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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미래 세대가 가장 잘 안다고 인정하자”

김수경 | 355호 (2022년 10월 Issue 2)

참고 기사: “○린이, 노키즈존? 이런 말 옳지 않아요” 그들의 선한 생각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MZ세대’라는 용어에서 알파벳 M은 새 천 년을 의미하는 ‘밀레니얼(Millennial)’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다. 그렇게 MZ세대는 새로운 천 년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시작됐다. 그러나 현재 청년 세대를 둘러싼 담론은 ‘헬조선’ ‘흙수저’ ‘N포 세대’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등 시종일관 암울하다. 청년은 그 사회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청년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 사회의 미래는 지옥도가 따로 없어 보인다.

희망과 절망의 변곡점 다음에 온 세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헬조선’에서도 사랑이 꽃피고 새 생명이 태어난다. 마냥 청년일 줄로만 알았던 밀레니얼세대가 어느새 4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이들이 낳은 아이들은 10대에 돌입하고 있다. 이른바 알파세대의 출현이다. 알파세대란 용어를 처음 만든 호주의 인구학자 마크 맥크린들i 은 알파세대야말로 진정한 밀레니얼세대라고 주장한다. MZ세대는 일부만 2000년대에 태어났을 뿐 상당수가 1980∼199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알파세대는 전원이 새 천 년 이후 태어났다. 맥크린들은 전 세계가 여전히 테러리즘과 기후 위기의 공포 속에 있지만 알파세대가 결국 새로운 미래를 열어 줄 것이라 기대한다.

지금까지 세대에 대한 작명은 해당 세대가 먼저 출현하고, 그 이후 이름과 특징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386세대’(1960년대생)와 ‘X세대’(1970년대생)는 성인이 된 이후인 1990년대가 돼서야 세대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알파세대는 태어나기도 전에 마치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를 예언하듯 앞선 세대에 의해 명명됐다.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실제로 어떤 세대적 특징을 보일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세대가 MZ세대와 구분되는 몇 가지 지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MZ세대는 20세기와 21세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만 아날로그 문화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MZ세대 사이에 일고 있는 뉴트로(Newtro) 열풍이 그 예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 문화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한다.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됐던 필름 카메라가 MZ세대 사이에서 다시금 인기를 끄는 것은 모든 결과물이 즉시 확인되는 빠른 세상에 대한 일종의 피로감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MZ세대가 겪어보지 않았거나 너무 어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날로그 시대에 관심 갖는 것은 직면한 현실이 어둡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호황기에 태어나 1998년과 2008년 두 차례 큰 경제 위기를 겪었다. 베이비부머나 X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와 청년기 내내 경제 전망은 어둡기만 했다. 고성장과 저성장, 20세기와 21세기,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MZ세대는 희망과 절망의 변곡점을 경험한 첫 세대다. MZ세대를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최초의 세대’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편견 없는 세대가 여는 가능성

그러나 알파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이미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뒤 태어났다. 저성장은 선진국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영원한 성장이란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알파세대에게 저성장은 절망의 늪이 되지 못한다. 고성장의 시절을 살아본 적 없으니 저성장이 치명적 상흔을 남기지 않는다. 고성장을 한때나마 목격했던 MZ세대가 ‘소확행’같이 욕망을 줄이는 방향으로 저성장을 극복한다면 알파세대의 대응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들은 아이가 귀하디귀한 초저출산 시대에 태어났다. 욕망을 줄이지 않아도 자신의 부모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이 지갑을 연다. 명절에 인사만 잘해도 5만 원권 지폐가 주머니에 꽂힌다. 집안의 모든 결정은 아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거주지는 아이의 학군을 고려해 결정되고, 생활비는 아이의 학원비를 떼고 남은 돈으로 운용된다. 오늘 저녁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휴가는 어디로 갈지 등등 모든 것이 아이의 취향에 맞춰진다. 알파세대는 분명 MZ세대보다는 구김살이 적다.

알파세대를 이전 세대와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2010년 첫 출시된 아이패드와 함께 태어났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기 때부터 모든 학습과 놀이를 영상으로 접해왔다. 매체의 변화는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의 변화를 유발한다. 이미지는 글보다 직관적이다. 시각을 통해 정보가 전달되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가공된 정보만이 살아남는다. 당연히 정보를 생산하는 방식도 다르다. 글짓기를 잘하는 아이보다 동영상을 잘 만드는 아이가 각광받는다. 이미 초등학교 수업 현장에선 글짓기만큼이나 동영상 제작 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정보 처리 방식의 변화는 결국 사고방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어떠한 정보가 중요한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스마트 기기를 손에 쥔 알파세대는 컴퓨터와의 소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에겐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이 인간의 본성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일말의 아날로그적 낭만주의가 전혀 없다. 오히려 오프라인 세상보다 메타버스에서 더욱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경험한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Zepeto)에는 다양한 아바타로 활동하며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놀이와 서비스를 경험하는 초등학생들로 넘쳐난다. 어른들은 컴퓨터를 끼고 사는 요즘 아이들의 사회성을 걱정하지만 컴퓨터를 끼고 살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 없는 세상이다.

인간이 컴퓨터와 ‘찐친’이 되는 세상을 활짝 열어젖힌 건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사실 온라인을 기반으로 교육과 업무가 이뤄진다면 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이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아날로그 세대는 그런 세상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료나 상사가 아닌 컴퓨터 시스템이 출퇴근을 관리 감독하고, 교사가 아닌 AI가 학생들의 몸짓과 표정만으로 학업 집중도를 파악하는 세상. 생각만 해도 두려운 그러한 세상이 강제로 도입된 건 코로나19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알파세대는 당장 코로나 세상에 적응해야 했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됐고 과제 수행과 제출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친구를 만날 수 없으니 화상회의로 친구와 대화하고, 모여서 공부할 수도 없으니 화상 채팅 창을 열어 두고 함께 공부했다. 코로나19는 개인을 타인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오직 컴퓨터를 매개로만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이는 개인주의 확산을 가속화하고, 조직의 발전보다 개인의 성장이 우선시되는 세상을 앞당겼다. 혹자는 이렇게 달라진 세상이 인간을 섬처럼 고립시킬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그건 컴퓨터와 인간을 지배와 피지배의 경쟁 관계로만 인식하는 구세대의 지나친 편견이다. 올 초 경남 고성에 사는 한 독거노인이 AI 스피커에 구조를 요청해 무사히 병원 치료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미 세상은 AI가 인간을 구원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절박한 현실이 알파세대에 대한 기대로

특히 한국의 사회적 맥락에서 알파세대에게 갖게 되는 기대 중 하나는 이들이 정치적 이념 투쟁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동안 한국은 산업화 세대로 대변되는 보수 진영과 민주화 세대로 대변되는 진보 진영 간 정쟁에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많았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이후 X세대와 MZ세대가 등장했지만 이들 세대 역시 부모 세대의 이념적 자장(磁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반면 알파세대는 산업화 세대 또는 민주화 세대와 두 세대 이상의 격차를 두고 성장하고 있다. 이들이 성인이 될 즈음이면 산업화 세대에 이어 민주화 세대도 정치권에서 대부분 은퇴할 것이다.

이념에 휘둘리지 않는 세대의 출현은 왜 중요한가. 이념에 경도된 세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방해하기 쉽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이념의 틀 안에 가두면 혁신적 사고는 불가능해진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위기는 전복적 사고가 아니고서는 해결이 어렵다.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이 자연을 파괴하고 기후 위기를 가속화한다고 해서 인간의 도덕과 윤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구가 생존 불가능한 행성이 된다면 화성으로 옮겨가 인간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실제로 우주 탐사가 기후 위기의 해법이냐를 놓고 일론 머스크와 빌 게이츠가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인류의 미래가 밝을 것인가, 어두울 것인가의 문제는 사실 정답이 없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어려울뿐더러 개인의 세계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2016년 출간된 『사피엔스의 미래』는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등 세계적인 스타 지식인 4인방이 2대2로 짝을 지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논쟁을 벌인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낙관론자인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는 객관적 지표를 통해 인류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비관론자인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은 계량적 지표로 확인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질이 위기에 처한 지점을 지적했다.

알파세대가 이끌어 갈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 알파세대에 대한 수많은 논의는 결국 인류가 처한 현실이 절박하고, 그래서 자라나는 알파세대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밖엔 해답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기성세대가 알파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미래는 미래 세대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족하고, 가장 많이 교육받고, 가장 디지털 리터러시가 뛰어난 세대에게 기성세대가 그간 살아온 세월을 근거로 조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그저 알파세대의 손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의지적으로 낙관할 뿐이다.


김수경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ookim@hs.ac.kr
필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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