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2011년 국내 도입된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모회사가 자회사에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 모회사와 자회사의 재무 상태와 영업 성과를 합쳐 보고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연결재무제표 작성 여부에 대해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이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지배력 여부를 판단하라’며 직접적인 판단을 회피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2017년 SK C&C가 SK㈜에 대해 실질지배력을 갖고 있는데도 연결에서 제외했다는 금융감독원의 판단과 배치된다. 회계는 수학 공식처럼 명확한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에서 여러 판단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기업을 처벌하고자 한다면 이런 판단과 관련된 회계 처리를 손쉽게 문제 삼을 수 있다. 감독 당국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혼란과 갈등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사이언스(구 한미홀딩스)는 신약 개발로 대박을 터뜨린 한미약품을 자회사로 거느린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다. 임성기 회장이 한미사이언스의 주식 중 34%를 소유한 최대주주이며,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주식 중 41%, 제이브이엠의 주식 중 37%를 보유하고 있다. 과거 있었던 한미약품을 2010년 분할해 지주사와 자회사 체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런데 2011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시점부터 한미사이언스는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할 뿐 한미약품을 종속회사로 간주하지 않아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의 재무 상태와 영업 성과를 합쳐 보고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았다. 회계 기준에 따르면 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해서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더라도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다면 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간주해 지분법으로 회계 처리한다. 즉 실질 지배력이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회계 처리가 완전히 달라진다. 연결재무제표 작성의 대상이 되는 자회사를 종속회사라고 부르며, 이와는 달리 지분법 적용 대상이 되는 자회사를 관계회사라고 부른다.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 도입 이전에는 A 회사가 B 회사의 (1) 의결권 있는 주식을 50% 이상 소유하는 경우, (2) 의결권 있는 주식의 30%를 초과하여서 소유하고 있으면서 최대주주인 경우, (3) 이사회의 과반수 이상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경우 A회사가 B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IFRS에서는 규정이 바뀌었다. 지분 비율이 50%가 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방법을 통해 B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해 이사회를 임명하거나 재무 정책과 영업 정책 등을 결정할 수 있다면 종속회사로 간주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지분 비율이 50%가 넘더라도 다른 이유가 있어서 B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못한다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IFRS 도입 이전에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상대적으로 명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IFRS 도입 이후에는 기준이 좀 더 복잡하다. 지분 비율이 50%에 미달하는 경우 실질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처리를 둘러싼 논란2019년 들어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감사를 담당하던 회계법인이 삼일회계법인에서 한영회계법인으로 교체된다. 그런데 새로 감사를 맡게 된 한영회계법인은 한미사이언스가 41%의 지분을 보유한 한미약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므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2011년부터 2018년까지의 회계 처리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대해 한미사이언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과거 9년의 기간 동안 안진과 삼일이라는 두 대형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았을 때는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이를 문제 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론에 반응이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아마 과거 한미사이언스를 감사했던 두 회계 기관도 긴장했을 것이다. 만약 관계회사로 취급한 과거의 회계 처리가 잘못된 것이라면 회계법인과 담당 회계사들은 징계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소송까지 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경우와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경우의 재무제표 장부 금액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잘못된 회계 처리의 금액에 따라 달라지는 법적, 행정적 처벌의 정도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의견이 대립되자 2019년 말 한영회계법인은 회계기준원에 이 안건을 질의한다. 그러나 회계기준원은 “사실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면서 질의 접수 자체를 거부한다. 2020년 1월, 한영회계법인은 이에 대해 항의하고 다시 답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의 연석회의가 열렸는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 결과 “지배력에 따른 연결 처리 여부는 기업의 판단이고 감사인은 이를 확인하라”는 원칙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즉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라는 것이다. 표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내용과 언론에 보도된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금융감독원은 한미사이언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즉 ‘기업 스스로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를 가진 결론이었다.
언론 보도로는 당시 한미사이언스와 한영회계법인 사이에서 큰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후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한번 짚고 넘어가자’면서 양측이 모두 동의해서 질의를 하게 된 것이다. 즉 감독당국의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질의였다. IFRS에서 제시하고 있는 실질 지배력 기준이 모호해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한 만큼 혹시나 감독당국이 다른 해석을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전에 그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이런 질의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추측으론 당시 한영회계법인이 나서서 한미사이언스의 회계 처리에 대해 한번 점검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17년부터 금융감독원은 SK㈜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하에 감리를 진행하고 있었다. SK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라고 주장한 내용이 한미사이언스 사례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SK 관련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