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Mon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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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이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구사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으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레서피로 요리도 할 줄 알아야 하며 환경문제에도 민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초·중·고 학생의 수행평가 기준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1969년부터 5년간 프랑스에서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1911∼1974년)가 주장한 중산층에 대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도 약간 방향성은 다르지만 중산층의 기준을 내세우고 있다. 예를 들면, ‘페어플레이를 할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게 대응할 것’ 등이다. 중산층의 기준이 경제적인 기준이 아니라 내적인 지향점과 관련돼 있다. 중산층은 인구층이 가장 두껍다. 당연히 중산층의 사고 방향에 따라 국가가 다뤄야 하는 이슈와 정책 과제가 달라진다. 중산층이 ‘어떤 모습의 중산층’이 되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문화적 교양인’ ‘환경문제’ ‘페어플레이’ 등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집 장만’ ‘부동산 투자’ 등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중산층의 가치지향 방향에 따라 향후 사회적인 방향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중산층의 개념은 어떤 모습을 떠올리게 할까?
▶한국에서 중산층은?
마크로밀엠브레인이 3월 20∼50대 일반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1 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미지는 4년제 대학 이상을 졸업하고(82.4%), 전문직에 종사하거나(61.3%), 자기 사업(60.9%)을 운영하며, 해외여행 경험이 많고(61.0%), 여가생활을 충분히 즐기는 사람들(60.6%)이었다. 또 ‘3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했고(아파트 거주 68.1%, 30평대 52.6%), 1억 원 이상을 현금으로 보유하며(60.5%),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고(62.1%), 소비보다는 투자나 저축을 많이 한다(55.5%)고 느꼈다. 중산층의 내적인 부분은 어떨까? 응답자의 52.4%는 중산층이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 것으로 봤다. 그나마 읽는 분야는 주로 비즈니스나 경제와 관련된 분야(54.3%)이거나 자기계발(52.2%)에 관한 독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학습이 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중산층이 ‘국가나 공동체의 문제에 대한 관심(34.2%)’보다는 ‘자신의 이익(81.3%)’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봤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지향점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중산층은 보수, 진보 중에서 어느 한쪽에 뚜렷한 정치적 지향점을 두기보다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28%-1순위)’ ‘어느 쪽도 아닌 실용주의(20.1%)’를 지향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슈나 사안에 따라 지지 여부를 선택(36.5%-1순위)’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모호한 정치 구호나 지향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판단한다는 뜻이다.
▶나는 중산층이 될 수 있을까?
20∼50대의 78%가 자신이 중산층이 아니라고 응답했고 83.6%는 계층 상승을 희망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욕구는 얼마나 실현이 가능할까? 계층 상승에 대한 강한 욕구와는 정반대로 현실에서 계층 상승의 가능성은 낮게 판단했다. 46.3%가 더 좋은 계층으로 상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자녀 세대에서 계층 상승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본 사람은 15.2%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을까? 힌트는 중산층의 재산 형성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53.2%는 중산층의 재산이 자신의 노력보다는 상속으로 받은 재산이라고 봤다. 24.2%만이 한국에서는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43.1%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강했다. 52.1%는 ‘한번 가난해지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력보다 운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은 계층 상승에 대한 강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중산층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중산층에 대한 욕구와 계층 이동 가능성에 따라 해당 국가의 역동성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토스타인 베블렌(Thorstein B. Veblen)은 유한계급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 안정화 조건은 상류, 중류, 하류계층이 경쟁적으로 모방할 수 있을 정도로 지속적인 소득이 보장되고, 열심히 노동할 수 있는 의욕이 존재할 때 성립한다. 하류는 중류 계층을, 중류는 상류 계층을 모방하며 사회적 지위의 이동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계층 간 이동은 차단되고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2014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꼭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윤덕환 마크로밀엠브레인 컨텐츠사업부장 dhyoon@trendmonitor.co.kr
필자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심리학과에서 문화 및 사회심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마크로밀엠브레인 (구 엠브레인)에서 다수의 마케팅리서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컨텐츠사업부를 총괄하고 있으며 인천대 소비자·아동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자트렌드읽기> <장기불황시대 소비자를 읽는 98개의 코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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