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비즈니스스쿨(LBS)은 1964년 설립됐으며 2009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글로벌 MBA 랭킹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스쿨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세계의 금융 허브인 런던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 ‘핵심 역량’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게리 하멜 교수 등 우수한 교수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약 400명의 풀타임 MBA 과정 학생 중 90%가 비(非) 영국 국적 학생일 정도로 다양성과 세계화를 강조하고 있다.
런던비즈니스스쿨(LBS)에 오기 전 필자는 ‘영국’이나 ‘런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엘리자베스 여왕, 금융 강국, 비가 자주 오는 날씨, 버버리의 트렌치코트 정도를 떠올렸다. 예전 삼일회계법인에서 일할 때 영국계 투자자가 발주한 일을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의 영국 지점 회계사들과 함께 일하긴 했지만 여전히 영국은 너무 먼 나라로 느껴졌다.
필자가 영국 MBA 스쿨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과 달리 영국, 특히 런던의 고용 시장은 금융위기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외국 학생들에게 비교적 개방적이다. 둘째, 세계의 금융 허브인 런던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들을 기회가 많다는 점, 학교가 위치한 곳이 교외가 아닌 런던 시내라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실제 지난 1년 반 동안의 LBS에서의 경험은 필자의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었고,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LBS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적 다양성(inter-national diversity)이다. 약 400명의 풀타임 MBA 과정 학생 중 90%가 비(非) 영국 국적의 학생들로 이뤄져 있다. 탄탄한 인맥을 자랑하는 2만8000여 명의 동문들도 120개국이 넘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특히 이 중 어느 한 국가도 다수를 점하지 않아 균형 잡힌 세계관을 배양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유학을 하다 보면 직간접적으로 국적의 은근한 제약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LBS에서 보낸 지난 1년 반 동안 외국 학생이라는 이유로 필자의 의견을 마음껏 피력하지 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그룹 활동이건 과외 활동이건 리더가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모든 학생들에게 평등하게 부여된다.
학생 개개인의 경력 자체도 매우 국제적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교육받은 국가 또는 과거 일했던 국가가 최소 2, 3개국 이상이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간접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힐 기회도 꽤 많았다. 한국에서 거의 접하지 못했던 이슬람권 학생들을 많이 만나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필자는 올해 1월에 ‘Paths to Power’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이 과목은 ‘조직 내에서 어떻게 하면 힘이 자신에게 쏠리도록 할 수 있는가’라는 매우 재미있고 혁신적인 주제를 다룬 과목이다. 필자의 모의 협상 파트너는 아부다비에서 온 저명한 외과의였다. 필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이 맡고 있던 환자의 남편이 이번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원전 수주 계약 담당자였다며 너무 반가워했다. 그는 외교관이 아니었지만 LBS의 수업 시간에 교수들이 다룬 삼성의 발전 사례를 많이 접했다며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원전 수주에 관해서도 한국의 기술력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고, 한국과 UAE의 협력 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 필자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도 LBS의 장점이다. 다른 많은 MBA스쿨과 마찬가지로 LBS 역시 풀타임 MBA 과정의 학생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하지만 MBA 과정의 학생들은 선택 과목을 수강할 때 LBS 내 다른 프로그램인 Executive MBA나 Masters in finance Programme의 학생들과 같이 강의를 들어야 한다. 특히 Executive MBA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40, 50대 고위 간부들이다. 이런 분들과 함께 토론하고 팀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 젊은 학생들이 접하기 힘든 기업 실무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경영자의 관점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네트워킹 효과가 커짐은 말할 나위도 없다.
런던 어드밴티지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LBS에 오기 전 학교에서 아침을 먹을 때 런던의 월스트리트인 ‘더 씨티(The City·금융 기관들이 몰려있는 런던 동쪽 지역)’의 유명 은행가, 유니레버 유럽 지역의 전 최고경영자(CEO)들과 동석해 얘기할 기회를 얻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하지만 이는 LBS의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게다가 런던은 뉴욕 못지않은 세계 문화 예술의 중심지다.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오페라, 뮤지컬, 발레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런던 시내에 위치한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공부에 지쳤을 때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런던 시내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만으로도 외국 생활에서 겪는 피로가 싹 가실 정도였다.
MBA 학생들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 즉 취업 시장에서의 우위도 상당한 이점이다. 금융위기 후 미국에서는 외국 학생들에게 취업 비자 없이는 입사 지원을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외국 학생들의 취업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하지만 런던 및 유럽 취업 시장은 여전히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특히 LBS를 졸업한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2년간 취업 허가(Work Permit)를 획득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기회인가.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만 일했던 필자 또한 노바티스, HSBC, 안호이저 부시 등 여러 유럽 회사들의 취업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개인의 능력만 뒷받침되면 유럽 고용 시장은 열려 있다는 점을 몸소 체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