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끊임없는 무기개량, 로마軍 신화를 낳다

77호 (2011년 3월 Issue 2)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 로마가 처음 출발할 때는 테베레(Tevere) 강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국가였다. 테베레 강은 잘 해야 우기 때나 강처럼 보이는 작은 강이고, 로마는 전 세계에 수천, 수만 개는 존재하던 작은 전원 도시 수준에 불과했다. 이 작은 도시가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을 시작한다.

거대 로마제국을 만든 거대한 동력이 그들의 탁월한 군사적 능력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군사적 힘이 어디에서 기원했느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고대의 전장을 지배할 만한 물리적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농경민족이었고, 물산이 풍부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인들은 조각 같은 미모는 소유했을지 몰라도 유럽의 여러 민족 중에서 체격이 작은 편에 속했다. 문명과 기술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테베레 강 언덕 위의 로마 시절, 로마군은 그리스군의 체제를 엉성하게 모방한 조잡한 군대였다. 고대 그리스의 군대도 처음에는 도시국가 단위의 중장보병을 주축으로 한 조촐한 군대였다. 그러다 고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BC 356∼BC 323)이 기병을 활성화하고 전술을 개량해 세계 최강의 정복군대로 탈바꿈했다. 로마도 알렉산더의 군대와 전술을 본받아 중장보병과 기병을 갖췄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 실체를 살펴보면 알렉산더 이전 그리스 폴리스 군대 수준에 불과했다. 폴리스 군처럼 로마도 지주와 자영농이 중장기병이 됐다. 그 아래의 빈민층은 갑옷도 방패도 갖추지 못하고 돌팔매로 돌멩이를 날리는 허접한 무리였다. 제일 부유한 사람은 말을 탄 기사가 됐지만 말을 탔을 뿐 기병으로서의 전술적 능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로마는 이 군대로 주변의 작은 도시들을 제법 점령해 나갔다. 그러나 로마의 영역이 넓어지자 새로운 적과 마주쳤다. 알프스 북쪽에 살던 골족(후대의 갈리아족)이었다. 그들은 로마군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훨씬 전투적이고 야만스러웠다. 기원전 391년 알리아 강에서 로마군과 골족이 마주쳤다. 하늘에서 본 광경은 로마군이 좀 더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내용이야 어찌됐건 로마군은 번쩍이는 갑옷과 청동방패, 잘 정렬된 대형 등 번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반면 골족은 상체나 어깨를 드러내고 도끼와 큰 칼을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덤벼들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마구잡이 공격과 함성에 로마군은 얼어버렸다. 로마군은 대패했고 로마시까지 함락당했다.

골족이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역사상의 로마는 그날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골족은 로마를 점령해 해체하는 대신 이탈리아의 미녀 수백 명과 황금을 받고 신이 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 그들은 주기적으로 미녀와 공물을 뜯어낼 수 있는 좋은 목장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살찐 암소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골족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때까지 아무도 이룩하지 못했던 놀라운 군사개혁에 착수한다.

로마의 군사 개혁

로마인은 먼저 강한 훈련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평소에는 생업에 종사하다가 잠시 훈련을 받고 군에 복무하는 체제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로마는 병농일치의 편성을 과감하게 폐기하고 주력 군단을 직업 군인으로 대체했다. 군에 지원한 병사는 기본 훈련 기간만 4개월이었을 정도로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 힘과 체력, 기술, 전술능력, 행군을 감당할 수 없는 병사는 바로 도태됐다.

하지만 개별 병사의 능력을 아무리 신장시켜도 골족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로마군은 전술력과 조직력 배양에 집중했다. 과거 그리스군의 대형은 100명으로 구성된 방진이 기본단위였다. 로마는 이것을 60명으로 슬림화했다. 가늘어진 대형으로 방진 간의 교대 및 후방 방진의 전방으로의 이동이 훨씬 쉬워졌다. 장교의 체제도 개선해 각 대형이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고대의 전투는 사각형의 방진을 기본 대형으로 해서 대형과 대형이 부딪치는 방식이었다. 전위의 방진이 싸우다가 지치면 후위의 방진이 교대하고, 방진이 무너지거나 사망자가 생기면 바로 뒤의 병사로 교체했다. 로마군은 그 어떤 군대보다도 이 대형의 움직임이 뛰어났고, 이는 실전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철모와 투창을 개량하다

로마군 대형의 융통성과 유연성을 뒷받침한 또 하나의 비결은 무기와 장비의 개량이었다. 그리스군은 눈 부분에만 구멍이 뚫리고 코와 얼굴 전체를 감싸는 투구를 사용했다. 방패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밀집대형을 공격하려면 제일 공격하기 쉬운 부위가 머리였다. 그래서 머리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감싸는 일체형 투구를 선호했다. 이 투구는 모든 투구 형태 중에서 제일 튼튼하지만 좌우가 보이지 않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것은 팀워크와 통제가 생명인 밀집대형의 전술원칙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로마군은 일체형 투구를 포기하고 오늘날의 철모처럼 머리만 감싸는 투구의 측면에 귀마개 같은 쇠를 붙였다. 얼굴 전체에 대한 방호력은 떨어지지만 좌우가 보이고 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개인의 안전보다 팀워크가 더 중요했고 실제로는 그것이 개인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도 더 효과적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병사의 기본무기는 2개의 투창과 검, 방패였다. 원래 투창은 골족의 주무기였다. 로마군은 골족과의 전투에서 투창의 위력을 실감하고 자신들의 주력 무기로 채용했다. 그런데 로마군은 투창도 얄밉게 개량했다. 전설적인 무기가 된 이 개량 투창은필룸이라고 불렀다. 손으로 던지는 투창은 속도가 느려서 방패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로마군은 창날을 연철로 만들었다. 이 창은 날아가 방패에 꽂히면 바로 구부러져 적이 뽑아서 되던질 수 없었다. 창 앞부분에는 추를 달았다. 무게 중심이 앞에 있어서 멀리 나가게 하는 효과가 있었고, 동시에 창의 무게를 증가시켜 타격력을 높였다. 방패에 필룸이 몇 개 꽂히면 방패가 무겁고 불편해져 더 이상 방패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필룸의 목적은 살상이 아니라 적의 방패 해제였다. 백병전에서 방패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체력이 달렸던 로마군은 투창의 투척법도 개량했다. 창의 뒤에 가죽끈을 달아 창 몸체에 감은 뒤에 던졌다. 팽이를 돌리듯이 가죽끈이 창을 회전시켰으므로 창이 보다 멀리, 정확하고 강하게 날아갔다.

사각 방패와 양날 단검글라디우스

하지만 로마인의 공학적 재능이 제대로 발휘된 부분은 방패의 개량이었다. 그리스군의 방패는 원형으로 자신의 몸의 반, 좌측만을 가렸다. 우측은 옆 동료의 방패에 의존했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게 만들어야 동료애가 생기고 밀집대형을 탄탄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자기 방패를 가운데로 두고 자기만 가리면 검을 휘두르기 어려웠다. 방패의 모양을 원형으로 고수한 것도 같은 이유였는데 사각방패는 시야를 가리고 적을 찌르려면 방패 전체를 내려야 했다.

하지만 원형이 허락하는 공간은 적이 공격할 수 있는 틈이 됐다. 골족처럼 체격이 큰 적이 머리 위에서 내려치면 방패를 들어서 막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자신의 하체는 물론이고 좌측병사도 방패의 엄호가 사라졌다. 골족이 2 1조가 돼 한 명이 머리 위로 칼을 내리치고 방패가 들린 틈을 타서 한 명이 방패의 엄호가 사라진 하체나 그의 좌측 병사를 공격하면 속수무책이었다. 더욱이 동료의 방패에 의존하는 방식은 실제 전투상황에서는 병사를 불안하게 하고 밀집대형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옆 사람과의 간격에 너무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고, 난전 상황에서는 대형이 어그러지거나 틈이 벌어지기 쉬웠다. 전진할 때도 그리스군 대형은 똑바로 전진하지 못하고 항상 우측으로 비스듬히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는데, 우측 병사의 방패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자꾸 우측으로 몸을 붙이는 경향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방패를 사각형으로 바꿔 병사 개개인이 옆 사람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의 방패로 자신을 엄호하게 만들었다. 방패의 개량은 시간이 좀 걸려서 완전히 사각형 형태의 방패로 변한 것은 1세기경이 돼서였다. 그러나 전반전으로 사각방패의 도입은 중요한 변화를 야기했다. 사각 방패는 방패와 방패의 아귀가 딱 들어맞아 바둑판처럼 완벽한 방패진을 형성함으로써 밀집대형이 벌어질 우려가 없었다. 무엇보다 최대의 장점은 대형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 부대원이 방패를 붙여 스크럼(scrum·여럿이 팔을 꽉 끼고 뭉쳐있는 상태)을 짜면 힘의 손실 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원형 방패로는 이것이 불가능했다. 로마군 방패진의 단합된 힘은 황소처럼 덤벼드는 골족의 충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방패를 평판이 아닌 반원형으로 도안한 것도 걸작이었다. 방패가 몸을 감싸 폭은 좁고 몸을 보호하는 범위는 넓었다. 이로써 밀집대형을 더욱 촘촘하게 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공격해오는 적들이 방패에 부딪히면 미끄러지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고, 중앙부가 돌출돼 있어 방패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로마군은 방패의 중앙에 쇠로 만든 공모양의 추를 붙여서 이것으로 적을 밀면서 가격했다. 방패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두 겹의 목재를 아교로 붙였고 겉에는 아마포와 가죽을 씌웠다. 골족은 찌르기보다 긴 칼을 휘두르는 공격을 선호했으므로 칼을 막기 위해 방패 모서리는 철로 테를 둘렀다.

그런데 사각의 방패는 원형과 달리 전면이 사각으로 막혀 공격할 공간이 없고 상하좌우로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이 약점을 해결해준 게 그 유명한 로마군의 검글라디우스. 글라디우스는 60cm 정도 길이의 양날단검이다. 그리스군의 검과 길이는 비슷하지만 그리스군의 검이 찌르기와 휘두르기 모두에 중점을 둔 반면 글라디우스는 훨씬 얇고 끝을 뾰쪽하게 해 찌르기의 위력을 높였다. 밀집대형 전투에서 로마군은 검을 방패 위로 휘두르기보다 방패와 방패 사이로 내밀어 찌르도록 개량함으로써 사각방패의 약점을 해결했다. 휘두르는 검은 적이 볼 수 있지만 글라디우스는 긴 사각방패의 어느 부위에서 튀어나올지 볼 수 없었다. 로마군은 이 장점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글라디우스의 공격은 얄밉도록 치명적이고 위력적이었다.

결집력을 최대화하는 시스템 구축

로마군 개혁안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밀집대형의 단결력과 힘의 결집을 최대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작은 로마인이 체격과 인구에서 월등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로마군의 이 독특한 개량 능력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는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명확하다. 로마군의 밀집대형은 강철의 요새로 둔갑해서 골족과 게르만족의 돌격을 분쇄했다. 전성기 로마군은 10배가 넘는 갈리아, 게르만족과 싸워서도 학살에 가까운 승리를 수없이 거두었다.

오늘날 모든 기업들의 고민은 조직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덜어내는 데 더 치중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반면에 조직원의 힘을 결속하고 응축된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문제는 정신적, 정서적 방법에 호소하거나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정신적, 정서적 방법도 물론 필요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단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극도의 결집력을 끌어내려면, 로마군처럼 그것을 체현할 수 있는 시스템과 방법을 정밀하고 공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yhkmyy@hanmail.net

동아비즈니스리뷰 283호 Future Food Business 2019년 10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