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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경영의 허와 실

임채운 | 32호 (2009년 5월 Issue 1)
최근 창조 경영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성장 동력이 줄어들고 미래의 불확실성은 커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기업 성장을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에 창조 경영이 중요한 이유는 산업 구조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규모 설비 투자를 남보다 먼저 단행해 시장을 공략하던 시기에는 경영자의 창조성만이 필요했다. 미래의 시장을 예견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최고경영자(CEO)가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조직 구성원들은 세부 작업에 매진해 경영자의 꿈을 실현시키는 구조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경영에서는 창의성보다 추진력을 갖춘 직원들이 더 많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경영자의 창조적 마인드만으로는 기업을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이 닥쳐왔다. 급속한 산업의 복합화 및 융합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창조 경영은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로 등장했다. 창의성이 부족한 조직은 활력을 잃은 화석과 같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 기업들이 최근 고전하는 모습은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조직의 운명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창조 경영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누구나 조직 전체와 직원 개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 과제를 달성할 것인가에 관한 방법론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창조 경영을 추진하는 방법이 비창조적이어서 실패하는 사례도 많다.
 
한국 기업의 대다수 경영자, 특히 오너 경영자는 매우 권위적이다. 과거 자신의 창의성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경영자일수록 부하 직원의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단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아버지의 후광에 주눅 들어 갈수록 자기 능력을 발휘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경영자들은 통제력 상실을 싫어한다. 창조 경영은 자율성을 전제로 한다. 자율성과 경영권 훼손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많은 경영자들은 자율성을 자신의 통제력이 줄어드는 일로 받아들이며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실패를 참지 못하고 단기 실적만을 중시하는 목표 관리도 창조 경영의 걸림돌이다. 창조 경영에는 필연적으로 자원의 낭비가 따른다. 당장 실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투자를 인정할 기업은 많지 않다. 창조적 아이디어는 실패의 위험이 크다. 열 번 잘하더라도 한 번 잘못하면 그 잘못만 낙인찍히는 한국의 조직 문화가 변해야 하는 이유다.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인 특유의 순혈주의에 대한 집착이다. 창조란 남과 다른 사고와 관점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남과 다른 생각을 표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독창적 생각을 가진 사람을 독불장군이라 폄훼하고, 집단 가치관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한다. 일부 대기업은 외부에서 유능한 인력을 수혈해 조직에 자극을 주려는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기존 직원들이 외부 인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인위적으로 주입시킬 수는 없다. 조직의 구조와 프로세스부터 바꿔야 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창조 경영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의 기업 문화가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이 부족한 개인이나 조직 모두 단 하루 만에 창조적으로 바뀔 수는 없다. 즉 창조 경영을 지나치게 서두르다 보면 그 성급함이 오히려 창의성을 억압하고 위축시킬 수 있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창의력을 배양하고 육성하는 학교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붕어빵을 찍어내는 듯한 획일적인 학교 교육을 받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 갑자기 창의적 인간으로 변할 수는 없다. 국내 MBA 과정들도 규격화된 인재보다 창조적 지도자를 키우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형 MBA란 한국적 상황에 익숙한 관리자를 배출하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 기업에 진정으로 필요한 미래의 창조적 경영자를 육성하고 공급하는 원천이다. 기업들도 교육만이 기업이 바라는 창의적 인재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MBA 교육이 창조 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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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채운

    - (현)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장
    - 한국유통학회 회장
    - SK증권 사외이사
    - 기획예산처 경영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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