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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기업의 ‘헝그리 혁신정신’

박용 | 64호 (2010년 9월 Issue 1)
인도 농촌 마을에는 특이한 직업군이 있다고 한다. 자전거 뒤에 자동차 배터리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 앞에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마을 사람들이 줄을 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 많기 때문에 농촌 마을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휴대전화를 충전한다.
 
그렇다고 인도 휴대전화 시장을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인구 11억 명의 인도에서는 한해 한국 인구의 두 배에 해당하는 1억 대 이상의 휴대전화가 팔린다. 매달 수백만 명씩 가입자가 늘어난다. 세계 휴대전화 제조회사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황금시장인 셈이다.
 
세계 1위 휴대전화 회사인 노키아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이 회사는 인도 현지에 강력한 유통망을 구축하고, 2005년에는 첸나이에 현지 생산 공장까지 세웠다. 극빈층과 최상위 부자가 공존하는 인도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수십 달러짜리 저가 폰부터 1000달러가 넘는 고가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선보였다. 이 결과 노키아는 인도시장에서 한때 시장의 75%까지 차지했다.
 
지난해 난공불락과 같았던 노키아의 아성에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시장 점유율이 2008년 60%대에서 지난해 50%대로 떨어졌다. 노키아를 인도 시장에서 끌어내리고 있는 추격자는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애플의 ‘아이폰’도, 세계 2위권을 형성한 삼성, LG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아니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최신호는 수십 달러짜리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인도 토종 브랜드들을 지목했다. 이들 토종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2009년 약 14%로 성장했다. 노키아가 내준 시장의 대부분을 토종 브랜드가 채운 것이다.
 
수십 달러짜리 인도 휴대전화의 힘은 무엇일까. 단지 저렴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노키아도 수십 달러짜리 제품이 있다. 승승장구하는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잃어버린 ‘헝그리 혁신정신’이다. 전기가 들어오는 가구가 4곳 중 1곳도 안 되는 인도에서 글로벌 기업의 첨단 휴대전화에 장착된 대형 화면, 3G, 무선인터넷(WiFi), 고급 카메라는 사치일 수 있다.
 
2008년 휴대전화를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인도 토종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마이크로맥스는 이 ‘헝그리 혁신정신’을 통해 현재 인도 시장의 4%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 회사는 화면은 작지만 한번 충전하면 5일을 쓰는 저가 휴대전화를 선보이며 인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7년 시골 마을 자전거 충전소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개발한 제품이었다. 이 회사가 최근 내놓은 더블 ‘가입자식별카드(SIM)’ 휴대전화(한 사람이 여러 이동통신사에 가입해 복수의 번호를 쓰는 인도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위 아래로 뒤집으면 각각 다른 번호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는 노키아로 하여금 ‘미투(Me too)’ 상품 개발에 나서게 했을 정도다.
 
애플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개발해 중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듯이 이 회사는 인도 시장에 맞는 디자인을 현지에서 자체 개발해 중국에서 생산한다. 노키아는 제품 개발에 18개월이 걸리지만 마이크로맥스는 4개월이면 아이디어를 제품화한다. 그만큼 민첩하다. 이런 식으로 1년 반 만에 인도 시장에 특화된 37종의 휴대전화를 내놨다.
 
인도 토종 브랜드의 약진은 혁신의 본질이 막대한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해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추가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진정한 혁신은 고객의 니즈에서 시작해 고객의 주머니에서 끝나야 한다. 혹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쓸모는 없고 겉모습만 화려한 ‘군더더기(bells and whistles)’에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 붓고, 그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도의 ‘헝그리 혁신 기업’이 세계 시장에 던지는 화두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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