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畵中有訓

天台送別(천태송별): 아련한 정에 감응하는 지도자는 어디에?

고연희 | 181호 (2015년 7월 Issue 2)

天台送別: 아련한 정에

감응하는 지도자는 어디에?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양기성(梁箕星 18세기 화원화가), ‘천태송별(天台送別, 천태산에서 헤어지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 x 29.4, 일본 야마토분가칸

 

천태산(天台山)의 선녀(仙女)

천태산은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천태종이라는 불교적 장소로도 유명하지만 오래 전부터 도가적인 신비로운 인상을 짙게 풍기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천태산을 신선의 산으로 만들어 준 유명한 인물들이 곧 이 그림에 등장하는 두 선비와 두 여인이다. 두 선비의 이름은 유신(劉晨)과 완조(阮肇). ()나라 명제(明帝) 때의 인물로 약초를 찾아 천태산에 들었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13일 동안 복숭아를 따먹으며 헤매다가 물 위에 둥둥 떠가는 무잎의 호마반(胡麻飯)을 발견한다. 아마도 무잎에 싼 깨밥이었던 것 같다. 이를 본 두 선비는 사람 사는 마을이 멀지 않다고 생각하고 기운을 내서 물을 건너간다. 그러자 그들을 기다리던 아름다운 여인 두 명이 두 선비의 이름을 부르면서 전생의 복과 인연으로 여기에 도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부부보다 다정하게 반년을 살았다. 그러다 유신과 완조가 고향의 가족에게 다녀온다며 길을 떠나고 두 여인은 산 어귀로 나와 그들을 배웅한다.

 

소개하는 그림은 이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림 제목은천태송별(天台送別, 천태산에서 헤어지다)’. 푸르고 깊은 천태산 어귀 도화(桃花) 가득한 곳에 유신과 완조가 나란히 서고 두 여인이 마주섰다. 여인들을 몹시 작게 그려 넣은 것은 유신과 완조를 주인공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옛 그림의 수법이기도 하고 떠나와 멀어지는 모습의 표현인 듯도 하다. 일본에 현전하는 영조(英祖)대 왕실 제작의 그림책으로 세 권의 <예원합진>, ()’, ‘()’, ‘()’권 중권에 실린 8편 중 세 번째로 실려 있는 그림이다.

 

순간과 영원

유신과 완조가 여인들의 배웅을 받은 뒤 고향에 와 보니 나라는 바뀌어 있고 그들의 7세손이 살고 있었다. 그들 자신의 이름을 대고 물으니두 분 할아버지가 약초를 캐러 산에 가셨다고 한다. 유신과 완조는 망연자실해 발길을 돌려 천태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머물렀던 곳이 묘연해 찾을 수 없었고 다정한 그 여인들도 다시 볼 길이 없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유명록(幽明錄)> <태평광기(太平廣記)>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 기록돼 전하며 한국과 중국의 문인들에게 수없이 기억되고 인용되는 이야기다.

 

그림을 다시 보자. 마주보고 선 이들은 영원한 이별을 나누고 있다. <예원합진>의 이 그림 왼편에 시 한수가 적혀 있다. 훗날 당나라 시인 조당(曹唐)이 읊은 내용으로 영조 때 명필가 윤순(尹淳)의 필치로 적혀 있다. 시의 제목은선인이 유신과 완조가 동구를 떠나는 것을 송별하다(仙子送劉阮出洞)’이다.

 

殷勤相送出天台 은근한 정으로 헤어져 천태산을 나가네

仙境那能却再來 선경을 어찌 다시 올 수 있을까.

雲液旣歸須强飮 돌아가시거든운액을 꼭 마시고,

玉書無事莫頻開옥서는 일없이 자주 펼치지 마세요.

花當洞口應長在 꽃은 동구에 피어 응당 오래 머물 것이나,

水到人間定不回 물은 세상에 도달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惆愴溪頭終此別 슬프구나 시냇가에서 이별하고 나니

碧山明月照蒼苔 푸른 산 밝은 달이 푸른 이끼를 비추고 있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려나. 기약 없는 이별이란 것을 여인들은 알았을까. 운액(雲液)이란 향기로운 신선의 술이라 마시면 오장육부를 따뜻하게 하며 기운이 사지로 퍼진다. 술을 권하고 또 권한다. 이제 세상으로 가거든 옥서(玉書, 신선의 서적)는 함부로 펼치지 마시라고. 유신과 완조는 답했다. 가족에게 인사하고 돌아오겠소. 그러나 꽃은 오래 머물러야 한 시절이요, 물은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시인이 노래한다. 잠시 헤어짐을 슬퍼하지만 그것이 영원인 줄 모르는구나. 잠시 떠난 고향이었지만 그것이 영원한 떠남이었던 것을 몰랐듯. 조선의 학자들은 천태산에 들었던 두 선비의 이야기를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펼치면 곧 시인의 마음이 돼 그림 속 이별의 순간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불사(不死)와 호정(豪情)

불로장생의 선경(仙境)이나 그곳에 사는 아름다운 신선(神仙).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키운 사람들의 꿈이다. 유신과 완조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사람들은전에 왔던 유랑이 지금 왔노라혹은돌아온 완랑이란 말을 만들었다. 도화가 활짝 핀 신선 땅을 찾아내고내가 돌아왔소라고 소리치는 두 선비를 환상으로 떠올려본 말이다.

 

영조시절 왕실에서 아마도 교육적 고전학습서로 제작됐을 것으로 판단되는 <예원합진>에 천태산의 이별 장면을 그리고 이별의 안타까움을 읽도록 한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고향과 선경을 모두 잃어버린 두 선비의 참담함을 보노라면 혀를 차고 한숨을 짓는 것 외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잡다한 생각들이 뚝 멈추는 아득한 순간을 맞이할 뿐이다. 조선 선비들 문집에서 이 순간을 인용한 예는 매우 많지만 심각하게 다룬 글은 별로 없다. 한 선비가 사모하던 여인을 찾아갔는데 그 여인이 다른 이에게 시집간 것을 알고 스스로를 천태산을 찾아 헤매는 유신의 처지에 비유한 예가 특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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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연희

    고연희lotus126@daum.net

    - (현) 서울대 연구교수
    -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활동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활동
    -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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