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갈등도 있다

114호 (2012년 10월 Issue 1)

 

바람직한 갈등도 있다

 

선거철 풍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상대 당 후보들 간 날선 공방과 네거티브 공세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정당 안에서도 뜻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맞지 않다며 서로 비방하고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는 모습도 모두 익숙하다. 대한민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보다는 서로를 헐뜯는 데 목숨을 거는 듯한 전투적 상황을 관전하다 보면 과연바람직한 갈등이란 존재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기업 경영에서 갈등을 조직 내 창의성과 혁신의 원동력으로 승화시킨 사례가 종종 있다. 일본 자동차 업체인 닛산(Nissan)도 그중 하나다.

닛산은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근교의 라호야에 닛산디자인센터(NDI·Nissan Design International, Nissan Design America)를 설립했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자동차 디자인 개발을 위해 일본 본사의 간섭 없이 창조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NDI의 초대 대표로는 GM 뷰익 디비전(Buick Division)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인 제리 허쉬버그(Jerry Hirshberg)가 영입됐다.

허쉬버그는 자신이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진용을 꾸리면서 독특한 고용 원칙을 도입한다. 업무 스타일,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두 디자이너를 동시에 영입해 동일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도록 한 것. 이른바상반된 2인조(divergent pairs)’ 고용 원칙이다.

대표적 예로 NDI에서 한 팀으로 일하게 된 톰 셈플(Tom Semple)과 앨런 플라워스(Allan Flowers)를 들 수 있다. 셈플은디자인이란 예술적 직관을 통해 백지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봤다. 자동차의 공학적 측면은 그에게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반면 플라워스는형태보다 기능이 앞선다고 믿었다. 자동차 부품과 재료, 각각의 기능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고, 그에 따라 디자인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서로 양극단에 서있는 두 사람이 짝을 이뤄 같이 일하도록 한 허쉬버그의 결정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디자이너들끼리 갑론을박 싸움만 하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시장의 호평을 받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이 잇따라 탄생했다. 닛산의 중형차 브랜드인 알티마(Altima) SUV 브랜드인 패스파인더(Pathfinder) 1세대 디자인이 모두 NDI의 작품이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Infinity) J30은 물론 혁신적인 콘셉트 카로 호평을 받았던 고비(Gobi) 역시 허쉬버그의 지휘 아래 나왔다.

NDI 사례처럼 갈등은 적절한 수준에서 제대로 관리되기만 한다면 창의와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갈등이 바람직한 건 아니다.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경영학 교수인 알렌 C. 애머슨(Allen C. Amason)은 갈등의 종류를 크게 과업 수행 과정에서 서로 간 의견이나 관점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인지적 갈등(cognitive conflict)’과 대인 관계에서의 마찰로 기분이 상해 일어나는감정적 갈등(affective conflict)’ 두 가지로 구분했다. 감정적 갈등은 조직을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몰아가지만 적당한 수준의 인지적 갈등은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직 생활에서 조화를 추구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갈등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심도 깊은 토론은 사라지고 만다. 자칫 위계질서에 따라 상사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성급한 결론에 도달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도 발생한다. 감정적 갈등은 최소화하되 인지적 갈등은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적정 수준에서 잘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 내 상호 존중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 간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가 없다면 소모적인 감정적 갈등만 조장될 뿐 생산적인 인지적 갈등으로 이어지지 못할 공산이 크다. 조직 구성원들 간에 적당한 수준의 갈등이 존재하고, 그러한 갈등이 상호 존중의 문화 속에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균형 잡힌 논쟁으로 이어질 때 갈등은 허쉬버그가 목표로 했던창조적 마찰(creative abrasion)’로 승화될 수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필자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석사)을 졸업했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올리버 와이만에서 글로벌화 및 경쟁전략 수립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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