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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피버팅, 혼란 최소화하면서 성공하려면

사업 폭넓게 정의하고 실패 땐 빨리 인정
피버팅 대명사 ‘슬랙’도 그렇게 탄생했다

배태준 | 313호 (2021년 0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흔히 피벗의 결과는 사업의 성공일 것이라고 쉽게 간주되지만 계획을 변경해 사업을 재정의하는 피벗에 대한 부담감과 역효과 또한 만만치 않다. 또 피벗을 삐딱하게 보자면 초기 계획의 실패에 따른 일탈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이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창업자들이 피벗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해관계자들의 비판과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피벗에 성공하려면 1) 사업을 폭넓게 정의하고 2) 큰 틀의 가치를 유지하고 3) 실패하더라도 빠르게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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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벗이란?

스마트폰이 없었던 1996년, 팜(Palm)이라는 회사가 파일럿(Pilot)이라는 개인 휴대 정보 단말기(PDA)를 시장에 선보였다. 2년 뒤 겨울, 실리콘밸리의 두 청년이 이 휴대기기에 열광해 급기야 팜 파일럿에 특화된 암호 정보 처리 스타트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암호 처리 시장은 냉랭했고, 두 청년은 급히 방향을 바꿔 보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들은 여러 다른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던 차에 정보 대신 돈을 암호화해 하나의 팜 파일럿에서 다른 팜 파일럿으로 현금을 보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하지만 이 역시 팜 파일럿 사용자가 너무 적어 실패하고 만다. 이들은 다시 한번 이 송금 아이디어를 웹 버전으로 만들어 e메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했는데, 여기서 마침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이 스타트업이 바로 현재 매출 177억 달러(약 20조4000억 원), 직원 수 약 2만2000명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페이팔이다.1

위의 페이팔 사례처럼 제품과 전략에 대한 불확실한 초기 아이디어를 의도적으로 빠르게 바꾸는 것을 ‘피벗(Pivot)’이라고 한다. 원래 피벗의 사전적인 의미는 ‘회전축’으로, 주로 농구 등 구기 종목에서 한 발이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좌우로 방향을 틀어 슛을 던지거나 패스를 하는 공격 형태를 일컫는 용어이다.2 피벗이 스타트업에 처음 쓰이게 된 것은 샌디에이고 출신의 연쇄 창업자이자 컨설턴트인 에릭 리스(Eric Ries)가 그의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면서부터다.3 당시 벤처캐피털 클라이너퍼킨스(Kleiner Perkins)에 잠시 머물면서 블로그로 인기를 얻었던 리스는 이후 책 『린스타트업(Lean Startup)』에서 피벗을 ‘새로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한 구조화된 노선 교정’으로 정의했고, 린스타트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피벗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됐다. 4

가설 주도 창업과 피벗

피벗은 린스타트업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가설 주도(Hypothesis-driven) 창업에서 핵심적인 활동이다.5 가설 주도 창업은 고객의 요구에 꼭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사전에 미리 알고 시작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출발한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않고 사전에 계획이 돼 있다는 이유로 시간과 돈을 들여 제품을 만들었다가는 자칫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가설 주도 창업 방식은 초기에 복잡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대신에, 검증되지 않은, 반증 가능한 가설들을 정리해서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에 그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고객 개발(Customer Development)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가설을 테스트한다. 쉽게 말하면, 잠재 고객, 파트너, 공급자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스타트업은 빠르게 최소 기능만을 갖춘 프로토타입(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 고객의 실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런 테스트를 거친 후 고객의 반응을 바탕으로 초기 가설을 검증, 또는 기각하면서 학습을 한다. 만약 가설이 기각됐다면 기존 가설을 수정해 나가는 반복적인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 6 이를 통해 최초 계획했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피벗이다. [그림 1]에 자세한 과정이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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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주도 창업을 통해 실제로 피벗이 일어나는 모습은 블루리버 테크놀로지(Blue River Technology)의 창업 사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회사는 농업 자동화 기술에 특화된 스타트업으로 트랙터에 머신러닝 엔진을 탑재한 잡초 제거 로봇을 개발했다.7 0.02초 만에 0.635㎡ 반경의 농작물과 잡초를 정확히 구분해 필요한 부분에만 제초제를 살포함으로써 약 90% 비용 절감을 가능케 했다. 이른바 ‘보고, 살포하는(See & Spray)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7년 세계 최대 농기계 기업 존디어(John Deere)로부터 3억500만 달러(약 3500억 원)에 인수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회사가 농업 분야를 염두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2011년 창업자인 호르헤 헤로드(Jorge Heraud)와 리 레든(Lee Redden)은 사실 골프장, 스타디움 또는 공원을 겨냥한 자동 잔디깎이 로봇을 만들 생각이었다.8 이들은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창업자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9 가 개설한 린 런치패드(Lean LunchPad)라는 스탠퍼드 MBA 과목을 수강하면서 그들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E245라고 불리는 실전형 창업 수업인 린 런치패드는 가설 주도 창업을 강조하는데, 이에 따라 블루리버 테크놀러지의 창업자들은 매주 10∼15명의 잠재 고객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4주 차가 됐을 때 처음 생각했던 골프장은 시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대신 농장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로봇의 수요를 발견했다. 이에 창업자들은 과감하게 시장을 변경했다. 5주와 6주 차 때는 본격적으로 농장을 방문해 잡초 제거 기술을 테스트하고 당근로봇(Carrotbot)이라는 프로토타입을 개발했다. 동시에 잠재적인 유통 채널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판매상을 통한 판매 방식에서 직접 판매 방식으로 다시 한번 계획을 변경했다. 수업 7주 차에는 농장주들과 다시 한번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는 농장에 로봇을 팔려고 했던 계획을 버리고, 필요할 때마다 빌려주고 잡초 양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매기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바꿨다. 이렇듯 세 번에 걸친 피벗으로 블루리버 테크놀로지는 처음 계획했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9개월 후 약 300만 달러(약 35억 원)의 벤처 투자를 받기에 이른다.


피벗의 유형과 사례

페이팔과 블루리버 테크놀로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빠르게 전략을 수정하고 방향을 바꾸는 피벗은 스타트업계에 보편화돼 있고,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400개 스타트업을 조사해 보니, 93%의 성공 사례가 초기 전략을 버리고 변경한 경우라고 할 만큼 피벗은 기업 활동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10 에릭 리스는 이처럼 스타트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피벗의 유형을 10개로 나눠 제시했다. 각각의 피벗 유형은 다시 ‘제품 관련’ ‘시장 관련’ ‘전략 관련’ 등 세 부문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 49개 스타트업의 55건의 피벗을 분석해 본 또 다른 연구 결과,11 가장 흔히 일어나는 피벗은 시장 관련 피벗으로 약 45%의 피벗이 이 범주에 속했다. 다음으로 31%는 제품 관련 피벗으로 나타났다. 하나의 스타트업이 여러 번 다른 유형의 피벗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딱 잘라 구분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최대한 비중이 큰 피벗을 중심으로 사례를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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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품 관련 피벗

스타트업의 핵심 제품이 바뀌는 경우를 제품 관련 피벗으로 분류한다. 이 범주에는 줌 인, 줌 아웃, 기술, 그리고 플랫폼 피벗이 속한다. 먼저, 줌 인(Zoom-In) 피벗은 애초 계획했던 제품의 일부분에 집중해 해당 부분을 중심으로 방향을 수정하는 경우이다. 2020년 12월 기업용 소프트웨어 강자 세일즈포스에 277억 달러(약 30조6000억 원)라는 거금에 인수된 슬랙이 대표적이다. 12 슬랙은 전 세계 150개국 50만 개 이상의 기업에서 하루 1000만 명이 사용하는 세계적인 업무용 메신저 서비스다. 하지만 슬랙은 사실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가 2011년 글리츠(Glitch)라는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면서 부수적으로 사용한 내부 메신저였다. 버터필드는 온라인 게임이 실패하자 내부 메신저를 중심으로 피벗한 후 2014년 슬랙을 론칭했고, 2019년에 뉴욕증시에 상장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13

줌 인 피벗과 정반대되는 상황이 줌 아웃(Zoom-Out) 피벗이다. 이 경우는 최초 계획된 제품에 추가적인 기능을 덧붙여 실제로 범위가 넓어진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전환되는 것이다. 2015년에 세계 최대 도메인 관리 업체 고 대디(GoDaddy)에 인수된 엘토(Elto)가 줌 아웃 피벗을 한 사례다. 2012년에 호주에서 창업한 엘토는 원래 트위키(Tweaky)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트위키는 개발자들이 고객이 원하는대로 웹사이트를 수정하도록 연결해주는 마켓 플레이스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웹사이트 수정 서비스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창업자들은 엘토로 기업 브랜드를 바꾸고, 소비자들이 ‘웹사이트 수정’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서비스들을 99∼5000달러에 이용할 수 있는 마켓 플레이스로 탈바꿈시켰다.14

계획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기존에 계획된 제품/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을 기술(Technology) 피벗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이버 정예 부대 Unit 8200 출신의 아비샤이 아브라하미(Avishai Abrahami)가 2006년 창업한 윅스(Wix)가 기술 피벗의 좋은 사례다. 윅스는 2006년 설립된 간편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 플랫폼으로 현재 약 1억5000만 명이 사용하며 시가총액 67억 달러(약 7조9000억 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회사다. 윅스는 2011년까지는 주로 플래시 기술을 사용했으나 그 후 HTML5가 보편화되면서 제작 환경을 HTML5로 전환한 바 있다. 15

마지막으로, 특정 제품/서비스에서 플랫폼으로 진화되거나 플랫폼이 특정 제품/서비스로 축소될 때, 이를 두고 플랫폼(Platform) 피벗이라 한다. 2011년 설립된 스타일젠(StyleZen)은 패션 전문 온라인 쇼핑 사이트였다. 좀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스타일젠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마케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스타일젠은 핀터레스트 맞춤 솔루션을 얻게 됐고, 내친김에 회사 이름을 아하로지(Ahalogy)로 바꾸고 핀터레스트 전문 마케팅 컨설팅 회사로 변신하기로 결정했다. 특정 쇼핑 사이트가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이 된 것이다. 2015년 아하로지는 700달러(약 80억 원)의 외부 투자까지 유치했다.16

2. 시장 관련 피벗

스타트업의 주요 목표 시장에 변화가 생기는 경우를 시장 관련 피벗이라고 한다. 시장 관련 피벗은 제품 관련 피벗에 비해 보다 본질적인 변화가 이뤄질 때가 많고, 보다 넓은 범위의 외부 요인에 얽혀 있는 경우도 있다. 고객 요구, 고객 세분화, 채널 피벗이 이 범주에 속한다. 고객 요구(Customer Need) 피벗은 많은 경우 긍정적이지 않은 고객 반응이 계기가 돼 새로운 고객 요구를 발견한 경우다. 2015년 미국 내시빌 기업가센터의 액셀러레이터 ‘프로젝트 뮤직’에 선정된 잼버(Jammber)가 고객 요구 피벗을 단행한 사례다. 창업자 마커스 콥(Marcus Cobb)의 비전은 ‘음악인의 링크트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시빌의 음악인들과 소통한 결과, 음악인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는 네트워킹이 아닌 음반 회사와의 업무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잼버는 피벗을 통해 아티스트와 음반 회사 사이의 업무를 대행해주는 스타트업으로 변신했다.17

때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고객군이 보다 매력적인 시장이 될 때도 있다. 이를 고객 세분화(Customer Segment) 피벗이라 한다. 예를 들어, 2007년 설립된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소크라타(Socrata)는 처음에는 중소기업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2009년 미국 대선 캠페인이 진행됐고, 정부와 협력할 일이 늘어났다. 그 후 소크라타는 기업 고객을 버리고 중앙 및 지방 정부를 주 고객으로 하는 공공 데이터 전문 기업이 된다.18

초기 계획했던 유통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때 채널(Channel) 피벗을 하게 된다. 2018년 마르코 카스텔라넬리(Marco Castelanelli)가 창업한 고급 와인 테이스팅 이벤트 회사, 클럽비노(Club Vino)가 바로 채널 피벗을 한 사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 이상 오프라인 와인 모임을 할 수 없게 되자 카스텔라넬리는 온라인으로 와인 테이스팅 이벤트를 진행했다. 고객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음식을 곁들인 와인 테이스팅 패키지를 주문하고, 비디오를 통해 실시간으로 와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19

3. 전략 관련 피벗

스타트업이 최초 계획한 수익 모델이나 성장 전략을 수정•보완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이를 전략 관련 피벗이라고 볼 수 있다. 가치 창출, 사업 설계, 성장 엔진 피벗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선, 가치 창출(Value Capture) 피벗은 기업의 수익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1958년 할로이드(Haloid)의 전략 변경이 바로 가치 창출 피벗의 예이다. 당시 할로이드는 모델914라는 최첨단 복사기를 시장에 내놓았다. 모델914는 경쟁 제품에 비해 기술력이 월등히 앞섰으나 역설적이게도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인해 판로를 찾지 못해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할로이드는 비싼 제품을 직접 판매하기보다는 월 2000장까지 95달러에 복사기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수익 구조를 바꾸고 회사 이름을 제록스로 변경한다. 제록스는 이후 1972년에 25억 달러(약 2조9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12년 동안 100배의 성장을 거두게 된다. 20

사업 설계(Business Architecture) 피벗은 스타트업이 사업 구조 자체를 바꿀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B2B 기업을 지향한 스타트업이 B2C로 변경하는 것과 같은 큰 틀의 변화를 일컫는다. 2011년에 창업한 헬로월드라는 회사의 전략 변경이 사업 설계 피벗의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헬로월드의 서민수 대표는 국내 최초 배달 앱인 ‘철가방’을 론칭했으나 이후 고객과 음식점을 연결하는 서비스는 전면 중지하고 음식점에서 필요한 일련의 과정(주문 접수, 배달 대행 등)을 통합 관리하는 POS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업의 틀을 전면 수정했다. 개발 기간만 5년이 걸려 2018년 6월에 시장에 선보인 후, 현재 가입 업소 1만여 개, 신규 가맹점 500여 개, 거래 건수 520만 건을 기록하고 있으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신규 가맹점이 30% 늘어났다. 21

스타트업이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할 때, 성장 엔진(Engine of Growth) 피벗이 발생한다. 주식 거래 애플리케이션 로빈후드의 최근 성장 전략이 좋은 예시가 된다. 2014년 설립된 로빈후드는 기업가치 10억 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유니콘에 등극했지만 초기부터 수익 구조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렸다.22 바로 무료 주식 거래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로빈후드의 창업자들은 프리미엄 서비스인 골드를 시작해 마진트레이딩(신용융자 거래)에 이자를 붙이는 방식으로 성장 전략을 모색했다. 현재 전체 고객의 17%가 골드를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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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벗의 유의점 및 시사점

흔히들 피벗의 결과는 사업의 성공일 것이라고 쉽게 간주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의도적으로 전략적 방향을 바꿀 경우, 시장 및 기술의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성공률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23 하지만 계획을 변경해 사업을 재정의하는 데 대한 부담감과 역효과 또한 만만치 않다. 최근 미국에서 295개의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 한 결과, 스타트업은 개발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5번의 피벗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중요한 분야에서의 피벗은 오히려 폐업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4 다른 연구에서는 73%의 스타트업이 한 번 이상의 피벗을 경험하는데 대부분의 피벗이 실패로 귀결됐음이 밝혀졌다.25

피벗을 삐딱하게 보자면 초기 계획의 실패에 따른 일탈 행위로 간주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자칫 일관성과 능력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개연성도 크다. 이 경우, 투자자나 고객들은 혼돈에 빠지게 되고, 종래에는 갈팡질팡하는 스타트업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OTT) 기업인 넷플릭스(Netflix)도 불과 10년 전 몇 차례 피벗을 단행하면서 뼈저린 시련을 겪은 바 있다. 원래 우편을 통한 월 정액 DVD 렌털 서비스로 시작했던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을 하면서 기존 구독료를 월 9.9달러에서 월 15.98달러로 인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DVD 사업을 넷플릭스에서 떼어내 Qwikster.com으로 바꾸려고 했다. 모두 2011년 7월에서 9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객과 투자자들 모두 넷플릭스의 피벗에 혼란스러워 했다. 당장 다음 분기에 고객 80만5000명이 구독을 취소했고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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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와 같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피벗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코로나 사태 등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요즘, 변화하는 흐름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업자들은 이해관계자들의 비판과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성공적으로 피벗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익혀야 한다. 이 글에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폭넓은 사업 정의

스타트업이 피벗을 할 때, 자신의 사업을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에 한정 짓지 말고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 보다 많은 이해관계자의 협조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27 피벗으로 인해 휘청거렸던 넷플릭스의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비록 우편 DVD 렌털로 시작했지만 그들은 DVD에 한정된 사업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렌털 사업이라고 규정 짓지도 않았다. 이름 그대로 인터넷, ‘Net’을 통한 영화 ‘flix’ 사업이라고 폭넓게 정의했다. 넷플릭스는 2011년 고객과 투자자의 반발을 이겨냈다. 우편 DVD 배송 사업을 차츰 줄여 없애고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전환했으며, 콘텐츠 제작자로 변신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190여 개국 전 세계 구독자 수 1억9500만 명을 보유한 명실상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2. 가치의 연속성

일찍이 하버드대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 교수는 “고객은 4분의 1인치짜리 드릴을 사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4분의 1인치짜리 구멍을 원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궁극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큰 틀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피벗으로 인해 초기 아이디어로부터 달라지게 되면 투자자나 미디어, 또는 고객들은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때 창업자들은 큰 틀의 기본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28 가치의 연속성을 얼마나 부각시켰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 사례가 있다. 주식 투자 분야에서 2006년과 2007년에 설립된 두 스타트업은 초기 콘셉트에서 벗어나 각각 두 번의 피벗을 거쳐 6개월 후 ‘로보 어드바이저(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 주식 자문)’ 업체로 변신했다. 그런데 둘 중 한 회사는 2조 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로 급성장한 반면, 다른 회사는 파산을 하게 된다.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성공한 스타트업의 경우 피벗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금융의 민주화’라는 큰 틀의 가치를 언제나 유지한 반면 실패한 스타트업은 피벗을 할 때마다 자신의 핵심 가치를 바꿨다. 처음에는 ‘금융의 투명성 제고’라는 가치를 표방하다 ‘금융을 신나게’로 바꾸고 마지막으로는 ‘믿을 만한 퇴직 설계’로 미션을 바꿔나갔다. 그 결과 고객과 투자자로부터 모두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3. 빠른 인정과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사정이 달라졌을 경우, 빠르게 인정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정답이다. 한때 드론계의 마이크로소프트로 불리던 드론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에어웨어(Airware)의 사례를 살펴보자. 에어웨어는 구글벤처스, 클라이너 퍼킨스 등 굴지의 벤처 투자 회사로부터 약 4억 달러(약 4500억 원) 투자를 받았다. 그러나 초기 목표 시장인 기업용 드론 소프트웨어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돌파하고자 에어웨어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로 노선을 변경하고, 자체적으로 민간 드론을 개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고객과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고, 결국 2018년 폐업을 하게 된다.

반대로 슬랙을 성공시킨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빠르고 솔직하게 최초 계획한 온라인 게임의 실패를 인정했다. 그리고 이용자들에게 일방적인 공지가 아닌 존중을 담은 작별 인사를 했다. 일자리를 잃을 직원들의 재취업까지 알아봐 주는 진정성도 보였다.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본 투자자들은 창업자를 믿고 남은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의 피벗을 지지했다. 오늘날의 슬랙이 피벗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배태준 한양대 창업융합학과 조교수 tjbae@hanyang.ac.kr
필자는 한양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미국 루이빌대에서 박사(창업학)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벤처산업연구원 초기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동부제철에서 내수 영업 및 전략 기획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 뉴욕 호프스트라대 경영대학교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세계 한인무역협회 뉴욕지부에서 차세대 무역스쿨 강사 및 멘토로 활동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창업 의지, 창업 교육, 사회적 기업, 교원 창업 및 창업 실패(재도전) 등이다.
  • 배태준 | 한양대 창업융합학과 부교수

    필자는 한양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루이빌대에서 박사학위(창업학)를 각각 취득했다. 벤처산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동부제철에서 내수 영업 및 전략기획을 담당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뉴욕 호프스트라대 경영대에서 조교수로 활동했고 세계 한인무역협회 뉴욕지부에서 차세대 무역스쿨 강사 및 멘토를 지냈다. 현재 한양대 일반대학원 창업융합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창업 의지, 창업 교육, 사회적 기업, 교원 창업 및 창업 실패(재도전) 등이다.
    tjba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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