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제국

"막강 사비니족 여인을 약탈하라"과감한 DNA수혈, 로마를 키웠다.

205호 (2016년 7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사비니 여인의 약탈과 관련한 전설은 로마 건국사에서 중요한 스토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로마 건국 영웅인 로물루스가 전사들의 아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웃 부족인 사비니족의 여인들을 강제로 납치했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의 역사적 본질은 로물루스파와 사비니족의 연합이다. 훗날 플루타르코스는 외부의 진취적인 집단과의 연합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외부 DNA의 수혈을 추진한 것이 로마가 주변의 다른 모든 도시들에 비해 가장 힘이 약한 상태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성장해 로마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그리스·로마 문명은 르네상스의 모태였고 서구 문명과 현대사회를 만든 힘입니다. 로마제국과 르네상스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생생한 교훈을 던져주는 이유는 서구 문명과 현대사회가 지닌 공통성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제국을 만든 사람들과 그들 세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키워나가시기 바랍니다.

 

뮤지컬 영화의 고전이 된 ‘7인의 신부(1954)’라는 영화가 있다. 산속에 사는 7명의 남자 형제들이 마을의 아가씨를 납치했다가 서로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플롯은 로마의 고대 전설인사비니(Sabini) 여인의 약탈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납치를 모의하면서 사바니 여인의 약탈 사건을 사례로 드는 장면이 나온다.

 

사비니 여인들을 약탈한 로물루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전사들의 신붓감이 부족하다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는 로마 북쪽에 거주하던 사비니족을 축제에 초대했다. 포로 로마노의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 사이에 땅이 길쭉하게 꺼진 부분이 있다. 영화벤허(1959)’에 등장하는 대전차 경주장인데, 축제가 벌어진 곳이 이곳이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약간 떨어진 가축시장(영화로마의 휴일(1953)’에 등장하는 진실의 입이 위치한 곳) 자리가 축제 장소였다고도 한다.

 

아무튼, 한창 축제가 무르익어 갈 때 로물루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겉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로마인들은 칼을 뽑아 들고 사비니족을 습격했다. 사비니족은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로마인들은 남자들은 도망치게 내버려 두고 그들이 데려온 아내와 딸들을 붙잡았다. 이날 사비니족이 빼앗긴 여인이 30명이었다는 설도 있고, 527, 683명이었다는 설도 있다. 나중에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유부녀는 버려두고 처녀들만 납치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진짜 기준은 젊고 예쁜 여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사비니족 여인 중 제일 눈에 띄는 여인은 헤르실리아였다. 로물루스는 유부녀였던 그녀를 차지했다.

 

아내와 딸을 잃은 사비니족은 분노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토착민이 아니라 어디에선가 이주해 들어온 집단이었다. 전설에는 스파르타인과 같은 종족이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강력한 투사들이어서 이런 전설이 생긴 것 같다. 사비니족은 로마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전 부족이 합세해 공격하지 않고 일부 부족이 성급하게 공격했다. 그게 바로 실수였다. 로물루스는 이들을 격파했고, 그들의 땅을 로마인에게 나눠줬다.

 

 

 

사비니족의 반격

 

분노에 더해 로마의 성장에 위기감까지 느끼게 된 사비니족의 잔존 세력들은 신중하게 행동했다. 포로 로마노의 북쪽에 있는 카피톨리노 언덕은 일곱 언덕 중에서 제일 높은 곳이면서 작고 좁은 곳이다.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웠던지라 대대로 공동묘지나 요새로 사용돼 오던 곳이었다.

 

사비니족은 이 요새의 보초를 매수해 성문을 열고 단숨에 카피톨리노를 점거했다. 로물루스의 군대가 팔라티노에 집결하면서 양측은 현재의 포로 로마노의 중심부를 가운데에 두고 대치했다. 당시 포로 로마노는 범람원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진창이었다. 이 진창에서 양쪽 군대가 뒤엉켰다. 치열한 전투 중에 용사 중의 용사였던 로물루스가 머리에 돌을 맞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로마군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로물루스가 호통을 치며 병사들을 제지하려고 했지만 한번 허물어진 용기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지암 볼로냐의 조각상 '사비니 여인의 약탈'

 

 

다행스럽게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망가던 로마 병사들이 정신을 차렸다. 전설에 따르면 절망한 로물루스가 유피테르(Jupiter, 주피터) 신에게 호소하자 갑자기 병사들의 용기가 되살아나 도주를 멈췄다. 하지만 이런 설명보다는 지형적 특성이 더 타당한 이유로 보인다. 병사들이 멈춰 선 곳이 유피테르 스타토르(Jupiter Stator) 신전 자리라고 하는데, 이곳은 포로 로마노의 평지가 끝나고 팔라티노 언덕이 성벽처럼 가파르게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로마군을 멈춰 세운 것은 신이 불어넣어준 용기가 아니라, 지형이거나 지형에 맞춰 미리 설치해둔 제2 방어선이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무너지던 군대가 2선에서라도 즉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로마군의 전투 능력이 수준급이었음을 반증한다. 되돌아선 로마군은 사비니군을 다시 밀어냈다. 포로 로마노의 중앙부, 팔라티노에서 카피톨리노 쪽으로 가는 길의 약 3분의 1 지점에 베스타 신전이 있다. 지금도 화덕의 신을 모시던 둥근 신전 자리와 직사각형의 정원을 빙 두른 베스타 처녀들의 대리석상이 잘 남아 있는 이곳은 포로 로마노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양측 군대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로물루스파와 사비니족의 연합

 

로마군과 사비니족이 다시 격돌하려는 찰나 이를 안 사비니의 여인들이 울면서 두 군대의 사이로 뛰어들어 왔다. 어떤 여인은 쓰러진 병사를 붙들고 오열했고, 어떤 여인은 무장한 병사에게 달려들어 매달렸다. 여기서 헤르실리아는 감동적인 호소를 했는데, 결론은 한쪽에는 자신들의 아버지와 오빠가, 한쪽에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투는 중지됐고, 양쪽은 화해를 했다. 사비니족은 아예 로마로 이주해 그들의 강력한 동맹자가 됐다. 로물루스는 일곱 언덕 중에서 가장 큰, 현재 이탈리아 대통령궁이 자리 잡고 있는 퀴리날레 언덕을 사비니족의 거주지로 양도했다. 로물루스와 사비니족의 왕 타티우스는 새 왕국의 왕위와 군사권을 절반씩 나눠가지기로 했다. 양측의 합병으로 로마의 인구는 두 배로 늘었다. 군대 역시 배가 됐다. 결국 로마는 일곱 언덕의 원주민, 해방구를 찾아 도망쳐 들어온 무리들, 새로 편입된 사비니족의 세 집단으로 구성됐다.

 

 

사비니 여인의 이야기는 르네상스 이래로 수많은 예술가를 자극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란치오에는 지암 볼로냐의 조각상사비니 여인의 약탈이 페르세우스상과 헤라클레스상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카스텔로, 니콜라스 푸생, 다비드, 루벤스, 심지어 피카소까지 이 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이 이야기가 이토록 인기 있는 이유가역사적 불행에 대한 유감이나 반성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페미니스트라면 분명히여인과 사랑을 획득물로 간주하는 남자들의 야수적이고 저급한 욕구의 발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부정하고 싶지만 쉽지는 않다. 남성을저급한 짐승론에서 구원하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약탈 사건의 배후에 있는 진짜 역사를 규명하는 것이다.

 

사비니 여인 약탈 사건의 역사적 본질

 

사비니 여인의 약탈 사건은 남성의 저급한 욕망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의 역사적 본질은 로물루스파와 사비니족의 연합이다. 로마의 건국신화에서 애매한 부분은 로물루스가 과연 일곱 언덕의 원주민이자 주류 집단의 리더냐, 아니면 그 자신도 해방구를 찾아온 유랑 이주민이냐는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대결에서 말했던 것처럼 레무스 세력이 오히려 원주민에 가깝다. 로물루스가 팔라티노의 원주민 출신이라고 해도 일곱 언덕의 주민들은 로물루스가 그들을 통합하기 전에는 섬처럼 흩어져 분열되고 웅크리고 살았다. 그래서 독립투쟁에 나서기 위해서 로물루스는 도망자와 부랑자를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다.

 

 

포로 로마노 전경. 왼쪽 상단 갈색 건물이 있는 곳이 카피톨리노 언덕, 사진 맨 우측 하단 기둥이 둥글게 서 있는 곳이 베스타 신전 위치다. 사비니 족은 이 공간을 가로질러 진격해 왔다. 당시 이곳은 건물이 없는 진창이었다.

 

 

이제 로물루스는 도시의 안정과 정복에 나서야 했는데 일곱 언덕의 원주민들은 용기와 진취성이 부족했을 것이고, 유이민 집단은 결속력과 신뢰성이 떨어졌다. 여기서 로물루스는 두 번째 모험을 한다. 전략적 합병을 통해 외부 DNA를 유입하는 것이다. 사비니족은 스파르타인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강한 전투력을 지닌 이주민족이었다. 로물루스는 사비니족을 통치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전혀 다른 부족이 동맹을 맺을 때 필연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결혼이다. 사비니 여인의 약탈은 이 혼인 이야기가 남성의 욕구에 맞춰 흥미롭게 재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와 사비니의 연합은 고구려 건국 설화에서 환인지역으로 들어간 주몽의 부족이 이미 거기에 정착해 있던 연타발과 소노부와 차례로 연합해서 정복국가를 세우는 과정과 흡사하다. 주몽은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는데, 소서노는 한 번 결혼했던 유부녀였다. 고구려 건국기의 역사나 전설이 풍부하게 남아 있었다면 우리도 사비니 여인 약탈 사건과 유사한 설화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플루타르코스는 외부의 진취적인 집단과의 연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외부 DNA 수혈을 추진한 것이 로마가 주변의 다른 모든 도시들에 비해 가장 힘이 약한 상태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빨리 성장해 로마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 사회와 대부분의 조직은 자신들의 전통에 너무 집착하고 외부 수혈을 두려워한다. 합병을 하거나 외부 수혈을 해도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그것에 적응해주기를 바란다. 이래서야 외부 수혈의 의미가 없다. 우리는 이미 로마제국보다 더 넓고 세계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인드는 여전히 일곱 언덕이란 섬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용한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전쟁과 역사> <세상의 모든 전략은 전쟁에서 탄생했다> <명장, 그들은 이기는 싸움만 한다> <뇌물의 역사>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9호 New Wave of Logistics 2021년 04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