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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디자인과 경영

우리 회사에선 모두가 디자이너, 이것이 ‘혁신적 애플’을 키운 힘

조성환,김경묵 | 237호 (2017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필자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디자인을 해석하는 ‘인문디자인’을 오늘날 기업에 필요한 혁신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전 직원이 디자이너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표방한 애플의 사례가 인문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애플은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내는 인문디자인 경영을 실천했다. 여기에는 허버트 사이먼, 리처드 뷰캐넌, 로저 마틴 같은 서구 철학자들의 사상이 녹아들어 있다. 이들은 경계를 넘나들고 때론 문법까지 파괴하는 창조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상적인 모델과 지속적인 학습을 강조해온 유교 문화권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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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애플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크 카와노는 “(애플에서는) 모두가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디자인을 생각하고, 디자이너처럼 사고한다는 의미다. 그는 조직 전체에 배어 있는 디자인 문화가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다고 말했다.1 카와노의 이 한마디는 애플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간과했던 부분을 들춰낸다. 종래에 애플을 논했던 사람들은 아이패드와 아이폰 시리즈가 등장할 때마다 ‘혁신적 디자인’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사과 모양의 애플 로고 속에 담긴 디자인에 주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애플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물은 사람은 없었다. 애플의 디자인을 ‘동사’가 아닌 ‘명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애플 디자인에 대한 해설과 분석이 넘쳐나지만 정작 애플이 추구한 ‘디자인 정신’의 실체는 해석되지 않았다.

애플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은 애플이 사용하는 문구 “Designed by Apple”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은 2016년, 지난 20여 년 동안 만든 제품들을 총망라한 사진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의 제목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였다. ‘Made by Apple’이 아니라 ‘Designed by Apple’이라는 데 주목하자. 이 제목은 애플이 자신을 상품을 ‘만드는(making)’ 제조회사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designing)’ 디자인회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유튜브에 소개된 이 책의 영상광고는 “We’re a small design team”이라는 말로 시작한다.2

이 짧은 광고에는 ‘design’과 함께 ‘idea’와 ‘create’라는 단어가 모두 13차례나 나온다. 이 단어들의 빈도수는 애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아울러 그들이 말하는 디자인이 어떤 성격인지를 시사한다. 애플은 새로운 아이디어(idea), 즉 창조성(creativity) 그 자체를 추구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디자인이다. 그들은 단순히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기능적인 단순함을 디자인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새로움’ 그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애플에서는) 모두가 디자이너다”라는 카와노의 말과 『Designed by Apple』이라는 책의 제목은 애플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본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본질이야말로 애플을 애플이게 한 ‘동사’로서의 디자인이 지닌 보이지 않는 힘이고, 이것이 바로 이 글에서 말하는 인문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애플의 이러한 디자인 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즉 엔지니어, 예술가, 마케터 할 것 없이 “모두가 디자이너인 디자인팀”이라는 애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이것은 애플만의 독창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그들을 탄생시킨 어떤 사상적 스승이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서양의 디자인 철학을 정립한 이론가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허버트 사이먼: 사람은 모두 디자이너

애플 인문디자인의 이론적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서양의 디자인 철학자로는 허버트 사이먼과 리처드 뷰캐넌을 들 수 있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 1916∼2001)은 디자인을 하나의 ‘과학(science)’으로 정립하고자 시도한 최초의 학자로, 특히 그의 디자인 개념은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는 디자인을 자연학과 대비되는 인공학의 영역에 포함하고 인공물을 만드는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행정가나 회사원, 심지어는 약사까지도 ‘창조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디자이너라고 봤다. 이런 의미에서 허버트 사이먼은 디자인을 학문과 철학의 두 차원에서 접근한 선구적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허버트 사이먼은 1969년에 출판된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인공과학의 이해’)』의 제5장 ‘The Science of Design: Creating the Artificial(디자인학: 인공물의 창조)’에서 디자인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엔지니어만 전문적인 디자이너인 것은 아니다. 기존 상황을 낫게 변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위를 궁리하는(devise) 사람은 누구나 디자인을 하고 있다(design). 물질적인 인공물을 제작하는(produce) 지적인 활동은 환자를 위해 치료법을 처방하거나(prescribe), 회사를 위해 새로운 판매 계획을 궁리하거나(devise), 나라를 위해 사회복지정책을 궁리하는(devise)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3


여기에서 사이먼은 구체적으로 물건을 만드는(produce) 육체적인 작업은 물론이고 약을 처방하거나(prescribe) 정책을 궁리하는(devise) 것과 같은 정신적인 활동까지도 디자인(design)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방법이나 계획과 같은 무형의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도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에서는 엔지니어와 같은 기술자는 물론이고 약사나 회사원 또는 공무원도 모두 디자이너가 된다.

이에 의하면 사이먼은 디자인을 make, produce, prescribe, devise와 같은 활동에 공통된 어떤 것으로 보고 있고, 그것들을 총칭해서 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상황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한 지적인 창조 활동”으로 보고, 이것을 디자인의 정의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사이먼이 디자인을 미적 활동이나 감성적 작용이 아닌 지성적 행위(intellectual activity)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디자인에 대한 ‘지성적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소개한 애플의 정체성은 사이먼의 디자인 정의에서 유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애플이 말하는 ‘create’로서의 디자인 개념은 사이먼이 말하는 ‘지적인 창조활동’으로서의 디자인 개념과 일치한다. 또 “(애플에서는) 모두가 디자이너다”라는 마크 카와노의 말은 “엔지니어만 디자이너인 것은 아니다. 기존의 상황을 보다 낫게 변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위를 궁리하는 사람은 모두가 디자이너다”는 사이먼의 말과 부합된다. 애플은 이러한 디자인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사이먼의 디자인 개념을 실제로 조직문화에 구현한 기업이 애플임을 의미하고 뒤집어 말하면 애플이라는 디자인 조직이 가능했던 이유는 서양이 사이먼과 같은 디자인 개념이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문화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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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환 조성환 |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상임이사, 인문학공장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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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묵 김경묵 | -(현)성균관대 초빙교수, 사단법인 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인문디자인경영연구원 부회장 겸 원장, 인문학공장 대표, 디자인철학 자문위원
    -(전)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
    form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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