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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여구보다 중요한 것

김남국 | 134호 (2013년 8월 Issue 1)

멋진 브랜드 네임과 분위기를 압도하는 슬로건은 기업이나 제품의 정체성과 위상을 높여주는 최고의 무기 중 하나입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네이밍과 슬로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국내외 마케팅 전문가를 대상으로 주요 기업과 자치단체의 슬로건을 취합해 평가를 해봤습니다. 또 전문가들이 전하는 다양한 네이밍 및 슬로건 방법론도 취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가져왔던 네이밍 및 슬로건에 대한 상식을 새롭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첫째, 브랜드 네임이나 슬로건은 멋지거나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거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말을 찾아내는 걸 핵심으로 여기고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미사여구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제품이나 서비스, 혹은 조직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핵심 가치와 동떨어진 슬로건은 아무리 멋진 말이라도 감동을 주기 힘듭니다. 자치단체 슬로건에 대한 전문가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녹색의 땅 전남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전남이 추구하는 경쟁우위의 원천, 혹은 핵심 가치가 잘 반영돼 있기 때문에 이 슬로건은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반면 최하위를 차지한 대전시의 ‘It’s Daejeon’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텅 비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대전만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지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은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면 의외로 쉽게 감동적인 슬로건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IT산업의 중심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면 지금의 슬로건에서 소문자 t를 대문자 T로 바꿔 ‘IT’s Daejeon’으로만 해도 나아질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도 참고할 만합니다.

 

둘째, 트렌드를 잘 반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트렌드를 추종하기보다는 트렌드를 선도하거나, 혹은 트렌드와 무관하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가치를 표현하는 게 더욱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기업 슬로건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GS칼텍스(I’m your energy)는 본업과 연결되는 ‘energy’라는 뜻을 중의적으로 사용해 트렌드와 무관하게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한국전력의 ‘New Start, Again KEPCO’는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시대의 트렌드를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고객의 입장을 찾아볼 수 없고 무엇을 새로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연상이 떠오르지 않아 오히려 부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셋째, 기막힌 브랜드 네임이나 슬로건을 만들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브랜드 네임이나 슬로건은 만드는 것보다 가꾸고 발전시키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아파트 브랜드자이(Xi)’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자이란 이름이 제안되자 당시 대부분 회사 관계자들은 거부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어감이 좋지 않다” “Xi를 자이라고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한국 시장에서 주로 활용해야 하는데 중국어 브랜드 같은 느낌이다등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제안한 회사가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채택이 됐는데 지금 이 브랜드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브랜드 자체도 중요하지만 가꾸고 키우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브랜드 네이밍이나 슬로건에 왕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과정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고 해서 최선의 대안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고유한 가치, 독특한 신념 체계, 사업에 대한 우리의 고유 인식 등이 확실하다면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탁월한 브랜드나 슬로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가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돼 고객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는 브랜드와 슬로건이 더 많이 탄생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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