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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그 여름 텍사스를 추억하며

김현진 | 316호 (2021년 03월 Issue 1)
수년 전, 여름 한 계절을 오롯이 보낸 미국 텍사스주를 추억하며 이곳을 해시태그 두 개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rich와 #hot을 꼽을 것입니다. 정유 시설이 밀집한 석유 관련 산업의 중심지답게 텍산(Texan, 텍사스 사람) 친구들의 집은 대체로 저택에 가까웠고 여름 햇살 또한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따가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텍사스주에 126년 만의 한파가 덮치는 바람에 평생 오리털 파카 한번 입어볼 일 없었을 지역 주민들이 담요며 옷가지로 온몸을 감싼 채 거리로 쏟아져 나온 모습이 보도됐을 때 그곳이 텍사스가 맞는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트기류에 갇혀 있던 찬 북극 공기가 온난화 여파로 미 전역에 남하한 결과가 갑작스런 한파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미국의 기상학자들은 이번 한파가 조 단위(10억 달러 이상)의 기상 재난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투모로우’ 같은 재난 영화를 연상케 하는 지구촌 일련의 풍경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의 역습’이 상상이 아닌 현실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최근 1년 새 전 세계적으로 23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사실상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100년간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중국 남북과 라오스, 미얀마 지역이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식생으로 바뀌면서 코로나19의 발원지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도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인류의 일상은 악몽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각국 정부는 물론 경제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변화의 대응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은 인류의 공생이라는 선의(善意)의 실천뿐 아니라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업의 미래를 준비하는 경영자들이 소홀히 여겨선 안 될 최우선 과제입니다. DBR가 창간 13주년을 기념하는 특집호 스페셜 리포트 주제로 기후변화를 선택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습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기후변화는 글로벌화, 정보기술 혁명에 버금가는 경영 환경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변화”라며 “기후변화를 새로운 경쟁 우위 창출의 전략적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창간 기념호에는 국내외 선진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 임팩트 투자 동향, 기후변화 대응 기술로서 AI 기술의 활용법 등을 다룬 스페셜 리포트와 더불어 기후변화라는 현상을 좀 더 다각도로 짚은 이슈 하이라이트 코너도 마련했습니다. 인류의 공생 공영이 달린 중대한 이슈를 비즈니스 관점뿐 아니라 과학적, 인문학적으로 짚어보기 위해섭니다.

특히 ‘탄소는 죄가 없다, 인간이 문제’라는 도발적 명제로 최근 글로벌 경제계와 정계가 주장하는 ‘탄소 제로’ 어젠다가 과연 친환경적 선(善)이 맞는지를 정치와 경제의 수사학을 빼고 좀 더 과학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신선합니다. 최근 기후변화 논의에서 마치 ‘악의 축’으로 비춰지는 탄소는 실상 식물의 성장에 필수적인 식량이기도 한데 탄소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이 생물학적 생존은 물론 문화적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한 19세기 중후반 서해에서 조선과 청나라 사이 ‘청어 분쟁’이 자주 일어난 것은 기후변화에 따른 어종의 이동 때문이었다는 생태환경사적 해석도 흥미진진합니다. 결론적으로 기후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인간의 대응 방식에 따라 재앙을 피할 수도,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13번째 생일을 맞아 본격적으로 ‘청소년’기에 진입한 DBR는 그동안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3년간 쉼 없이 DBR를 구독해주신 두 독자분의 인터뷰와 좋은 글로 지면을 빛내주시는 김경훈 구글 코리아 사장님의 축사에 감사하며 저희 편집진은 앞으로 DBR가 견지해야 할 핵심 역량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됐습니다. ‘비즈니스라는 치열한 경기장 안에서 매일 고군분투하며 뛰고 있는 선수와 감독들’을 지면으로 이끌어내면서 리더 여러분께 혜안을 제시하고 현명한 결정을 돕는 페이스 메이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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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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