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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시안적 학습과 성공의 덫

신동엽 | 27호 (2009년 2월 Issue 2)
진정한 거장 제인스 마치 교수
경영학은 그 자체 지식은 물론 경제학·사회학·심리학·정치학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전형적인 학제간(interdisciplinary) 학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대가들이 경영대학에 몰려와 ‘별들의 전쟁’을 벌인다. 실제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상당수는 경영대학 소속이다. 당대 내로라하는 대가들의 경연장 같은 경영학 분야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최고의 거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임스 마치 교수다. 전략경영 분야의 대가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도 학문적 폭과 깊이, 독창성에 있어서 마치 교수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마치 교수는 ‘통섭’으로 불리는 학제간 접근법을 이미 1950년대에 완벽하게 실현한 카네기대 경영대학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또 다른 경영학 대가이면서 컴퓨터공학자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 박사와 공동 연구를 해 수많은 걸작을 만들었다. 마치 교수의 연구들은 그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창성과 심오함을 갖고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조직학습 분야의 근시안적 학습(myopia of learning)과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관한 연구다.
 
장기 생존이 어려운 이유
기업들은 생각보다 오래 생존하지 못하며, 장기간 살아남는 극소수의 기업들도 예외 없이 부침을 거듭한다. 2005년 통계를 보면 전 세계 기업의 약 80%가 창업 후 30년 이내에 사멸했다. 톰 피터스가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란 책에서 완벽한 초우량 기업의 예로 든 60여 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책 출간 후 불과 10년 만에 몰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포천 500대 기업 리스트의 3분의 1이 5년 안에 교체된다. 최근 통계만 봐도 2000년 말 포천 500대 기업에 선정된 기업의 약 30%가 2007년 말에 사라졌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1970년 한국 10대 재벌그룹 중 현재까지 10대 그룹에 포함된 곳은 삼성과 LG 2개뿐이다. 당시 단일 기업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동명목재는 없어진 지 오래다. 위기 없이 장기간 평탄하게 지속적 경쟁우위를 유지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의 생존과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장·경쟁·기술·사회문화 등 환경이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환경에 적합하게 조율됐던 기업의 전략과 구조·기술·문화·역량 등이 새로운 환경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탐구-활용의 패러독스와 근시안적 학습
많은 기업이 환경 적응과 장기 생존에 실패하는 메커니즘과 관련해 일반적으로 각 조직이 지닌 약점이나 문제점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마치 교수는 개인이나 조직·국가를 막론하고 결정적 위기는 오히려 각자의 강점으로부터 온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했다. 이런 의외의 주장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치 교수가 1990년대 초반에 발표해 경영학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조직학습에서의 ‘탐구와 활용(exploration and exploitation)’ 패러독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치 교수에 따르면 기업들의 학습행동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이미 가지고 있던 전략·시스템·기술·지식·문화 등 기존 역량을 ‘활용(exploitation)’하는 행동이다. 다른 하나는 가지고 있지 않던 새로운 역량을 찾는 ‘탐구(exploration)’행동이다. 이 2가지 학습행동은 전혀 다른 기반 원리를 지니고 있어서 동시에 2가지 다 잘하기는 어렵다. 즉 기존 역량의 활용은 행동의 효율성과 리스크 감소(risk reduction)가 핵심이다. 반면에 새로운 역량 탐구의 핵심은 창조성과 과감한 리스크 감수(risk taking)다. 즉 두 활동은 정반대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기업들은 이 2가지 정반대의 조직학습 유형 중 한 가지에 편중된다. 대부분은 기존 역량 활용으로의 쏠림(exploitation bias) 현상이 나타난다. 전혀 새로운 사업분야나 전략·시스템·기술 등에 대한 모험적 탐구는 불확실성과 실패 리스크가 높고 성공하더라도 수익은 장기적으로 실현된다. 반면에 이미 지니고 있는 역량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활용은 불확실성과 실패의 리스크가 낮고 수익이 단기간에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 기업들은 현재 가진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눈앞의 단기 성과와 현 사업으로부터의 수익 극대화에만 몰두하게 된다. 마치 교수는 이를 ‘근시안적 조직학습’이라고 부른다.
 
근시안적 학습과 성공의 덫
근시안적 학습은 역설적으로 그 기업의 장기 생존과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초래한다. 마치 교수는 이를 ‘성공의 덫’이라고 표현했다. 기업이 기존의 전략이나 이미 보유한 자원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면 해당 역량을 성과 창출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점점 능숙해진다. 그 결과 기존 역량은 기업이 성공적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성공 공식(success formula)’으로 자리잡게 된다. 기업들은 일단 성공 공식으로 증명된 역량을 다른 사업에도 계속 확장해 사용한다. 실무에서는 이를 ‘레버리지(leverage)’ 또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공유’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기존 성공 공식의 반복적 활용은 치명적인 위험도 수반한다. 기존의 성공 공식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다른 대안적 역량이나 가능성들로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고립된다. 그러다가 기존의 역량과 성공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불연속적이고 역량파괴적(competence-destroying)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 기업은 갑작스레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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