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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창출 vs. 가치전유

김남국 | 117호 (2012년 11월 Issue 2)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집단, 정부나 NGO 등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집단으로 구분됩니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인 경제민주화 논의도 이런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업은 경제적 이익만 추구해왔으니 앞으로는 사회적 이익 추구에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자하라는 압력이 경제민주화 논의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깊이 고민해보면 과연 이런 이분법이 타당한지 의문이 듭니다.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일부 범죄집단형 조직을 제외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근로자를 고용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해 고객들에게 다양한 편익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제적 가치를 확보한 기업은 유한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했다는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현실에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필리페 산토스(Filipe M. Santos) 인시아드 교수는 이 논의에 대한 보다 바람직한 접근법으로 가치창출(value creation)과 가치전유(value appropriation)란 개념을 제시합니다. 가치창출은 말 그대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치전유는 최대한 많은 가치를 자기 것으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부 기업은 가치창출 없이 가치전유에 성공하기도 합니다. 차익거래 투자자나 파생상품 투자를 통해 돈을 벌려는 기업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차익거래는 지속가능한 이익을 주기 힘들고 가치창출 기반이 없는 파생상품은 엔론이나 리먼브러더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을 도산시킬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 기업은 가치창출과 가치전유를 동시에 추구합니다. 가치를 최대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최대한 많은 가치를 가져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러다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치창출 가능성은 분명히 있지만 가치전유가 힘든 영역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 치료제를 만든다거나 저소득층에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사업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개도국 주민을 위한 질병 치료제를 만들면 분명 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만 구매력이 없어 가치전유가 힘들어집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는 이런 영역을 공략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가치전유가 어려울 것 같아 포기한 시장에서 혁신적 발상으로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 냅니다. 대표 주자들은 바로 사회적 기업가입니다. 사회적 기업가를 그냥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이슈를 사업 기회로 연결시켜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창의적 혁신가로 봐야 합니다.

 

가치창출 및 가치전유 가능성이 둘 다 높은 영역에서만 사업을 벌였던 기업에 사회적 기업가는 많은 영감과 교훈을 줍니다. 지난해 12월 동아비즈니스포럼 2011에 참석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비영리단체는 더 이상 기부에 의존하지 않고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만든다. 기업들은 이런 조직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은 사회적기업가 지원을 위한 인증제도가 오히려 사회적기업의 핵심인 창의적 혁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DBR은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로 사회적 이슈를 사업 기회로 연결시킨 다양한 사회적기업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전문가들과 함께 선진국에서 자생력을 확보한 사회적기업의 사례와 혁신 모델, 시사점을 제시했습니다. 이번 스페셜리포트에 소개된 다양한 사회적기업의 사례와 혁신 방안들이 공유가치 창출(CSV) 방안을 고민하는 기업들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가치창출 가능성은 높지만 가치전유 가능성이 낮은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정부의 정책도 바뀌기를 기대합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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