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환상부터 버려라.”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남겼다는 이 말은 80여 년이 지난 지금, 기묘하게도 경영진의 회의실로 소환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 긴장 속에 항로를 바꾸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홍해 상공에는 자폭 드론이 날아 다니며, 반도체 하나가 외교의 무기가 되는 세계. 우리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상수인 세계에서 어떻게 조직을 운영할 것인지를 물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전시(戰時)경영, 즉 ‘워타임 매니지먼트(Wartime Management)’입니다. 이 말의 출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벤처캐피털 안드레센 호로비츠의 공동창업자 벤 호로비츠는 2011년 ‘Peacetime CEO/Wartime CEO’라는 글에서 이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평시의 CEO가 기회를 넓히는 데 집중하는 리더라면 전시의 CEO는 경쟁자나 거시경제 충격, 시장 변화 등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에 맞서 싸우는 리더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당시엔 스타트업 리더십을 설명하며 꺼낸 이 프레임은 이제 개별 기업의 위기 대응을 넘어 지정학적 충격이 일상이 된 환경에서 기업 전체의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세계 주요 기관들의 진단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WEF(세계경제포럼)는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 국가 간 무력충돌을 ‘가장 즉각적인 위험 1위’로 꼽은 데 이어 중동 전쟁의 여파가 원자재·식량·공급망·금융 여건을 동시에 흔들며 수년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IMF 역시 2026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의 제목을 아예 ‘전쟁의 그늘 아래 놓인 글로벌 경제’로 명명하며 지정학적 긴장이 모든 주요 경제 블록에서 무역 제한을 연쇄적으로 촉발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충격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반복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팬데믹에서 유럽 내 전쟁으로, 홍해 사태에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충격 속에서 ‘효율이 곧 경쟁력’이라는 공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균열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최근 미·이란 군사 충돌이 이 균열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전면전으로 번지진 않았지만 단기 휴전과 군사적 압박, 해상 통제와 제재가 교차하는 ‘회색지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워타임 매니지먼트’가 요구하는 전환은 네 가지 축으로 압축됩니다. 첫째는 공급망으로 효율보다 선택권, 즉 특정 경로가 차단되더라도 즉시 대체할 수 있는 복수의 옵션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둘째는 재무입니다. 얼마나 버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유동성 방어와 현금 전환 주기 관리가 전략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셋째는 에너지입니다. 장기 전력구매계약(PPA), 분산형 전원, 저장기술을 더 이상 ‘한가한 친환경 전략의 언어’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 가격이 상수가 된 세계에서 이런 기술이 운영 연속성을 지키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법적 대응입니다. 불가항력을 ‘주장’하는 것을 넘어 ‘입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위기가 잦아든 자리에서 계약 분쟁이라는 또 다른 전선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벤 호로비츠가 스타트업의 생존 법칙으로 정의했던 ‘전시의 경영’은 이제 모든 기업이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기본값이 되고 있습니다. 위기가 끝나면 돌아갈 수 있는 평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직시한다면 기업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번 호 DBR은 그 질문에 먼저 답하기 시작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짚어봤습니다. 기업 간 격차를 만들어낼 결정적 기준을 이번 호를 통해 발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