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언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정론(正論)이 살아 있다면 그 나라와 조직은 무게중심을 잡으며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언론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아무리 혹독한 비판이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도자가 성군이 됐고 존경받는 리더로 기억됐다. 내가 하는 일에 반대한다고 해서 권력을 앞세워 탄압하거나 입을 막는 지도자는 어김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고대 성군이었던 순(舜) 임금은 비방지목(誹謗之木)이라는 나무를 궁궐 앞에 세워 놓고 누구든 정치에 불만이 있다면 그 기둥에 글을 새겨 비방하도록 했다. 국가의 행정이나 관직자의 비리를 누구든 비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나무였다. 사람들이 비방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비방지목에 자신의 의견을 모두 써놓게 하여 국가의 균형을 잡아나갔다. 순 임금에 앞서 요(堯) 임금도 북과 깃발을 매달아 놓고 누구든 와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터놓았다. 감간지고(敢諫之鼓)는 어느 누구든 감(敢)히 간(諫)하여 말할 수 있는 북[고(鼓)]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하던 북이었다. 요 임금은 자신의 정치에 대해 잘못을 범하는 것이 있다면 누구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북을 쳐서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진선지정(進善之旌)은 좋은(善) 의견을 올리는(進) 깃발(旌)이라는 뜻이다. 요 임금은 이 깃발을 설치해 누구든 좋은 의견이 있으면 깃발을 흔들어 자신의 의견을 아무런 장애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의 장점만 말하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사람이고(道吾善者 是吾賊), 나의 단점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道吾惡者 是吾師)’라는 <명심보감> 구절이 있다. 누구든 나에 대한 칭찬을 듣고 싶어 하지만 나의 단점과 문제점을 정확히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나를 성장시키는 스승이 된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앞에서 귀에 듣기 좋은 말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자신에게 재앙이 미치는 것을 알지 못하고, 결국 몰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신하를 고를 때 나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 한두 명 정도는 둬야 비로소 현명한 지도자라고 강조하고 있다. 맹자는 과감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신하를 불소지신(不召之臣)이라고 한다. 내가 함부로 오라 가라 부를(召) 수 없는 신하(臣)라는 뜻이다. 불소지신의 역할은 소수의견을 내놓는 것이다. 요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기업들에 불소지신 몇 명만 있어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들이 가서는 안 될 길을 주장하며 확장을 부르짖을 때, 정도와 상식을 주장할 수 있는 불소지신을 둔다는 것은 조직의 행운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머릿수만 채우는 신하를 구신(具臣)이라 하고 옳은 말을 하다가 안 되면 과감하게 물러날 줄 아는 신하를 대신(大臣)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에 머릿수만 채우는 구신(具臣)들이 넘쳐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국가와 조직의 문제를 과감하게 비방할 수 있는 비방지목(誹謗之木)을 세우고 어떤 문제도 과감하게 간언할 수 있는 감간지고(敢諫之鼓)를 매달아야 한다. 함부로 할 수 없는 불소지신(不召之臣)과 직언,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대신(大臣)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조직의 균형을 잡아나가는 데 무게중심이 돼 발전과 번영의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쓴소리가 귀에는 거슬려도 국가 미래를 위한 정론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위정자들의 자세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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