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대규모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쌍용차 사태의 핵심은 유형자산 손상차손 평가에 있다. 유형자산 손상차손은 토지, 건물, 생산설비 등 유형자산의 회수가능액이 장부상 금액보다 적을 때 그 차액을 회계장부에 손실로 반영하는 것이다. 쌍용차는 2008년 5176억 원의 재무제표상 유형자산손상차손을 보고했다. 당시 외부감사를 맡은 딜로이트안진이 매출 급감에 따른 영업손실, 현금유출 등을 이유로 유형자산에 대한 손상차손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후 과대계상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융감독원은 쌍용차의 회계처리에 대해 감리작업을 진행했고 서울대 회계 전공 교수도 감정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양자 모두 합리적으로 계상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2심 재판부가 전문가들의 의견과 배치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쌍용차 사태는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된다.
편집자주최종학 서울대 교수가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계학을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이 회계를 받아들이고 비즈니스에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쌍용차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필자의 글은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지난 2008년 말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 각국의 많은 기업들이 생존에 위협을 느낄 만큼 큰 타격을 받았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3년 들어 중국 다롄에 위치한 STX그룹 소속사 STX다롄이 파산을 선언했다. STX다롄은 STX그룹이 금융위기 발발 이전의 호황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서 중국 다롄에 건설한 조선소인데,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신규 선박 건조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파산하게 된 것이다. STX그룹은 경영권을 포기하고 중국에서 철수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STX다롄이 중국의 은행들로부터 대출해 상환하지 못한 자금은 약 14억 달러에 이른다. 밀린 임금이나 협력업체들에 결제하지 못한 자금도 상당하다.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만 1만 명이 넘는다. 중국의 채권은행들과 협력업체들은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STX그룹과 한국의 STX그룹 채권은행들에 채무를 대신 갚아달라고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당시 STX그룹도 이미 파산 위기상황이라 여유자금이 없었으므로 이런 요청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 금융사들은 법적으로 볼 때 STX다롄의 문제를 해결해줄 책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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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국가 간의 외교상의 이슈로까지 확대됐지만 국가가 사기업들 간의 문제에 개입해 빚을 대신 갚아 줄 수도 없는 것이니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다롄 현지에서 체감하게 된 피해가 너무 커진 나머지 당시 반한(反韓) 감정 역시 상당히 커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국내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2004년 10월, 중국 상하이차는 1997년 발발한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오랫동안 부도 상태였던 쌍용차를 채권단으로부터 인수했다. 당시 인수경쟁을 했던 미국 GM은 주당 7000원의 인수가를 제시한 반면 상하이차가 주당 1만 원을 제시하면서 쌍용차 인수에 성공했다. 상하이차는 총 5900억 원을 투자해 쌍용차를 인수했고, 쌍용차의 인수로 큰 시너지 효과가 발생해 쌍용차를 다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쌍용차의 부도쌍용차는 상하이차에 인수된 이후에도 계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2007년에 이르러 마침내 소폭이지만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당시는 쌍용차뿐만 아니라 미국의 GM이나 크라이슬러 등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파산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원유가 급등으로 인해 특히 대형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대형 SUV를 생산하는 쌍용차는 더 큰 타격을 받았다. 하반기에는 거의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결과 매출액이 2007년 3조1000억 원에서 2008년 2조50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운영자금이 고갈되자 2008년 12월부터 직원들에 대한 임금 지급 및 납품업체에 대한 대금 결제가 중단됐다. 결국 2009년 1월 상하이차는 쌍용차의 경영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쌍용차에 상당한 자금을 대출해줬던 채권은행단, 노조, 협력업체 등은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상하이차는 경영에 복귀할 뜻이 없다는 결정을 전해왔다. 그 결과 쌍용차는 법원에 회생절차개시(당시 용어로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된다. 일감이 없어서 직원 상당수가 몇 달째 쉬고 있는 상황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자 국내 노동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만 습득하고 ‘먹튀’를 했으며 경영 윤리가 없는 부도덕한 회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쌍용차의 채무를 상하이차가 대신 갚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상하이차 측에서는 경영실패로 인해 5900억 원의 투자금 중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식회사의 경영 원리에 따라 적법하게 경영권을 포기한 것뿐이라고 맞섰다. 주식회사에서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자본의 금액만큼만 법적인 책임을 진다. 주식회사가 파산하면 회사를 청산해서 남는 자금을 채권자들에게 우선 지급한다. 주주들은 그 후 남는 자금을 받는다. 만약 채권자들이 받을 돈이 부족하다면 채권자들도 일부 손실을 보는 것이며 이 경우 주주들은 아무 돈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즉 주주들이 자신의 투자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만 채권자들도 자신의 투자에 대해 주주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다. 이때 법적으로 회사가 파산했다고 해서 채권자들이 회사 청산 이후에 회수하지 못한 자금을 주주들에게 대신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하이차의 결정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윤리도덕적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당시 피해를 본 노동자, 협력업체 임직원, 채권자 금융기관 등의 안타까운 심정도 이해가 된다. 이 때문에 당시 국내에서는 상하이차나 중국에 대한 반감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