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와 절대 가치 패러다임

200호 (2016년 5월 lssue 1)

 

 

럭셔리와  절대 가치 패러다임

 

“만약 브라운관 시대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국 TV업체는 일본을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 전문가인 김현철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이유는 브라운관 제작에 무려 1000개의 수작업 공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본 근로자들은 이 모든 공정 하나하나마다 오타쿠 정신을 발휘해 경쟁자가 범접하기 힘든 수준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확보했습니다. 역동성과 빠른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감안할 때 아날로그 기반의 브라운관 시대가 이어졌더라면 우리 전자업체들은 일본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난공불락 같았던 일본 전자업계를 의외로 손쉽게 넘어섰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경쟁우위의 핵심 요소가 내구성이나 안정성이 아닙니다. 품질에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발 빠르게 새로운 개념의 신제품을 내놓는 기업이 유리한 고지를 점합니다. 애플이 한때 스마트폰을 세게 쥐면 통화에 문제가 생기는데스 그립현상과 같은 심각한 품질 문제를 경험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아이폰의 질주가 이어졌던 게 디지털 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인들은 과감성, 신속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었고 이런 특징이 디지털 시대와 맞물리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분야라도 한국 전자기업이 경험했던 것처럼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기회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직 한국 기업이 개척하지 못한 대표적인 영역이 바로 럭셔리입니다. 프리미엄 단계까지 올라간 한국 기업은 꽤 많지만 럭셔리 레벨로 인정받는 분야는 화장품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무서운 가성비로 추격하는 중국 등 개도국 기업의 공세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려면 럭셔리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기업에 우호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A집단에는 100달러와 200달러짜리 카메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고, B집단에는 여기에 더해 500달러짜리 카메라까지 포함해 3개를 보여주고 선택하게 합니다. 그러면 B집단에서 200달러짜리 카메라를 산 사람의 비율이 훨씬 높아집니다. 이른바타협 효과혹은극단 회피현상 같은 인지적 편향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후속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제품에 대한 정보나 사용 후기 등을 검색하게 하는 등 실제 소비상황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줬더니 타협효과 등 편향이 대부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타마르 시몬슨과 엠마뉴엘 로젠은 <절대가치>라는 책을 통해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소비자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상대 가치가 아닌절대 가치가 중요해졌다고 진단합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도 고성장 시대에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통해 나의 지위를 과시하는이미지 편익을 중시했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기능적 만족감과 관련된성능 편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합니다. 실제 중국에서조차 과시적 소비를 부추겼던 브랜드가 시장 지위를 잃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럭셔리 산업이 직면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또 한국 기업들의 럭셔리 전략에 도움을 주는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시했습니다. 많은 기존 매체들은 특정한 한 관점만 부각하지만 DBR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이번 리포트에서도 DBR은 럭셔리 분야의 가치 경쟁 패러다임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장 노엘 카페레 교수의 인터뷰를 함께 게재했습니다. 어떤 트렌드도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기존 관점과 새로운 변화 양상 모두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봐야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럭셔리 전략을 고민하는 많은 리더 여러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동아비즈니스리뷰 351호 Diversity in Talent Management 2022년 08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