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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에 대한 단상

이치억 | 215호 (2016년 12월 Issue 2)
인류의 지성사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 본성의 선함을 주장해 왔지만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역사의 수많은 막장 드라마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악행들은 도무지 인간 본성이 선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철학자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인간 본성의 선함을 증명하기보다 악함을 증명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 보인다. 유일하게 종족을 살해할 줄 알고, 배부름의 만족을 모르며, 탐욕에 찌들어 있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세상에 인간만큼 사악한 존재가 또 있을까?

정말로 인간은 사악한 존재일까? 인간의 본성은 악할까?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악행을 밥 먹듯 일삼는 인면수심의 인간도 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도 가끔씩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는 도덕적인 체하지만 보는 눈이 사라지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이익이나 위협 앞에서도 꿋꿋이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결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본성에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에 본성이 악하다면 사람은 악을 즐겁고 편안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즐거운 마음으로 악행을 저지르거나 악을 편안히 여기지 않는다. 악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고 불편하고 괴로운 것이다. 그리하여 악행 때문에 불편해진 마음을 사람들은 악행의 대가로 얻은 전리품으로 틀어막는다. 권력이나 돈 같은 대용품을 가지고 왜곡된 즐거움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악행으로 불편해진 마음을 왜곡된 즐거움으로 해소하고 다시 악행을 저지르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고, 이는 이윽고 중독이 된다. 어느새 마음이 마비되고 악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쉽게 속일 수 있다고 한다. 감각기관이 장기간 동안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뇌에 보내면 뇌는 그것을 사실로 믿어버린다. 이러한 방식이라면 살아온 환경과 자극에의 노출 정도에 따라 악을 선으로 믿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 그중에서도 얼굴은 특히 정직하다. 악으로 인해 느낀 불편함은 얼굴에 드러나게 돼 있다. 필자는 아직 온화하고 따뜻한 얼굴을 가진 범죄자는 보지 못했다.

많은 철학자들이 세상에 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악은 어떤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비록 ‘선악’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악은 ‘음양’ ‘밤낮’ ‘내외’처럼 선과 대등한 상대개념이 될 수 없다. 악은 단지 선의 결핍인 불선일 뿐이며 본성에 따르지 못한 착각에 의해 일어나는 환영(幻影)일 뿐이다.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좇는 악행은 반드시 부작용을 남기고, 본인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반드시 상처와 고통을 주게 마련이다.

악행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악을 미워하고 선을 지향할 줄 알기에 이미 일어난 악행은 선을 촉진하는 촉매제이자 동력이 된다. 이는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극히 건강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니 세상에서 발생한 수많은 악행이 인간 본성의 악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미워하고 선을 갈망한다고 하는 성선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교학상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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