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수백 년 이상, 혹은 수천 년을 걸쳐 형성된 각 문화권의 언어가 현재 그 문화권 사람들의 문화 DNA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이게 바로 지난 번 연재까지 논의한 내용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더해진다. 언어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탈식민지 VS. 탈제국주의’의 문화 DNA다.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식민지 경험 국가들은 그들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국수주의’ ‘외부 비판에 대한 민감성’ ‘자기 증명욕구’ 등을 강하게 지닌다. 해당 나라에 속한 국민들도 당연히 이 같은 특성이 내면화돼 있다. 반면 프랑스, 영국, 일본, 스페인 등 제국주의 국가 출신 국민들은 내면 깊은 곳의 ‘오리엔탈리즘’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문명화의 임무’를 지닌 ‘보편적 정의의 수호자’로 여긴다. 따라서 탈제국주의 국가에 진출할 때와 동남아나 중국 같은 탈식민 국가에 진출할 때 각각 기업들의 문화전략은 크게 달라져야 한다. |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 ‘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1. 탈식민 VS. 탈제국주의 국가1
지난 4월25일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들고 온 조선시대 옥새가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2013년 11월22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옥새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파병된 한 미군 해병이 덕수궁 인근 밭두렁에 빠져 있는 것을 주운 것이다. 그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조선 옥새는 미국 워싱턴 D.C의 한 양심적인 골동품 감정사 덕분에 발견됐다. 워싱턴의 감정사에게 캘리포니아에서 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국의 옥새가 골동품 시장에서 얼마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은 이 감정사는 뭔가 수상하다고 여겨 이를 연방정부 해당 부서에 신고했다. 이 덕분에 미국 정부는 옥새뿐만 아니라 당시 불법으로 유출된 조선시대 유물 8점까지 찾게 됐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약탈 당한 문화재 반환 문제로 오랫동안 일본, 프랑스와 실랑이를 벌여온 우리나라에 이런 미국의 태도는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몇몇 인터넷 게시판에는 “우리 것 돌려주면서 생색내는 것은 뭐냐”라는 비아냥 섞인 글도 보였지만 프랑스나 일본의 태도를 미국에 빗대어 “본받아야 한다” “일본이나 프랑스보다 미국이 낫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의 문화 DNA를 제대로 읽은, 미국 최고의 리더다운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그는 근대까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탈식민(Post-Colonial) 국가 국민’들의 문화적 특성과 정서를 제대로 읽어 한국인들의 호의를 살 수 있었다.
사실 제국주의 국가 출신들은 식민지 출신들의 ‘빼앗긴 문화재에 대한 애착’을 잘 모른다. 프랑스의 기메 박물관(Muse Guimet)은 모모야마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 병풍, 도자기, 판화 등 엄청난 양의 일본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거꾸로 일본의 교토의상연구소(Kyoto Customs Institute)에는 프랑스 의복 문화에 관련된 엄청난 양의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하지만 두 나라 국민 누구도 자기네 문화재들을 ‘원위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것은 두 나라 모두 외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는 ‘탈제국주의(Post-Imperial)’ 국가라는 점과 관련이 깊다. 제국주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재가 해외에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보통 강자의 입장에서 자국의 위상을 널리 전파하려고 값진 문화재를 의도적으로 해외에 반출했거나, 식민지 등 약소국에 외교적 선물로 ‘하사’했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고가에 판매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식민지 경험이 있는 탈식민국가 국민들은 생각이 다르다. 강대국의 억압에 눌려 문화재들을 탈취당했거나 침략으로 나라가 어지러워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침략자들이 슬그머니 문화재를 훔쳐간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 차이로 프랑스, 영국, 일본 등 탈제국의 정치가들은 문화재 반환이 한국, 중국 등 탈식민 국가의 일반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17∼20세기의 세계사는 군사력과 산업 발전, 경제력이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6개 국가에 쏠려 있었고 다른 나라들과 정치, 경제, 외교적 불균형이 엄청났다. 예를 들면, 19세기의 영국은 세계 영토의 23%를 지배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 60주년을 맞아 ‘다이아몬드 쥬빌리’ 행사를 치렀는데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국가 공휴일 휴가를 갔다고 한다. 미국의 시사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의 저서 <포스트 아메리칸 워드>에 이 모습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이날 자기 나라의 희귀한 동물, 가장 진귀한 보물을 들고 온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의 왕들이 줄을 서서 빅토리아 여왕 발 밑에 공물을 놓고 갔다. 정부 관계자들은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통로의 이름이 새겨진 황금 열쇠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했다. ‘세계의 수로를 잠그는 열쇠’라는 상징적 의미였다. 이처럼 엄청난 정치, 경제력의 불균형 구도는 겨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 종전시기였던 1950년대 이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극심했던 국가 간 정치, 경제 불균형 구도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정치, 경제, 산업의 불균형 역사는 피해자였던 식민지 출신과 가해자였던 제국 출신 모두에게 커다란 사고방식과 문화적 관점 차이를 만들어 냈다. 대학에 ‘탈식민지학(Post-Colonial Studies)’이라는 학문이 생길 정도로 이 차이는 생활 습관과 사고 방식, 행동 패턴들이 문학, 속담, 가정교육 등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파돼 후천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는 탈제국주의적/ 탈식민적 문화 DNA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나라 현대인들의 사고, 행동, 관점, 소비취향 등을 결정 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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