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브랜드는 ‘지적인 사생아’일 뿐인가?
브랜드는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일반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재 마케팅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기업이나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조사하고 평가해왔다. 인터브랜드(Interbrand)나 <파이낸셜 타임즈> 같은 기관에서는 매년 전 세계 주요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을 정도다. 브랜드 자산(brand equity) 연구로 유명한 아커(Aaker)의 정의에 따르면 브랜드 자산이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기업이나 그 기업의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의 총합(a set of brand assets and liabilities linked to a brand, its name, and symbol that add to or subtract from the value provided by a product or service to a firm and/or to that firm’s customers)’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나이키와 같은 기업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수백억 달러의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사 브랜드에 대한 호의적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은 마케팅 성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B2B 시장에서는 주요 거래 품목이 부품이나 기계, 원료, 소재와 같은 산업재이고, 마케팅의 대상인 고객도 개인이 아닌 기업과 같은 조직 구매자(organizational buyer)이다 보니 브랜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브랜드 이미지와 같은 심리적 요소보다는 제품의 기능이나 품질, 가격, 납기 등과 같은 객관적 요인들이 마케팅 성과를 결정짓는 요소로 인식됐다. B2B 브랜드와 그 기업의 재무적 성과와의 관계를 최초로 분석한 오니무스(Ohnemus)의 연구에서도 ‘B2B 시장에서의 브랜드는 일종의 지적인 사생아(intellectual step-child)’라고 했을 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B2B 제품에 대한 브랜드 활동의 의미에 대해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몇몇 B2B 기업들이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시초는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를 상대로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부품 광고를 시작한 인텔이다. 이후 GE(전기)나 몬산토(화학), 지멘스(전기), 캐터필러(중장비)와 같은 기업들이 브랜드 활동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B2B 브랜드의 대부분은 기업 브랜드(corporate brand)였으며, 그 기업의 특정 제품이나 부품, 소재에 대한 구체적인 개별 브랜드(individual brand)를 강조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산업재 등 B2B 시장에서도 브랜드 가치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과연 소비재 시장에서처럼 B2B 기업에서도 브랜드 가치가 중요할까? 마케팅 뉴스(Marketing News)에 따르면, 미국에서 B2B 기업들이 기업 및 제품 광고에 지출하는 총 판매 촉진비 규모는 2006년 448억 달러에서 2008년 483억 달러, 2010년 525억 달러(예상치)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B2B 시장에서도 효과적인 판촉 및 마케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광고와 브랜드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예다. 미국의 브랜드 컨설팅 기업인 코어브랜드(CoreBrand)가 16년간 450여 기업을 연구한 결과, “많은 B2B 기업들이 브랜드 활동에 수백억 달러를 사용했지만 대부분 효과적인 브랜드 구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표했다(Gregory and Sexton, 2007). 코어브랜드는 B2B 시장에서 기업 브랜드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산업 및 기업별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주가에서 브랜드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을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B2B 시장에서 기업 브랜드가 그 기업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업종별로 다르긴 하나 평균 7%를 차지하고 있으며, 페덱스와 같이 브랜드 관리가 잘된 몇몇 기업에서는 20%까지 차지하고 있다.(그림) 즉 과거 인식과는 달리 B2B 시장에서도 브랜드 관리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이제 국내 기업들도 B2B 시장에서 브랜드의 의미와 활용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B2B 시장에서의 브랜드 마케팅 사례
그렇다면 B2B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브랜드를 구축하고 관리해 이를 마케팅에 전략적으로 활용한 사례로는 무엇이 있을까?
①표준화된 제품 시장에서 강력한 B2B 브랜드를 구축한 사례
독일의 바스프(BASF)는 글로벌 매출 규모만 330억 달러를 넘는 세계 최대 화학 회사 중 하나로, <포춘>이 조사해 발표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Most Admired Global Companies)’에 매년 선정되는 건실한 기업이다. 그런데 화학 산업의 성격상 많은 제품들이 표준화돼 있어 이 회사는 항상 치열한 가격 경쟁에 시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