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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위한 시(詩)적 상상력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나무가 되어야지

황인원 | 150호 (201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인문학

상당수 시인은 시를 쓸 때 쓰고자 하는 사물이나 자연이 돼 본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읽는다. 시인들이 이런 일체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그 대상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담쟁이덩굴은 기어오르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담쟁이덩굴이 더 이상 타고 오를 데가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담쟁이동굴과 일체화한 시인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하늘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날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조금이라도 남겨 놓았을까 봐 바람이 이를 지워버린다. 담쟁이덩굴은 벽 끝에 올라 하늘에서 펼쳐지는 공()의 세상을 본다. 이처럼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알아내는 시인들의 일체화 방법은 회사의 제품 개발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시는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읽고 표현하는 특·장점을 가진 장르다. 사실 많은 예술 장르가 마음 읽는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까지가 연구 범위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장 바꿔보기를 한다. 이름하여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의 뜻은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라. 내가 그 사람 처지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관점의 주체는 나다. 내가 그렇게 해보는 것이지 내가 그 사람이 돼보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아무리 잘 이해한다 한들 당사자만 하랴는 말처럼 이해 부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해의 한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사물이나 자연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나 중심의 관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사물이나 자연을 바라볼 때도 아주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나 중심의 관점을 활용하게 된다. 꽃을 그리는 화가가 꽃이 돼보지는 않는다. 책꽂이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책상이 돼보지는 않는다. 음악가가 나무를 표현할 때 나무가 돼 어떤 마음인지를 표현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사람 입장에서 살펴본다. 해본 경험이 없기에 사람이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을 황당한 상상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시인은 사물이나 자연이 될 수 있는 사람

반면 시는 그렇지 않다. 상당수 시인은 시를 쓸 때 쓰고자 하는 사물이나 자연이 먼저 돼본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읽는다. 만약 그 시를 쓰고자 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도 직접 그 사람이 돼 마음을 읽어본다. 이는 시와 다른 예술 장르와의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물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간에 내가 대상의 마음을추측하는 것과 내가 대상이 돼 그 마음을직접 느끼고드러내는 차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에서의 관점 달리하기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이나 자연의 관점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대상이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시인은 사람인데 사람이 어떻게 사물이나 자연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시 한 편 보자.

 

 

 

류시화 시인이 쓴나무의 시의 앞부분이다. 아들에게 주는 이 시에서 시인은시로 나무를 표현하려면 나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자신의 전 생애를 들고 가서 나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시에서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는 것을 일체화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물이자 자연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일체화인 것이다. 시 작법에는자아의 세계화또는세계의 자아화라는 말이 나온다. 자아는 쉽게 말해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계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적 대상이다. 이를 그냥 대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아의 세계화는 내가 대상에게 가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반면세계의 자아화는 대상이 나에게로 와서 하나가 되는 방법을 말한다. 어느 것이든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방법이다. 이 시에 나오는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눈을 감고/나무가 되어야지는 내가 나무가 되는자아의 세계화방식의 일체화이다.

 

예를 들어 비를 맞고 있는 꽃에 대한 시를 쓰고자 한다면 시를 쓰는 내가 비를 맞고 있는 꽃이 돼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나 이제 꽃이다라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꽃의 상황 속으로 내 전 생애를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내 전 생애가 꽃이 어떤 상황 속에서 비를 맞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대상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일체화

시인들이 일체화 방법을 쓰는 이유는 꽃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다. 그런데 도대체 마음이 무엇인데 시인들은 꽃의 마음을 보고자 하는 것일까? 마음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보면 첫째,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둘째,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등으로 나온다. 이를 종합하면마음은 본래부터 지닌 품성인데, 이 품성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보고 또 다른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를 말한다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마음의 둘째 뜻을 조금만 바꿔보자. ,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감정, 생각 등을 일으키는 주체를사람이 아니라사물이나 자연으로 치환해 보자. 이렇게 되면마음은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인데, 사물이나 자연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 혹은 자연을 보고 일으키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그 작용이나 태도가 될 것이다.

 

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시적 대상의 원래 성향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유발하는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나 생각은 대체로 아픔이나 갈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담쟁이덩굴이 있다고 하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이 기어오르는 것이다. 담쟁이덩굴은 원래부터 기어오르는 성향을 지닌 존재물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를 전제로 담쟁이덩굴의 또 다른 감정이나 생각을 찾는다. 이 또한 담쟁이덩굴의 중요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마음 갈래, 만 갈래라는 말을 사용하듯 담쟁이덩굴의 마음도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성향을 지닌 마음이 있다고 여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조창환 시인의하지. 24절기의 하나인 하지라는 시간 속에서 시인은 담쟁이덩굴의 모습을 그림처럼 그려낸다.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이 시에 따르면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습성을 가진 담쟁이덩굴이 벽을 다 오르면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고 한다. 이 표현은 담쟁이덩굴이 벽 타는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는 또 다른 성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담쟁이덩굴의 마음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시인이 담쟁이덩굴로 일체화하니 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담쟁이덩굴이 되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담쟁이덩굴은 기어오르는 성향이 있다. 기어오르는 것은 담쟁이덩굴의 원래 마음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그런데 담쟁이덩굴이 벽을 끝까지 타고 올라가서 더 이상 타고 오를 데가 없는 상황에 있다. 시인은 담쟁이동굴과 일체화해서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그 상황으로 들어간다. 그 상황에서 담쟁이덩굴이 된 시인은 무엇을 보게 될까? 하늘이다. 그 하늘에는 병아리 솜털같이 보송보송하고 포근한 바람이 새들이 보이지 않게 만든 하늘의 길을 지우고 있다. 새는 자신이 간 길의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조금이라도 남겨 놓았을까봐 바람이 지우는 행위를 다시금 하는 것이다. 결국 담쟁이덩굴이 본 것은 새의 흔적을 지우는 바람의 비질이다. 벽 끝에 올라 하늘에서 펼쳐지는 공()의 세상을 보는 게 바로 담쟁이덩굴의 마음이자 태도다.

 

이 시에 의하면 바람도 역시 불기만 하는 게 아니다. 부는 것이 원래의 마음이라면 새가 길을 만들면 지우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게 바람의 또 다른 마음이다. 시인이 담쟁이덩굴이 돼 보니 바람의 마음까지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글로 옮겨 놓으면 그게 바로 시가 되는 것이다.

 

회사 제품의 마음 보기

이처럼 사물이나 자연의 마음을 알아내는 시인들의 일체화 방법을 회사 제품에 옮겨보면 어떨까?

 

여기 소화기 제조회사가 있다. 우리에게 소화기는 거의 무관심의 대상이다. 건물이나 집에 반드시 비치해 놓아야 하는 물건이기는 한데 생김새나 색상 등이 관심을 끌기에 역부족인 측면이 많다. 아파트에서는 신발장이나 베란다 구석, 일반 주택이면 광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 처박아둔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여름에 바람 들어오라고 문 열어 놓은 뒤 문 지지대로 사용하거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구석에 놓아둔다. 막상 사용할 때가 되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모른다. 또 오래도록 방치돼 있어서 경우에 따라 분말이 다 새어나가서 소화기 기능을 못 할 수도 있다. 또는 간신히 사용하다 보면 분말이 갑자기 세게 뿜어져 나와 주변에 있는 물건까지 몽땅 버려야 할 처지가 된다.

 

이런 상황은 소비자의 무관심으로 이어졌고 계속 매출 하락을 경험하게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품 리뉴얼이 필요했다. 이에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크기의 변화를 주기도 하고 사용설명서를 더욱 자세하게 적기도 했다. 나아가 분말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액화 소화기를 만들기도 했다.

 

매출이 올랐을까? 시장 상황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리뉴얼 제품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매출 신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문조사를 할 때는 이런 제품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실제 그런 의견을 반영한 제품이 나와도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사람 중심의 고정된 관점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점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고 해도 고객에게 그리 신선하거나 감성적 제품으로 보이지 않을 확률이 많다. 자신들도 볼 수 있는 관점이니 말이다.

그러다가 이 회사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소화기를 만들어냈다. 작은 거울처럼 얼굴을 비쳐볼 수 있는 액화 거울 소화기다. 거울 대신에 시계를 붙여 놓으면 액화 시계 소화기가 된다. 시계 대신 부처가 있기도 하고 예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일단 소화기를 구석에 처박아 둘 까닭이 없다. 책상 위나 거실에 놓아둘 수 있게 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소화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형태 변화로 인해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며 대박행진을 하고 있다. 실제 소화기 제조회사인 P사의 사례다.

 

거울 소화기의 탄생

   거울 소화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에서의 일체화 기법으로 생각해보자. 먼저 시처럼 기존 소화기의 마음을 찾는다. 기존 소화기의 마음은 어떨까? 외롭다, 우울하다, 화난다, 사랑받고 싶다, 깨끗하고 싶다 등의 마음이 있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필요하다고 데려다 놓고는 구석에 처박아두고 먼지를 흠뻑 먹어도 일 년에 한 번도 쳐다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내가 소화기라면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할 것이다. 이것이 소화기의 아픈 마음이다. 소화기의 아픔을 찾았으니 이제 그 아픔을 해결해주면 새로운 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기본적인 제품이 무엇인가. 거울 아닌가. 그래서 소화기의 모양을 거울처럼 만들었다. 여기에 분말의 단점을 액화로 바꿔서 거울과 합치니 액화 거울 소화기가 됐다. 이제 사람들이 늘 옆에 두고 소화기 자신을 바라보며 머리도 다듬고 얼굴도 본다. 거울 면에 태극기가 들어갈 수도 있고 각종 그림이 들어갈 수도 있다. 부처나 예수 모습이 들어간 소화기도 있다.

 

물론 이 회사에서 시에서의 일체화 방법을 알아서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면서 시간과 개발비를 들이는 대신 시에서 사물과 일체화하는 방법으로 소화기의 마음을 읽어서 변화시켰다면 엄청난 시간 절약과 개발비 절감 효과를 가져왔을 게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과 기능을 가진 소화기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의 관점으로 완전 전환을 꾀하는 일체화 방법의 힘이다. 다만 이런 방법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룹으로 모여서 내가 사물이 되는 연습을 하고, 그 연습에서 사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샘솟아 오를 것이다.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moonk0306@naver.com

필자는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기자와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시 전공자와 경영학자가 함께 만나 창조 시대를 이끄는 문학경영학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저서로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감성의 끝에 서라(공저)> 등이 있다.

  • 황인원 | - (현)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
    - (전) 중앙일보/경향신문 기자
    - (전) 경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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