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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꼈다고 다 특허침해 아니다 안 베꼈다고 방치해도 안된다

121호 (2013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삼성과 애플은 2011년부터 세계 각국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대한 디자인 특허 소송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DBR 116호에서는 파슨스 전략디자인경영학과 에린 조 교수가 미국 법원의 판결을 살펴보고 미국 디자인 특허제도의 특징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이번 121호에서는 고려대 법대 김기창 교수(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EU 법원에서의 판결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유럽 디자인 특허제도의 특징과 한국 기업에 시사점을 알려줍니다.

 

 

삼성과 애플의 유럽 소송전은 어떻게 진행됐나

 

2011 4월에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시작한디자인 전쟁은 애플이 연루된 지적재산권에 관한 여러 분쟁들 중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두 회사 사이에는 현재 50개가 훨씬 넘는 사건이 미국,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여러 법정에서 진행 중이다. 글로벌 IT 대기업들 간의 기술 특허 분쟁은 어차피 양측이 이런 저런 기술 특허를 서로 침해하는 상황이 불가피하므로 결국은 협상을 통해 타협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0년 모토로라와 애플 간의 특허침해 맞고소 사건에서 보듯이 반복되는 소송에 법원마저도 염증을 느낀 나머지 배심원 재판 단계까지 가기 이전에 법원이 아예 원고와 피고의 청구를 모두 각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 특허가 아니라 디자인권(Design Right), 혹은 디자인특허권(Design Patent)1 에 관한 애플과 삼성의 분쟁은 매우 다르게 전개됐다. 애플이 삼성의갤럭시스마트폰에 대해 제기한 소송이 애플의 홈 그라운드 격인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소재 연방 법원에서 진행 중이던 2012 7, 애플은 독일의 특허법원(뒤셀도르프 소재)에 삼성의 태블릿PC갤럭시탭제품들의 판매를 유럽 전역에서 금지하는 가처분을 삼성에 예고 없이 신청했다. 자사의 ‘iPad’의 디자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애플이 제출한 이 신청서면에 근거해 독일 법원은 삼성에 방어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유럽 전역에 걸친 판매금지 가처분2 2011 89일에 부여했다. 삼성 태블릿 제품이 유럽에서 판매가 금지됐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보도됐고, 이로 인해 갤럭시탭에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반격에 나선 삼성은 애플의 iPad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반박해 일단 급한 대로 판매금지 가처분을 독일시장에 한정하는 것으로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인 2011 98일에침해사실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본안 소송을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세 나라 법원에 동시에 제기했다. 이 세 나라 중 영국 법원이 가장 먼저 2012 79일에 본안에 관한 종국 판결을 내리면서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권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또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애플 홈페이지(영국) 6개월간 게시하고 영국 주요 일간지에 같은 내용을 애플이 광고하도록 명령했다.

 

EU(유럽연합)에 등록된 디자인권에 대한 분쟁은 EU 회원국 각각의 특허법원이 EU 전역에 효력을 가지는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독일 법원이 EU 전역에 걸친 가처분을 명령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본안 사건에 관해서는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중 어느 법원이라도 EU 전역에 효력이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영국의 특허법원이 가장 먼저 본안 판결을 내리고 그 본안 판결 결과를 애플이 널리 알리도록 명령한 것이다.

 

애플은 이 판결에 항소하면서 광고 명령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영국 항소법원은 726일 애플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서 항소심 판결이 날 때까지는 광고게시를 안 해도 되도록 결정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항소심 절차가 진행 중인 동안에도 애플은 삼성 갤럭시탭의 판매금지 가처분 명령을 EU 전역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를 독일에서 계속했다. 독일의 항소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었던 영국의 특허법원과는견해를 달리한다고 하면서 2012 724일 갤럭시탭7.7에 대해 유럽 전역에 걸친 판매금지가처분명령을 내렸다. 가처분 사건을 처리하는 독일 항소법원이 이 분쟁의 본안에 대한 영국 특허법원의 종국판결을 무시하는 좀 이상한 모습이 연출됐던 셈이다.3

 

두 달 반 뒤인 2012 1018일에 영국 항소법원(Court of Appeal)은 애플의 항소를 기각했다. 또 그동안 집행이 정지돼 있었던 일간지 광고 게시명령을 약간 수정해 집행하도록 판결했다. 수정된 명령에서는 애플이 1심뿐 아니라 항소심에서도 졌다는 사실을 추가해 주요 일간지에 공지하되 그런 공지 내용을 애플의 웹사이트 홈페이지에 전부 다 적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링크를 1개월간 게시하도록 했다. 영국에서는 대법원(Supreme Court)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상고를 허락한다. 따라서 항소법원의 판결은 사실상 최종 판결에 가깝다. 애플이 불복을 포기하여 이 판결은 이제 확정됐다.

 

 

 

미국과 유럽의 디자인 특허제도

미국은 디자인 특허권(Design Patent) 제도가 있고 EU에는 디자인권(Design Right) 제도가 있다. 양자는 대체로 비슷하다. 유럽연합의 디자인 등록 과정에는 심사가 아예 없지만 미국의 디자인 특허 출원에 대한 심사 역시 매우 간단한 것이므로 등록 과정에서 심사가 있느냐 여부가 중요한 차이점이 되기는 어렵다. 또 원고가 자신의 디자인(특허)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면 피고 측에서는 거의 언제나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원고가 주장하는 디자인(특허)권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까지 함께 제기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디자인(특허)권은 신규성(novelty)이 있어야 하고, 해당 제품의 당연한 모습이 아닌 특별한 디자인적 요소가 있어야 하고(non-obviousness), 기능성과는 무관한 부분에 한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다. 예전에도 이미 존재한 잘 알려진 디자인(prior art)이라면 아무리 애플이 등록해본들 보호받지 못한다. 태블릿 PC의 스크린이 편평하다거나 사각형이라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부분일 것이다. 물론 곡선 스크린, 원형 스크린, 삼각형 스크린을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해온 휴대용 전자기기들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편평한 사각형 스크린 자체는 당연해 보인다. 또한 휴대용 전자기기의 모퉁이가 둥글다는 점은 휴대기기를 낙하 등의 충격에서 보호하는기능적측면이 당연히 있으므로디자인권으로 보호받을 여지는 없다.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미국에서는일반인 기준(ordinary observer)’, 유럽에서는관찰력이 있는 소비자 기준(informed user)’에 의한다고 정의한다. 양자는 대체로 유사한 기준이라고 평가되며 디자인의 전체적 인상(overall impression)이 비슷한지, 다른지가 판단의 핵심이다. 특정 부분들에 차이가 있더라도 전체적 인상이 비슷하면 침해로 볼 수 있고 부분적으로 이런저런 동일함이 있더라도 전체적 인상이 다르면 침해가 아니다.

 

, 복제(copying) 여부는 디자인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과는 전혀 무관하다. 베껴서 비슷하게 되었건, 우연히 비슷하게 되었건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적 인상이 다르다면 이런저런 부분을베끼는 것도 디자인권 침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고 정당한 경쟁의 한 방법이다. 시장에 팔리는 모든 물건들이 순전히, 전적으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는 허황되고 그릇된 환상일 뿐이다. 디자인권 보호 법제는 그런 잘못된 환상에 근거해 있지 않다.

 

 

 

영국 판결의 핵심

 

EU 회원국 전체에 효력이 있는 영국 법원 판결의 핵심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iPad와 갤럭시탭이라는 두 개의제품이 서로 비슷한지의 문제가 아니다. 갤럭시탭이 iPad 디자인을베꼈는지여부에 관한 것도 아니다. 이 사건은 오로지 갤럭시탭(10.1, 8.9, 7.7) 제품이 유럽연합 상표, 디자인 총괄국(OHIM·Office for Harmonization in the Internal Market)등록된 디자인(등록번호 000181607-0001)’과 유사한지 여부만이 쟁점이다. (그림2) 베껴서 유사하게 되었건, 우연히 유사하게 되었건 가리지 않는다.

 

평균 이상의 관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종류의 상품들을 훤히 아는 유저(informed user)가 보았을 때 삼성 갤럭시탭제품들이 애플이등록해 둔 디자인과 전체적 인상(overall impression)이 유사하다고 여길 것인지를 법관이 판단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이 사건의 구조이다. iPad ‘실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애초부터 쟁점도 아니고 iPad 실물과 갤럭시탭이 유사한지는 아예 고려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영국 항소법원의 설명이다. 한 손에 iPad, 다른 한 손에 갤럭시탭을 들고 이 두개의제품이 비슷하게 생겼는지를 소송대리인에게 물어봤다는 미국 법원의 판사와 영국 법원의 접근방법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애플의등록 디자인과 문제의 삼성제품간의 전체적 유사성이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양국 법원이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 법원은 실제로 애플 iPad 제품 자체도 애플의 등록 디자인과는 다르다고 본 반면에 미국 법원의 판사는 애플의 등록 디자인과 애플의 제품이 대체로 같다고 전제했다. 그러니 애플 제품과 삼성 제품이 전체적으로 유사하다면 결국은 디자인 특허가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배심원에게 설명한 것이다.

 

반면 영국 특허법원의 콜린 버스(Colin Birss) 판사는 애플의 등록 디자인과 삼성 갤럭시탭 제품을 비교할 때 전체적 인상이 다른 이유를 세세하게 나누어 조목조목 판단했다. 항소법원 판사 로빈 제이콥 경(Sir Robin Jacob)도 그중 핵심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를 재차 논의하면서 사각형 화면이나 모서리가 둥근 것, 화면 주변에 테두리가 있다는 것 등은 너무나 흔하며 이미 일상화된 것이거나 기능상 불가피한 것이므로 하등의 보호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아무도 독점할 수 없다)는 원심 법원의 결론이 흠잡을 데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에 등록된 디자인(애플의 디자인권)과 갤럭시탭 간에는 확연히 다른 디자인적 요소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부분은 흥미롭다. 등록된 디자인은 아무 장식이 없고 상하를 분간할 어떠한 징표도 없는 극도의 단순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애플이 스스로 묘사하고 있는데 (“Overall, a design of extreme simplicity without features which specify orientation”) 갤럭시탭은 앞면에도 SAMSUNG이라는 로고가 디자인돼 있어 상하 분간이 가능하다. 또 뒷면에는 2개의 색상으로 이뤄진 패턴이 있고 카메라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애플은 회사 로고는 디자인권 침해를 고려할 때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영국법원은 애플의 주장을 일축하고 로고도 디자인적 요소이며 평균 이상의 관찰력을 가진 유저에게는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판결 중 이 부분이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실은 iPad 뒷면에도 회사 로고가 있고 카메라도 보인다. 상하 분간도 가능하다. ‘등록된 디자인은 앞면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고, 뒷면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상하 구분도 불가능한극도의 단순성(extreme simplicity)’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지만 막상 iPad라는제품은 그렇지 않다. 요컨대, 애플제품은 애플의등록 디자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The registered design is not the same as the design of the iPad.” 항소법원 판결문 제4단락). (그림3)

 

애초에 아무런 로고도 표시되지 않은, 극도로 간단한 그림만을 몇 개 등록해 둔 애플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해 둬야 자신의 등록 디자인이 주장, 적용될 수 있는 범위가 최대한 넓게 확보될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 법원에서 애플의 이런 전략은 역으로 애플의 주장이 무력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컨대, 영국법원은 애플이 공격 무기로 휘두르는 등록 디자인을있는 그대로관찰해 판결을 내려주겠다는 것이다.

 

 

애플 스스로도 자신의 등록 디자인은어떠한 장식도 없고’ ‘상하 분간이 없는 극도의 단순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묘사하고 있으므로 영국 법원은 그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 입장에서 삼성 제품을 보면 등록 디자인과는 많이 다르다고 보았다. 실제로 iPad ‘제품의 뒷면에는 갤럭시탭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로고(logo)가 있고 상하구분이 되며 다소간의 장식이 있다. 따라서 이 두 개의제품간에는 더 큰 유사성이 있지만 이런 사정은등록된 디자인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실제로 영국 항소법원은 판결문 첫머리에서부터 ‘iPad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판결에 아예 고려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혔다.

 

사실 애플이 등록해 둔 디자인 도면만을 보면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사각형 판때기4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그림 몇 개 등록해 놓고 그것으로 경쟁사를 주저앉히고 태블릿 컴퓨터 시장 전체를 독식해보겠다는 애플의 시도 자체가 어처구니없다는 인식은 이번 항소법원 판결문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판결문 제54단락은 가장 직설적이다:

 

“등록된 디자인이 애플의 주장대로 광범하게 적용돼야 한다면 태블릿 컴퓨터 시장 경쟁의 대부분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두께를 다르게 하고, 가장자리를 둥글게 바꾸고, 이런 저런 장식을 아무리 해도 전부 다 이 디자인권에 걸리게 된다. 디자인을 다르게 해 정당하게 경쟁하는 길마저 틀어막게 되는 것이다.”

 

삼성 제품이 문제의 등록 디자인과 유사한 것이라는 애플의 주장을 만일 법원이 받아들인다면 HP MS, Asus의 태블릿 컴퓨터 제품들도 모두 걸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나올 태블릿 컴퓨터들도편평한 사각형 판때기 모습을 하고 있다면 다소간 장식이 있건 없건, 로고가 있건 없건, 두께가 얇건 두껍건 간에 모조리 애플의 등록 디자인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애플 측 주장은 도를 넘은 것이다.

 

판결문 이행에 꼼수 부려 되레 역효과

영국 항소법원(2) 1심 법원이 본안 판결과 함께 내린 일간지 광고게시 명령에 대하여도 상세히 논의했다. 영국의 1심 본안 판결(삼성 승소)이 난 후에도 독일의 항소법원은 삼성 제품의 판매금지 가처분을 유럽전역으로 확대하는 판결(애플 승소)을 내린 바 있다. 이 애플 승소 판결 또한 널리 보도됐기 때문에 유럽의 소비자들은 삼성 제품을 사도 되는지, 혹시 독일 당국과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혹시 사후에 고객 지원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를 염려하게 돼 구매 결정 과정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고 항소법원은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은 애플이 촉발한 것이므로 애플이 스스로 제거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물론 우리 판결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삼성 갤럭시 제품들이 애플의 등록 디자인을 침해했다면서 제기된 여러 소송으로 인해 생겨난 혼란이 실제로 제거될 수는 있다. 그리고 우리 판결도 널리 보도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얼마 동안 계속돼온 상충하는 보도로 생겨난 불확실성은 이 판결이 이제 언론에 보도된다는 것만으로는 제거되지 않는다. 삼성이 본안 소송에서 이겼고 항소심도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는 보도가 정확하게 이뤄진다 하더라도 혼란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는다. 한층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애플 스스로가 (그런 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이므로) 그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이 삼성제품들이 애플이 등록해 둔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법원이 판결했다는 점을 애플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사건의 장본인이 이 점을 직접 시인해야 한다(The acknowledgement must come from the horse’s mouth.) 거기 못 미치는 어떤 것도 혼란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판결문 제84단락)

 

 

그런 다음, 항소법원의 로빈 제이콥 판사는 1심 특허법원의 콜린 버스 판사가 명한 대로 광고 문구 전문을 애플사 영국 사이트 대문에 게시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디자인된 애플 홈페이지 특유의 스타일을 너무 구기게 되니삼성/애플 영국 판결이라는 링크만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허용했다. 링크된 페이지에는 삼성 제품이 애플의 등록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영국 법원의 판결이 유럽연합 전역에서 효력이 있고 이 판결이 항소심에서도 확인됐으며 애플의 등록 디자인에 관해서는 삼성 제품을 상대로 한 어떠한 가처분도 유럽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1개월간 공지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1025일 애플은애플사의 입장에 관한 광고를 애플사 영국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그러나 영국 항소법원의 명령과는 달리 임의로 여러 구절을 추가한 내용이었다. (그림4)

아래는 그 번역문이다. 애플은 원래 법원이 게시하라고 명령한 구절(밑줄) 앞뒤에 문장을 추가해 전체적인 의미를 바꾸어놓았다.

 

1심 판결에서 판사는 애플 제품과 삼성 제품의 디자인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애플 디자인이 가지는 극도의 단순성은 눈에 확 띈다. 전체로 봐서 그것은 전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는 편평한 유리판이 아주 얇은 테두리까지 덮여 있고 뒷면은 아무것도 없다. 네 개의 면과 모서리에 있는 테두리는 깔끔하게 각진 형태로 마감된 부분과 둥글게 마감된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이 디자인은 이런 물품을 잘 아는 유저가 들어서 잡아보고 싶은 물건처럼 생겼다. 아주 깔끔하고 부드러운 단순미가 있다. 쿨 한 디자인이다.”

 

“이런 물품을 잘 아는 유저가 삼성 갤럭시 태블릿에 대해 가지는 전반적 인상은 다음과 같다. 앞면을 보면 애플 디자인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 같지만 삼성 제품은 매우 얇다. 이 부류의 제품들 중 거의 무게감이 없어 보이는 제품이며 뒷면에는 특이한 디자인 디테일이 있다. 삼성 제품들은 애플 디자인이 가지는 깔끔함이나 극도의 단순성이 없다. 애플 디자인만큼 쿨 하지 않다.”

 

‘그 판결(That judgment)’은 유럽연합 전역에 효력이 있고,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유럽 어디에도 애플의 등록 디자인과 관련된 가처분은 없다.

 

그러나 같은 특허에 관해 독일에서 제기된 사건에서 법원은 삼성이 iPad 디자인을 베끼는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판결 내렸다. 미국의 배심원단도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 특허와 실용신안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10억 달러가 넘는 배상을 애플에 하도록 했다. 따라서 비록 영국 법원은 삼성이 애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다른 나라의 법원들은 삼성이 갤럭시 태블릿을 만들면서 그보다 훨씬 인기가 좋은 iPad를 고의로 베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로빈 제이콥 경이 명령한 광고 문안의 두 번째 단락 첫 문장은 “That Judgment has effect throughout the European Union…”이라고 시작한다. 여기서 “That Judgment”삼성이 애플의 등록 디자인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1심 판결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플은 그 문장 직전에 두 개의 단락을 멋대로 추가함으로써 마치삼성 제품은 애플 제품만큼 쿨 하지 않다는 판단이 EU 전역에 효력이 있다는 말처럼 읽히도록 왜곡하고 있다.법원이 게시하라고 명령한 내용은 모두 게시했으니 됐지 않느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게시하라고 한 적도 없는 내용을 멋대로 섞어서 게시한다면 원래의 게시명령은 완전히 웃음거리가 된다. 이런 행위가 묵인된다면 앞으로 법원이 사죄 광고를 명하건, 어떤 내용의 공시를 명하건 간에 그 명령을 받은 당사자가 멋대로 중간중간에 온갖 토를 달거나 많은 분량의 텍스트를 추가로 집어넣어서 정작 게시돼야 할 문구는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거나 원래의 게시 문구에 있는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해도 된다는 말이 된다.

 

애플의 공지문을 읽어본 소비자가 느끼는 심정은 과연 어떨까? 혼란이 제거됐을까, 더욱 혼란해졌을까? 광고문안 마지막 단락은 적지 않은 사실 왜곡마저 포함하고 있다. 독일 법원의 결정은 본안 판결도 아니고 가처분 결정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등록 디자인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는 점도 밝히지 않고 있으며 미국 재판의 배심원 평결 역시 갤럭시탭이 애플의 등록 디자인을 침해한 바는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도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쓰여 있다. 애플의 1025일자 공지문은 영국 법원의 명령을 위반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 애플은 마치 영국 1심 법원 판사가 애플제품과 삼성제품을 비교한 것처럼 공지문을 작성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영국 법원은 제품들을 비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애플은 삼성 갤럭시탭이 애플 iPad베꼈다고 공지문에 적었지만 영국 법원의 판결은 누가 누구 것을베꼈는지여부를 판단한 것도 아니다. 베끼지 않더라도 디자인권은 침해될 수 있다. 우연히 유사하게 만들었더라도 디자인권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베꼈더라도 디자인권이 침해되지 않을 수 있다. 디자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는 베끼는 것도 정당한 경쟁 수단으로서 허용되기 때문이다.애플은 이런 법리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삼성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한 선전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제지됐다. 2012 111, 영국 법원은 애플이 멋대로 편집해 게시한 공지문을 24시간 내에 내리고 수정된 안내문을 다시 게시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이 사건 디자인권 또는 그에 상응하는 권리와 관련해서는 애플이 소송을 제기한 곳마다 모두 최종적으로 패소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The reality is that wherever Apple has sued on this registered design or its counterpart, it has ultimately failed)”고 판시했다. 그리고 삼성 측이 지출한 변호사 비용 전액을 변상하도록 명하면서애플이 이 사건에서 보여준 부정직함(lack of integrity)이 애플의 본모습은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훈계했다.

 

기업에 주는 시사점

사실 특허전문 변호사라면 기술 특허 침해를 이유로 애플이 삼성과 소송전을 벌여서 완승을 거둘 수 있다거나 심지어 우세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 장식이 없는 편평한 사각형 표면도안으로 태블릿 컴퓨터 시장이나 휴대폰 시장에 대한 법률상 독점권을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전 세계 법정에서 본격적인디자인 전쟁을 펴기로 결정한 것은법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로 “애플 제품은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반면 경쟁사들은 애플을 베낀다는 선전 메시지를 전파, 각인시키고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자신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법원의 권위는 무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법을 무기로 지적재산권을 법정에서 주장하는 모습은 그리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 애플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며(2012 9월 주당 700달러를 넘겼으나 11월 말 현재 6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신제품의 혁신 정도 또한 실망을 가져다 주는 느낌이다. 애플은 현재 휴대기기와 관련된 주요 특허 분쟁의 60%에 당사자로 돼 있다.5 아무리 큰 규모의 기업이더라도 이 수준의 송사를 진행하려면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사회 안건과 토의 내용의 많은 부분은 소송 추이에 대한 논의와 소송 전략에 할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품 개발과 혁신에 전력하던 시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 전쟁이 국내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현재의 특허제도는 불행하게도 대기업의 전유물이 돼 버린 지 오래다. 특허만을 보유하고 대기업에 라이선싱을 주면서 정작 자신은 특정 부품 외에는 이렇다 할 완제품을 만들지는 않는 퀄컴과 같은 기업에 특허제도는 매우 고마운 수익모델이자 기업 자체의 존재 근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특허제도는 거의 파국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을 날이 곧 올 것으로 예상한다. 현 제도 아래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개발했더라도 그것을 적용해서 부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만들려 시도한다면 그 제작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무수히 많은 다른 특허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특허 분쟁에 휘말려 변호사 비용을 대는 데 기업의 자산을 소진하는 불행한 일도 생길 수 있다. 결국 완제품의 제작과 판매는 대규모 특허 전쟁을 치르고 버틸 수 있는 자금력과 규모가 이미 확보된 거대 기업에만 집중되는 한편 기술 혁신의 주체는 오로지 특허 라이선싱 회사의 형태로만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제도가 과연 혁신과 창의를 위하는 것인지, 저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한다.

 

특허 제도는 혁신과 창의를 고취하려는 의도로 유지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대기업과 소규모 기업 간의 관계를 일정한 질서 속에 편입하고 구조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 규모가 특허전쟁을 감당할 규모라면 완제품 생산에 진출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완제품 생산보다는 부품생산에 집중하거나 특허 라인선싱에 주력하는 전략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특허 제도는 공격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방어의 수단으로 운용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은 이번 애플의 특허전쟁에서 다시 확인됐다고 생각한다.

 

애플이 특허 전쟁을 벌여 덕을 봤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허 소송에 치중하다 혁신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애플의 일부 경영진(현재뿐 아니라 과거의)이 특허 제도에 대한 그릇된 기대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eechang@korea.ac.kr

김기창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세방 종합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시카고대 법학 석사, 케임브리지대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케임브리지대 노튼로즈 기금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고려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인터넷 환경을 개선하는오픈웹운동을 이끌며 IT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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