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기후금융 시대의 기업 전략

기후 리스크 건전성 감독에 대비하라

317호 (2021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최근 기후금융의 급속한 성장은 글로벌 자본 배분이 지속가능 자산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은 기후공시, 녹색분류체계, 건전성 감독 등 3가지 제도적 기반을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 앞으로 TCFD 등 기후공시 권고안의 준수 여부가 글로벌 투자자의 자금 흐름과 소비자의 상품 구매를 좌우하는 등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

2. EU 택소노미 등 녹색분류체계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3. 기후 리스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 강화될 경우에 대비해 고탄소 기업은 신기술 개발 등 적극적인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금융감독원에서 27년간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금융규제 연구에 매진해온 정신동 박사(경제학)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기후금융의 전망과 과제를 분석하는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금융 전문가의 식견으로부터 기후금융의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기후 리스크와 기후금융

국제사회에서 기후금융(climate finance)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2006년 유엔책임투자원칙(UN PRI)이 제정된 이래 기후금융은 ESG 중 E(환경)의 하부 요소로만 인식돼왔다. 그러나 2015년 파리협약에서 처음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금융의 역할을 명시했고, 이후 UN 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그 개념을 공식적으로 정의 1 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기후금융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기후금융이란 저탄소 경제의 실현을 위해 탄소 배출이 적은 기업에 투자를 유도하는 ‘탈탄소화 자금흐름’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기후금융이 중요하게 대두된 배경은 무엇인가?

국제사회는 혁신 투자에 투입돼야 할 자본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적 손해의 복구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사용됨에 따라 경제 성장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2 이 초래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국제적 금융당국자들도 기후 리스크를 단순한 윤리적 이슈(peripheral ethical issue)가 아니라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20년 1월 그린스완(green swan) 보고서 3 를 발표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 전반의 파괴적 영향과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기후변화는 물리적 리스크(Physical risks)와 이행 리스크(Transition risks)의 두 가지 채널을 통해 금융 안정을 위협하는데 전자는 기후변화 자체에 의한 물적 손해를 의미하며, 후자는 급격한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금융 손실을 의미한다. 이에 앞서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는 기후 정책의 변화, 신기술의 등장, 물리적 리스크의 증가 등으로 금융자산 가격의 급격한 조정이 발생하는 ‘기후 민스키 모멘트(climate Minsky Moment)’ 4 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 경제는 물리적 리스크는 적으나 기후정책 추진과 관련된 이행 리스크는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후 리스크를 산출•공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물리적 리스크로 인한 GDP 손실은 2017년 기준 0.08%로 세계 108위의 매우 낮은 수준이다. 5 그러나 2018년 부가가치 기준 29.2%로 제조업 비중이 주요 국(미국 11.3%, 영국 9.9%, 중국 29.1%)보다 높은 한국의 경제 구조 특성상 탈탄소화 추진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경 간 탄소조정세(BCA)6 와 RE100 7 기업의 빠른 확산도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부정적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제사회는 탈탄소 녹색경제로의 구조적 전환(tectonic shift)을 서두르고 있다.8 올해 1월 파리협약의 공식 시행과 함께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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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금융의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녹색경제로의 자금 흐름을 활성화해 기후변화의 파괴적 영향을 방지하고자 하는 기후금융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기후금융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ESG 투자 현황을 통해 대체적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광의의 ESG 투자 규모는 2020년 말 기준, 최대 45조 달러로 추정돼 2012년(13조3000억 달러) 대비 3배 넘게 늘었다. ESG 관련 펀드 자산 규모도 2019년 말 8600억 달러에서 2020년 11월 말 1조3000억 달러로 1년 사이 68% 증가했다. 다만, 이러한 투자•자산의 상당 부분은 S(사회적 책임)와 관련돼 있으며, 기후금융의 비중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2007년에 첫 등장한 녹색채권의 경우 발행 규모가 큰 폭으로 늘면서 2020년 말 잔액이 4조7000억 달러로 전체 ESG 채권(5조1000억 달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책임 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그 일환으로 기후금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녹색펀드(ETF+주식•채권형 펀드)는 2020년 말 6866억 원으로 2019년 말의 1455억 원 대비 4.8배로 증가했다. 또한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2021년 2월 현재 사회책임투자채권의 상장 잔액은 총 86조8000억 원이며, 이 중 녹색채권은 4조8000억 원(전체의 5.6%) 수준이다.(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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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금융이 증가세에 있으나 전체 ESG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고, 구분돼 집계되지 않는 등 기후금융의 현주소는 기후 리스크의 중대성에 비춰 부진한 편이다. 그러나 앞으로 자금 흐름의 주류가 친환경•저탄소 배출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기후금융이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후금융이 글로벌 투자 기준으로 정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투자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금융의 일환으로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그린투자(green investment)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즉, 새로운 투자 기회가 친환경적인지, 반환경적인지를 기준으로 평가해 친환경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다. 환경 파괴 등의 위험이 있는 대규모 개발 사업9 에 금융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전 세계 금융 기관 간 자발적 협약인 적도원칙(Equator Principles)이 그 예다. 현재 전 세계 37개국에서 116개 금융기관이 회원으로 있으며, 국내에서는 산업, 신한, 국민 등 3개 은행이 가입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KB금융그룹은 2020년 9월에 한국 금융그룹 최초로 신규 화력발전에는 더 이상의 자금 공급을 하지 않겠다는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바 있다.

글로벌 은행들의 대출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대출금리 결정 방식에 차입 기업의 지속가능 활동을 연계하는 지속가능 연계 대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서유럽과 일본, 싱가포르 은행들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국민, 신한 등에서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친환경 투자를 위해서 수익을 조금 포기하겠다는 의향, 즉 그리니엄(greenium = green + premium) 10 을 지불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기술 발전으로 그리니엄이 낮아지면 친환경 녹색채권에 대한 투자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1

OECD에 따르면 2030년까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인프라(에너지•운송•용수•전기통신 등) 구축에 필요한 투자 규모가 95조 달러에 이를 것이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2050년까지 미국 경제를 ‘탄소 제로’로 바꾸겠다며 총 5조 달러(약 5500조 원, 정부•민간투자 합산)의 친환경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는 향후 5년간 디지털 및 그린 뉴딜 분야 기업을 상대로 100조 원에 이르는 대출•투자•보증지원을 예고했다.12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는 공적 재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 자금의 동원, 즉 기후금융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기후금융의 급속한 성장은 국제 금융 질서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흐름이 발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투자자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증권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자본 배분이 지속가능 자산으로 이동하는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종전에는 자본의 효율적 배분은 곧 이윤 극대화와 초과 수익의 추구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이에 더해 기후 리스크의 대응,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책임 투자가 금융의 중대한 목표의 하나로 부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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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금융을 위한 과제: 제도적 기반의 마련

기후금융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금융 규제 당국자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뒤늦게 기후 리스크 대응에 나섰지만 기후금융의 활성화 및 건전성 감독을 위한 혁신적 조치들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다음에서 기후금융의 제도적 기반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후공시, 녹색분류체계, 건전성 감독의 주요 내용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기후공시(climate disclosure)

기후변화 관련 기업 재무정보를 일관성 있고, 비교 가능하며, 신뢰성 있게 공시하는 것은 기후금융의 전제 조건이다. 국제사회에서 ESG 정보 공시 노력은 일찍부터 이뤄졌지만 기후리스크 공시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금융안정위원회(FSB) 산하 TCFD(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는 2015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2017년 6월 ‘기후 관련 재무 공시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은 4개 부문 11개 항목의 공시를 권고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한 재무적 영향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전략 및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공개할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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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권고안에 따르면, 예컨대 은행의 경우 거래 기업에 대한 대출 및 투자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산출하고, 기후 시나리오별로 재무적 영향을 추정한 후, 탄소 감축을 위한 목표량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결국 대출과 투자의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TCFD 권고안의 도입이 확산되면 경제 시스템 전반에 큰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 감독 당국은 이러한 권고사항을 반영한 자국 내 공시 가이드라인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영국•프랑스•독일•뉴질랜드)는 권고 수준을 넘어 기후공시 의무화를 추진 중에 있다. 블랙록도 2021년 CEO 연례서한13 에서 TCFD의 권고안을 글로벌 표준으로 간주하면서 기업들에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넷제로 경제와 어떻게 부합되게 할 것인지에 관한 계획”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등 ESG 공시와 별도로 기후공시는 국제사회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블랙록은 TCFD 권고안을 상장 기업만이 아니라 대형 비공개 기업에도 적용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는 대형 상장사에 대해 기후공시를 의무화하자는 국제사회 일각의 주장14 을 뛰어넘은 것이다.

TCFD가 2020년 10월 발표한 『이행상황 보고서(2020 Status Report)』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1701개 기업을 대상으로 AI 기술을 이용해 점검한 결과, 시가총액 100억 달러 이상의 기업 중 42%, 시가총액 상위 100대 상장기업 중 60%가 권고안 중 하나 이상의 항목에 대해 공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권고안을 준수하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으나 기후공시에 대한 투자자 요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TCFD 권고안에 따른 공시가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국제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권고안의 공시 기준 준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TCFD 권고안의 준수 여부가 글로벌 투자자의 자금 흐름과 소비자의 상품 구매를 좌우하는 등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내 대기업들은 지속가능 경영 국제 보고 기준 중 주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와 SASB(The 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를 따르고 있다. 15 TCFD의 경우 지지기관으로 참여한 국내 기관이 21개, 실제 권고안을 준수하는 기업은 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16 TCFD 권고안은 투자자 관점에서 환경 변화가 기업 영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국제 기준과 차이가 있다. TCFD 권고안은 여타 국제 기준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기업들은 TCFD 권고안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국제 기준을 준수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ESG 및 기후공시의 제도화에서 국제사회에 뒤처져 있다. ESG 공시의 경우 거래소 자율공시제도를 운용 중이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금융위원회는 2030년까지 전체 코스피 상장사에 대해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17 기후공시의 경우 환경 정보 공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무 작업반을 정부 내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 리스크의 공시, 즉 기후공시의 제도화는 과거 대공황 직후 증권 관련법의 제정을 통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의 토대를 마련한 것에 비견되는 일대 인식의 전환과 제도적 개혁으로 간주되고 있다.18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시대에 기후공시가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그만큼 크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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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

녹색경제로의 전면적 전환을 위한 대규모 기후금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녹색경제 활동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인 녹색분류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녹색분류체계는 기업의 녹색활동을 촉진함과 아울러 위장 친환경 활동인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투자자는 이를 통해 녹색활동을 용이하게 식별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현재 국제기구 또는 국가별로 녹색분류체계를 개발했거나 개발을 진행 중에 있는데 그 중 가장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것이 유럽연합의 분류체계다. 2019년 12월 제정된 ‘EU 택소노미 규정(EU Taxonomy Regulation, 이하 EU TR)’은 2020년 6월22일 공포를 거쳐 7월12일 발효됐다. EU TR는 판단 조건 4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environmentally sustainable economic activity)으로 인정한다. 아울러 판단 조건에 활용되는 6대 환경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판별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인 기술선별기준 19 (Technical Screening Criteria, TSC)은 위임법률(delegated acts)에 규정될 예정이다. 위임법률은 2단계로 마련•시행될 예정인데 6대 환경목표 중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 관련 사항은 현재 초안이 마련된 상태로 2021년 4월에 시행될 예정이며 나머지 4개 환경 목표 관련 사항은 2021년 말에 마련돼 202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EU 기업들은 2022년 1월1일 이후(4개 환경 목표는 2023년 1월1일 이후) 공표하는 보고서에서 EU 택소노미를 활용해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을 공시해야 한다. 공시 내용에는 자본적 지출(CAPEX), 운영비용(OPEX) 등 기업의 전체 경제 활동 중에서 지속가능한 경제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포함돼야 한다.

EU 택소노미는 EU 회원국들에 적용되지만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U 택소노미가 향후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에 앞서 EU 택소노미에 따른 공시 자료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 및 투자 활동을 하는 국내 대기업은 EU 택소노미의 시행에 앞서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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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TR는 지속가능 금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발전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으며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금융상품을 개발 또는 투자할 때 고려할 표준을 제공함으로써 기후 금융의 촉진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EU TR의 한계와 부작용을 우려한다. EU TR는 지속가능 경제 활동의 인정 기준만을 제시하고 있어 자금 조달 갭(financing gap)을 겪는 녹색활동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자금 부족보다는 소비자의 수요 부족이나 불합리한 세금 환경 또는 기술상의 문제 등으로 사업화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만약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인정 기준을 충족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금 공급이 이뤄진다면 특정 녹색활동으로 자금의 쏠림현상과 버블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또한 녹색활동 선별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잘못 운용될 경우에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함으로써 모험적 친환경 투자가 오히려 저해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20

국내에서는 금융위원회와 환경부를 중심으로 녹색분류체계를 금년 상반기 중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기후 리스크 대응에 뒤처져 있는데다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탈탄소 청정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녹색분류체계를 조속히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 녹색분류체계 마련에 있어 정부는 EU 분류체계 및 ISO 분류체계 21 등 국제 규범과의 조화를 유지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분류체계(K-Taxonomy)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류체계 마련에 있어 특정 부문 자금쏠림 현상이나 진입장벽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기후 리스크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마지막으로, 은행, 보험 등 국제금융감독기구는 기후 리스크를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과정에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국제은행감독기구인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2020년 2월에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 실무작업반(TFCR, Tac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Risks)을 설치하고, 기후 리스크의 측정 및 현행 규제 체계 반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BCBS는 회원국 대상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후 리스크 관련 감독 조치는 새로운 규제가 아닌 기존 자본 규제 체계 내에서 다룬다는 방침을 정했다. 22 BCBS는 2021년 상반기 중에 기후 리스크를 건전성 감독 체계에 반영하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인데 앞으로 기후 리스크 노출이 많은 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 가중치를 상향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자본 규제에 가장 앞장서 움직이는 금융감독 당국은 바로 유럽중앙은행(ECB)이다. ECB는 2020년 11월 「기후•환경리스크에 대한 가이드(Guide on climate-related and environmental risks)」 최종안을 발표하고, 바젤자본규제 중 필라2 규제인 은행의 내부자본적정성평가절차(ICAAP)에 기후•환경 리스크를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EU 대형 은행들은 동 가이드에 따라 자체 이행 계획을 2021년 초까지 제출할 예정이며, ECB는 은행의 이행현황을 평가한 후 필요시 감독 조치를 부과할 계획이다.

기후 리스크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정책 대응에서 가장 빠른 분야가 기후 리스크 스트레스테스트23 (이하 기후ST)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캐나다 등 국가의 중앙은행은 시나리오 분석모델을 마련하고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다. 기후ST를 위해서는 산업별, 신용등급별 탄소위험 익스포저(carbon risk exposure)24 등 분석 목적에 필요한 자세한 데이터의 구축이 필요하다. 앞으로 각국에서 물리적 리스크와 이행 리스크를 측정하기 위한 정교한 스트레스 테스트 방법론 개발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금융감독원이 2020년 9월 국제 콘퍼런스(‘Future of F•I•N’)를 개최해 자체 개발한 기후ST 모형을 소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탄소배출량 감축 노력이 없을 경우 2030년까지 성장률이 마이너스 4%대로 하락하고, 주요 국내 은행 자본비율이 규제 비율인 8%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는 보험핵심준칙(ICP)을 기후 리스크 감독에 적용하는 방안과 보험 부문에 TCFD의 기후공시 권고안을 적용하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 리스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 제도화되면 고탄소 업종들은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거나 조달비용이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예상된다. 또한 관련 대출 자산이 많은 은행은 규제자본비율이 하락하고 국제적인 신인도가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고탄소 기업들은 신기술 개발 등 적극적인 탄소 배출량 감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국내 금융회사들도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한 데이터의 구축, 분석 모델의 개발, 여신정책의 변경 등 선제적인 준비와 대응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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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금융은 기회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체결된 지 30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기후변화로 인한 파괴적 영향의 방지와 대응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넷제로의 확산과 함께 녹색경제로의 구조적이고도 전면적인 전환이 가시화되면서 국제사회는 점차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험보다는 기회 요인에 더 많이 주목하고 있다. 신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투자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소비자 선호의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의 중심에 기후금융이 있다. 기후금융은 구경제로의 자금흐름을 억제함과 아울러 신경제로의 자금 흐름을 촉진하는 이중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신경제로의 전환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제사회는 기후공시, 녹색분류체계, 기후 리스크 건전성 감독 등 기후금융의 제도적 기반 정비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직은 ESG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나 이러한 노력이 일단락되고 나면 기후금융은 국제금융의 주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기후금융은 전환적 사건(pivotal event)으로서 향후 글로벌 경제•금융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주제이다.

국제 금융시장의 게임의 틀을 바꾸는 이러한 국제적 노력에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 제조업 중심의 우리 경제는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경제로의 전환에 뒤처진다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금융 산업의 신용도와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시스템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최근 금융위원회와 환경부는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와 환경정보 공시를 포함한 종합 계획을 마련해 추진할 방침임을 발표25 했다. 이런 계획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정부의 리더십뿐 아니라 기업, 금융회사 등 민간의 인식 전환과 참여가 필요할 것이다.


정신동 전 금융감독원 거시건전성감독국장 jeungshi@naver.com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은행이론으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에서 27년을 재직하며 보험감독국•기획조정국•금융상황분석실에서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워싱턴사무소장, 거시건전성감독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바젤3와 글로벌 금융규제의 개혁(2011년)』 『도드프랭크 금융규제개혁과 그 이후(2018년)』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