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2.0’

‘유턴 금지’ 정신으로 애자일 문화 이식
권한 내려놓자 조직이 화답했다

295호 (2020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오렌지라이프는 국내 기업 중 드물게 전사적 애자일 전환에 성공했다. 단순히 회사 내 특정 업무에 애자일 관리 툴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애자일하게’ 바꿨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이 모든 과정을 CEO가 주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직문화를 바꾸는 작업에 리더의 솔선수범과 꾸준한 관심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오렌지라이프 사례는 애자일 전환을 고민하는 경영자들에게 통찰을 준다. 오렌지라이프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 통찰은 다음과 같다.

1) 애자일 전환의 핵심은 결국 ‘리더십’이다
2) 직원을 믿어주면 놀라운 성과로 돌아온다
3) 잘 설계된 가이드라인은 자율과 통제를 양립 가능하게 한다
4)애자일은 적응적 사고다. 계획을 세우기보단 곧바로 실행하라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미라(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019년 경영계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애자일’이었다. 연초부터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롯데그룹 등 주요 대기업 신년사에 이 단어가 등장한 이후 많은 회사가 조직 내 애자일 도입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202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애자일 전환을 시도한다는 기업은 많지만 실제 성공 사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애자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꼽을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애자일을 단순히 하나의 방법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의 애자일 전환 과정을 들여다보면 대다수의 기업이 애자일을 ‘업무를 빨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툴(Tool)’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까지도 다수의 기업은 외부에서 애자일 코치를 모셔와 회사 내 IT 관련 프로젝트에 애자일 코치를 투입하고 스크럼, 칸반, 데브옵스 등 애자일 툴을 활용하는 방법론만을 배우려 했다. 이런 방식은 조직 내 애자일 툴 활용이 가능한 사람의 수를 늘릴 수 있겠지만 애자일 전환의 진정한 목표, 즉 조직 내 의사결정의 기민성(agility)을 높이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다.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애자일 도입은 애초 기대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했고 결국은 “애자일은 한국의 기업 문화에 안 맞는다”는 오해를 낳게 했다.

애자일은 단순히 업무의 속도를 높이는 데 쓰이는 방법론이 아니다. 애자일은 오히려 문화이자 철학에 가깝다. 실제 2001년 애자일 선언문을 통해 애자일을 처음 소개한 애자일얼라이언스(Agile Alliance)의 홈페이지를 보면 애자일 경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경영에서의 애자일은 특정한 방법론이 아니며 일반적인 이론 틀로 볼 수도 없다. 그보다는 어떻게 조직이 애자일 개발자들 공동체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애자일 마음가짐(Agile Mindset)’과 유사한, 일종의 성장 마음가짐(Growth Mindset)을 통해 운영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크럼, 스프린트, 칸반 등 애자일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과 용어들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은 애자일 경영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아무리 이런 도구와 프로세스를 많이 도입하더라도 애자일한 문화가 자리 잡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이하 오렌지라이프)은 국내 기업, 그중에서도 비IT 기업 가운데 조직문화에 천착해 진정한 의미의 애자일 전환에 성공한 회사다. 오렌지라이프는 보수적인 생명보험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애자일 문화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특히 다수의 기업이 애자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하나의 방법론으로 접근한 것에 비해 이 회사는 처음부터 애자일을 조직문화로 인식하고 오랜 준비 기간을 통해 전사적 업무 혁신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CEO가 직접 솔선수범해 변화를 독려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많은 기업이 애자일 조직 벤치마킹을 위해 오렌지라이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에 DBR은 오렌지라이프의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문국 대표이사(사장)와 오민 애자일경영지원실장(전무)을 만나 2년여간의 여정을 들었다. 이들은 애자일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입을 모아 ‘리더십’을 꼽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여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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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소용돌이 속 생존을 고민하다

2017년 여름, 정문국 오렌지라이프 대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의 변화 속도를 회사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렌지라이프는 정 대표가 대표이사를 맡은 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당기순이익도 3000억 원을 넘어 3500억 원을 바라보고 있었고 인당 생산성도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재무 건전성을 따지는 지표인 RBC(지급여력비율) 역시 쟁쟁한 대기업 계열사들을 제치고 1위를 달렸다. 숫자로 드러나는 기업 상황은 매우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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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 대표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불안감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노멀(New normal)이었고, 다른 하나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었다. 뉴노멀은 보험업계에도 영향을 미쳐 보험 시장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 시장의 파이가 커지지 않으면 결국 경쟁은 심화되고 서로 남의 파이를 뺏어오기 위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시 보험업계가 딱 그랬다.

이보다 더 정 대표를 불안하게 했던 것은 ‘디지털 전환’이었다. 2017년을 전후해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금융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IT 역량을 앞세운 핀테크 업체들이 기존 금융업체의 고객들을 야금야금 잠식해 나가면서 이들과의 경쟁이 당면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업계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꼽히는 보험업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험업계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낸 정 대표의 눈에도 보험업계의 기존 질서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정 대표는 “포화상태의 시장에서 경쟁자가 추가되면서 손에 익은 공급자 중심 마인드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정 대표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2017년을 전후해 경쟁사들도 앞다퉈 ‘디지털 전략’을 들고나왔다. 그러나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가입 기간도 길고 영업 시 개개인의 역량이 크게 좌우하는 보험산업의 특성상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당시 보험업계의 디지털 전략이라고 해봐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서비스하는 수준이었다. 정 대표는 “단순히 디지털만 앞세워서는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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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가 생각하기에 기존 생보사들이 핀테크 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단순히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아닌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전환은 결국 ‘고객 중심 마인드세트’로의 변화라고 봤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정 대표는 즉각 조직 혁신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당시 경영조정실장이던 오민 상무(현 애자일 경영지원실장 •전무)를 불러 회사의 변화 방향성을 설명하며 참고할 만한 유사 사례가 있는지 살펴볼 것을 주문했다. 이후 몇몇 컨설팅 업체에 조직 혁신 프로젝트를 의뢰하고 최종적으로 이 중 한 곳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 대표는 본인이 어렴풋이 생각하던 고객 중심 조직의 방향성이 ‘애자일 조직’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 대표는 “리더가 모든 정보와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하는 조직이 아닌 빠르게 변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고객과 접점에 있는 직원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조직을 생각했는데 이 방향성이 애자일 철학과 잘 맞았다”며 “애초에 애자일이 유행하니까 이를 벤치마킹하려고 시도하는 다수의 기업과 다르게 우리는 조직 운영의 방향성을 고민하다 우리가 그리던 그림이 애자일과 흡사해 이를 시도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사내 임원진 설득 위해 유럽 벤치마킹

변화의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실행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주변의 반대를 설득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일단 정 대표 스스로 애자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고 직접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또, 애자일의 특성상 리더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한데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 못하는 이들의 반발도 걱정이었다. 실제 다수의 기업에서 애자일 전환을 시도할 때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직의 상층부에 위치한 임원들이다. 애자일의 핵심 중 하나가 조직의 주요 의사결정권자인 임원들이 독점하던 다양한 정보와 자원에 대한 권한을 실무진으로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원하는 방향성에 맞게 성과를 내며 어렵게 임원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에게 “자, 이제 우리 회사는 애자일 문화로 전환하니 갖고 있는 권한을 위임해 주세요”라고 하면 선뜻 찬성할 임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기 살기로 일해 임원 됐더니 왜 내가 그 자리에 올라가니까 애자일인지 뭔지를 한다고 그러냐?”라는 반응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반대가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7년 당시 오렌지라이프는 실적 면에서나 재무건전성 면에서 업계 최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없이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는데 왜 변화가 필요하냐는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CFO 입장에서는 애자일 전환을 통해 의사결정권, 그중에서도 비용 집행권의 상당 부분이 고객과 접점에 있는 실무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그만큼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대표에게 애자일은 ‘해보다 안 되면 마는 것’이 아니었다. 오렌지라이프가 보험업계에서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임원들의 반발을 예상한 정 대표는 정공법을 택했다. 부사장급 임원 5명을 데리고 유럽의 애자일 전환 성공 기업 참관에 나선 것. 정 대표는 “아무리 말로 전환의 당위성을 설명해도 다들 나름의 반대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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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 대표는 5명의 부사장을 이끌고 2017년 여름, 유럽 출장에 나선다. 당시 이들 일행이 방문한 곳은 5곳이었다. 네덜란드의 ING은행과 ABN 암로은행, 스웨덴 전력 회사인 바텐팔(VATTENFAL), 독일계 보험사 알리안츠의 프랑스 법인, 네덜란드 가전 기업 필립스(Philips)였다. 특히 정 대표와 일행들은 각각 속한 산업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달랐던 기업들이 어떻게 조직원들을 설득해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었는지를 면밀히 살폈다. 당장 한국에 돌아가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 기존의 효율성 중심의 관료주의 조직으로 일하다 고객 중심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한 사례를 직접 보고 싶다고 컨설팅 회사에 요청했다”며 “실제 현장에서 조직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서 내가 그린 방향성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가 유럽에서 눈으로 확인한 5개 기업은 애자일 전환을 한 이유가 제각각이었다. 네덜란드 대표 은행인 ING은행과 ABN 암로은행의 경우는 덩치가 큰 금융기업으로서 고객들의 니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자일 전환을 택했다. 이에 반해 스웨덴의 바텐팔과 프랑스의 알리안츠는 태생이 국영 기업이었기 때문에 관료주의가 팽배했는데 민영화 이후 시간이 지나도 이런 조직문화가 잘 변하지 않자 애자일 혁신을 시도한 사례였다. 다국적 기업 필립스의 경우는 덩치가 큰 다국적 기업 특유의 사업 간, 본부 간 사일로를 깨기 위해서 애자일을 선택한 경우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애자일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애자일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보고 작은 프로젝트에 적용해 본 후 성공 사례를 만들어 조직 내 확장하는 ‘점진적 확산’ 방식을 쓰지 않고 곧바로 전사 문화를 애자일로 바꾸는 ‘빅뱅식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DBR mini boxⅠ ‘애자일 방법론 vs. 애자일 경영’ 참고.)

정 대표는 “애자일은 문화이자 철학이고 이걸 바꿔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시도이기 때문에 사람을 바꾸는 것과 흡사하다”며 “사람은 지속적으로 익숙한 쪽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어 파일럿 형태로 진행하는 것보다는 원칙을 정해 한 번에 전환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인사이트를 출장을 통해 얻었다”고 설명했다.

DBR mini box I
애자일 방법론 vs. 애자일 경영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 출발한 애자일의 특성 때문에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기업은 애자일을 도입할 때 애자일에 적합한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작은 TF를 구성해 관련 툴을 시험해 보고 성공 사례를 만들어 점진적으로 조직에 애자일을 확대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런 점진적 확산(협의의 애자일)은 조직 내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한계가 뚜렷하다.

협의의 애자일의 경우 애자일이 일부 소수만의 미션이라는 인식을 심어줘 진정한 의미의 문화 주도 애자일 전환을 어렵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전 직원이 왜 회사가 애자일 문화를 도입하려 하는지, 바뀌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부 애자일에 적합할 것 같은 프로젝트를 골라 애자일을 시험 적용해 보고 잘되면 확산하겠다는 생각은 설사 이 조직이 성공적으로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해도 리더들이 원했던 ‘확산’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회사 내에서 ‘애자일 TF’를 고성과를 내는 본받아야 하는 조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우리와 결이 다른, 특별 대우를 받는 소수 조직’으로 치부해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애자일 TF가 성공한다고 해도 이 성과가 회사 내 다른 조직으로 퍼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애자일 전환을 위해서는 문화 주도의 애자일 전환, 즉 ‘애자일 경영’을 추구해야 한다. 애자일 경영i 은 조직문화 관점에서 애자일이 어떤 행동과 결과로 이어질지를 규명하고, 새로이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조직을 변화시키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고 관리하는 것은 리더십의 영역이다. 그 때문에 진정한 애자일 전환은 리더십의 변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외부에서 애자일 코치를 영입하는 것보단 회사의 리더십 파이프라인이 애자일 코치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이를 통해 좁게는 자신의 조직에 맞는 애자일 방법론이 무엇인지 주도적으로 찾아야 한다. 또 넓게는 조직에 필요한 문화, 성공에 대한 정의, 가치, 행동 등을 스스로 재정의한 뒤 이를 실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데드라인을 정해놓고 착실히 준비

출장에서 돌아온 정 대표는 본격적으로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전환을 시작한다. 일단 컨설팅 펌의 도움을 받아 전환에 필요한 사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회사 내부에 애자일 전환 준비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이 팀을 주축으로 조직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후 이 밑그림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사내 규정, 인사 체계, 성과 및 보상 시스템 등 전반적인 제도를 바꾸는 작업이 이어졌다.

보통 조직문화 프로젝트는 프로젝트팀 내에서만 내용이 공유된다. 그래서 직원들은 회사 내부에서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그 결과가 공표되면 회사가 시키는 대로 느닷없이 그 방향을 따라야 한다. 그러다 보니 회사가 새롭게 나아가려는 조직 운영의 방향성에 공감하지도 못하고 반발만 심해진다.

이미 십수 년간 다양한 조직에서 대표를 지내며 변화 관리의 어려움을 체험한 정 대표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전환 과정에서 처음부터 직원들에게 과정을 투명하게 오픈하고 직원들을 적극 참여시켰다. 일례로 프로젝트 초기 오렌지라이프에 맞는 조직구조를 만들기 위한 단계에서 각 업무 영역/직급별 구성원을 모아서 총 세 번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또, 전사 직원을 대상으로 한 달 이상 순차적인 애자일 조직 전환에 대한 교육도 실시했다. 이들에게 회사의 변화 방향성과 컨설팅 펌이 제시한 조직 구조 모델을 제시하고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정 사항에 반영했다.

또한 애자일 전환 D-day를 4월1일로 정하고 한 달 전부터 사내에 새로 바뀔 조직도를 공개했다. 향후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원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또한 2월부터는 이른바 ‘개방형 테스트 런(Test run)’을 시작했다. 조직원들이 변화할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두 달 동안 세 개의 스쿼드를 조직해 이 스쿼드에서 애자일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게 한 것이다. 특히 이 테스트 런 팀이 일하는 애자일 오피스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부사장실 앞에 꾸며 전 직원들이 지나다닐 때 이들이 일하는 방식을 자연스레 곁눈질하게 했다. 일종의 ‘애자일 쇼룸’을 운영하며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조직원들에게 변화될 모습을 미리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오민 전무는 “회사 내에 책상 배치부터 회의 방식, 업무 방식이 다른 조직을 만들고 미리 보여줌으로써 직간접적인 교육 효과를 낼 수 있었고 특히 입소문을 통해 ‘애자일해 보니 이렇더라’라는 이야기가 공유되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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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오렌지라이프는 사내 교육, 인트라넷을 활용한 홍보, 분기별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임직원의 변화 관리에 공을 들였다. 특히 정 대표는 조직 개편 전 직원들에게 장문의 e메일(CEO Message)을 보내 오렌지라이프의 조직 개편 당위성을 설명했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며 이해를 도왔다. e메일에서 정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는 고객을 위한 제도와 서비스를 무수히 내놓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며 “저성장이 규범처럼 굳어진 시대에 부서 간 칸막이를 핑계로 고객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막고 진정한 고객 중심 조직으로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어 그는 △크로스펑셔널(Cross Functional) 조직, △엔드투엔드(End-to-End) 업무 수행, △런 앤드 체인지(Run and Chang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오렌지라이프 애자일 조직의 특징으로 제시하며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동료를 신뢰하고 열린 마음으로 의사소통하며, 타인의 실수에 대해 관대하되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아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자”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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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라이프 애자일의 핵심 ‘3+1’

오렌지라이프가 내세운 애자일 경영의 핵심 원칙은 ‘3+1 원칙’이다.

1. 크로스펑셔널 조직

애자일 조직은 부서 간 경계를 허물어 같은 단위 조직 내에 업무 속성에 따라 마케팅•영업•운영 등의 성격이 한데 모인 멀티 기능(cross-function) 형태로 구성된 조직이다. 또한 단위 조직에 자율성과 업무 수행 방식에 대한 전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기존 기능형 조직의 단점인 ‘사일로(silo) 현상’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기존 기능 중심 조직 구조에서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직원 개개인이 달성해야 할 KPI가 있고 이 KPI 달성 여부에 따라 이들의 보상 및 승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평가와 직결되는 업무를 두고 다른 조직의 협업 요청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이 사일로를 없애기 위해서는 조직을 크로스펑셔널하게 바꾸고 협업에 적극적인 조직원을 보상해 주는 방식으로 제도와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2. 엔드 투 엔드

엔드 투 엔드는 업무의 시작부터 끝까지 실무를 맡은 직원에게 권한을 줘서 스쿼드 안에서 업무의 모든 것이 끝나게 하는 개념이다. 기존 조직, 특히 대기업일수록 업무를 잘게 쪼개서 팀별로 부여한다. 이럴 경우 협업도 어렵고 의사결정 속도도 떨어진다. 이에 오렌지라이프는 각 스쿼드에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게 하는 엔드 투 엔드 권한을 줘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이끌고 의사결정의 속도도 높이고 있다.

3. 런 앤드 체인지

애자일 전환은 일하는 방식을 애자일 문화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기업은 혁신을 위한 방법으로 애자일을 시도한다. 그 때문에 시도하고 실패하고 수정해가며 스스로의 애자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보다는 다른 회사의 성공 사례를 무조건적으로 베끼려고만 한다. 그러나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전환에서 혁신은 목표가 아닌 과정이다. 꾸준히 학습하고 실패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집단 지성이 발현되고 수평적인 의견들이 모여 그 안에서 크고 작은 혁신이 일어날 뿐이다.

+) 내재적 동기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고 스스로 의미를 느끼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를 내재적 동기라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조직 운영의 초점은 이런 내재적 동기보다는 금전적 보상이나 승진과 같은 외재적 동기부여에 맞춰져 있었다. 이런 금전적 보상과 같은 외재적 동기부여의 단점은 그 효과의 지속기간이 짧고 일이 복잡하거나 목표가 달성하기 어려울수록 오히려 ‘주의 분산 효과’가 발생해 동기부여를 저해한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내재적 동기부여는 일의 만족을 통한 충족감이 본질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즐기게 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내재적 동기의 특징을 활용해 오렌지라이프는 애자일 전환과 맞물려 내재적 동기가 충만한 직원들을 뽑아 애자일 코치로 육성했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능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회사의 관리나 통제 없이도 내재적 동기는 싹트고 성과는 높아진다는 것이 오렌지라이프의 생각이다. 또한 신입사원부터 CEO까지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8개월의 준비 끝에 4월1일, 오렌지라이프는 본격적인 애자일 조직으로 재탄생했다. 조직 개편을 통해 회사는 3개의 트라이브 아래 18개의 스쿼드를 신설하고 본사 직원 500여 명 중 절반 수준인 200명을 애자일 조직 소그룹으로 배치했다. 기존 마케팅본부와 운영본부를 해체하고 고객 행동 흐름을 기준으로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고객인입트라이브(To the shop tribe), 기존 고객의 만족도 제고를 위한 고객유지트라이브(In the shop tribe), 고액자산가를 위한 HNW트라이브 등 총 세 개의 트라이브를 신설했다. 그리고 각 트라이브의 수장으로 부사장급 임원을 배치했다. 재무•리스크•채널 관리 등 사업의 근간이 되는 백오피스 형태는 기존 기능형 조직 형태를 유지하되 다른 애자일 조직과의 협업을 위해 업무 시 애자일 툴을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애자일 조직화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 구축

전사적으로 애자일 전환을 할 때 많은 기업이 고민을 하는 부분이 바로 애자일 문화에 맞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이다. 눈에 보이는 조직 구조는 애자일 조직을 벤치마킹해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이 조직 구조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제도와 시스템은 단기간에 완성되지도 않고 쉽게 다른 회사 것을 베껴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애자일 경영은 기존의 성과주의 관리 체계와는 그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에 사용하던 평가 시스템이나 성과 및 보상 체계를 그대로 사용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DBR mini box Ⅱ ‘애자일 성과 관리(Agile performance management)의 특징’ 참고.)


오렌지라이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1. 오렌지라이프의 평가 방식

애자일 경영은 ‘협업’을 강조하고 계획보다는 실행을 강조한다. 또 과거 기능형 조직처럼 같은 직무의 사람들을 팀으로 묶어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피어 피드백(Peer feedback)이 중요해진다. 또한 연 단위나 분기 단위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업무 방식이나 기간 등을 정하기 때문에 분기 평가나 반기 평가 같은 기존 방식의 적용이 어렵다. 과감한 시도를 권장하고 실패에 관대하다는 점도 기존의 성과주의 체계를 애자일 조직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오렌지라이프 역시 애자일 전환을 준비하면서 이 점을 고민했다. 조직 내 사일로를 없애고 고객 중심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서 간 협업이 절실한데 협업이 자연스러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 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렌지라이프는 과거 개인별 KPI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성과를 평가하던 모델을 개별 목표 40%, 스쿼드 OKR 평가 60%로 바꿨다. 스쿼드 평가의 비중을 높여 함께 일하는 멤버들 간 협업을 독려하려는 목적에서다. 개인 평가의 경우 개별 직원이 소속돼 있는 챕터의 장이 평가를 진행한다. 이때 챕터의 장이 각 직원이 소속된 스쿼드의 PO(Product Owner)로부터 해당 직원의 업무 역량 및 태도 등에 관한 피드백을 듣고 이를 평가에 참고한다. 스쿼드 평가의 경우 스쿼드가 소속된 트라이브의 장이 각 스쿼드를 평가한다. 다만, 애자일 조직 다수가 절대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데 반해 오렌지라이프는 여전히 상대평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정 대표는 “애자일 전환 후 지속적으로 평가 방식을 수정 보완하는 단계”라며 “애자일 조직의 성과 도출에 적합한 방식을 계속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2. 보상제도

오렌지라이프는 1987년 조지아생명보험의 한국 법인으로 출발했다. 이후 네덜란드생명보험, ING생명보험으로 이름이 바뀌다 2019년 신한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됐지만 태생부터 외국계 기업이다. 그렇다 보니 성과급제가 일찍부터 정착돼 있었고 이로 인해 애자일 전환 시 보상 시스템을 크게 손보지 않아도 됐다. 이는 호봉제 중심의 기업들보다 애자일 전환에 유리한 지점이기도 했다. 오 전무는 “다수의 애자일 프로젝트가 HR 제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다행히 우리는 이 부분에서 큰 무리가 없었다. 단지, 애자일이 기존 경영 기법들과 달리 내재적 동기부여를 강조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성과급 등 금전적 보상 외 직원들의 내재적 동기부여를 이끌어 낼까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오렌지라이프의 보상 체계는 애자일 전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설명한 개인별 평가와 팀 평가를 40 대 60으로 해서 점수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상한다. 다만 내재적 동기부여를 위해 애자일 전환 후 흥미로운 장치들을 몇 가지 선보였다. 이를테면 분기별로 직원들이 직접 애자일 문화를 잘 실천하는 ‘베스트 애자일 동료(Best Agile Colleague)’를 뽑아 칭찬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매 분기 데모데이를 통해 애자일 업무 성과를 공유하고 포상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이 데모데이에서는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사례도 공유된다. 발표가 끝나면 참가자들의 투표로 가장 의미 있는 발표를 한 팀에게 30만 원의 회식권이 돌아간다. 정 대표는 “애자일이 실패를 독려하는 문화라고 하는데 실제 직원들이 새로운 도전을 자신 있게 하려면 실패해도 징계받지 않고 오히려 이를 용감하게 발표하고 공유하는 행동이 박수받을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DBR mini box III
애자일 성과 관리(Agile Performance Management)의 특징

애자일 성과 관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기존 성과 관리 체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직 구성원의 내재적 동기부여에 대한 제도 및 운용 차원의 고민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기본의 성과 관리 체계가 ‘동기부여=금전적 보상’이라는 단선적 전제 아래 조직됐다면 애자일 성과 관리는 구성원의 내적 동기부여에 주목함으로써 구성원별로 동기부여를 이끄는 맥락을 이해하는 데 애쓴다. 애자일 성과 관리의 대표적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자. 애자일 성과 관리는 먼저 ‘스택 랭킹(Stack Ranking)’ 혹은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 등으로 불리는 상대평가 시스템을 반대한다. 상대평가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구성원의 협업과 팀워크 구축을 방해하는 한편, 외부 경쟁 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또 애자일 성과 관리는 금전적 인센티브에 대해 부정적이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복합적인 사고를 요하는 문제 해결과 같은 업무에서는 오히려 효과가 없다는 것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애자일 성과 관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목표 관리 방식인 ‘MBO(Management By Objectives)’ 대신 OKR(Objectives & Key Results)를 활용한다. 경영진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강제로 순차적으로 아래로 내리는 방식인 MBO는 개인의 내재적 동기부여를 저해한다. 또한 개인의 성과를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협업 의지를 떨어뜨리게 된다.

네 번째로 애자일 성과 관리 모델은 평가 및 관리에 집중하기보다는 구성원의 실질적인 ‘성장’을 도출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는 데 집중한다. 애자일 성과 관리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피드백(Feedback)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직이 개인의 실질적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하고 이 배움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특히 기존의 피드백이 다분히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절차에 의해 이뤄지는 반면 애자일 성과 관리를 실천하는 기업은 어떻게 하면 업무 과정 중 자연스럽게, 그러나 진정성 있게 피드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특징이 있다.

3. 예산 활용 및 사업 계획

통상 기업들은 연말이 되면 다음 연도 사업 계획을 세운다. 이 사업 계획에는 내년도 달성 목표와 진행할 사업 내역, 비용 집행 계획 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된다. 많은 기업이 다양한 변수를 예상해가며 한 달 넘은 기간을 계획을 짜는 데 투입한다. 그러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진 요즘 시대에 이런 사업 계획은 대부분 ‘다양한 가정(Assumption)의 합’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틀리기 마련이다.

예산의 사용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면 CBA(Cost Benefit Analysis)를 해 수익성을 분석한다. 그러나 이 수익성 분석에도 다양한 가정이 들어간다. 수출입 프로젝트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환율, 유가, 물류비 등의 변화를 예상해야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라 하면 개발 기간, 투입 인원, 인건비 외에도 다양한 추정이 포함된다. 그리고 추정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렌지라이프는 애자일 조직화를 시작하면서 이런 가정 기반의 CBA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CBA 자체가 무수한 장밋빛 가정들이 들어간 허구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 입장에서는 해당 프로젝트가 무조건 승인이 나야 하기 때문에 이 조직이 만드는 CBA에는 다양한 장밋빛 가정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CBA가 실제 프로젝트 결과와 일치할 확률은 굉장히 낮다. 그럼에도 많은 조직이 여전히 보고와 승인을 위해 수익성 분석과 보고서 작성에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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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집행 역시 과거 일일이 프로젝트마다 CFO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방식을 깨고 의사결정권을 트라이브 리더에게 내렸다. 트라이브 내에서 알아서 프로젝트의 중요도를 정해 예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 대신 각 트라이브에 배정되는 예산은 회사의 리더십 그룹이 정한다. 사업 계획을 통해 내년도에 각 트라이브에 배정될 예산의 총액을 리더십 그룹이 정하면 이 예산 한도 내에서 각 트라이브가 자율적으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오 전무는 “회사에서 수익성 평가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IRR(Internal Rate of Return) 12%만 넘으면 프로젝트팀은 자유롭게 예산을 활용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정 대표가 개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톱 매니지먼트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관행을 없애자고 했을 때는 반대가 심했다. 특히 회사의 CFO가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직원들에게 예산을 맘대로 쓰게 하면 필요 이상의 낭비가 발생해 회사 수익성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대다수 리더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 대표는 “경영진이 ‘what’을 고민하는 역할이라면 실무진은 ‘how’를 실행하는 역할이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정 대표는 “회사의 미래, 방향성을 정하는 what은 경험이 많고 보험업을 가장 잘하는 톱 매니지먼트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실행(how)은 실무자들의 몫”이라며 “리더가 모든 걸 결정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처음부터 가졌던 생각이고, 그렇다면 제도와 시스템도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임원들을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오렌지라이프는 대신 과거에 없던 QBR (Quarterly Business Review)라는 제도를 신설해 예산 활용을 모니터링한다. 분기별로 열리는 QBR에는 CEO, CFO와 부사장급인 트라이브장 등이 참가해 분기별 실적을 공유하고 다음 분기 계획과 예산 사용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임원진이 각 트라이브의 실적 및 예상 집행 현황 등에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통해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수정을 하는 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정 대표는 “회사는 what 때문에 망하지 how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라며 “리더십 그룹이 전문성을 갖고 시장 변화를 잘 파악해 전략을 짠다면 실행단에서 실수가 발생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직원들을 믿고 그들에게 자율권을 주면 이들이 예산을 허투루 쓸 거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직원을 믿고 그들의 본성을 깨우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아직 다수의 리더가 직원들을 믿고 맡기는 것을 어려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렌지라이프의 애자일 2.0

오렌지라이프가 애자일 조직으로 전환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8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쳤지만 초기에는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수개월 동안 교육, 설명회 등을 진행하고 직원들의 불안감을 없애주기 위해 e메일,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알렸지만 직원들에게 ‘낯선 것 =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 내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늘었다. 특히 관리자급보다 연차가 낮은 젊은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시키는 일만 하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의미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렌지라이프는 조직 혁신 초반부터 꾸준히 직원들이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대원칙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이를테면 오렌지라이프 내 스쿼드는 통상 2주 단위로 목표를 점검하고 작업 목록을 작성해 일을 나눈다. 이를 스프린트(Sprint)라고 한다. 또 매일 오전 9시가 되면 스쿼드 참여원 모두가 ‘데일리 스탠드업 미팅’을 약 10분 정도 진행한다. 이 미팅에서는 각자 맡은 업무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애로사항이나 협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누가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방식의 회의가 아니다. 각자 자신의 현황을 공유하고 어떻게 하면 업무를 더 잘 수행할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해진 룰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자 오렌지라이프 내에는 월말 마감 등으로 2주 스프린트는 부담스럽다며 스프린트 기간을 3주로 늘린 스쿼드가 나타났다. 또 스탠드업 미팅 시간을 10시 반으로 바꾼 스쿼드도 생겼다. 시간이 더 지나자 한 부서는 업무 시각화용 ‘스크럼 보드’를 자신들이 편한 방식으로 고쳐 쓰기 시작했다. 크게 진행할 업무(to do) / 진행 중 업무(in progress) / 완료된 업무(done) 등 3사분면으로 나누어져 있던 것에 새롭게 ‘어렵거나 급한 업무’를 추가하는 식이다. 일하는 방식을 스쿼드별로 자유롭게 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스크럼 보드를 수정해 사용해도 “이걸 개발했으니까 우리가 쓰겠습니다”라고 보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접 써보고 좋으면 데모데이 등을 활용해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 오렌지라이프는 애자일 조직 최초 도입 시점인 2018년 4월부터 12월까지를 애자일 1.0(조직 안정화), 2019년 1월부터 애자일 2.0(조직 문화 내재화)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자일 도입의 성과는 무엇일까. 일단, 조직 내부적으로 애자일 전환은 오렌지라이프 내 ‘수평적 조직문화’의 안착도 불러왔다. 직원들 간 사적인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업무 상황에서는 오렌지라이프 내 신입사원부터 CEO까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 오렌지라이프에서는 새로운 상품 혹은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낼 수 있고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상품화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한 짧은 주기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고 바로 직접적인 고객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업무 환경 덕분에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회사의 불필요한 보고 체계가 사라지고 보고서 작성 시간도 줄었다. 애자일 전환 후 임원들은 본인이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스탠드업 미팅에 참가해 현황을 듣는다. 그 덕분에 직원들은 보고를 위한 리포트 작성 시간을 줄여 업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임원들은 넘쳐나는 보고서를 보느라 하지 못했던 회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정 대표는 “왓(what)과 하우(how)를 구분하고 업무의 책임을 실무 부서에 내리면서 오히려 리더들은 더 구체적으로 회사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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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렌지라이프만의 애자일 문화가 내재화되면서 고객 편의성이 높아지는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일단 신상품 준비기간이 짧아졌다. 과거에는 한 부서가 신상품을 개발하면 그 결과물을 다른 부서가 차례대로 넘겨받아 점검하는 과정을 거쳤다. 만약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다시 초기 단계로 돌아가 완성품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업무 처리가 더딜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때를 놓친 상품을 출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과거 2개월가량 걸리던 신상품 준비 기간은 애자일 도입 이후 3∼4주로 대폭 단축됐다. 상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여러 유관 부서가 참여해 실시간 피드백을 진행한 덕분이다. 또 과거 VOC로 접수된 고객의 불만사항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 최소 6개월이 걸렸다면 현재는 2배 가까이 적용 속도가 빨라졌다.

실제로 2017년 개선안 이행 완료 건은 17건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31건으로 2017년 대비 1.8배 증가했다. 오렌지라이프가 업계 최초로 선보인 옴니(Omni) 세일즈 플랫폼 ‘오렌지라이프와 함께하는 오늘’ 역시 영업, 마케팅, IT 인원들이 하나의 스쿼드를 구성해 FC와 고객의 의견을 면밀히 연구하고 적극 반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FC(재정 컨설턴트)의 개인별 맞춤형 페이지로 구성된 이 플랫폼은 론칭 두 달 만에 고객이 100만 명 다녀갔으며 실질적인 상담과 청약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거뒀다.

성공 요인과 시사점

전사적 애자일 전환을 위한 제언

오렌지라이프는 국내 대기업 중 드물게 애자일 경영을 시도해 성공한 사례다. 오렌지라이프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1.애자일 전환의 핵심은 결국 ‘리더십’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건물 16층에는 ‘싱크 왓 룸(Think what room)’이라는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이 회의실 한쪽 구석에는 부서장들이 각자 생각하는 애자일의 모습과 스스로의 미션을 적은 ‘애자일 미션 트리’가 있다. 이 트리 한가운데는 정 대표 자리인데 그곳에는 “유턴금지” 딱 4글자가 적혀 있다. 애자일 도입 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 대표는 “CEO가 적극적으로 독려해 조직에 애자일 문화를 도입해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지 않으면 조직은 과거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적었다”며 “애자일 전환은 시작부터 끝까지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말처럼 애자일 전환은 회사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작업이고,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리더십의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수다. 특히 리더십의 솔선수범은 필수다. 리더십 그룹의 적극적 동참 없이는 애자일 전환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수의 리더는 조직문화를 회사의 전략이나 성과와는 관련이 없는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문제로 치부해 왔다. 그래서 애자일을 도입하려는 대다수의 리더는 애자일을 본인의 업무로 생각하지 않고 별도 담당자를 두고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기만 한다. 이런 방식의 애자일 전환은 변죽만 올리다 끝날 가능성이 크다. 조직원들의 반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오렌지라이프 사례에서 보듯 애자일 경영을 도입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돼야 하는 부분은 리더십이다. 리더십 파이프라인 전체가 애자일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일종의 애자일 코치가 돼야 한다. 오렌지라이프 임원진은 2018년 여름, 단체로 유럽의 주요 기업들을 돌며 애자일 전환 성공 사례들을 학습했다. 그리고 직접 보고 배운 지식과 노하우들을 조직에 이식하기 위해 솔선수범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좁게는 자신의 조직에 맞는 애자일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주도적으로 찾을 수 있었고, 넓게는 조직에 필요한 문화, 성공에 대한 정의, 가치, 행동 등을 스스로 재정의하고 이를 실천 및 유도할 수 있었다.

리더가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고, 이 방향성에 맞게 조직의 제도와 시스템이 바뀌고, 리더십 그룹이 솔선수범해 변화에 동참할 때 직원들도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결국 애자일 전환의 키는 조직의 리더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직원을 믿어주면 놀라운 성과로 돌아온다

최근까지도 많은 기업이 승리한 승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 동기부여의 핵심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외적 동기부여의 문제점에 대한 연구들이 다양하게 진행됐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49년에 해리 할로(Harry Frederick Harlow)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교수가 진행한 ‘붉은 털 원숭이 실험’이다. 그는 붉은 털 원숭이 8마리로 학습 능력에 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원숭이가 풀기 까다로운 기계장치 퍼즐을 고안해 냈다. 그리고 이 퍼즐을 우리 안에 넣어 원숭이들의 반응을 2주일 동안 살폈다. 그런데 우리 안에 퍼즐을 넣자 예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외부 자극이나 보상이 없고 연구자들이 퍼즐을 풀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원숭이들은 집중력, 결단력, 흥미를 보이며 퍼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실험 13, 14일 차가 되자 원숭이들은 퍼즐 풀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1분 이내 퍼즐을 해결하는 비율이 3분의 2나 됐다. 이는 기존 상식에 반하는 결과였다. 즉, 생물학적 욕구와 외부 환경이 제공해주는 보상과 처벌이 아닌 내재적 동기부여의 실체가 드러난 실험이었다.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내재적 동기부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고 그 효과가 검증됐지만 경영학에서는 지속적으로 비주류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갈수록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인해 게임의 룰이 바뀌면서 최근에는 인간의 내재적 동기를 어떻게 끌어올릴지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애자일 경영이 직원의 내재적 동기부여를 강조하는 것은 고객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현업 실무자 개개인의 전문성이 복잡성과 변동성,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최근의 경영 환경을 헤쳐나갈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애자일을 도입한 많은 회사가 피드백을 강조하고 일선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내재적 동기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오렌지라이프 역시 애자일 전환 초기부터 직원들의 내재적 동기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했다. 과거 업무와 목표를 위에서 짜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세분화해 내리던 방식을 벗어나 스쿼드별로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을 정하고 스스로의 목표를 정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주기적으로 애자일 성과를 공유하고 경험을 나누는 ‘데모 데이(Demoday)’를 개최했다. 회사의 문화가 관리와 통제 중심에서 자율과 책임 중심의 문화로 바뀌는 눈에 띄는 성과들이 나타났다. 특히 가장 놀라운 변화는 애자일 전환 전 조직 내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직원들이 애자일 도입 후 놀라울 정도로 성과가 늘었다는 점이었다. 정문국 대표는 “예전에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할 때는 존재감이 없던 직원들이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어 놓으니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고 높은 성과를 올리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며 “내재적 동기부여가 사람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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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레임워크 내 자율

애자일 경영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바로 조직 운영의 문제다. 특히 어떻게 직원들에게 조직의 변화를 이해시키고 변화에 동참하도록 동기부여를 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다.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조직 구성원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율이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업 리더들은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과 운영상 질서를 잡는 것 사이의 긴장 상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리더들은 자율과 통제를 제로섬(zero-sum) 관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잘 설계된 가이드라인만 만들 수 있다면 자율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통제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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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라이프는 애자일 조직으로의 전환을 시작하면서 직원들에게 명확한 조직 운영의 방향성과 목표를 제시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교육을 통해 전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가이드라인을 주고 스쿼드별로 직접 업무를 진행하면서 알아서 수정 보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업무 방식을 수정할 때도 과거처럼 상부에 보고를 하고 승인을 얻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롭게 각자가 맡은 업무에 맞게 수정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줬다. 또한 이렇게 해서 효과가 검증된 방식은 주기적으로 열리는 ‘애자일 데모 데이’와 같은 자리에서 전 직원들에게 공유할 수 있게 했다.

4. 애자일은 적응적 사고, 계획 세우기보단 실행하라

현재도 대부분의 기업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 아래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 후를 내다보며 전략을 짠다. 전통적 조직 관점에서 전략이란 예측과 통제식 접근을 통해 만들어진다. 전략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어림짐작의 가정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목표를 도출하며,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계획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가정과 예측이 정확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미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우리는 코로나19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바꿀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작년 가을에 세워둔 기업들의 2020년도 사업 계획은 이제 아무 의미 없는 휴짓조각이 돼 버렸다. 그래서 애자일 경영은 미래를 예측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실험에도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오류를 수정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애자일 경영에서 전략은 ‘적응적 사고’에 가깝다.

오렌지라이프 역시 애자일 경영을 시도하면서 불확실한 가정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CBA 제도를 폐지했다. 프로젝트 진행자 입장에서는 프로젝트가 통과돼야 하다 보니 무조건 긍정적인 가정들을 가져다 CBA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정확도가 떨어지는데다 이 보고서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보고를 받는 리더 입장에서는 다양한 담당자가 각자 자신의 프로젝트에 맞춰 CBA를 만들어 올리다 보니 보고서 살피느라 회사의 미래를 고민할 시간을 빼앗긴다. 오렌지라이프는 틀린 예측으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일정 기준(IRR 12%)만 넘으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10호 Ontact Entertainment 2020년 12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