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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통신

협상 고수는 당장의 돈보다 미래의 성장을 중시한다

정욱재 | 126호 (2013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DBR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와튼스쿨(The Wharton School)은 아이비리그(Ivy League)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에 속해 있는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이다. MBA 석사, 경영학 학부, 경영학 박사 과정 및 여러 가지 최고지도자 과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비즈니스 리더를 양성하고 있다. 현재 150여 개 국에 9만 명 이상의 MBA 동문이 기업, 비영리단체, 정부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문

미국의 2년제 MBA 과정에 재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금요일에 강의를 듣는 것은 피한다. 특히 졸업이 예정된 마지막 학기에는 취업 준비에 전념하거나 자기계발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번 학기 매주 금요일 아침 학교를 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협상(negotiation) 수업이 매주 금요일 오전에 3시간씩 진행되기 때문이다.

 

와튼스쿨에서는 경매를 통해 과목을 수강하는 제도(옥션)가 있다. 학생들은 입학 시 정해진 옥션 포인트를 받는다. 필자는 여러 라운드의 경매를 통해 수업을 사고판 경험이 있어 지난 3개 학기 동안 포인트를 상당히 축척해 놓았다. 그러나 일반 강의는 100포인트에서 500포인트 정도면 구입할 수 있지만 인기 많은 다이아몬드 교수의 목요일 오후 수업은 1만 포인트 이상에서 거래됐다. 마지막 학기에 그동안 듣고 싶었던 수업을 다 구입하다 보니 그만한 포인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목요일 수업을 포기하고 비교적 저렴하게 거래된 금요일 아침 수업을 들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수업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수업의 40% 정도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시나리오로 진행된다. 개별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특정 역할이 제공되고(수업 전 e메일로 통보), 학생들은 케이스스터디의 지침(instruction)에 따라 미리 준비를 하고 수업시간에 조별로 협상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 협상 결과를 인터넷에 올리면 즉시 그 결과를 가지고 학생들과 교수가 토론하는 방식이다.

 

최근 수업의 협상 시나리오에서 필자는 5년 전 이미 전성기가 끝난, 그래서 한물간 가수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오페라 가수 마리아를 대변하는 에이전트 역할을 맡았다. 필자의 상대는 오페라하우스의 업무를 총괄하는 매니저다. 현재 이 오페라하우스는 마리아가 예전에 성황리에 공연한 경험이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캐스팅돼 연습을 하고 있던 다른 가수가 갑자기 출연할 수 없게 됐다. 마리아에게 기회가 왔다. 마리아는 한때 최고의 가수라는 찬사를 받았고 여전히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번에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려는 곡으로도 굉장히 좋은 리뷰를 받았다. 하지만 5년 전부터는 주로 조연을 맡아왔다. 마리아에게 동일한 역할이 이번에 다시 주어진다면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컴백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론 인터뷰와 TV쇼 등에도 출연할 기회가 주어지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도 있어 마리아에게 이번 공연의 보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정보를 토대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써봤다.

 

5년 전 전성기 때 마리아가 같은 역할을 맡으면서 35000달러를 받았다. 현재 동일한 수준의 가수 초청료가 두 배 정도로 인상됐다고 하니 난 7만 달러 정도를 목표로 해야 한다. 하지만 다짜고짜 7만 달러란 숫자를 부르면 깎으려 할 것이 분명하니 한 9만 달러 정도를 부르고 7만 달러까지 깎는 게 좋다. 마리아가 예전에 이 오페라하우스에서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공연했던 사실, 또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으니 많은 관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양질의 공연을 하려면 거기에 걸맞은 보수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해야 한다.’

이런 전략을 구상하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나의 협상 상대는 졸업 후 뉴욕에 있는 로펌에서 인수합병 관련 법률 업무를 하기로 돼 있다는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 3년 차 학생인 샘이다. 학교에서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듣는 것을 권장해서 강의에서 다른 대학원 학생들도 자주 만난다. 상대가 미래의 변호사라니 조금 긴장됐다.

우리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마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필자는 미리 준비한 대로 왜 마리아의 몸값이 최소 9만 달러는 돼야 하는지 설명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봤다. 예상한 대로 샘의 반응은 “No Way!(말도 안돼)”였다. 이제는 그의 차례. 오페라하우스 매니저는 본 오페라 공연 기획에 이미 160만 달러를 써버렸다고 했다. 그는 3만 달러를 제시했다. 나는 다소 과장된 몸동작을 섞어가며 노트북에서 MS엑셀을 켜고 계산을 시작했다. “바보같이 왜 이렇게 돈을 펑펑 쓴 거야라고 핀잔을 주면서.

 

엑셀 파일을 돌려서 관객 수에 따른 오페라하우스의 이익을 계산했다. 계산 결과는 좌석점유율이 85%, 90%, 95%까지 돼도 이익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출연하지 않는다면 치명적인 손실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마리아의 출연료가 35000달러든, 9만 달러든 오페라하우스의 이익률에는 별 영향이 없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계속 밀어붙였다.

“샘, 오페라하우스의 매니저로서 당신의 주인공이 3만 달러란 터무니없는 보수를 받는다면 이 오페라는 3만 달러짜리 오페라가 되는 것 아니겠어?” 그랬더니 샘은 바로그렇다면 공연의 퀄리티는 그녀의 보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뿔싸.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말을 살짝 돌렸다. 마리아가 5년 전 동일한 작품을 성공했고 모든 상황이 똑같다면 오늘날 이 액수는 7만 달러 정도에 해당하며 마리아는 이미 실력이 증명된 가수로 이전과 같은 리스크가 없기 때문에 9만 달러라는 초청료가 지나친 금액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질문을 회피했다.

결국 옥신각신하다가 최저 보수 45000달러에 좌석점유율이 90%를 넘을 경우 수익의 19%, 95%가 넘을 때는 23%를 보너스로 받는 인센티브 계약에 합의했다. 이렇게 하면 점유율이 95%를 넘으면 마리아는 11만 달러 이상을 받게 된다. 샘과 나는 악수로 계약을 성사를 시킨다. 원래는 무보수라도 공연을 하려 했던 나의 가수 마리아에게 11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출연료를 안겨준 것 같아 뿌듯했다. 결과를 온라인으로 입력하고 다른 조의 결과 또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조 중에서 필자가 에이전트로서 받아낸 금액이 제일 높았다. “오 마이 갓!”이란 탄성이 나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천천히 결과를 지켜보더니 필자 외에도 높은 보수를 받아낸 다른 두 팀의 에이전트의 계약액수를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그리고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놀랍고 충격적인 평가를 내렸다.

 

“오늘 이 세 팀은 협상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110k(11만 달러)라고 써야 하는 것을 내가 11k라고 잘못 쓴 건가? 그러나 금액 입력에 실수는 없었다. 나는 다른 팀들의 결과도 훑어봤다. 어떤 팀들은 출연료 없이 공연을 하기로 한 경우도 있고 제일 무난한 금액이었던 4만 달러를 제시한 팀들도 많았다. 그런데 왜 나의 협상이 실패라고 하는 것일까.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협상을 할 때 너무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합니다. 이 협상을 통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수입의 몇 %를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입니다. ‘얼마인가(How much?)’라는 질문만 던지는 것입니다.”

 

나와 내 파트너 샘은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6주간의 공연만을 생각하고 주어진 협상 시간의 대부분을 금액을 결정하는 데 허비했다. 사실 마리아는 출연료를 안 받아도 상관이 없다. 그녀에게 이 공연은 금전적인 가치보다는 모두들 한물갔다고 생각하는 디바가 자기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필자와 샘은 이 공연의 입장권 판매이익만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을 그 제한된 물질/금전을 나누는 데만 허비했다.

 

오페라하우스의 매니저의 입장에서 보면 좌석점유율과 공연수익보다도 중요한 것은성공적인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가수가 공연 당일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수가 연습에 빠지지 않도록 요청하고 공연을 위한 마케팅 및 프로모션에 참여해주는 등 더 가치 있는 내용을 요구하는 것이 출연료 몇 만 달러를 깎는 것보다 더욱 중요했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가수에게 단 한 푼의 돈도 들지 않는다.

 

에이전트 매니저로서도 컴백하는 가수를 위해 오페라하우스 건물 전면에 커다란 현수막을 설치한다면 훨씬 큰 가치를 얻을 수 있지만 이런 부분을 신경쓰지 못했다. 또 은퇴 후 오페라하우스에서 노래를 가르칠 수 있는 계약, 오페라하우스의 한쪽에 마리아의 이름을 붙이는 것, 본 공연만을 위한 홈페이지 개설 등 창의적 대안도 많았다. 필자는 그것들을 보지 못한 채 눈앞의 몇 만 달러를 더 받으려고 노력했다. 나아가 우리는 너무 목전의 공연에만 집중한 나머지 미래를 고려하지 못했다. 이번에 성공적으로 컴백했을 경우를 예상한 향후 계약(음반 발매, 전국 투어 공연 등)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의 강의를 들은 3872개 팀 중 오페라 공연을 녹음해 음반을 판매 할 생각을 한 팀은 5.27%에 불과했고 대외적인 광고에 관해 협상을 한 팀은 24.74%였다고 한다. 금전적인 보수를 제외한 비금전적 혜택(perks)에 대해 협상을 한 팀은 12.01%, 그리고 이번 오페라 공연 이후의 미래에 대해 협상을 한 팀은 11.65%에 그쳤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협상을 잘한 실제 사례로 구글을 들었다. 구글이 전략적으로 인수하려는 작은 회사가 있었다. 구글이 높은 액수를 제시했음에도 자기가 만든 회사에 대한 애착이 강한 창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여러 채널을 통해서 알아본 결과 창업자의 어린 딸이 컴퓨터 사용법을 몰라 고장도 자주 내고 골치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글 임원진은 회사 인력 두 명을 그의 집으로 보내 컴퓨터를 고쳐주고 딸에게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줘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단순히 인수하려는 회사의 구입 금액을 올리는 천편일률적인 방법보다는 사소하지만 인간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나와 샘 같은 협상자들이 만드는 실수는 개개인의 차이와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샘과 나는 오페라하우스 매니저와 에이전트의 역할이 부여된 순간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위주로 협상을 전개했다. 상대방의 궁극적인 목표나 입장을 이해하려 들고 자신의 견해와 인식을 설명했더라면 서로가 원하는 것과 서로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돈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좀 더 원활한 의사소통을 해나가면서 상대에게 다른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정욱재 david.cheong.wg13@wharton.upenn.edu

필자는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 공과대학 및 인문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과 도쿄의 사모펀드에서 부동산 및 특수 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동 대학 와튼스쿨과 로더연구소(The Lauder Institute)에서 경영학 및 국제학 석사 수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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