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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디지털 혁신의 핵심은 협업과 통합, 전통 제조기업이 궁극적 승자 될 수도

이방실 | 234호 (2017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통 제조기업들이 디지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상시적 제품 설계(evergreen design), 원격 업그레이드(remote upgrading) 등 ‘지속적 혁신(continuous innovation)’ 활동을 추구해야 한다. 동시에 스피드와 생산성,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현실 세계에 가상 세계를 투영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기술은 이를 위한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AR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과거 그 어떤 기술보다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natural interface) 구현이 가능해진다면 제품 개발, 생산, 물류, 마케팅, 영업, 사후 서비스 등 가치사슬의 전 영역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디지털’은 복잡한 엔지니어링이나 독점적인 기술이 아니다. 디지털의 핵심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디자인 철학과 훨씬 더 관련이 깊다. 단편적 제품 개발에서 벗어나 협업과 통합을 통해 지속적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혁신의 정수다.”

지난 9월18일 세계적 경영석학으로 추앙받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동아일보와 채널A, 산업정책연구원(IPS)이 공동 주최한 ‘제4회 CSV 포터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과거 ‘닷컴 버블’에서도 잘 드러나듯 절대 극복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으로 보였던 인터넷 기업 대부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며 “디지털 혁신을 적극 포용하기만 한다면 순수 IT 기업보다 전통 제조기업이 궁극적 승자로 남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포터 교수는 지난 2014년과 2015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스마트·커넥티드 제품(smart, connected products)을 주제로 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며 디지털 혁신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14년 11월 호 HBR 코리아 ‘스마트·커넥티드 제품은 어떻게 경쟁의 구도를 바꾸고 있을까’, 2015년 10월 호 HBR 코리아 ‘스마트·커넥티드 제품은 기업들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참고) 올해 11·12월 호에도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과 관련된 기고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디지털 혁명기를 맞아 전통 제조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포터 교수에게 물었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디지털 혁명기를 맞아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구글 같은 IT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는 게 대표적 예다. 신흥 IT 기업과 전통 제조기업 간 경쟁 양상이 어떻게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하나?

먼저 거대 IT 기업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IT 기업은 자신들이 빌딩관리 시장에 들어가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냉난방, 급수, 전력, 보안 등 빌딩에 들어가는 복잡한 시스템의 전 영역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실제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탓에 이 기업은 빌딩관리와 관련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도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분명 오늘날 전통 제조기업이 IT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단적인 예로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 IT 기업들은 개발 속도나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 모두 빠르지만 전통 제조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스마트폰 기술과 이를 통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IT 기업들의 접근 방식이 경쟁에서 ‘빨리 이길 수 있는 길(a quick way to win)’처럼 보이는 시기가 분명 있다. 즉 IT 기업 외에는 다른 어떤 기업도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고, 그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IT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위협적으로 보이는 기간이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단순히 데이터만 모으고 분석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미 있는 통찰을 이끌어 내려면 그 데이터를 실제 하드웨어 관련 지식과 통합해야 한다. 설령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해도 실물 세계에 대해 ‘이해’도 못하고, ‘영향’도 못 주고, ‘통제’도 할 수 없다면 결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앞서 언급한 IT 기업이 실패한 원인도 데이터 분석력이 뒤처졌기 때문이 아니라 빌딩관리에 들어가는 복잡한 기계들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 IT 기업들이 성취해 온 결과물들은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 없이) ‘데이터만을 활용해 가장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들(low-hanging fruits from just the data)’이었다. 사실 IT 기업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일들이 어려운 건 아니다. 단지 과거에 제조업체들이 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제는 IT 기업 말고 다른 기업들도 누구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 제조업체들이 조직 내에 데이터 애널리틱스(data analytics) 관련 부서를 두고 있다. 또한 이들 제조업체는 물리학, 화학, 열역학 등 분야별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IT 기업들은 좋은 성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전통 제조기업들을 모두 몰아내고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인터넷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순수 닷컴 회사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궁극적 승자는 실물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기업 중 디지털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업체들이었다. 이들은 디지털이라는 거대 흐름과 싸우는 대신 IT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본래의 사업 모델과 인터넷을 통합시킴으로써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켜왔다.

나는 현재의 디지털 혁명기에도 과거 닷컴 버블과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현재 엄청나게 가치평가를 받는 기업 중 상당수는 궁극적으로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게 판명될 것이다. 지금 당장 이들 기업이 아무리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해도 종국에 시장에서 승리할 이들은 실물 제품과 기초 과학에 대한 핵심 기술을 가지고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는 제조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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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자동차 업체들이 구글의 무인자동차 개발에 대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겠다. 자동차를 자기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아는 자동차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에 능한 데이터 과학자가 있다고 치자. 둘 중 자동차에 특화된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잘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두 사람 모두 자질이 똑같다면 데이터 과학자보다는 자동차 전문가가 궁극적으로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물론 최근까지도 많은 자동차 기업들이 IT나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자사 비즈니스에 도입하지 않고 전통적인 제조 방식을 고집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선도 자동차 업체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하려 한다고 알고 있다. 이런 흐름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전통 자동차 업체들이 훨씬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데이터 애널리틱스에 대한 투자를 통해 보다 나은 연결성(connectivity)을 확보해 나가고, 과거엔 생각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기업들이 데이터 분석 역량을 확충하고자 해도 적절한 인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맞는 말이다. 데이터 과학자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첨단 기술기업들보다 전통적인 제조업체들에서 인재 부족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비단 데이터 과학자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링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 시스템 통합 분야 전문가들도 공급이 달린다. 제조사에 필요한 역량은 기계적 엔지니어링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으로, 제품을 파는 일에서 서비스를 파는 일로 바뀌고 있지만 정작 적합한 인재를 찾기는 힘든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스마트·커넥티드 혁신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최근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닷컴 버블’ 시기를 전후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 사람들이 대거 몰렸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기술 변화에 민감하고 ‘쿨(cool)’ 한 것을 좇는 젊은 세대들이 데이터 애널리틱스에 관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제 기업들은 스마트·커넥티드 제품을 통해 다양성이나 규모 측면에서 유례없는 수준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대부분 기업들이 방대한 데이터의 바다에 빠져 거의 ‘익사’할 지경이라는 사실이다. 데이터 애널리틱스는 매우 멋지고 근사하게 들리지만 실제 이를 제대로 구현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물리적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하고, 지원하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 없이 단순히 데이터만 들여다봐서는 의미 있는 통찰을 도출해 내기 힘들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핵심은 디지털과 실물 세계의 통합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IT 기반 기술 기업이 소프트웨어에서 혁신적인 무언가를 내놓는다 해도 우리 삶에는 여전히 그 기술을 구현할 매개 수단(vehicle), 즉 고품질·고효율·고성능 제품이 필요하다. 전통 제조업의 중요성이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이유다. 중요한 건 이런 실물 제품을 이전보다 훨씬 더 빨리,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아직도 대부분 자동차 업체들이 3∼4년에 한 번씩 신차 모델을 내놓고 있다. 반면 테슬라는 몇 년 단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의 성능과 기능을 끊임없이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 구제품을 신제품으로 대체하지 않고도 업그레이드라는 효율적 방식을 통해 더 나은 고객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디지털’은 복잡한 엔지니어링이나 독점적인 기술이 아니다. 이보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디자인 철학과 훨씬 더 관련이 있다. 전통 자동차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선 몇 년 주기로 이따금씩 단편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출시(a long, episodic new model)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적 혁신(continuous innovation)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비단 자동차 산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모든 제조업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상시적 제품설계(evergreen design), 원격 업그레이드(remote upgrading), 서비스 개념의 제품(product-as-a-service) 등 스마트·커넥티드 혁신의 시대에 걸맞은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동시에 스피드와 생산성,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제품 설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제품 개발 및 출시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보수·정비 작업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향후 제조업체들이 AR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AR 기술이 전통 제조업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AR 기술이 학습과 교습을 위한 강력한 도구(a powerful tool for learning and teaching)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근로자를 위한 정규 훈련 프로그램은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다. 학교 교실에서 몇 년 동안 정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기업에 입사한 후에도 현장 트레이닝을 받아야 쓸 만한 근로자가 된다. 가령 신입 노동자가 생산 현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복잡한 기계를 다뤄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종전대로라면 별도의 트레이닝 세션을 통해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어야 숙련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R을 활용하면 복잡한 기계 작동법도 매우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그 어떤 기술보다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natural interface)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AR은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에 가상 세계를 투영하는 기술이다. 즉, 2차원에 갇혀 있던 디지털 정보를 3차원 현실 세계에 중첩시켜 주는 테크놀로지다. 이는 스마트 글라스 같은 인터페이스 기기를 통해 노동자에게 그때그때 필요한 기계 작동법이나 작업 지시 내용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는 제한된 훈련만 받고도 복잡한 작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고, 아무리 숙련도가 낮은 일꾼도 전문가의 코치를 받아가며 쉽게 일할 수 있다. 한마디로 AR을 활용하면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와의 격차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건 일처리 속도가 배 이상 빨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는 어마어마한 개선이다.

AR이 비단 생산현장에서만 쓸모 있는 게 아니다. 제품 개발, 물류, 마케팅, 영업, 사후 서비스 등 가치사슬의 전 영역에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 설비를 개발한다고 가정할 때 설계한 생산 설비가 현장 작업자에게 편리한지 여부를 AR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고, 새로운 생산 설비를 현장 작업자가 실물 크기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구체적인 사용감이나 디자인에 대한 피드백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과거 AR은 엄청나게 비싼 기술이었다. 그래서 주로 전투기 시뮬레이션처럼 군용 목적으로 쓰임새가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3D 모델링, 머신비전 등 관련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AR 기술 비용도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AR을 둘러싼 기술 생태계가 점점 커져가고 있고 품질도 계속 개선 중이다. 단언컨대 스마트·커넥티드 혁신 뒤에 이어질 디지털 혁신은 AR이 주도할 것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AR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나와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AR을 구현하기엔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기기다. 스마트 글라스가 이상적이지만 아직까지 기술적 한계가 큰 상황이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하지만 결국엔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고 가격도 내려갈 것이다. 머지않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스마트 글라스를 착용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전통 제조업체들이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선 조직 구조나 문화 측면에서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전통적 제조기업의 조직은 대개 R&D, 제조, 물류, 영업, 마케팅, 사후 서비스, 재무, IT 같은 기능별 부서들로 구분된다. 대개 이런 부서들은 각각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기능부서 간 협력과 조정은 이따금씩 단편적(episodic)으로, 드물게(infrequent) 발생한다. 그것도 제품 수명 주기 안에서 업무를 인수인계(handoffs)하는 과정, 즉 ‘설계에서 제조로’, 혹은 ‘세일즈에서 서비스로’ 넘어가는 과정을 잘 관리하기 위해 협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마트·커넥티드 혁신 시대에 협력과 조정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제품을 판매한 뒤에도 제품 설계, 클라우드 운영, 서비스 개선, 고객 참여 등을 위해 여러 부서가 지속적으로 조정 작업(ongoing coordination)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에 구분돼 있던 기능 부서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서로 중첩될 필요성이 있다는 걸 뜻하며 조직 구조나 문화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요구된다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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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의 경우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 구조와 문화를 갖고 있다.

위계적 조직 구조는 비용 절감을 하는 데는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혁신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스마트·커넥티드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선 수평적 조직구조(flat structure)에서 각 부서 간 조정과 협력을 통해 업무를 병행처리(parallel processing)해야 한다. 당연히 엄격한 위계질서와 관료적 문화는 큰 장애물이 될 뿐이다. 물론 리더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위계적 구조로도 충분히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 같은 혜안을 가진 리더(visionary leader)가 최고경영자(CEO)라면 위계적 조직도 플러스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신속하게 혁신을 추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이끄는 기업은 없는 것 같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보통의 사람,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통념에 익숙한 사람이 리더라면 위계적 구조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약 20년 전 기고문을 통해 “전략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운영 효과성(operational effectiveness)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 수준에 대해 평가한다면?

과거에나 지금이나 한국은 운영 효과성과 베끼기(copying)에 집중하는 기업들이 많다. 물론 전략을 가지고 있는 기업도 상당수 있지만 남들이 하는 건 모두 다 하려는 ‘전략 없는’ 기업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 중에는 소위 이름난 대기업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전략의 부재는 많은 한국 기업들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삼성그룹의 바이오 산업 진출은 상당히 의미 있는 전략이라고 평하고 싶다.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바이오의약품 복제약)는 제네릭(generic·화학합성 의약품 복제약)과 비교할 때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다. 삼성그룹은 이를 분명하게 이해했고 단기간에 괄목할 성과를 이뤘다. 물론 아직까지 최고의 약을 만들 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짧은 시간 동안 삼성이 이룬 성과는 매우 놀랍다.

 

한국에서 정치권과 재계의 스캔들로 인해 많은 논란이 발생했다.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 여러 스캔들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정해 보이지도 않고 정당화하기도 힘들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괜찮다”고 허용돼 왔던 부정부패 관행들이 계속 이어져 왔고 리더들 역시 이를 당연한 ‘특권’으로 여겨왔던 게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서구에도 가족 소유 기업이 꽤 있다. 마스(Mars), 카길(Cargill)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모두 전문경영인이 경영하지 오너 가문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진 않는다. 오너 가문이 이사회 멤버로 참석하긴 하지만 투명 경영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둔다. 누구도 오너라는 이유로 당연히 리더가 될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대교체를 통해 이런 부분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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