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동반 성장을 위한 인사조직 관리

‘갑’ 구성원의 공감이 참된 상생 첫걸음

박형철 | 76호 (2011년 3월 Issue 1)
 

상생 경영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
최근 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동반 성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2010년 8월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월례회의에서 ‘상생 경영은 미래 우리 기업들이 반드시 실천해 나가야 하는 과제다. 포스코는 상생 경영의 핵심인 동반 성장을 포스코의 핵심 가치에 반영하고, 앞으로 회사 실행 운영 계획이나 관련 임원 평가에도 이를 반영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SK는 이미 2005년부터 그룹 내 구성원 교육에 상생 경영의 가치를 반영하고, ‘상생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회사 직원들의 역량 개발에도 직접 나서고 있다.
 
동반 성장을 위한 일련의 조치는 비단 대기업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중견기업이나 외국계 회사도 열심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사 정직원이 아닌 파트너회사의 직원 육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제공과 각종 경영 제도 개선 자문을 지원하고 있다. BMW 코리아는 BMW 차량을 판매하는 국내 딜러들이 인재 유치, 유지, 육성에 어려움을 겪자 컨설팅 비용과 직접 자문을 통해 딜러의 인사제도 및 운영 혁신을 도운 바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상생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이 인사관리의 틀에서 취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협력회사와 공존공생을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주요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의 실행 여부를 인사평가에 반영한다. 둘째, 자사가 가진 교육 훈련 체계, 인사 제도 수립, 관리 노하우와 같은 인사 관리 역량이나 컨설팅 활용 노하우 및 자금 등을 활용해 협력회사의 인사 관리와 인재 육성을 지원한다. 전자는 자사 구성원의 상생에 대한 의지, 태도 및 실천능력을 강화시키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후자는 협력회사의 지속 성장에 필수적이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인 인재의 체계적 관리와 육성을 자사의 기존 역량, 자원 및 자금을 활용해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두 목표 모두 갑 기업이 주도한다면 동반 성장과 관련한 가시적인 결과물을 빠른 시간 내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방법이 ‘갑’과 ‘을’ 모두에게 항상 유익하기만 한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상생 경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 회사가 협력회사와의 협력을 자사 구성원들에게 평가 기준이라는 틀로 강제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소지가 있다.
 
많은 혁신이 그러하듯, 일방적이고 상명하달 식으로 전개되는 혁신은 일시적으론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아무리 상생 실천 정도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를 잘 마련했다 해도 해당 평가지표와 상충 가능성이 높은 다른 업적 지표가 존재하고, 이러한 모순을 조직 차원에서 해결해주지 않고 무조건 조직원들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제대로 된 상생이 이뤄지기 어렵다. 갑 조직과 그 구성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간다면, 갑 회사의 조직원은 당연히 과거처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에만 충실할 가능성이 높다.
 
갑과 을이 합심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지향한다는 상생 목표를 설정했다고 가정하자. 이 때 동반 성장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완제품의 품질이다. 그 과정의 지표는 갑이 얼마나 을 부품의 품질 향상에 재무적, 시간적, 역량적 측면에서 기여했는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획일적인 과거의 평가 지표가 상생 지표와 공존하고, 이 둘의 상충관계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정해두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두 지표가 상충될 때 대다수 갑 구성원은 납기 준수 및 비용 절감을 위한 기존 목표 달성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성과급이나 임금 인상 결정 시 상생 지표보다 업적 지표의 비중을 높게 설정한다면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다. 갑이 을과의 상생을 위해 사용하고자 했던 재무적, 시간적 노력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후자도 마찬가지다. 취지와 의도는 전자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의 동반 성장 노력으로 보이지만 잘못 운영되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피상적인 과시용으로 그치거나, 갑이 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만 하거나, 협력회사 구성원보다 협력회사 사주의 편의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갑이 협력회사 직원을 교육시킬 때, 협력회사 직원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아니라 자사의 기본 교육 체계를 일방적으로 적용할 때가 많다. 재무관리, 회계, 마케팅, 영업관리와 같은 기본 교육을 제공하는 게 협력회사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을 통해 갑은 어떤 혜택을 얻고, 을은 어떤 효과를 보는지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관련 교육을 통해 상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알기도 힘들다.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교육 과정 속에서 갑의 일부 구성원은 협력회사 직원 교육 때문에 자신들의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상황을 불평하기도 한다.
 
을도 불만이 많다. 특히 을 기업의 오너나 최고경영진은 가뜩이나 인력도 부족한데, 직원들이 교육 받는다고 자리를 비워, 갑이 요구하는 납기와 품질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긴다며 원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특히 갑이 협력회사 직원 교육지원 프로그램의 가시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을 회사 구성원의 교육참여를 의무화하거나 강제하는 경우, 을 경영진의 불만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지원해 주는 쪽도, 지원을 받는 쪽도 구체적인 혜택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둘째, 갑의 핵심 제품 및 공정 기술과 관련된 교육 및 정보 공유를 통해 을 구성원이 갑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게 한다는 논리는 매우 이상적이다. 실제 이를 수행하려면 수많은 위험이 존재하고 많은 위험관리 비용도 필요하다. 모 다국적기업의 경우 중국에서 협력업체 품질강화를 위해 일부 핵심 공정 기술을 교육을 통해 공유했다. 하지만 수강자들 중 일부가 교육 수료 후 갑과 경쟁하는 중국 현지기업으로 이직해 큰 낭패를 봤다. 결과적으로 기술을 공유하고 교육을 시켜 준 다국적기업 갑에 피해를 줬다.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해당 다국적기업이 협력업체를 전면 재선정하는 바람에 기존 협력업체들도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됐다. 상생을 위한 노력이 역으로 갑과 을 모두에 위기를 초래한 셈이다. 이러한 위험은 사실 갑과 을 모두 통제하기 쉽지 않다. 특히 근로자에게 유리한 제도와 규제를 행하는 국가에서는 그 위험이 더 크다.
 
셋째, 협력회사의 인사관리나 인재육성을 체계화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협력회사 통제를 강화하려는 기업도 있다. 일부 서구 유통업체들은 소매점에 파견되는 제조회사 판매촉진 인력의 근태 및 판매실적 관리를 위해 자사가 정한 기준의 평가체계나 보상체계를 도입하라고 권유하거나 강제하기도 한다. 물론 갑의 관점에서 보면 더 나은 성과를 위해 관리 체계의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 자체는 타당하다. 하지만 그 진정성과 의도를 을에게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동반 성장의 근본적 배경이나 이면에 양자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각각이 자율적으로 상대방에 기여하며 장기적인 성장을 함께 도모한다는 ‘진정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쪽의 관리나 통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도입하는 변화는 상생의 가장 큰 장애인 서로의 불신만 높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내에서는 갑이 협력업체의 인사관리나 인재육성 체계화를 위해 지원하는 분야가 대부분 성과관리나 연봉제의 도입 등이다. 이는 협력업체의 관리 효율화를 강화해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는 데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의도로는 협력업체 구성원들로부터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해내거나 동반 성장 의지를 강화시키기 어렵다. 과거 정부 주도 하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쿠폰제 컨설팅 사업이 적극 전개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영관리 시스템 및 인사 관리 체계의 구축에 집중됐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진정한 동반 성장을 위한 HR 방법론
이런 부정적 효과와 제약을 극복하고 동반 성장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를 위한 인사부서와 전문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갑의 기업 행위에서 동반 성장이 지니는 의미와 중요성, 상생 경영 실천으로 갑과 그 구성원들이 얻을 구체적 효과와 혜택을 상세히 알리고 공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상생 경영 실천 수준을 아무리 잘 모니터링하고, 평가제도 등을 통해 강제한다 해도 갑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그 필요성과 효용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생의지나 상생을 위한 행동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갑 구성원들이 스스로 상생의 중요성과 혜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생 경영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결과 차이를 스토리로 개발해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최근 글로벌 선진 기업이나 국내 선도 기업들의 인사관리 및 인재육성 체계가 가장 강조되는 항목이 바로 핵심 가치와 인재 상 등이다. 과거와 달리 핵심 가치나 인재 상은 단순히 철학적이거나 개념적인 배경이 아니라 해당 회사의 비전, 미션, 중장기 경영 전략 및 목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재의 요건 등과 연계해 개발된다.
 
때문에 이러한 도출 과정을 차용해 상생의 의의와 목표를 널리 알리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마련하면 갑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상생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적극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또 상생을 직접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갑 구성원들이 상생의 결과물과 당장의 이익이라는 역설적 상황에서 최적의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갑의 구성원 개개인이 상생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거나 이에 대한 실천 의지가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실현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생의 중요성, 혜택, 조건, 목표 등을 체계화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갑 내부에서 선행되는 게 상생 경영의 첫 걸음이다.
 
둘째, 갑과 을의 상생 이전에, 갑 내부의 부서 간, 직급 간, 구성원 간의 상생 문화가 먼저 정착돼야 한다. 갑의 구성원들이 동반 성장을 중시하고 이를 잘 실천하려면 우선 갑 구성원들 사이에서 타인 및 타 조직과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려는 문화와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
 
매년 세계적인 경제 매체들이 발표하는 ‘일하기 좋은 100대 직장’이나 ‘가장 존경 받는 기업’ 등의 리스트를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메리 케이(Mary Kay), SAS 등 오랜 기간 이 리스트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들은 내부 구성원 간 극심한 경쟁을 유도하기보다, 팀워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조직 혁신을 강조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구성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를 지원하는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세계 3대 화장품 회사 중의 하나인 메리 케이를 보자. 회사의 경영 철학부터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먼저 남을 대접하라’와 ‘경청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법도 없다’다. 남성에 비해 이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들이 직원의 대부분이고, 사회적으로 뷰티 컨설턴트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메리 케이에는 장기 근속 뷰티 컨설턴트들이 많다. 직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강조하기로 유명한 경영 통계솔루션 업체 SAS도 내부 경쟁보다 프로젝트 조직의 팀워크와 팀 간 협력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SAS는 미국 기업에서는 보기 힘든 한 자리대의 낮은 이직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조직 내부에서 협력을 통한 성과 창출을 강조해야 해당 기업도 장수한다. 당연히 갑이 장수해야 을과 동반 성장도 가능하다. 갑의 구성원이 내부적으로 극심한 경쟁의 벼랑 끝에 내몰리지 않아야 을의 입장을 이해하며 공존의 길을 찾으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면평가의 실시 및 활용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은 다면평가를 시행하면서도 몇몇 부작용을 우려해 평가만 시행할 뿐, 결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때가 많다. 다면평가가 자칫 ‘인기투표’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가장 큰 우려다. 또 서로 경쟁해야 하는 조직원들이 서로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하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이러한 우려 자체가 해당 조직이 구성원들 간의 상생보다는 경쟁을 중시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경쟁하는 처지라 해도 자신에 대한 타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은 매우 유용하고 의미가 크다.
 
다면평가 결과는 조직원 개개인의 리더십 및 팀워크 차원에서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업무 일상에서 협력과 공존을 도모하는 인재가 누구인지를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과가 우수해도 구성원 대다수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해당 조직의 성과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반면 구성원 대다수에게 유쾌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내부 구성원 간의 상생, 나아가 외부 협력업체와의 상생 강화에도 주도적이고 효과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동반 성장의 가치 전달자(Win-win Value Agent)다.
 
많은 미국 기업은 일반적인 아시아 및 유럽 기업보다 개인 간의 경쟁을 중시하는 편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국내 기업들이 가지는 다면평가에 대한 우려가 더 클 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적극적으로 다면평가를 실행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기성복 판매업체인 맨스웨어하우스(Man’s Warehouse)를 보자. 이 회사는 아무리 실적이 뛰어난 영업 직원이라해도 다면평가에서 동료나 부하직원으로부터 일정 기준 이하의 평가를 받으면 인사부서가 해당 직원의 성과를 다시 한 번 평가한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 직원의 뛰어난 영업성과가 혹시 동료의 고객을 가로챈 건 아닌지, 부정을 저지른 건 아닌지, 팀워크에 기반한 목표 달성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오직 개인의 판매 목표 달성에만 매진한 결과는 아닌지 등을 판단하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제 아무리 스타급 판매사원일지라도 승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동일 사례가 반복되면 퇴직까지 유도한다.
 
모 다국적 제약업체도 다면평가를 매우 중시한다. 이 회사에서 법인 영업을 담당하는 A 와 B의 1등급 판매실적을 올렸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A는 다면평가의 결과가 좋고, B는 다면평가의 결과가 평균 이하다. 이때 이 제약업체는 A에게 B보다 최대 50% 많은 성과급을 제시한다. 사실 제약회사의 법인 영업은 개개인의 거래처 관계관리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실적을 올렸다면 동료의 평판이 더 좋은 직원을 중시하겠다는 회사의 방침을 분명히 보여주는 제도다. 때문에 국내기업들도 형식적으로만 다면평가를 실시할 게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는 갑 구성원들이 조직 내부에서 상생 경영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셋째, 동반 성장으로 인한 혜택의 대상 및 범위를 단순히 몇몇 기업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고객과 사회 전체 등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기존의 동반 성장 논의는 대부분 ‘갑’과 ‘을’, 혹은 ‘갑’과 ‘병’ 사이의 공존공생에만 관심을 가진다. 국내 기업들은 유독 더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일방향적 지원, 즉 양자의 실질적 발전과 성장이 아니라 분배의 공평성 차원에서 실행되는 상생은 결코 오래 이어지거나 실질적인 효과를 창출하기 어렵다. 갑이 상생으로 인한 혜택과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기 위해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대상은 을, 병, 정이 아니라 사실상 ‘고객’과 ‘사회’다. 동반 성장은 과거 혜택을 많이 봤던 갑의 과실을 을이나 병에게 조금 떼어 주는 게 아니다.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과 편익을 늘리는 게 동반 성장의 목표다.
 
일본의 대표적 화장품 업체 시세이도를 보자. 시세이도가 판매 사원 관리에서 가장 중시하는 지표는 실적이 아니라, 판매 사원의 제공 서비스 품질에 대한 고객의 평가와 의견이다. 판매 사원과 고객 간의 신뢰와 파트너십이 해당 고객의 미적 만족도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돼야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시세이도 판매 사원들은 개별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의 수집된 고객의 목소리는 고스란히 시세이도와 그 협력업체의 제품개발, 생산 및 마케팅 과정에 반영됐다. 시세이도가 일본 화장품 기업으로서는 드물게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은 이유다. 모든 경영 활동의 궁극적 목표를 고객에게 두고 고민했기에 한때 일본 1위 화장품 업체였던 가네보가 파산하는 상황에서도 시세이도는 지속적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미국 최대 가전유통업체인 베스트 바이(Best Buy)도 마찬가지다. 베스트 바이는 소매 가전 유통업계의 상식이나 다름없는 판매 실적에 기반한 영업 사원들의 인센티브를 과감히 폐지했다. 단기적으로는 실적이 감소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고객을 수당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같은 매장에서 직원들 간 발생하는 지나친 경쟁도 해소해 판매 사원이 진심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동반 성장의 두 번째 방법론인 갑 구성원의 상생의식 강화, 갑 조직 내 지나친 개인 간 경쟁의식 완화와도 일맥상통한다.
 
베스트 바이는 개인 판매 인센티브의 중단과 아울러 팀워크를 바탕으로 고객의 불만과 불편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조직인 긱 스쿼드(Geek Squad)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제품의 구매 및 사용 상황에서 고객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어려움과 불만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베스트 바이는 이렇게 파악한 정보를 납품 업체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주요 가전업체에 제공했다. 이러한 협력의 지속은 베스트 바이의 현장 영업사원들이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HP와 도시바 등과 같은 주요 납품업체와 공동으로 상품을 기획, 개발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결국 베스트 바이와 납품업체 모두 높은 고객 만족과 매출 증진을 향유할 수 있었다. 베스트 바이는 이러한 혁신을 바탕으로 유사 경쟁업체들이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도산하는 상황에서도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나이키(NIKE)의 사례는 동반 성장을 위한 앞의 3가지 방법론을 모두 담고 있다. 나이키는 자사 완제품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환경 오염을 줄이고, 관련 근로자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나이키, 협력업체, 나아가 고객과 지역사회에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1,2,3차 협력업체의 명단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이들 업체로부터 자사에 이르는 전 제품 생산 과정을 분석해 각 과정의 유해성, 안전성, 효율성을 계량화했다. 그 결과 환경 오염 및 근로자 근무환경 개선 상황을 자사 구성원, 협력업체, 고객, 시민단체가 모두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동반 성장의 범위를 나이키 구성원, 협력업체, 고객 및 지역사회로 확대한 대표적 사례다.
 
나이키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도 협력업체와 나이키의 생산 각 과정에서 환경과 근무조건에 위협이 발생하는 수준을 지표화해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상생의 목표를 회사의 신제품 전략에 반영함은 물론, 상생의 목표에 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때 자사와 협력업체 구성원 개개인이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도 명문화했다. 이를 통해 나이키는 여전히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선두주자 스웨덴 회사 H&M도 나이키와 유사한 방식으로 상생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H&M은 협력업체 작업장의 근무환경, 노동조건, 품질개선에 대한 투자 등을 지표화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일정 기준에 미달한 협력업체에 대해 우선 개선 방안을 지원한다. 문제가 지속되면 아예 거래를 중단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패션업 생태계의 개선이라는 큰 상생의 목표가 자리잡고 있다. H&M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를 통해 원가 우위를 추구해 온 패션업계의 관행을 개선하려고 애쓰고 있다.
 
넷째, 동반 성장의 당위성, 목표와 의지가 갑 구성원 사이에서 폭넓게 공감됐다면 포괄적인 의미의 성과관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동반 성장의 중요성을 조직 구성원이 공감하기 시작했다면 구체적인 실행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인사 부서는 회사 차원에서 상생 경영을 공시적으로 유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폭넓은 의미의 성과관리는 바로 갑 또는 을이라는 조직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성과관리를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한 IT 기업이 자사의 자원만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시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개방형 네트워크(Open-network)에 기반한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통해 기술과 제품을 완성하는 이른바 개방형 혁신(Open-source Innovation)을 지향한다. 이러한 업무 형태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성과관리 방법이 바로 폭넓은 성과관리다.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Fire-fox)로 급성장한 모질라(Mozilla)를 보자. 모질라는 기획 단계의 아이디어뿐 아니라, 실질적인 제품개발, 제품의 출시 및 유통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 제품의 지속적 보완과 고객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소수의 자사 직원이 해당 분야에 관심과 지식을 보유한 외부 인재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해 일을 추진한다. 물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관리자 또는 조정자는 대부분 모질라의 정직원이다. 하지만 일부 업무는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외부 인력이 주도한다. 자연스럽게 일의 성패는 얼마나 외부 인력들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모질라는 이에 대한 인정과 보상도 전적으로 내부 구성원에 한정하지 않는다. 해당 프로젝트 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함께 기여한 커뮤니티 단위로 평가하고 관리한다. 즉, 한정된 파이를 가지고 내부 구성원들이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모질라의 제품과 서비스에 큰 관심과 지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모질라 브랜드 고객에 대한 신뢰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방식이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내부 전문가냐 외부 전문가냐와 같은 고용 형태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조직 내-외부 프로세스 간의 구분이 명확한 산업이나 전통적인 제조업체에서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개방형 혁신을 채택하는 기업이 향후 전 산업에 걸쳐 증가할 거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모질라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런 성과관리 방식을 자사의 기존 방식에 서서히 녹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포괄적 의미의 성관관리는 완제품을 책임지는 대기업과 이의 부분 및 부품을 책임지는 중소규모의 협력업체 간의 상생 경영에 특히 효과적이다.
 
다섯째, 갑이 협력업체의 인사관리 역량강화를 지원할 때, 제도 구축이나 시스템 도입보다는 채용 및 인재 육성과 관련한 역량을 강화시키는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대표적 예가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인력 교류 프로그램이다. 앞서 말했듯 평가제도 구축, 연봉제 도입, 인사관리규정의 선진화, 인사정보시스템 도입 등은 일시적으로 협력업체의 관리 효율성을 높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갑이 상생을 통해 고객에 대한 제공 가치를 증진시키며 을과 장기간 동반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을 구성원들의 역량과 자질, 파트너인 갑과 자기가 속한 조직인 을에 대한 자긍심과 충성심이 강해야 한다.
 
협력업체, 특히 브랜드가 취약한 중소업체나 부품 공급업체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인재의 확보 및 유지다. 협력회사 자체 역량만으로 뛰어난 인재는 물론이고 발전 잠재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별·채용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많은 대기업이 구축을 완료한 평가 센터(Assessment Center)를 이용할 권리를 주거나 기타 검증된 채용 방법을 협력업체에 전수한다면 협력업체가 자사에 적합하고 개발 잠재력 높은 인재를 채용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지원은 협력업체의 현실적 어려움을 덜어준다.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경쟁력 강화로 인한 납품제품의 품질 강화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해당 대기업에도 이익을 줄 수 있다.
 
확보한 인재를 육성할 때도 대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교육 지원이 아니라 맞춤형 육성 지원책이 필요하다. 협력업체 내의 발전 가능성 높은 인재는 배움에 대한 열망과 성취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강의실에서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교육방법과 체계(In-Class Training System)로는 이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주는 데 한계가 있다.
 
이보다 이들이 갑이 볼 수 있는 관점에서 최종 고객의 욕구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갑이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를 실질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일정 기간 협력업체 직원이 갑의 생산 및 관리 프로세스를 수행해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이 과정에서 을 직원들의 역량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굳이 이 방법이 아니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협력회사와 갑의 적극적인 인력 교류가 필요하다. 이것이 쉽지 않다면, 갑의 실무자가 체험 교육 형태(Action Learning)로 협력업체 직원들을 코칭하는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부 협력업체는 대기업과의 인력 교류가 활성화하면, 자신들이 어렵사리 확보하고 육성한 인재가 대기업, 즉 갑 조직으로 이직하는 일을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이직 사례가 늘면 늘수록 오히려 갑과 을 모두에게 좋은 상생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해당 직원이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비전을 느끼지 못하거나,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이 있다면 어차피 주저 없이 이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인력 교류의 문을 닫는다고 이직을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과 인력 교류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고, 이를 통한 이직이 잦아진다면, 이는 채용 시 협력업체가 사회 초년생 우수인재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경력 비전이다. 당연히 잠재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협력업체에서 3∼4년간 일한 후 대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면, 해당 협력업체가 중간 관리자를 육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재 이탈을 막는 데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상생 경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이 정착된다면 단지 이를 채택한 기업들의 성과 향상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동반 성장은 중소기업 채용난 및 청년층 실업 해소, 경력 단절 없는 인재의 육성(Seamless career development), 대기업 내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평가를 받는 순혈주의 해소 및 다양성 강화 등 많은 사회적 이슈의 해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실천하기를 바란다.
 
박형철 머서코리아 공동 대표 andy.park@mercer.com
박기찬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kichan@inha.ac.kr
박형철 대표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테네시 주립대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앤더슨 컨설팅과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쳐 머서의 한국 지사장 겸 공동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글로벌 인재관리 전략, M&A 후 인사통합 및 성과관리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박기찬 교수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파리 고등상과대학 대학원(HEC)에서 인사조직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조직행동, 인사정책, 경영혁신, 지식 경영 등이다.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 한국지속경영학회 부회장, 한국전력공사 경영연구소 연구자문위원, 한국공항공사 비상임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도 역임했다. <한국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팀 업적 평가>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