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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에서 간접 경험한 투자은행(IB) 업계의 빛과 어둠

박진주 | 62호 (2010년 8월 Issue 1)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CBS)은 뉴욕에 있는 학교답게 재무 분야에서 큰 강점을 보이고 있다. 전체 수업 중 재무 및 경제 관련 과목이 약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졸업생의 50% 이상이 재무 관련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정통 재무학 분야뿐 아니라 투자은행 업무(IB)에 관한 강의 및 세미나도 어느 학교보다 풍부하다.
 
올해 필자가 수강했던 과목 중 가장 인상적인 수업은 비 상근 교수(Adjunct Professor)인 제임스 프리먼이 진행한 ‘Investment Banking’이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 5시 45분부터 9까지 이뤄진 이 수업은 월가의 전·현직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는 점이 특징이다. 프리먼 교수도 크레디트 스위스 등 월가 투자은행에서 35년간이나 근무하다 현재 투자 부티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월가에서 쌓은 인맥을 통해 초빙해 온 초청 강연자들은 세계 톱 10 사모펀드의 CEO, 투자은행 핵심 부서들의 최고책임자들이 대부분이다. 아폴로 자산운용의 헨리 실버 회장, 씨티은행 글로벌 주식 부문 총 책임자 짐 오도넬,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헬스케어 분야 책임자인 찰스 디트코프, 골드먼삭스 캐피털 마켓 분야의 최고 책임자인 프랑크 로페즈-발보아 등 쟁쟁한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들이 초청 강연자로 나섰다.
 
강사들은 강의 전반에는 세일즈, 트레이딩, 리서치에 관한 내용을, 후반에는 기업 재무, M&A, 사모펀드, 자산 운용 업무를 주로 다뤘다. 수업 자료들은 강의 일주일 전에 미리 관련 질문들과 함께 배포했다. 수업 전에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조성한 스터디 그룹 별로 이전 수업 때 강사가 던진 질문에 관한 답을 정리해 제출해야 한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온 초청 연사들과 학생들 간에 활발한 토론이 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실무 경험 없는 학생들이 추측해서 작성한 답안과 실제 거래를 직접 지휘한 실무자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강의 중 “IB에서 M&A 업무를 담당할 때 인수 기업의 자문 역할을 하는 게 피인수 기업의 자문을 담당할 때보다 좋은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가?(Are buy sides better for investment bankers than sell sides? If so, why?)”란 질문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예라고 대답했다.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의 처지가 같을 수 없는 만큼, 갑의 입장인 인수 기업의 자문 역할을 하는 게 을의 입장인 피인수 기업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강연자로 나선 한 IB 뱅커는 단호히 ‘no’ 라고 답했다. 인수 기업의 자문을 담당할 때는 해당 기업이 원하는 적정 가격에 매입할 잠재 인수 대상 기업을 찾아내는 게 IB들의 핵심 과제다. 적당한 가격에 나온 알짜 매물을 찾아내지 못하면 거래 자체가 무산된다. 즉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수수료 수익을 창출할 기회 자체가 없어진다.
 
반면 피인수 기업을 위해 일할 때는 사정이 정 반대다. 해당 기업은 반드시 기업 매각을 성사시켜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에 몰려있을 때가 많다. 시장에서 형성된 매각가격과 해당 기업의 희망 매각 가격의 괴리가 있다 해도 어지간하면 거래가 성사된다. 당연히 투자은행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 실제 경험자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내용이었다. 학계에만 몸담았던 교수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IB 전문 헤드헌팅 회사의 여성 대표가 참석했다. 이 수업에서는 구직자 혹은 현직 종사자들을 위해 금융산업에서 커리어를 쌓는 노하우와 위험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가 발발한 직후와 비교하면 월가의 고용시장 상황이 분명 호전됐지만 향후 3년 내에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기는 힘들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IB에 취직하고 싶은 MBA 학생이라면 고용시장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라고 권고했다. IB에서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할 때에 대비해 일반 대기업의 재무직 등에도 적극 이력서를 보내라는 뜻이다. 그 곳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금융시장 상황이 풀렸을 때 IB 업계의 문을 다시 두드리라는 것이다. 무작정 IB 업계에만 취직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아무 곳에도 취직하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사람들이 흔히 월가 금융회사에 기대하는, 엄청난 연봉과 화려한 생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기가 보여줬듯 이 업계의 고용 상황도 매우 불안정하고, 보통 주당 100시간을 일할 정도로 업무 부담이 크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최근 어떤 업계를 막론하고 많은 구직자들이 가장 중요한 근무 조건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꼽는다. 이런 추세와 비교하면 금융업, 특히 IB 쪽은 업무 현실이 상당히 낙후돼 있기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 플랜 상 이곳에서 몇 년 정도 버틸 수 있을지, 커리어에 꼭 필요한 경험인지를 반드시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가가 보장하는 높은 연봉은 많은 구직자들에게 매력적인 조건임에는 분명하다.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필자는 초청 연사 중 꽤 많은 사람들이 하버드와 예일 등 미국 최고 로스쿨 출신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이들 대부분은 월가에 입성하기 전,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때마침 어느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예의 그 질문을 던졌다. “왜 최고 로스쿨을 졸업하고 최고 로펌에서 변호사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뱅커가 되기로 결심 하셨나요?”
 
이 질문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그 유명 인사는 뒤돌아서 칠판에 두 개의 숫자를 썼다. 그는 왼쪽에 1,000,000 이라는 숫자를 쓰고, 오른쪽에는 100,000 이라는 숫자를 쓴 후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이 두 가지 숫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고. 일반인이 보기에는 십만 달러 대의 연봉도 엄청나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최소 10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월가 생활이 훨씬 매력적이었나 보다. 이들에게서 명예나 지위보다는 실리를 중시한다는 미국인의 실용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뉴욕 맨해튼 북부에 위치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CBS)은 합격자가 지원자 대비 13%에 불과해 세계 최고 경쟁률을 보이는 MBA스쿨로 유명하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유명한 세계 2위 거부 워런 버핏 등 많은 거장을 배출했으며,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가치투자의 권위자인 브루스 그린왈드 교수 등이 포진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세계 유명 언론이 선정한 ‘올해의 MBA’에서 해마다 5위 안에 속한다. 매년 730여 명의 신입생을 뽑으며, 한국 학생은 해마다 10명 정도 입학하고 있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스쿨,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LBS), 중국 유럽국제공상학원(CEIBS)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 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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