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모형 스핑클

탈레스, 지팡이 하나로 피라미드를 재다

62호 (2010년 8월 Issue 1)

 
탈레스를 알고 있는가? 그는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활동한 수학자이자 과학자다. 흔히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탈레스는 워낙 놀라운 발견을 많이 했는데, 그가 발견하고 증명한 내용은 지금의 수학 교과서에서도 자주 다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원은 임의의 지름으로 이등분된다.
2.교차하는 두 직선에 의해 이루어진 두 맞꼭지각은 같다.
3.이등변 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
4.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다.
5.두 삼각형에서 대응하는 두 각이 서로 같고
대응하는 한 변이 서로 같으면 삼각형은 합동이다.
 
탈레스가 발견하고 증명했던 위의 내용(Premise)들은 지금 생각해도 그리 쉽지 많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무려 2500여 년 전에 증명했다. 탈레스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문제의 핵심을 발견하고 추론하는 남다른 사고 과정을 갖고 있었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수학적 증명은 복잡하고 이 글의 주제와도 일치하지 않으므로 생략하겠다. 대신, 가장 간명하고 명쾌한 사례를 통해 탈레스 사고의 특징을 살펴보자.
 
탈레스의 치환 통찰
 
탈레스가 이집트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그리스의 이름난 과학자 탈레스를 초대해 환대한 후 도움을 요청했다. “탈레스, 우리 이집트는 사후의 세계를 아주 중시합니다. 그래서 왕이 죽으면 피라미드를 만듭니다. 그런데 피라미드의 높이가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라미드의 높이를 알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탈레스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내일 이맘때까지 피리미드의 높이와 그 측정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 다음날 탈레스는 파라오에게 피라미드의 높이와 측정 방법을 알려주었다.
 
탈레스는 어떻게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을까? 지금이라면 인류가 축적해놓은 지식을 활용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는 데 문제가 없겠지만 2500여 년 전에는 그리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이다.
 
탈레스가 쓴 방법은 아주 간단하면서 통찰적이었다. 탈레스는 피라미드 옆에 자신이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다. 피라미드 옆에 지팡이를 꽂아 놓으면 그림자가 생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 순간 지팡이의 높이와 그림자의 길이가 같아진다. 바로 그 순간이 피라미드의 높이와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도 같아지는 순간이다. 이때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를 쟀다. 아주 간명하고 놀라운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요청한 피라미드의 높이를 직접 잴 수는 없었다. 단번에 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슨 방법을 썼는가? 피라미드의 높이가 아닌,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때 지팡이는 피라미드 높이를 잴 수 있는 치환 도구로 사용됐다. 지팡이와 그림자는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다른 도구, 즉 치환된 도구이다. 치환은 놀라운 통찰의 도구다. 직접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교체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치환이란 단어를 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개념을 다른 개념으로 교체 또는 대체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탈레스가 사용한 통찰적 사고 과정이 바로 치환이다. 치환은 때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문제들도 치환을 거치면 간단하고 쉬운 문제로 변화한다. 탈레스의 이 치환 통찰은 25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늘날 치환의 방법을 통해 통찰을 발견한 사례들은 어떤 게 있을까.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레이 하룬의 치환 통찰-자동차 백미러
 
탈레스가 사용했던 치환 통찰은 현대에도 자주 사용된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활약한 카레이서 레이 하룬에 의해 개발된 자동차 백미러도 치환 통찰을 통해 탄생했다.
 
미국 인디애나 소재 한 자동차 회사(마몬)의 기술 부장이었던 레이 하룬은 1900년대 초반 직접 설계한 레이스카를 몰고 지방 레이스에 출전, 여러 번 우승을 하며 꽤 이름을 알렸다. 그러던 1911년, 2.5마일 거리의 타원형 트랙을 200바퀴 돌아 총 500마일을 달리는 ‘제1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레이스(이하 인디 500마일)’가 열리게 됐다. 쉬지 않고 장거리를 달리는 논스톱 트랙 경기로, 거금 1만 달러가 상금으로 내걸렸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레이 하룬은 어떻게 해서든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문제 해결의 핵심은 자동차 무게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면 그만큼 속도를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무게를 줄일 수 있을까?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능 중 가장 무거운 게 뒤에 앉은 조수였다. 당시만 해도 경주용 자동차 경기는 두 명의 선수가 탑승해 자동차 앞뒤로 앉아 경주를 하는 방식이었다. 앞좌석에 앉는 사람이 운전을 했고, 뒤에 앉는 조수는 뒤를 바라보며 어느 쪽에서 경쟁차가 다가오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했었다. 자동차 백미러가 없었기 때문에 안전 운행을 위해서는 뒤를 봐 줄 조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레이 하룬은 조수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족히 70㎏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조수를 태우지 않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하룬은 아내가 화장할 때 사용하는 거울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래, 화장 거울을 자동차에 달면 조수가 없어도 뒤를 바라볼 수 있을 거야!”
 
그는 자기가 직접 설계해 만든 백미러를 자동차에 달고 ‘인디 500레이스’에 참가했다. 다른 경쟁자들은 두 명이 탑승해 레이스를 했지만, 하룬은 조수를 백미러로 치환해 자동차의 절대 무게를 덜어냈다. 그리고 하룬은 제1회 인디 500레이스에서 백미러를 달고 우승한 최초의 레이서가 됐다. 레이 하룬이 쓴 방법은 탈레스가 쓴 방법과 유사하다. 직접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도구로 교체·대체해 해결하는 치환의 방법을 썼다.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정주영 회장의 치환 통찰
- 한겨울의 푸른 잔디
 
남의 나라 얘기만 했으니 이번에는 우리나라 예를 들어보자. 너무도 유명한 사례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푸른 잔디’다. 한국전 당시 이역만리 타국에서 순국한 군인들을 조문하기 위해 1952년 2월 UN군 각국 주요 사절들이 부산 UN군 묘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때 UN군 사령부가 한국 정부에 푸른 잔디를 요청했다. 부산 UN군 묘지의 겨울 분위기가 너무 썰렁하니 푸른 잔디를 깔아달라는 주문이었다. 한겨울에 푸른 잔디를 어떻게 구하란 말인가. 요청을 들어주긴 해야겠는데 푸른 잔디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젊은 정주영 회장이 “내가 하겠다”며 자신 있게 나선다. 그리고 UN군 사령부측에 공사비를 세 배로 요청하고, 트럭 30대를 동원해 묘지 전체를 푸르게 만들어놓는 데 성공한다. 물론 각국 사절단은 아무 문제없이 행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는 한겨울 어디에서 푸른 잔디를 구했을까? 정주영 회장이 부산 UN군 묘지에 심은 푸른 잔디는 진짜 잔디가 아니라, 낙동강 변에 싹을 틔우고 있던 보리싹을 옮겨 놓은 것이었다. 파릇파릇한 보리싹으로 UN군 묘지를 푸르게 만든 정주영 회장은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그들이 말한 건 잔디였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푸른색이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푸른색을 제공했을 뿐이다.”
 
UN군은 푸른 잔디를 요청했다. 그러나 직접 해결할 수는 없었다. 당시의 한국에는 사계절 잔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진짜 원했던 건 무엇일까? 푸른색이었다. 푸른색이라면, 다른 것으로 대체·교체가 가능하다. 치환이 가능한 순간이다. 정 회장은 그들의 푸른 잔디에 대한 욕구를 푸른 보리싹으로 치환했다. 멋진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마치 탈레스가 피라미드의 높이를 피라미드의 그림자로 치환한 방식과 같다.
 
필자가 체계화한 통찰의 스핑클 모형에서 제안하는 첫 번째 통찰 유도 방법은 직접 해결할 수 없다면 치환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다른 것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놀라운 통찰이 일어난다.
 
편집자주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놀라운 통찰로 표면 아래의 진실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10년간 통찰력 분야를 연구한 신병철 WIT 대표가 8000여 개의 사례를 분석해 체계화한 ‘스핑클’ 모형을 토대로 기업인들의 통찰력을 높이는 실전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8호 Dynamic Workspaces 2021년 0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