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
Article at a Glance-인문학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서구에서는 최첨단 전자제품을 손목에 찬 사람에 대해 별로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오래된 역사와 언어습관, 그에 따른 문화 DNA를 이해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국내 톱 기업, 글로벌 기업들도 종종 실수를 할 만큼 서구 언어와 그 언어가 형성된 문화적 조건들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분명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각국, 각 문화권 소비자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문화 DNA에 대한 이해는 현재 서구 여러 국가들은 물론 동남아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다
편집자주
인종, 문화, 종교, 정서, 안목 등이 각양각색인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의 호감을 얻고 수익을 만들려면 인문학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현지의 문화를 이해한 상태에서 만들어내는 디자인, 상품명, 슬로건, 광고 등이 좋은 제품 생산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고객에게는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이 다른 나라 고객에게는 혐오감을 주거나 엉뚱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영미 지역과 유럽·동남아 문화에 정통한 언어 전문가이자 ‘문화 전략가’인 조승연 작가가 ‘문화 DNA와 글로벌 전략’을 연재합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일이다. 피날레에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가 우리나라 주관으로 열렸다. 러시아 소치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무지개 색 스카프를 감은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가 등장했다. 그때 필자의 미국인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한국이 러시아 같은 동성 연애 탄압 국가에서 동성애자 심벌을 마스코트로 들고 나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고 했다. 필자는 그의 칭찬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빠졌다.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은 동성애를 불법화한 러시아 정부의 인권 문제를 들어 서방 지도자들의 불참 등으로 반쪽 올림픽의 불명예를 안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자칫하면 우리의 마스코트가 목에 두른 스카프가 남의 잔치에 재 뿌리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었다.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가 목에 감았던 무지개 색 스카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인 ‘게이프라이드’ 심벌과 같은 색상과 패턴이다. 지금 대부분의 서양 선진국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으로 당연시한다. 1970년대부터 동성애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얘기가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다. 서양 선진국의 대도시들은 ‘게이프라이드 데이’를 정해 놓고 매년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게이프라이드데이 행사 퍼레이드 반주를 군악대가 맡을 정도로 이 행사는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행사가 열리면 도시가 어느 나라에 속하건 어김없이 무지개 색 깃발들이 도시를 뒤덮는다. 또한 게이들을 위한 음식점, 바 등의 입구 앞에 무지개 색 스티커를 붙여 게이 고객을 환대한다. 이미 서양 문화 속에는 무지개 색 깃발 패턴이 게이의 심벌로 머리에 깊이 박혀 있는 셈이다. 그런 것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의 목에 걸린 무지개 색 스카프를 봤을 때 당연히 게이프라이드를 연상했을 것이며 러시아의 게이 반대 정책에 항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화DNA가 소비행태를 좌우한다
핑크색 색안경을 낀 사람에게는 세상이 온통 핑크색으로 보인다. 문화는 소비자들의 눈에 걸린, 그러나 벗길 수 없는 색안경이다. 문화 색안경은 자라온 환경, 접해온 미술, 음악, 전통, 전설, 소설 등 읽은 책들, 학창 시절의 교과 과정 등을 총망라한 인문학적 기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인문학적 배경 지식에 따라 같은 상품 디자인, 상품명, 광고 문구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문화생활에서 얻은 지식 프레임 안에서 사물과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화제를 모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스위스 마테르혼 산에 도착한 할배들은 산의 높이 등 제원(spec.)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산이 파라마운트 영화사 로고에 나온 산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출연자들 모두 배우라는 점을 알면 그들이 왜 파라마운트 로고에 사용된 산의 실물을 그토록 반겼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자신이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우며 자란 것, 집에서 자주 들은 말, 학교 수업시간에 읽은 소설과 시, 라디오에서 들었던 음악과 TV 쇼 같은 것과 관련이 있는 상품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호의가 생기고 구매 욕구가 발동하는 법이다. 소비 행태를 결정 짓는 이러한 문화들은 대체로 가풍을 따라 대대로 유전된다. 그래서 필자는 한 소비그룹의 ‘취향’을 결정 짓는 소비자들의 문화 배경 지식과 안목을 그 소비 집단의 ‘문화 DNA’라고 부른다.
요즘을 디자인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문화 DNA가 서로 다르면 미적 기준도 달라져 같은 디자인도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고(故)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저서에서 사람의 교육배경에 따라서 안목과 취향에 얼마나 큰 격차가 생기는지를 연구한 내용을 실었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한다. 그는 실험 대상군을 인텔리, 전문직, 노동자 계층으로 나눠 각각 3곡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줬다. 그 3곡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발췌한 퓨가, 바그너의 ‘발키리의 행진’, 스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강’이었다. 조사 결과 인텔리 계층은 바흐, 전문직은 바그너, 노동직 계층은 스트라우스의 음악을 가장 ‘아름답다’라고 답했다. 브르디외 박사는 이 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안목과 소비 취향이 그 사람의 문화 수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타깃 고객층을 세분화하는 데는 연령, 국적, 성별보다 문화 취향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로큰롤 팬들은 남녀 구분 없이 Converse 브랜드 신발을 선호한다. 그리고 로큰롤 팬들은 부모도 로큰롤 팬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소비 취향의 세대 간 분류가 부정확해질 수 있다. 즉, 그 사람의 음악적 취향이 성별이나 나이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 전공자와 공대 전공자가 구매하는 물건이 확연히 다른 것도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사람의 DNA는 세포 속 게놈 지도 속에 들어 있다. 한 문화권의 게놈 코드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사용해온 어휘 속에 들어 있다. 외국인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경우 외국어 어원 속에 숨어 있는 문화 DNA를 발견하는 안목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의 실패
그런 안목을 가지면 얼마 전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가 미국에서 왜 ‘최악의 광고’라는 혹평에 시달렸는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광고는 한 남자가 스키 리조트에서 리프트 옆 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갤럭시 기어를 보여준다. 여자는 갤럭시 기어를 보자마자 남자에게 반한다. 미국 누리꾼들은 이 광고를 보고 ‘삼성이 애플하고 경쟁하는 줄 알았더니 오케이 큐피드(미국 온라인 커플 사이트)와 경쟁하는 것이었어?’ 등 조롱의 리플을 수도 없이 달았다. 미국 잡지와 영국 신문에서도 이 광고에 대한 혹평이 잇따랐다.
서양 언어구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실수는 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갤럭시 기어의 경우 서양인들의 정서상 그것을 소지한 이성에게 한눈에 반할 만큼 멋지고 성적 매력을 발휘하는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으로는 소비자들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유는 서구인들의 사고 방식의 지도라고도 할 수 있는 언어 구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멋진 상품을 보면 ‘classy!’라고 외친다. 이 단어는 멋지다, 고급스럽다, 소위 ‘있어 보인다’, 품격 있다, 섹시하다 등의 의미와 뉘앙스로 쓰인다. 이 단어의 어원은 ‘사회 계급’을 의미하는 단어 class다. Class는 ‘부르다’를 뜻하는 call과 같은 뿌리를 가졌다. 로마시대에는 장정들이 20년간 병역 의무를 졌는데 징집된 병사는 마을별로 병무 담당자들이 동네 앞에서 호명을 해서 데려간 데서 나왔다. 병무 담당자들은 징병자를 높은 계급에서 낮은 계급순으로 호명했고 로마 군인의 계급은 아버지의 재산 정도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class는 점차 군대에서의 계급과 사회 계층을 동시에 일컫는 말로 발전했다.
훗날 로마제국은 시민을 보유 자산 정도에 따라 5개의 법적인 등급, 즉 class로 나눴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이 5개 등급에 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class를 부여받았다’를 뜻하던 classicus가 ‘부자’로 의미가 확장됐다. 로마가 멸망하고 유럽은 여러 나라로 분할돼 통치됐지만 그 이후로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부자들, 즉 ‘classicus’의 문화를 변함없이 동경해 왔다. 집을 짓건, 인테리어를 하건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부자 스타일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리고 부자들은 이런 스타일을 ‘클래식’하다며 아낌없는 투자로 재현해 왔다. 클래식한 스타일은 부와 권력, 높은 문화 수준과 안목의 상징이 돼서 오늘날까지 ‘classy’라는 칭찬의 뉘앙스로 남아 있다.
이 단어를 수천 년간 그런 뉘앙스로 오랫동안 사용해온 소비자들의 인문학적 배경을 알면 classic과 classy가 같은 어원에서 온 만큼 이들에게는 한눈에 반할 만한 섹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예스러움과 뗄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삼성 광고에서 사용된 언어 회로는 첨단 기기인 갤럭시 기어를 미국 소비자로 하여금 ‘섹시할 만큼 고급스럽다’라는 이미지와 결합시키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문화 DNA는 첨단 소재로 만든 첨단 기기와 외형적 매력을 연결하기 힘들다. 아이폰을 유리 등 고전적 소재로 만드는 것도 서구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서구의 보통 여성들에게 공대생이나 첨단 테크놀로지 물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는 남자는 인기가 없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공대 지원생들은 사회성과 패션 센스가 부족해 연애 한 번 변변히 하기 어렵다는 편견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DNA를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미국에서 갤럭시 기어를 보고 예쁜 여자가 한눈에 반한다는 콘셉트의 광고는 현지 소비자들에게 커다란 인지부조화를 일으켜 혹평을 받았던 셈이다.
소비자의 문화 DNA를 간과한 광고는 소비자들의 격렬한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초식동물의 DNA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으로 인지돼 있어 배가 고파 굶어 죽어도 고기 음식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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