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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4. Interview: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

플랫폼 연결로 플라스틱 선순환 체계 구축
사회적-경제적 가치 아우른 생태계 확장

김윤진 | 330호 (2021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플라스틱 ‘수거→원료 생산→가공→제품 출시’의 무한 순환 고리가 완성되려면 폐플라스틱의 회수부터 완제품 시판까지 전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런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기업 차원의 노력을 넘어 플라스틱 생태계 내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롯데케미칼의 ‘프로젝트 루프(Project LOOP)’는 플라스틱 회수와 선별, 재활용 원료 가공과 생산, 친환경 제품의 생산 등 각 영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나아가 지자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다. 이런 시도의 배경에는 플라스틱 순환 문화를 정착시켜야 재활용 소재를 생산했을 때 충분한 수요가 발생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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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롯데그룹의 화학BU(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 롯데비피화학 등 화학 계열 비즈니스 유닛)는 2030년까지 친환경 사업 매출 10조 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 ‘그린 프로미스(Green Promise) 2030’을 선언했다. 2007년부터 지속가능 보고서를 통해 경영진 내부에서 공유하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전략을 사내외 구성원에게까지 공표한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화학BU ESG 경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를 ‘자원 선순환 확대’로 정하고 소비자가 버린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PCR(Post Consumer Recycled) 소재의 생산 및 판매를 100만 t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 청사진에 따라 화학BU는 지난해부터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을 필두로 ‘플라스틱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내에서 페트(PET)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회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플라스틱 환경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제성 있는 친환경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나섰다. 2024년까지 약 1000억 원을 투자해 버려진 PET를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C-rPET(Chemical-recycle PET) 공장을 울산에 신설하고 연간 약 11만 t 규모로 생산하기로 한 것도 이런 대응의 일환이다.

그런데 회사가 당면한 현실적인 난관은 자원 선순환이 소재를 생산하는 단일 기업의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플라스틱의 ‘수거→원료 생산→가공→제품 출시’의 고리가 완성되려면 폐PET의 회수부터 완제품 시판까지 일사불란하게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순환 생태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롯데케미칼은 기업 차원의 노력을 넘어 플라스틱 생태계 내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하는 새로운 실험을 기획했다. ESG를 오픈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접근해보기로 한 것이다. 폐플라스틱 자원화를 위해 현재 여러 기술 기반 벤처 및 중소•중견기업들이 산발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대기업 자본 없이는 단계별 병목을 해소하고 여러 구슬을 하나로 꿰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한 전략이었다.

이렇게 롯데케미칼이 대기업과 스타트업, 나아가 기업과 지자체 및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자처하면서 출범시킨 프로젝트가 바로 ‘프로젝트 루프(Project LOOP)’다. 사회적 가치 투자사 ‘임팩트스퀘어’ 등 8개 업체와 손잡고 롯데케미칼이 주관한 이 프로젝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AI 자원 회수 로봇을 개발하는 ‘수퍼빈’이 폐PET를 수거하면 ‘금호섬유공업’에서 이를 잘게 부숴 플라스틱 플레이크 1 등 원료로 가공하고,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원사와 원단을 만들어 ‘LAR’ ‘비욘드’ ‘리벨롭’ 등 업체들과 함께 가방이나 운동화, 파우치 등의 제품으로 완성한다. 자원이 버려지지 않고 계속 순환하는 ‘닫힌 고리(closed loop)’를 완성하는 게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다.

이처럼 롯데케미칼이 유망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폐플라스틱 선순환 체계 구축에 뛰어든 배경에는 롯데그룹 화학 계열의 ESG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교현 사장(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 및 롯데그룹 화학BU장)의 리더십이 있다. DBR가 1984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약 36년간 롯데그룹 석유화학 분야에 몸담아온 김 사장을 만나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과 플라스틱 순환을 회사의 주력 목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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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롯데케미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는?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유가치 창출(CSV) 사업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과제다. 사실 석유화학 기업은 주력 사업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환경문제에 어느 기업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PET의 경우 플라스틱 폐기물 중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내 최대 PET 생산자로서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가지고 있었다. 다만 PET는 안전하고 저렴해 식품포장재나 섬유로 일상생활에서 쓰임새가 많고 이를 유리, 병, 나무 등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환경비용이 약 3.8배 증가할 수 있다. 이에 우리는 플라스틱의 사용을 무조건 퇴출하는 것보다는 환경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폐PET를 원료로 가공하는 신기술을 상업화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하고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답이라고 봤다.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을 확보해야 하겠지만 플라스틱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선형경제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순환경제로 패러다임이 옮겨가기 전까지는 단기적으로 대기업이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일단은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재활용 플라스틱에 대한 시장 규모가 확대돼야 결국엔 공급 가격도 하락하고 경제성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같은 양의 플라스틱 원료로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플라스틱 경량화, 바이오 플라스틱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R&D), 그리고 플라스틱의 수거와 재사용 문화 정착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 루프를 핵심 과제로 삼고, 이에 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플라스틱 선순환 체계 구축을 위해 기업 경계를 뛰어넘어 여러 이해관계자가 관여하는 프로젝트 루프를 기획한 배경은?

약 10년 전인 2011년대 초부터 쓰레기 이슈를 풀기 위해 폐플라스틱을 회수해서 재사용하려는 노력을 해봤지만 자체적으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별 기업이 플라스틱을 일일이 수거하고 선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태계 안에 있는 다른 기업들을 만나 보니 이 시장은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정글 같은 곳이었다. 누구는 플라스틱의 분리수거에 힘쓰고, 누구는 재활용 원료나 제품을 만드는 데 힘쓰는 등 모든 플레이어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방법을 모색해 왔을 뿐 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부족했다. 더욱이 가치사슬의 각 단계를 중소기업이 맡고 있다 보니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재활용 방안에 소각과 매립도 있지만 결국은 상품성이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시켜야 하는데 회수나 제품화에까지 진입하면 시장을 침범하는 것처럼 비쳤다. 이에 기존 플레이어들과의 이해관계 상충을 피하고자 ‘동반 성장 모델’을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태계의 파이를 키우려면 소비자들한테 팔 만한 고부가가치 제품이 많아져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에 우리의 재활용 PET를 가지고 양질의 가방, 신발 등으로 탈바꿈시켜줄 중소기업들과 협업해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프로젝트 루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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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벤처들과의 협업을 통해 어떤 시너지를 기대했고, 실제로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나?

영세한 벤처들의 경우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완제품을 누군가 사줘야 매출이 발생하는데 아직은 제품 가격이 비싸고 광고나 마케팅에 쓸 자금력이 부족해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 또 국내에는 재활용 PET를 식음료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등 제약이 많다 보니 수출 시 인증 과정 등이 녹록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롯데케미칼이 제품을 구매해주거나 롯데 이름으로 품질을 관리하고 보증하는 것이 이런 업체들의 기술력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결국, 친환경 제품의 수요를 견인하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낮은 가격, 좋은 품질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래야 홍보를 통해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유도할 수 있다.

다만 경제성을 논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처음부터 계산기를 두들기는 순간 아무 일도 못 하고 움츠러들게 되기 때문에 일단은 수익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프로젝트 루프를 영업 조직이 아닌 사회공헌팀에서 수행하는 까닭도 일정 기간은 조건 없는 투자와 육성, 인큐베이팅의 기간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퍼빈의 폐플라스틱 용기 수거 로봇 ‘네프론’의 경우 기기 자체가 비싼데 롯데케미칼이 구매해 롯데마트, 롯데월드몰 곳곳에 설치해주고 있다. 또 수퍼빈이 깨끗한 PET를 수거해 정제해봤자 재활용 업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더러운 PET와 섞이면 기껏 공들인 수거 노력의 의미가 사라진다. 따라서 깨끗한 PET만 재활용하는 사용처 발굴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롯데액셀러레이터를 통해서도 일부 시드 투자를 하는 등 플라스틱 순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국내 플라스틱 순환 가치사슬의 병목은 무엇인가?

국내 플라스틱 순환 가치사슬의 가장 큰 병목은 폐플라스틱 가공과 제품 출시에 있다고 본다. 롯데케미칼이 폐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 등 경제성 있는 가공 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PET를 수거한다 해도 이를 시멘트사 열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한다든지 플라스틱 조각이나 가루로 분쇄해 물리적으로 재활용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됐다. 물론 물리적 재활용도 유용한 방식이긴 하지만 기존 제품의 색상이나 흔적이 남고 여러 번 재생하면 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체 폐PET 수거량의 10%에 불과한 고급 플레이크만 원료화할 수 있어 수급에 한계가 있고 품질 저하로 인해 5회 이상 지속 순환이 어렵다. 또한 기존 용기에 화학물질이나 독성이 있는 용액을 담아놓았을 수도 있고 변색이나 미세 이물질로 인해 위생이나 건강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다. 아직 한국에서 물리적 재활용을 한 플라스틱을 식음료 용기에 쓰지 못하게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반해 폐플라스틱을 융해해 다시 순수한 원료로 되돌리는 화학적 재활용은 이런 걱정이 없다. 거의 전량의 폐PET를 원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활용되기 이전의 버진(virgin) PET와 품질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상당한 자본과 기술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봤고, 울산공장을 그린팩토리로 전환해 이 화학적 재활용 라인을 신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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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재활용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다른 석유화학 기업들과 달리 롯데케미칼이 이 프로젝트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화학적 재활용 사업은 기술 난이도가 상당하고,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PET 생산 공장을 가동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재활용 공정이 virgin PET 생산 공정과 유사하고, 소재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물성 등을 잘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점을 차치하더라도 PET 생산 기술 없이 재활용 사업만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또한 아예 새로 공장을 신설할 때보다 기존 PET 생산 공장을 재활용 라인으로 전환할 때 투자비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 똑같은 기술력을 보유했더라도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C-rPET 생산을 위해 기존 PET 공장을 개조한 울산공장에서는 2024년부터 11만 t을 우선적으로 생산하고 장기적으로 40만 t까지도 늘려나갈 계획인데, 이는 기존 공장을 전환한 것이라 투자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PET 생산 역량과 시장점유율을 국내 최고 수준으로 높일 수 있었고 비교 우위 또한 확보할 수 있었다.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생산한다고 해도 수요가 따라와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텐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전 세계적으로 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소비재 기업들도 지속가능한 재활용 소재의 사용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다. 국내뿐만 아니라 유니레버, 코카콜라 등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2025년까지 리사이클 섬유나 포장재의 비중을 전체 제품의 30% 혹은 50%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구글이나 애플 등 전자업체들도 납품사를 상대로 친환경 플라스틱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환경문제에 대한 시민 의식이 개선되고 있는 만큼 재활용 소재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의 플라스틱 관련 정책도 2030년까지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일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국내 PET병용 플라스틱 수요가 2020년 기준 40만 t 정도인데 의무 사용 비율 30%를 적용하면 약 12만 t 정도는 재활용 PET 수요가 생기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변화로 미뤄볼 때 시기의 문제일 뿐 제조비용이 낮아지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는 시점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지속가능한 원료를 적용한 상품 개발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국내 및 글로벌 캡티브 유저(captive user)2 들과 협업을 추진하는 한편 각 고객사에 맞춤화된 원료 제공을 통해 단기간 내 상품화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국내외 친환경 관련 인증에 대한 정보 제공 등 업체 요청에도 최대한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넘어 장기적으로 경제적 가치로도 연결될 수 있을까?

물론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 시장이 유망하다고 해서 기술이 100% 검증된 것도 아니고, 규모가 충분히 커지지 않으면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점에서 리스크는 존재한다. 하지만 사업성이 충분히 입증되고 기술적으로도 완성돼 있다면 모든 기업이 진즉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경쟁사들도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고, 앞으로의 기회를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리스크다.

약 10년 전 2011년 여수 공장에 사탕수수 등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바이오 PET 생산 시설을 구축할 때도 이런 고민은 있었다. 당시 바이오 PET 수요가 일본의 산토리 등 생수 업체를 중심으로 늘고 있었고, 이 같은 수요가 국내로 이전될 것이라 생각해 선제적으로 투자를 감행했다. 2017년 판매량이 약 6495t, 2020년 8941t으로 경제적 효과가 별로 크지 않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라인을 계속 유지했다. 그러다 최근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올해 판매량이 1만2000t 규모까지 늘었고 뒤늦게 수요가 뒷받침되자 가격도 virgin PET 대비 1MT당 500∼800달러 차이 정도로 내려왔다. 2030년이면 여수 공장에서 약 7만 t까지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SPC가 파리바게트 샌드위치나 파스쿠치 커피 등 용기에 이 바이오 PET 포장재를 적용하기로 하는 등 규제 당국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기업들이 분명히 늘고 있다. 바이오 PET로 포장을 했을 때 친환경 마크를 붙여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이렇듯 변화의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위험은 있더라도 수요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고, 원가 상승분 정도의 가격 상승은 시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선제적으로 투자해야만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재활용 소재 생산을 위한 폐플라스틱 원료를 공급받는 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양이 세계 1∼3위를 다툴 정도로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그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에 수거 시스템만 잘 구축하면 폐플라스틱 수급에 큰 어려움은 없을 전망이다. 또한 기계적 재활용의 경우 A급의 PET 플레이크처럼 높은 등급의 플라스틱을 원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수입에도 의존하지만 화학적 재활용의 경우 상대적으로 오염도가 높은 B, C급의 폐플라스틱까지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산화가 가능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가용 원료의 폭이 넓어지면서 원료 공급의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PET, PE, PP처럼 포장재에 쓰이는 생활계 플라스틱과 달리 ABS, PC 등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재생 원료 공급량 부족이 친환경 소재 생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말한 생활계 플라스틱은 국내 발생량이 상당한 데 반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국내에서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재생 원료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2년부터는 전체 폐플라스틱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라 재생 원료 공급이 더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기업의 소재 문의나 샘플 요청은 이어지는데 폐플라스틱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면 가격이 계속 고가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다.

성남시 등 지역 클러스터와도 협업하고 있는데 지자체와 손을 잡는 이유는 무엇인가?

플라스틱 순환경제 체계가 정착하려면 사용한 플라스틱을 깨끗한 상태로 잘 버리고, 잘 모아서, 제품화로 이어져야 하는데 이 체계의 앞단, 즉 ‘사용-배출-수거’는 모두 지역사회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수거기를 곳곳에 비치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역 클러스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독일에서는 사용된 PET의 약 90%가 회수된다고 한다. 이 역시 어딜 가나 PET 수거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수 등 음료 가격에 공병의 가격이 포함돼 있고, 공병을 수거기에 넣으면 포인트로 보상받는 시스템에 따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회수에 동참한다. 세척이나 멸균 등 수거 시스템의 위생에 대한 신뢰도 두텁다. 예를 들어 기계적 재활용의 경우 불순물 처리를 잘해도 이물질이 보이거나 흔적이 남을 수가 있는데 위생상에 문제가 없더라도 쓰던 제품처럼 느껴지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깨끗한 포장재를 더 선호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이 순환 프로세스를 믿기 때문에 재활용 병을 기꺼이 구매한다. 솔직히 다들 내가 무엇을 버렸는지 알지 않나. 남이 깨끗하게 플라스틱을 배출할 것이라는 신뢰가 생기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이렇게 시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문화를 바꾸는 일은 일개 기업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지자체나 환경부 등과 협업해 리사이클 유인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우리도 프로젝트 루프를 통해 성남시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자원 순환 협약을 맺고 재활용 시스템의 고효율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나갈 예정이다.

ESG 경영 전략을 수립할 때 벤치마킹하는 글로벌 석유화학 회사는 어디인가?

벤치마킹하는 회사로는 대만의 원동(파이스턴)사가 있다. 앞서 독일 사례도 언급했지만 대만 역시 PET 회수율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시스템에 힘입어 파이스턴은 섬유 회사에서 출발했다는 강점을 살려 수거된 PET를 재활용해 의류를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자라,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를 상대로도 높은 가격에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한 원사를 판매한다. 이처럼 해외 유명 기업들이 ESG 경영의 일환으로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의 원사를 일정 비율 활용하기 때문에 이런 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파이스턴의 사례는 리사이클 시장을 선도하는 데 있어 섬유회사와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프로젝트 루프에 금호섬유공업이나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참여한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로 폴리에스테르의 원료가 거의 다 PET이기 때문에 전체 PET 수요에서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재활용 PET의 수요를 발굴하고 제품군을 다각화하면서 궁극적으로 2030년까지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연 100만 t까지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정도가 돼야 규모의 경제도 달성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위해 이해관계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바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과제를 꼽자면 첫 번째는 규제고, 두 번째는 가격이다. 석유화학 기업으로서 재생 소재를 계속해서 개발하고 점진적으로 생산 단가를 낮춰가겠지만 일반 플라스틱과 재활용 플라스틱의 가격 차(gap)를 완전히 없애긴 어려울 것이다. 바이오 PET를 7만 t 생산할 여력이 있는데도 여전히 롯데케미칼이 1만여 t만 생산하는 이유도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다. 가격 경쟁력이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재활용 이전의 virgin PET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기계적 재활용을 한 PET와 바이오 PET의 가격은 약 130∼140 수준이고 화학적 재활용을 한 PET는 250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 2.5배 비싼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소재를 만드는 기업이 기술을 고도화해 250을 130 정도까지 낮추면 나머지 30 정도는 소비재 기업이나 시민들이 공동 부담해야 한다.

커피 일회용 컵을 재활용 PET로 만들었을 때 이 가격 차이를 플라스틱을 만드는 사람이 다 부담할 수도,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다 부담할 수도, 소비자가 다 부담할 수도 없다. 공짜로 버린 것을 더 비싸게 사야 한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인식 개선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도 재활용 플라스틱에 대한 친환경 인증을 강화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고, 이렇게 되면 지속가능한 플라스틱을 널리 사용하게 되는 꿈은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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