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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배터리의 나라

김현진 | 371호 (2023년 06월 Issue 2)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로버트 앤더슨은 1834년, 세계 최초의 전기차 ‘원유전기마차’를 발명했습니다. 독일의 기계기술자 니콜라우스 오토가 1864년, 최초의 내연기관을 발명한 것보다 30년이나 앞선 일이었습니다.

상용화 역시 전기차 쪽이 빨랐습니다. 프랑스의 발명가 구스타프 트루베는 1881년 파리 국제전기박람회에서 삼륜 전기자동차를 내놓았고, 1897년 미국 뉴욕에서는 전기차 택시가 등장했습니다. 1899년 벨기에에선 세계 최초로 시간당 100㎞를 갈 수 있는(최고 속도 105.88㎞/h) 전기차가 개발됐고 1912년, 전 세계 전기차 등록 대수는 3만 대로 내연차보다 많았습니다. 이렇게 전기차가 석유를 원료로 쓰는 내연기관차보다 개발도, 상용화도 빨랐음에도 이 사실을 자주 잊게 되는 것은 1908년 이후 자동차 개발의 헤게모니가 내연차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약 100년간이나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짐작 가능하듯 1908년은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가 표준화와 분업화를 내세운 내연차 ‘모델 T’를 선보인 해입니다. 대량 생산 가능한 자동차의 개발과 1920년 텍사스에서 개발된 대형 유전, 이로 인해 저렴해진 가솔린 가격에 힘입어 테슬라가 전기차를 내놓기 전까지 내연차는 한동안 ‘우세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기차가 내연차와의 경쟁 우위에서 밀렸던 결정적 원인은 배터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전기차는 충전 용량이 크지 않고 무겁기까지 했습니다. 그랬던 전기차가 최근 전체 자동차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등 비중이 가파르게 늘기 시작한 데는 배터리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큰 몫을 했습니다.

배터리 산업의 급격한 성장은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과도 맞물려 진행됐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친환경적인 전기자동차가 대두됐고 전기차 사업의 핵심 동력은 배터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내 업체들이 발 빠르게 경쟁 우위를 쌓아 존재감 있는 플레이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향후 관련 산업의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수십 년 이상의 개발 노하우를 쌓아야 ‘명품’이 탄생하는 엔진 기반의 내연차들과 달리 전기차는 기술적 진입 장벽이 낮아 신생 기업도 쉽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배터리는 정밀한 노하우와 기술 축적을 필요로 하기에 전기차 시대의 헤게모니를 주도하는 데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S&P글로벌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루카스 베드나르스키는 DBR과의 인터뷰에서 주저 없이 한국을 ‘진정한 배터리의 나라’로 꼽기도 했습니다.

실제 배터리는 반도체에 이어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로 통합니다. 2025년이면 2차전지 시장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전지 산업에서 파생된 후방 산업들 역시 잠재력이 큰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올 1분기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사용량 점유율 1, 2위를 각각 차지한 CATL과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를 비롯해 일본, 유럽 등에서의 도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배터리는 자원, 환경, 미래 문명의 이슈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배터리 전쟁은 리튬 등 주원료 확보에 따른 지정학적 갈등, 채취 과정에서의 아동 노동 착취 등 윤리적 이슈까지 어우러져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될 전망입니다.

문득 1899년, 세계 최초로 시속 100㎞ 이상을 달릴 수 있게 개발된 벨기에 전기차의 이름이 ‘라 자메 콩탕(La Jamais Contente, 결코 만족할 수 없는)’이었다는 사실을 곱씹게 됩니다. 인류 역사의 방향성이 ‘퇴보’가 아닌 ‘진보’였던 이유가 도전 정신이었던 사실을 되새기면서 ‘내연기관에 올라타 20세기를 질주해 온 인류가 21세기를 활주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은 바로 배터리에 있다’(책 『배터리의 미래』에서)는 사실을 기억하고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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