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의 파고 앞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이다. 매출과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충분한 운전 자본을 확보하고 현금 흐름에 초점을 맞춰 경영 전략을 짜야 한다.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는 불황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지키는 비즈니스 구조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환원이 강조되는 시기지만 중장기 투자를 위해 현금 유보가 불가피하다면 확실한 로드맵을 세워 주주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게 강 대표의 생각이다. 투자 혹한기를 맞은 스타트업 업계엔 열정과 비전, 성장 스토리보다 생존이 가능한 비즈니스 구조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금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는 매출 성장은 신기루와도 같습니다.”
‘비상경영’의 시대다. 대기업부터 중견·중소기업,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이 경기 침체와 거시경제 불확실성의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1
5월 전망치는 85.0을 기록하며 2022년 4월 이후 3년 2개월 연속 기준선(100) 이하를 기록했다. 4월 BSI 실적치는 86.4로 3년 3개월 기준선을 밑돌았다. 실적 부진 장기화 속에 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현금흐름표’ 전도사를 자처하는 강대준 인사이트파트너스 대표는 이런 때일수록 충분한 운전 자본
2
을 확보하고 현금 흐름에 초점을 맞춰 경영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가 침체하고 투자시장이 위축한 시기엔 현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이익이 나고 있어도 경영이 급격히 어려워지는 ‘흑자도산’ 위기까지 맞을 수 있다”며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현금흐름표를 중심에 놓는 경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출과 이익에 집착하다 현금 흐름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고금리 단기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국 기업의 존립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돈을 먼저 받는 구조를 설계하고 판매와 매입 등 과정의 현금 흐름을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맥락에서 강 대표는 투자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스타트업 업계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성장 스토리’나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 같은 키워드 중심의 사업으로는 투자 유치를 할 수 없다”며 “스타트업 역시 실질적인 현금 창출 능력이 검증돼야 성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 성장 잠재력을 실제 숫자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강 대표는 어려운 회계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쉽게 전달하는 강연자로 잘 알려져 있다. 회계가 소수 담당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경영자가 이해하고 말해야 할 필수 언어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강 대표는 삼일회계법인 출신 회계사로 2015년 경영컨설팅 스타트업 인사이트파트너스를 세웠다. 대기업과 유니콘 기업 등에 회계·재무에서 전반적인 경영 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과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퍼시스 사외이사, 대상홀딩스 비즈니스 전략 고문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미래 유니콘 기업을 꿈꾸는 신생 스타트업들에 조언하고 투자하는 든든한 조력자이며 『지금 당장 회계공부 시작하라』 『C의 유전자』 등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C의 유전자』는 중간관리자가 사라지는 시대에 대체할 수 없는 의사결정자로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많은 이의 공감을 받았다.
불황기에 필요한 것은 실제로 현금을 만들고 지키는 비즈니스 구조를 세우는 것이라고 강 대표는 강조한다. DBR이 강 대표를 만나 불확실성의 시기를 극복할 경영 전략, 스타트업 업계에 필요한 변화, C레벨 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 상반기 주주총회 시즌이 끝났다.지난해에 비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나?지난해만 해도 매출은 올랐지만 이익이 줄었다는 표현이 더 많이 나왔다. 기업들이 열심히 활동하면서 매출은 끌어올렸지만 투입하는 원가가 더 커지면서 수익성이 악화하는 수준이었다. 달리 말하면 열심히 뛴 기업들은 여전히 매출과 수익을 챙겨가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 발표된 지난해 결산을 보면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무너진 경우가 확연히 늘었다. 특정 업종 몇 곳을 빼곤 대부분 마이너스다. 그 와중에 국내에선 정치적 변동성, 대외적으론 거시 변동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커졌다. 소비 심리는 물론 투자와 고용도 모두 위축됐다.
눈에 띄는 분위기가 있었다면?온도차가 느껴진다. 창업자나 오너 경영자들은 기민하게 움직이려고 한다. 위기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선제 대응을 위해서 고심하고 있다. 반면 전문경영인이나 직원들의 경우 다소 상황에 맞춰 따라가려는 경향이 보인다. 양쪽의 민감도가 다른 것 같다. 주주 구성으로 보면 지배주주가 있는 회사들이 오히려 변동성에 선제 대응을 하는 것 같다. 반면 사모펀드(PE) 등을 중심으로 주주가 구성된 회사들은 다소 모럴해저드 조짐이 보인다. 극단적인 사례가 홈플러스 같은 경우이고 일부 벤처캐피털(VC)의 경우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면피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경영환경이 안 좋아서 실적이 안 좋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어려워서 투자도 회수도 못한다는 건데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기관투자자(LP)나 거래처 구성원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주주환원 이야기도 나온다. 요즘 상장사 이사회를 가보면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투자를 준비하겠다. 그런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주주환원 정책도 동시에 하겠다’고 한다. 상충되는 말이다. 성장하려면 배당이나 분배를 줄여야 하는데 동시에 주주환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주주환원을 이야기하니 조금이라도 호응하려다 보니 나타나는 모습이다. 정작 배당을 하려고 해도 전년 대비 매출이나 이익은 다 줄었다. 갈팡질팡하면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주환원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가 아니라는 의미인가?노선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생존을 위협받는 회사가 있을 것이고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시장 환경이 있다. 이럴 때 돈을 써버리면 정작 나중에 투자를 꼭 해야 할 때 못할 수 있다. 그럼 솔직하게 주주환원을 할 여력이 없다고 주주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참석하는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선 이런 이야기를 꼭 한다. 투자로 가닥을 잡았다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투자 계획을 확실하게 발표해 주주들에게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이다. 신호를 주지 않으면 주주들은 당연히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같은 주주환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또 주주환원을 하기로 했다면 정확하게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할 건지를 말해야 한다. 그 중간에서 어설프게 ‘미래에 우리가 이 돈을 운전자본으로도 써야 하고 투자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정부 눈치 보면서 주주환원도 할 겁니다’라는 식으로 엉거주춤하게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이중적인 이야기를 정말 많은 기업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해왔다. 기업이 상당한 자금을 유보하려고 한다면 오해받지 않기 위해 확실하게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거나 자사주를 소각하든 배당을 주든 분명하게 배분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신호를 잘 못 준다. 대표적으로 최근 논란이 됐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문제를 들 수 있다. 주주들은 이 정도 기업 규모와 사업성이라면 자금 조달을 위해 대출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주들의 이익이 희석되는 유상증자의 형태를 택했다. 유상증자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유상증자를 통해 오히려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가치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특히 이 회사의 경우 인수합병(M&A)을 통해 계속 덩치를 키워야 하는 곳이다 보니 유상증자를 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이런 결정을 제대로 설명하는 스피커가 없었다. 그러다 언론을 통해 ‘기습적인 유상증자’로 보도되기 시작했다. 신호를 잘못 주면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신호를 제대로 주는 사례가 있을까?예를 들어 애플은 잉여 현금이 생기면 대부분 자사주를 매입해서 소각해 버린다. 매년 100조 원 이상을 투입해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주당 당기순이익을 늘린다. 시장에선 이런 애플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신뢰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을 거의 안 하거나 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에서 일회성으로 한다. 무턱대고 자사주 소각을 하라는 게 아니라 기업이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신호를 보내면서 주주를 동등한 파트너로 보고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성장 기조와 경제 여건 악화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기업이 늘었다.이럴 때일수록 현금 흐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손익계산서 위주의 사고방식 역시 현금흐름표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손익계산서상의 매출은 늘었는데 투자가 더 많이 늘어난 회사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매출이 늘었다는 부분을 강조하지만 선투자가 과도하기 때문에 경영을 잘했다고 보기 어렵다. 매출이 늘어도 현금이 회수가 안 되거나 재고를 쌓아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운전자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현금 흐름 영역을 신경 써야 하는데 모두 손익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이 부분을 간과한다. 그래서 현금 흐름 위주로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이런 위기 상황에선 비용도 잘 봐야 한다. 단순한 일회성 비용과 투자 개념 비용을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화장품 브랜드 회사에서 영업을 위해 마케팅 비용을 일회성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의 무형 자산을 쌓아가는 비용도 있다. 장기적으로 이런 비용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겨야 한다. 손익 위주로만 보면 연구개발비 같은 장기적 무형 자산을 쌓는 비용을 줄이게 되는데 이 경우 손익이 개선됐다고 해서 좋아할 것은 아니다. 비용 통제 과정에서 장기적인 무형 자산이 약화하기 때문이다.
회계를 바라보는 눈을 현금 흐름 위주로 바꿔야 한다. 운전자본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이런 걸 잘하는 회사들이 유대인들이 경영하는 곳이다. 유대인들은 언제 자리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늘 돈을 보전받는 비즈니스를 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광고를 하려면 미리 일정 금액을 결제해서 충전해놓고 써야 한다. 광고비를 먼저 받아놓고 시작하는 구조다.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매출 중심인데?외형 성장에 집착하는 경영자들이 있다. 매출에 집중하고, 그래서 거래부터 트고 보자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 하지만 현금 흐름 측면에선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매출이 줄고 이익이 줄어도 현금만 잘 돌면 기업은 잘 운영된다. 지금 같은 불황기엔 영업이익보다도 현금 흐름이 중요하다. 현금 회수가 계속 늦어지면 장부상 흑자가 나도 도산하는 경우가 생긴다. 운전자본에 주목해야 한다. 운전자본 관리가 안 되면 당장 현금이 없으니까 고금리 단기 대출을 받아야 하고, 이후 현금 흐름은 더 악화하는 악순환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또 매출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매출에 집중하겠다는 자세의 전제가 되는 가정이 매출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어느 정도 마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건데 거꾸로 접근해야 한다. 돈을 빨리 들어오게끔 만들면 자연스럽게 이익이 생기고 여기에 따른 매출이 생긴다는 관점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한 e커머스 업체를 보자. 매출이 늘어나면서 비용이 같이 늘고, 이익은 더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매출이 늘어날수록 손실이 커지는 것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투자가 이걸 메꿔줬다. 하지만 시장이 안 좋으니까 곧바로 힘들어진다. 구조적으로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 투자시장이 활황이었을 때는 현금이 아니라 키워드가 가치 판단의 척도였다. 인공지능(AI)이나 블록체인 같은 키워드가 붙어 있으면 자연히 투자가 붙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사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여기서 출발해 얼마나 사업을 고도화하느냐가 성공 여부를 가른다.
어떻게 해야 현금 흐름 중심으로 경영을 할 수 있는가?비즈니스 모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래처와 B2B 거래를 하든 B2C 거래를 하든, 한 번쯤은 돈을 먼저 받게끔 설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입과 판매를 하는 업종이라면 매입 과정에선 가격을 올려주더라도 정산 시기를 조금 늦추고 판매 과정에선 곧바로 돈을 받는 식으로 구조를 짤 수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회사에 현금이 쌓이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대표 기업은 다 이렇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도 사전에 돈을 결제하게 한 뒤 클라우드나 오피스 서비스를 쓸 수 있게 해준다. 돈을 먼저 받는 구독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계약상으로 먼저 결제를 해주면 조금 더 유리한 혜택을 제공하는 정책을 쓴다는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다. 이런 시도 자체가 운전자본을 관리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비즈니스 설계에 이 관점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 영업 방식을 초반에 설계하지 못하고 매출만 추구할 경우 거래가 늘어날수록 현금 흐름이 흔들리는 ‘지는 게임’을 하게 된다. 갑을관계 때문에 어렵다고 할 수 있는데 갑을관계를 떠나서 이런 설계를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사업을 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나중에 결국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가 돈을 먼저 받고 서비스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하지만 먼저 돈을 지불하면 걸맞은 서비스를 해주겠다는 일종의 자신감이 필요하다.
쿠팡의 사례가 전형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잘 만든 케이스다. 쿠팡은 1300만 명의 회원에게 월 회비를 먼저 받는다. 재고가 쌓일 만한 품목을 직매입하지 않고, 매입하더라도 거래처에 정산을 늦게 해준다.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생기지만 어쨌든 강력한 유통 채널이 된 시점에서 돈을 먼저 받는 구조, 현금 흐름이 좋을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공고하게 구축했다. 계속 이기는 게임을 하는 셈이다. 쿠팡은 초창기부터 그랬다. ‘계획된 적자’라는 말을 모두 믿지 않았지만 실제로 현금 흐름을 살펴보면 그 말이 맞는 얘기였다. 손익계산서는 해마다 마이너스였지만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 흐름은 플러스가 나왔다. 운전자본 관리를 이미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똑같은 흐름을 보인 회사가 아마존이다. 아마존이 1997년 상장을 하고 2010년대까지 10년 넘게 적자였다. 그러나 현금 흐름은 플러스였다.
많은 스타트업의 멘토로 조언을 하고 있다.벤처 창업의 흐름 변화는 어떤가?‘투자의 저주’를 겪는 스타트업이 상당하다. 투자금을 많이 받아 고정 설비를 많이 늘린 기업들의 이야기다. 스타트업들은 대개 고정비의 무서움을 모른다. 대규모 투자를 했는데 시장은 열리지 않고 자본 후속 투자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고정비 때문에 급속도로 경영이 어려워진다. 대기업은 설비 투자와 여기서 나오는 고정비 리스크를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다. 보유 자금과 부채를 조정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시장 상황이 좋아졌을 때 치고 나가는 방법 말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경우 고정비를 늘려 놓았다가 적자 구조에 깔려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원가 구조를 관리하는 노하우가 없다 보니 힘든 상황을 자초하는 측면이 있다.
성장 스토리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도 달라진 시장 분위기다. 예전엔 모름지기 스타트업이라면 기발한 발상으로 실험하고 고난과 역경을 열정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젠 다 필요 없다. 생존하는 능력, 나아가 생존이 가능한 비즈니스 구조를 갖춘 회사가 중요해졌다. 스타트업도 결국 영세 자영업이다. 스스로 영업하고 생존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은 남의 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온실 속 화초로 자라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이제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투자를 안 받아도 되는 스타트업’뿐이다. 요즘도 IR을 하러 다니는 스타트업 대표들 가운데 옛날처럼 열정과 성장 스토리, 좋은 팀원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100전 100패다. 근본적인 사업적 매력이 없다면 누구도 투자하지 않는다.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분위기가 너무 침체되는 건 아닐까?공감은 가는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타트업 대표들이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가능하면 자기 자금으로 사업을 끌고 가다가 투자를 받는 정도는 돼야 한다. 처음부터 자기 자본 부담 없이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안일한 면이 있다. 남의 돈을 가져와서 사업을 하면 부담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자신의 젊음을 투자했다거나 자기 노력과 열정을 투자했다는 식의 대답이 나오는데 그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자기 회사에 스스로가 금전적 투자를 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이 관점에서 기업공개(IPO) 역시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 투자를 받고 IPO를 한다는 건 재무활동 측면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행위다. 그럼 이 돈을 가지고 내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겠다는 걸 정확하게 말해줘야 한다. 나아가 투자 계획에서 끝나면 안 되고 투자를 통해 어떤 현금 흐름을 창출하겠다는 청사진 수준의 정교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정말 많은 기업이 투자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를 홍보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어디에 투자를 했다는 사실 또한 자랑할 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투자를 통해 현금 흐름을 창출했을 때 비로소 외부에 알릴 만한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본코리아 같은 회사는 상장이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잘 알려진 스타 CEO는 있지만 회사의 업 자체가 여러 이해관계자가 함께 얽힌 프랜차이즈다. 이 중 누구를 위한 IPO인지, 상장 자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인지가 안 된다. IPO 이후 햄이나 라면을 출시했는데 그럼 CJ나 농심과 경쟁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가. 딱 부러진 비즈니스 모델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결국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IPO가 그저 자금 조달 수단에서 끝나면 안 된다.
겨울을 지났을 때 스타트업 업계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IR만 잘해서 기업 밸류만 높이고 엑시트를 노리는 이른바 ‘밸류충(value+蟲)’들이 없어져야 한다. 이들을 이용하는 VC나 심사역들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잘 돌아가는 방법이 아니라 다음 자본이 들어오기 좋게 포장해주는 것만 도와주는 투자회사들이 있다. 회사는 망가지고 있는데 밸류 포장은 잘된다. 창업자도 구주를 팔아 돈을 벌다가 회사를 비싼 값에 넘기고 떠난다. 그리고 회사는 망한다. 시장이 위축하면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분명히 투자시장이 좋아지면 이런 밸류충은 또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걸 이용하는 VC나 액셀러레이터도 나올 것이다. 경계심을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회계의 벽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은 뭘까?초기 창업자들이 회계를 정말 모른다. 처음부터 알기 어려운 건 당연한데 문제는 경영 과정에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굉장히 젊은 스타트업 대표가 법인세를 내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느냐고 묻더라. 스타트업은 이미 법인세 50% 감면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다. 이 와중에 일정 수준 이상의 법인세를 낸다는 건 그만큼 회사가 의미 있는 매출을 내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부심을 갖고 당연히 기뻐하면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20~30대 젊은 창업자가 처음부터 세금 아낄 궁리만 한다. 세금 내는 걸 조금 줄인다고 해서 그 스타트업에 어떤 가치가 창출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유니콘기업의 창업자 두 분을 자문하고 있는데 이들은 세금 내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분납으로 부담을 덜자고 해도 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세금을 너무 많이 냈다가 환급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나중에 추징을 당한 경우도 없고 세무조사를 해도 당당하게 임한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성공한다. 세금에 집중한다는 얘기 자체가 회계를 세무 관점에서 본다는 뜻이다. 관리회계를 해야 한다. 현금 흐름, 운전자본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나타내는 지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보통 창업 초기에 회계 전문가가 합류하는 경우는 적고 나중엔 잘못된 조언을 받아 세무 관점의 회계 마인드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절세 같은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심지어 법인을 설립할 때 납입 자본금을 넣지 않아 큰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봤다. 창업 초기 회사 통장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는 발기인이 자본금이 있다는 사실을 개인 통장으로 증명한다. 그런데 이 돈을 나중에 회사 통장에 제대로 넣지 않는다. 법인을 설립할 때만 돈을 넣어뒀다가 나중에 빼도 된다는 식의 잘못된 조언을 들은 결과다. 회사가 정식 투자를 받는 시점이 돼서야 부랴부랴 넣는데 가장 납입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회삿돈을 무단으로 가져간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세제 혜택을 위해 기업 부설 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업 초기 세금도 거의 안 내는 상황에서 감면 혜택을 보겠다고 회의실 하나를 비워 직원들 이름 올려두고 부설 연구소를 만드는 식이다. 그렇게 해놓고 나중에 실체가 없는 게 들통나서 추징을 당하는 등의 문제를 겪는다.
회계 조력자를 찾는 것이 필요하겠다.전문가에게 회계 조력을 받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창업자 본인이 직접 재무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 모델을 만들다 보면 그 기업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이 과정을 외부에만 맡겨놓아선 안 된다. 직접 엑셀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 적극 동참하면서 숫자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 만큼 자기 기업에 대해 제대로 알아놔야 한다는 얘기다. 장수 기업의 CEO들이 실제로 그렇다. 머릿속에 숫자가 완전히 탑재돼 있다. 회계는 몰라도 현금 흐름은 기막히게 포착한다. 그런데 거꾸로 젊은 창업자들은 이런 현금 흐름을 얘기하면 구시대적이고 위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주주 구성을 모르는 창업자도 많다. 본인 지분이 현재 몇 %인지만 알고 우리 회사의 투자자별 지분 구성은 모르는 것이다. 이건 경영자로서 어떤 이해관계자에게 집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
『C의 유전자』란 책을 쓴 취지는 무엇인가?이제 승진이 없는 시대가 온다. 직급이 파괴되고 있고 많은 것이 AI(인공지능)에 이미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C레벨로 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직급이 사라지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업의 구성원을 크게 의사결정자와 오퍼레이터로 나눈다면 대체할 수 없는 건 전자다.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C레벨이 돼야 한다. C레벨은 임원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임원은 직장 생활을 잘하는 분들도 올라설 수 있는 자리다. 30년 한 회사에 근무한 ‘오너의 오른팔’ 같은 사람이 예전엔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젠 스스로 의사결정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도 이런 C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시대다. 일례로 직급을 파괴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데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업의 목표는 가치 창출과 성장이다. 직급을 없애는 것 또한 이 목표 달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직장 생활 20년은 지나야 의사결정자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다면 이젠 2~3년 차라도 능력만 있다면 올라간다. HR 전략 핵심도 이런 C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C의 유전자는 MBTI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역량을 능동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더 진하고 분명해진다. 의사결정자로 올라설 길이 없는 회사라면 이직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한 카드다. 이를테면 자신이 디자이너인데 우리 회사에 최고디자인책임자가 없다면 어떨까. 아무리 노력해도 디자인팀의 팀장에서 커리어가 끝나게 된다. 이런 회사는 적어도 나의 미래는 없는 회사다. 그럼 의사결정자로 올라갈 길이 있는 회사로 과감하게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이직 면접 과정에서도 물어볼 질문은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가 돼야 한다. 연봉이 얼마인지가 아니다.
C레벨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C레벨의 DNA를 몸에 새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C레벨에게 몇 가지 공통적인 유전자가 있다. 첫 번째 유전자는 메타인지다. 자기 자신을 제3자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 자신이 캐치한 내용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지 않고 여러 조언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확인을 한다. 그리고 본인 생각이 틀렸을 때 자기합리화를 하지 않고 빠르게 받아들인다. 두 번째 유전자는 탐구심이다. C레벨들은 자기 생각을 잘 이어간다. 질문도 단편적으로 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질문을 한다. 이런 연쇄적인 생각은 탐구심이 굉장히 강해야 가능하다. 궁금한 것이 많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는 것이다.
셋째는 평판 관리다. 주니어 시기부터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영역이다. 핵심은 기버(giver)가 되는 것이다. 받는 게 익숙한 테이커(taker)가 아니라 주는 게 익숙한 기버가 더 성장한다. 내 것만 챙기려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평판 문제로 발목을 잡힌다. 물론 그저 남 좋은 일만 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얘긴 아니다. 내가 기꺼이 베풂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넷째는 협상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C레벨은 끊임없이 협상을 해야 하는 자리다.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선 대안을 잘 챙겨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과 내가 우선하는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다양한 제안으로 양자가 원하는 최상의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Copyright Ⓒ 동아비즈니스리뷰.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