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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어둠 속에서 희망을 쏘다

김현진 | 311호 (2020년 12월 Issue 2)
해마다 이맘때, 전 세계에서 발표되는 ‘올해의 단어’를 마음속으로 맞춰보는 걸 한 해를 마무리하는 리추얼쯤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어떤 단어가 나올지 추리하며 설레는 마음이 한결 덜한데, 마치 답안지를 펴놓고 치르는 시험처럼 그 답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 콜린스 사전이 밝힌 올해의 단어는 코로나19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상점 영업을 중단하는 조치를 뜻하는 ‘록다운(lockdown)’입니다. 일본 출판사인 자유국민사는 올해의 유행어로 ‘3밀(密)’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밀집, 밀폐, 밀접 등 3개의 ‘밀’을 피하라고 일본 보건 당국이 강조하면서 퍼진 유행어입니다. 최근 국내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성인 남녀 67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올해의 사자성어’ 1위로 꼽힌 단어는 ‘적막강산(寂寞江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바로 이은 2위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의 ‘극세척도(克世拓道)’였다는 점이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올해 국내외 비즈니스계에 족적을 남긴 다양한 기업 사례에서 타산지석의 혜안과 통찰을 얻고 한 해를 곱씹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DBR가 매년 말 마련해 온 ‘Business Cases’ 스페셜 리포트에서 편집진의 치열한 토론 끝에 선정된 업체들이 바로 ‘극세척도’의 길을 찾은 곳들이 아닌가 합니다.먼저,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제작해 ‘K 방역’의 큰 축을 담당한 분자진단 기업 씨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불과 2주 만에 키트를 개발해 국내 시장점유율 75%, 세계 67개국 수출 등의 업적을 이룬 이 기업은 캄캄한 팬데믹 시대에 오히려 급성장해 작년 대비 영업이익이 약 26배 늘어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기업이 바이오 업계에선 이례적으로 빠른 제품 출시에 성공한 데는 내공(15년간 쌓아온 기술력으로 인한 진입장벽 구축)과 리더십(과감한 결단으로 조직원의 집단적 몰입 유도), 전략적 민감성(새로운 사업 기회에 대한 선제적 대응) 등 3박자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시대의 대표 수혜주였던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도 유독 급성장의 기적을 이룬 기업들이 올해의 케이스로 선정됐습니다. 1981년생인 프로그래밍 전문가, 토비아스 뤼트케가 2006년 창업한 온라인 쇼핑몰 개발 및 운영 기업 쇼피파이는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올 초 대비 현재 주가가 3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커머스계의 유튜브’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 업체는 불과 수년 새 아마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습니다. 판매자들이 오픈마켓을 이탈해 D2C(Direct to Customer) 쇼핑몰로 이동하면서 상점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나서는 등 새로운 시장 변화를 포착한 게 성장세의 비결이 됐습니다.

한편 “집 밖은 위험해”를 외치는 ‘집콕’ 트렌드로 영상 콘텐츠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은 틱톡으로 대표되는 ‘숏폼 콘텐츠’의 부상과 3년 전 등장했으나 조용히 묻혔던 노래 ‘깡’을 소환시킨 ‘깡 신드롬’으로 이어졌습니다.

올해 유튜브에서 국내 뮤직비디오 최다 조회 동영상 2위를 차지한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참고로 1위는 한류 첨병 BTS의 다이너마이트)의 흥행 요인에는 2020년 1분기 전 세계 앱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한 틱톡의 인기, 숏폼 콘텐츠에 익숙한 Z세대에 대한 공략이 맞물려 있습니다. 이제 그저 기업의 ‘관찰 대상’이 아닌 주류 소비자로 등극한 Z세대는 가수 비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한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어두운 터널에서도 빛을 찾은 기업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은 기업과 현상들도 있었습니다. 라임 사태, 이스타항공, 유튜브 뒷광고 논란 등은 업종은 상이하지만 서로를 관통하는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신뢰’라는 키워드입니다. 따라서 감염병보다 기업에 더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것은 윤리의식 결여로부터 비롯된 신뢰 상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상으로의 회귀가 그리웠던 2020년, 이번 호 DBR와 함께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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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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