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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돈의 사회학

가상 화폐는 사다리인가, ‘사다리게임’인가

김수경 | 357호 (2022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가상 화폐의 큰 변동성과 자신의 운에 기대를 걸고 너도나도 코인 판에 뛰어든다. 특히 한국 청년에게 가상 화폐 투자는 유일한 계층 상승 도구로 여겨진다. 집값은 치솟는데 노동이라는 적법한 수단으로는 계층의 사다리를 타기가 불가능해지자 가상 화폐가 마지막 희망이 된 것이다. 이는 물질적 성공을 바라지만 이를 달성할 합법적 수단이 없어 아노미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학 교수라는 직업상 늘 청년들을 만난다. 청년 문제가 워낙 화두이다 보니 수업 시간에 기회가 될 때마다 묻는다. “요즘 청년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고민이 뭐예요?” 청춘이니까 아무래도 이성 교제 아닐까? 아니지, 요즘은 일자리가 부족하니 취업이 가장 큰 고민일 거야….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집’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집을 살 수 없게 돼 버린 게 제일 큰 고민이라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여러분은 아직 집 살 걱정을 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요?” 학생들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가 돈을 벌 때 즈음이면 구입할 수 있는 집이 다 없어질 것 같아요.”

‘라떼는’ 그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돈이 조금 모이면 결혼을 하고 전셋집을 얻어 살다가, 아이가 커가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은행에 빚을 내서 작은 집 한 칸을 마련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집값이 폭등하면서 내 집 장만의 꿈은 영원히 멀어졌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99㎡(약 30평) 기준 3억4000만 원이었던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올해 5월 12억8000만 원으로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노동자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36년간 숨만 쉬고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정부는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을 막았고, 결과적으로 ‘현찰 부자’가 아니면 아무도 집을 살 수 없게 됐다.

청년들의 분노 포인트는 집값 그 자체보다 걷어차인 사다리에 있었다. 청년들의 눈에 비친 지금의 50∼60대 정책 결정자들은 경제 호황기에 대학을 졸업해 지원서를 내기만 하면 기업들이 여기저기서 모셔가던 시절을 살았다. 은행에 저축을 하기만 해도 연이율이 20% 가까이 됐으니 월급 모아 집 사는 게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 세대는 어떠한가. 취업이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티끌 모아봐야 티끌’밖에 되지 않는 제로금리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다. 유일하게 믿었던 대출조차 막히면서 이들에겐 계층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영영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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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동아줄 하나가 내려온다. 단단한 동아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도나도 붙잡겠다고 달려든다. 바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계층 사다리가 사라진 한국 사회 청년들의 유일한 희망으로 급부상한다. 가상 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코리아와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은 가상 화폐 투자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응답자 2502명 중 1714명). 가상 화폐 시장이 청년 중심인 것은 공식적인 통계로도 드러난다. 올해 3월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가진 사람 중 30대가 31%, 40대가 27%, 20대 이하가 24%를 차지했다. 50대는 14%, 60대 이상은 4%에 불과했다. (그림 1) 현재 가상 화폐 시장은 분명 청년들의 놀이터이자 전쟁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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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사이에서 가상 화폐 투자가 유행하자 정부는 규제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2018년 1월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 화폐 거래는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며 가상 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거래소 폐쇄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발언 직후 비트코인 시세는 2100만 원에서 1400만 원으로 30% 이상 폭락했다. 가상 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곡소리’가 났고 이 사태는 ‘박상기의 난’으로까지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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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경sookim@hs.ac.kr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국제 대학원 연구교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쳤다. 현재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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