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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히스패닉의 부상

유주상 | 95호 (2011년 12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필자가 뉴욕에서 MBA 생활을 하면서 10여 년 전 처음 뉴욕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스페인어가 공용어 수준으로 격상된 것이다. 거리의 표지판과 각종 관공서의 서류, 지하철 광고판 등에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병기돼 있고 통신회사의 고객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먼저 영어로 안내를 받을 것인지, 스페인어로 안내를 받을 것인지를 묻는다. 운전 면허를 취득하러 DMV에 방문했을 때 히스패닉이 아닌 직원들조차도 모두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인상 깊었던 기억도 있다.
 
‘히스패닉’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원래 고대 이베리아 반도와 그 사람들을 일컫는 명칭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인종에 관계 없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스페인계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특정 인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사회적인 구분이다. 중남미의 오랜 식민지배 역사로 여러 인종이 섞여왔기 때문에 인종에 의한 구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중남미 출신 비혼혈 백인들은 히스패닉으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는데 이는 멕시코를 비롯한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정치적인 불안이나 빈곤을 피해서 국경을 넘어온 불법 이민자들 때문이다. 현재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 수는 흑인을 제치고 백인에 이은 2위의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히스패닉 사회는 다른 소수인종 사회와 비교해 몇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출산율이 높다.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히스패닉들은 교리에 따라 피임과 낙태를 꺼리는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히스패닉 사회는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실제로 히스패닉 가정은 여러 자녀를 두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미국 내 히스패닉 출산 숫자가 신규 이민 숫자를 웃돌기 시작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히스패닉 인구는 지난 10년간 43%가 증가해 현재는 49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 전체 인구 약 3억여 명 중 16%에 해당하는 숫자이며 이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백인의 인구증가율이 1.2%에 그쳤다는 것을 감안할 때 히스패닉이 미국의 인구증가를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스패닉의 두 번째 특징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성향이다. 히스패닉 사회는 다른 소수 인종 사회에 비해 주류사회에 흡수되는 경향이 약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히스패닉 가정의 75%가 스페인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며 이들의 전체 텔레비전 시청 시간의 64%가 스페인어 채널 시청 시간이다. 이는 교포 2세들이 모국어를 구사하지 못해 부모와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은 한인 교포 가정과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특징으로는 히스패닉 인구의 연령 분포와 소비 성향을 꼽을 수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히스패닉의 중간 연령은 27세로 미국 전체 평균인 35세에 비해서 8세나 낮다. 또한 히스패닉 인구는 여타의 중남미 국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소비 성향을 가지고 있다. 히스패닉은 총소득의 93%를 소비하는데 이는 미국 전체의 평균 소비수준 82%에 비해 두드러지게 높은 수준이다. 히스패닉 인구가 상대적으로 노동 집약적인 저부가가치 산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높은 소비수준으로 미국 내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정치적인 면에서 히스패닉을 살펴보면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원의원 수를 보면 흑인 의원의 수가 41명으로 실제 인구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히스패닉 의원은 26명으로 전체 하원 수의 6%에 불과하다. 이는 히스패닉 인구의 높은 불법 이민자 비중과 낮은 정치 참여성향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히스패닉의 투표참여율은 2004년의 47%에서 2008년 50%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백인 인구의 투표참여율 66%나 흑인 인구의 65%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세는 미국의 정치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0년에 한번씩 인구총조사를 실시해 주별 인구규모에 따라서 향후 10년간의 연방지원금과 하원의석 수,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결정하는데 2010년의 인구조사에서는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국경 인근의 네바다, 애리조나, 텍사스, 그리고 플로리다주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진 반면 백인 인구가 많이 밀집된 동북부의 주들은 상대적으로 인구 증가가 정체한 모습을 보였다. 히스패닉 사회는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불법 이민자 비율이 높아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해왔다. 하지만 히스패닉의 기본적 속성인 보수적이고 가족 중심의 문화와 강한 종교색채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공화당의 성향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에서는 히스패닉 인구를 끌어안기 위한 유화적인 제스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금융위기의 여진 속에서 실물경제 또한 위축된 가운데 히스패닉 인구는 중요한 소비 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인구조사국은 히스패닉 인구의 구매력을 1.2조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09년 한국의 국내총생산인 8325억 달러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다. 세계적인 소비재 용품 제조회사인 P&G의 경우 미국 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고객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히스패닉 고객을 위한 마케팅이 자리하고 있다. 제품 포트폴리오의 가격대를 다양화해 새로운 저가 제품을 출시하고 히스패닉 고객의 성향에 맞춘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 저가형 세제로 새롭게 출시한 ‘Gain’ 브랜드나 향기에 민감한 히스패닉을 고려해 향이 강화된 ‘Febreze’ 제품을 내놓는 식이다. 또한 스페인어로 된 홍보용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히스패닉 고객 전용 쿠폰북을 내놓는 등 히스패닉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히스패닉을 공략해서 성공을 거둔 사례로는 ‘Herbalife’를 꼽을 수 있다. Herbalife는 건강보조식품, 다이어트식품, 피부관리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재 회사다. 이 회사는 다단계 판매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판매 방식은 관계를 중시하고 가족을 소중히 생각하는 히스패닉의 성향과 들어맞았기에 이 회사는 히스패닉 인구에 비즈니스의 큰 비중을 의존하고 있다. 이 회사는 판매원이 되기 위해 처음에 납부해야 하는 돈을 90달러로 책정했고, 또한 판매원에게 이민 신분을 묻지 않았다. 그 결과 불법 이민으로 직업을 찾기 어려운 여성 히스패닉들이 대거 몰려 전체 Herbalife 판매원의 64%가 히스패닉으로 구성되게 됐다. 또한 Herbalife의 판매점인 Nutrition Club은 그 지역의 히스패닉 사람들이 모여서 사교를 하는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히스패닉의 특성을 공략한 사업방식으로 Herbalife는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증가하고 있는 히스패닉의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현재 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 내에서 히스패닉의 위상은 초라하기만 하다. 컬럼비아대의 위치가 히스패닉 할렘 지역에 인접해 있고 교내 매점 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히스패닉이지만 정작 컬럼비아대 내 히스패닉 재학생의 숫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이에 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에서는 향후 히스패닉을 포함한 소수계를 적극적으로 선발할 의사를 밝히고 이들 출신 학생들의 클럽 활동과 콘퍼런스 개최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히스패닉 학생 자치 클럽인 Hispanic Business Association은 자체 홈페이지를 개설해 MBA 진학에 관심이 있는 히스패닉 학생들의 지원을 장려하고 지원 준비를 돕는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히스패닉 인구 비중은 약 39%다. 그러나 15세 미만 인구를 보면 히스패닉의 비중이 무려 72%를 차지한다. 이들이 자라서 정치, 경제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될 때쯤이면 히스패닉의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지난 세기 미국의 이민역사를 유태인과 이탈리아인들이 주도했다면 이제는 히스패닉이 이끌어갈 것이라는 데에 모두 이견이 없다.
 
유주상   Columbia Business School Class of 2012  yoojoosang@gmail.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모건스탠리 증권과 스톤브릿지캐피탈 등에서 리서치 및 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뉴욕 맨해튼 북부에 위치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CBS)은 합격자가 지원자 대비 13%에 불과해 세계 최고 경쟁률을 보이는 MBA스쿨로 유명하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유명한 워런 버핏 등 많은 거장을 배출했으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가치투자의 권위자인 브루스 그린왈드 교수 등이 포진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세계 유명 언론이 선정하는 ‘올해의 MBA’에서 해마다 5위 안에 속한다. 매년 730여 명의 신입생을 뽑으며 한국 학생은 해마다 10명 정도 입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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