실무자 수준에서의 긴밀한 상시소통, 번갈아 관리를 맡는 순환관리(Rotating management)를 통해 상호불신을 해소했다. 무엇보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토대는 기존 연구들이 이미 제시한 대로 서로 무엇을 얻을지를 명확히 한 데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SK루브리컨츠의 유연한 조직구조는 불확실한 시장상황에서 빠른 의사결정, 과감한 전략적 선택과 실행을 가능케 한 토대가 됐다. 유연한 조직구조란 실무자들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해 책임경영을 할 수 있게 하는 조직구조다. 이 관리 방식을 통해 시장 상황이 불확실하거나 기업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분산적 조직으로 전환해 소비자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고 현장 중심의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SK루브리컨츠 경영진은 공정혁신, 시장개척, 기술마케팅 등 가보지 않았던 길은 선택함에 있어 연구진, 실무진의 판단을 신뢰하고 인내하는 묘미를 발휘했다. 해외 파트너와의 원활한 소통,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고용과 전권을 위임해 업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 역시 유연한 조직 구조가 아니면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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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루브리컨츠 연혁

SK루브리컨츠의 전신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 윤활유 사업부다. SK그룹(구 선경)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유공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1998년 유공은 SK주식회사로 사명이 바뀐 후 2007년엔 SK주식회사에서 SK에너지로 기업 분할됐다. 2009년 SK에너지 윤활유 사업부는 SK루브리컨츠라는 이름으로 독립 경영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SK에너지(정유사업 부문), SK종합화학(화학사업)과 함께 SK이노베이션 자회사로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SK이노베이션 100%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는 내년 상반기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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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활기유와 윤활유

우리에게 익숙한 건 자동차 엔진 마모를 줄이기 위해 넣는 윤활유다. 그런데 윤활유의 품질을 결정하는 주원료는 윤활기유다. 윤활기유는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와 경유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남은 원유로 만든다. 이때 쓰는 원유를 잔사유 혹은 미전환유라고 부른다. 윤활기유 80%에 첨가제 20%를 넣으면 윤활유 제품이 완성된다.

윤활기유는 통상 그룹1, 그룹2, 그룹3, 그룹4, 그룹5 등 5개 그룹으로 구성된다. 그룹을 나누는 기준은 황 함량과 탄화수소다. 이 성분이 많을수록 점도지수(Viscosity Index)가 높아 더 높은 그룹의 고급 윤활기유로 분류된다. 가장 많이 쓰이는 윤활기유는 그룹 1과 2에 해당하는 일반기유다. 그룹 3이 고급 자동차 등에 쓰이는 고급 윤활기유에 속한다. 그룹4와 5는 산업이나 특수 목적의 윤활유를 만들 때 쓰인다. 이 기사에선 그룹3 윤활기유를 ‘고급 윤활기유’로 통칭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정하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경영학부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jhryoo@hanyang.ac.kr

류주한 교수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유치, 해외직접투자실무 및 IR, 정책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국내외 학술저널 등에 기술벤처, 해외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PMI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이미영 이미영 |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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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주한 류주한 |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필자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에서 석사(국제경영학), 런던정경대에서 박사(경영전략) 학위를 취득했다. United M&A, 삼성전자, 외교통상부에서 해외 M&A 및 투자 유치, 해외 직접투자 실무 및 IR, 정책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국내외 학술 저널 등에 기술 벤처, 해외 진출 전략, 전략적 제휴, 비시장 전략, PMI, 그린 공급망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jhryo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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