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5. B2B 기업의 디지털 전환, 어디에 중점 둬야 하나

마라톤식 디지털 혁신으론 시장 못 따라가
B2B 기업들, 수시로 단거리 레이스해야

291호 (2020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B2B 기업의 고객은 기업이 그 대상이 되므로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디지털 기반 제품과 서비스 모델을 떠올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 IT 기반 운영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소비자가 주도적으로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B2B 영역도 B2B2C(기업 소비자 모두 동시 거래)의 형태로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걸맞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달성하기 위해선 △시장과 고객 정보 확보 △협력업체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 △스마트 팩토리 도입 △조직문화 혁신 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의 디지털 전환 속도에 비해서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는 소비 주기가 길고, RFP, 제안, 협상 등 프로세스가 존재하는 특성 때문에 B2C 기업 대비 B2B 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더디다. 하지만 결국 B2C와 동일한 원리로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주는 회사로 B2B 고객도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내부와 외부의 프로세스를 동기화하는 것이 B2B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다.
- 블레이크 모건(Blake Morgan), 포브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한 노력은 B2C 혹은 B2B 기업이냐라는 구분을 떠나 모든 기업의 주요 경영 키워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금융, 제조 등 영역 구분 없이 관련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때론 기존 IT 서비스의 확대 또는 시스템 고도화의 연장선상에서 주제만 ‘디지털’로 바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성과 광의적인 의미 해석으로 인해 많은 기업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위해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최종 사용자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B2C 기업의 경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데이터와 UX로 무장한 신사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 기업이 보유한 핵심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업의 인접 확장과 이종 간 사업 협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모 금융사는 모바일 통신 서비스를 론칭했다. 얼핏 보면 금융과 아무 상관 없는 사업 모델의 확대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고객 경험 혁신’이 담겨 있다. 이 금융사가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칩은 모바일 인증서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모바일 금융 서비스의 가장 큰 걸림돌인 공인인증서를 대체하게 된다. 고객 경험 관점에서 편리한 인증 기능의 도입은 금융 서비스 이용 고객에게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가장 빠르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한다. 결국, B2C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바로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한 사업 인접 확장과 파트너십 확대가 가장 큰 화두다.


B2B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B2B 기업의 고객은 기업이 그 대상이 되므로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디지털 기반 제품과 서비스 모델을 떠올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 B2B 기업은 디지털과 모바일로 무장한 이른바 ‘포노사피엔스’라는 개인이 아닌 회사를 상대로 하므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자칫 생각하면 기존 IT 기반 운영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B2C 기업에 비해 혁신의 방향과 대상이 기존의 혁신과 큰 차별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B2B 영역도 B2B2C(기업 소비자 모두 동시 거래)의 형태로 결국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 및 서비스가 전달되는 구조다. 즉, B2B 영역에서도 소비자에 의해 빠른 변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소비자의 변화가 산업의 변화를 급속하게 바꾸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의 변화가 기업 및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에서 시작된 키토제닉(Ketogenic) 다이어트(지방을 통해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75∼80%를 섭취하고 탄수화물 섭취는 줄이는 다이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 굶는 방식의 다이어트 부작용을 줄이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지면서 몸을 바꾸어 나갈 수 있어 사람들의 성공 경험은 급속하게 SNS를 통해 퍼져 나가며 해시태그(#Ketodiet, #Ketorecipe)를 통해 공유되고 있다.

새로운 건강식에 대한 소비 변화는 기존 식품 산업의 모습을 서서히 바꾸게 된다. 이때 B2B 기업은 온·오프라인상의 최종 소비자 행동을 파악해 새로운 비즈니스로 연결한다. 오프라인에선 다양한 형태의 프랜차이즈를 설계하고 온라인에선 새로운 판매 채널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고객 접점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마트나 백화점과 같은 유통사는 키토제닉을 위한 코너를 따로 준비하고, 식품제조 업체는 별도의 제품라인업을 구성해 더 다양한 제품을 개발한다. 미국에서 등장한 앰플푸즈(Ample Foods), 불리트프루프360(Bulletproof 360 Inc), 퍼펙트케토(Perfect Keto)와 같은 대형 식품제조, 유통업체가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소비 행동의 변화는 일차적으로 식품을 유통하는 판매점, 소매점 등 B2C 형태의 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다양한 식품제조업과 같은 B2B 기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B2B 기업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원재료의 소싱과 가공 방법, 빠른 리드타임 등 제조혁신과 함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혁신적 배송 수단과 블록체인 기반 원산지 증명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다가간다.

앞서 살펴본 최종 고객의 변화에 따른 기업 변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B2B 기업 입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사용 경험을 주는 모바일, 인터넷 기술 기반의 혁신보다는 기존에 하던 비즈니스 핵심 역량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운영 기반의 혁신에 가깝다. 이제 B2B 기업도 최종 고객의 소리와 정보가 필요하다. 고객은 B2B 기업에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시장 대응 속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를 기업이 기존에 하던 상시 혁신 활동과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혁신의 속도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기존 혁신과의 큰 차이는 훨씬 빠른 변화의 속도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기존 방식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마라톤 선수였다면 B2B 기업의 디지털화는 시장의 필요에 따라 단거리 달리기를 상시로 할 수 있는 회사가 돼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선 고객에 대한 정보력, 파트너와의 동기화된 프로세스, 조직문화 등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만나본 많은 혁신 임원과 주요 최고경험관리자(CXO, Chief Experience Officer)는 기존 혁신과의 차이점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위기감만 고조시키거나 몇몇 파일럿 프로젝트나 IT 신기술 도입만 진행하고도 회사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되고 있다고 믿는 경우도 적지 않다.

B2B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한두 가지 혹은 몇 가지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마라토너이면서 변화의 시점이 왔을 때 수시로 단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회사로 변모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1) 언제 전력 질주(Sprint)로 뛰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 시장과 고객에 대한 정보

(2) 전력 질주할 때 수반되는 다리 근육의 힘뿐만 아니라 허리, 팔, 상체 근육과의 동기화된 움직임: 다리=회사, 상체/허리/팔=파트너(공급처, 협력업체)

(3) 완주할 수 있는 체력과 근력을 생산: 공정자동화(스마트 팩토리) 구현

(4) 전력 질주를 견딜 수 있는 정신력: 조직의 자신감과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시장과 고객에 대한 정보

대부분의 혁신 아이디어는 고객으로부터 나온다. 요가복과 레깅스를 제조하는 국내 A 업체는 2015년 요가와 필라테스 붐이 일었지만 입을 만한 운동복이 없어 사람들은 거의 트레이닝복을 입거나 주로 편안한 옷을 입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운동을 즐기는 소비자는 점점 변해가는 자신의 신체 라인을 점검하고 운동 시 정확한 자세를 알고 싶어 하는 숨은 니즈(Unmet Needs)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러한 시장 니즈를 확인한 A 기업은 2000만 원으로 창업해 현재 매출 800억 원을 바라보는 기업이 됐다. 이렇듯 대부분의 혁신은 시장과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지, 결코 경영자의 머릿속 상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B2B 기업은 최종 소비자의 숨은 니즈를 알기 어렵다. 정보 접근성 또한 떨어진다. 제품이 영업사원이나 대리점과 같은 유통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이 새로운 고객의 니즈를 발굴했다고 해도 그것을 새로운 사업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부서의 협업이 필요하므로 쉽게 현실화하기는 어렵다. B2B 기업이 시장과 고객에 대한 바닥 정보까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접근은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제품에 포함된 IoT 센서나 온라인상에서의 행동 정보를 통해 고객 대신 고객도 모르는 고객의 진짜 숨은 니즈를 알려주는 시대다. B2B 기업의 최종 고객에 대한 정보 수집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아마존의 영업이익 중 약 70% 비중을 차지하는 아마존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s, 이하 AWS)는 추수감사절이나 연말 쇼핑 시즌에 대비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대규모 IT 인프라를 고객에게 임대하면서 시작됐다. ‘우리와 같은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를 하는 고객이 있다면 이런 인프라 임대 니즈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출발한 비즈니스다. 반신반의로 시작한 아마존 인프라 임대 사업이 이제는 대부분의 영업이익을 책임지고 있으며 매년 50%에 가까운 매출 성장을 이뤄 아마존을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의 No.1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아마존의 성장 비결 중 대표적인 것은 고객의 소리를 제품과 서비스에 담아내는 양과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190개국에 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고객의 니즈를 관리해 나가는 작업은 쉽게 이룰 수 없는 혁신의 여정이다. 본사와 권역을 연결하고, 본사와 국가별 지점 간 고객을 중심으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내부의 문화와 제도, 관리 프로세스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 니즈 관리를 위해 AWS 세일즈 담당자의 KPI는 단지 매출에만 국한되지 않고 고객 관계에 초점을 둔다. 예를 들면 (1) 얼마나 새로운 고객을 만나는지 (2) 얼마나 고객의 동향과 숨은 니즈를 파악했는지 (3) PoC(Proof of Concept)와 같은 고객 검증 이벤트를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 등 고객을 이해하고 접촉한 결과를 DB화해 나가는 것에 대한 KPI가 추가돼 있다. 이는 결국 결과(매출)가 아니라 과정(고객)을 중시하는 아마존의 핵심 사상과도 부합한다.

현재 AWS는 클라우드 기반 CRM을 활용해 다양한 고객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바일 환경에서 축적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데 사용하고 있으며, 영업 담당자는 고객의 성향에 따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사전에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영업뿐만 아니라 제품 개발, 서비스에도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있다. AWS는 고객의 목소리가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되는 속도가 바로 진정한 초격차를 이뤄내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원재료 소싱처 등 다양한 파트너와 완벽한 프로세스 동기화


대부분의 B2B 기업 중 제품의 소싱부터 생산, 배송 과정 전체, 즉 고객에게 인도되는 전체 프로세스를 홀로 처리할 수 있는 회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 B2B 기업은 주문, 반제품 생산, 물류, 원료 소싱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파트너와 연관돼 있다. ERP를 중심으로 한 내부 프로세스는 효율화돼 있지만 외부 채널과의 프로세스 동기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영역이다. 대부분 외부 파트너와의 협력은 아직도 e메일, 팩스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존 e메일 방식의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시대에 신뢰를 주기 어렵다.

파트너들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기업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환승할 준비가 돼 있다. 주문 진행과 확인을 전화나 e메일로 받는 회사는 그 회사 역량이나 프로세스 수준에 대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컨설팅을 할 때, 특히 해외 영업 담당자들에게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이제는 회사 명함과 e메일 주소만 가지고 일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내부뿐만 아니라 파트너와의 업무 속도도 디지털 전환을 방해했다.

B2B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궁극적 지향점은 비즈니스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 제공자가 되거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B2B 커머스 수준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FOX사와 같이 디지털 기반으로 파트너들과 밀착해 영업을 전개하는 방식은 파트너와의 관계 혁신을 고민하는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이 다국적 미디어 회사는 다양한 B2B 기업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전 세계 수많은 케이블 TV, 동영상 미디어 서비스 업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콘텐츠 사업자들은 다양한 국가와 언어, 그리고 세금 규정하에 움직여야 하며 그들의 사업 유형 또한 다양하다. 매월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이들의 비즈니스에서는 신속한 콘텐츠의 제공은 매출과 직결된다. 이를 모두 e메일, 전화, 팩스로 처리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신규 콘텐츠가 집중되는 시기에 전 세계 콘텐츠 제공 사업자와 계속해서 계약을 체결하고 비용을 처리해야 하기에 채널 관리 담당자는 아마 너무 바쁘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이를 위해 FOX사는 전 세계 콘텐츠 제공사와 실시간 프로세스 연계를 위해 견적(Quote), 정산(Billing)이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파트너들의 지불 조건과 다양한 유형의 결제 방식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파트너 커뮤니티 사이트를 제공했다. FOX는 파트너들에게 신속한 콘텐츠 공급과 견적, 정산뿐만 아니라 타이틀별, 파트너별, 국가별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분석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분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조한 소비를 보이는 파트너에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등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데이터 기반 영업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이와 같이 B2B 기업에 있어서 파트너는 실제 자사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영업사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프로세스가 자사의 프로세스와 완벽하게 동기화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B2B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 자동화(스마트 팩토리) 구현

2019년 11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자동화 시스템 및 부품 박람회(SPS, IPC, DRIVES 2019)’에서는 클라우드 기반 생태계를 포함, 빅데이터를 접목해 생산/제조 현장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실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다양한 자동화 모델이 제시됐다.

IoT 센서로 수집된 방대한 빅데이터는 모터, 펌프의 이상 진동 유무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자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이러한 데이터는 클라우드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자동화 기술의 진화와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술의 접목은 이제 생산 현장에서 사람의 감(感)에 의존하지 않고 데이터에 기반한 자동 의사 판단과 대응 활동으로 진화됨을 의미한다.

스마트 팩토리의 선두주자인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은 약 20년간 생산량이 13배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인력 수준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품질 수준이나 출하시간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개선됐다. 앞서 열거한 센서기술, 모터기술, 클라우드기술, 가상화기술, 빅데이터 등의 기술적 요소만 가지고는 위와 같은 혁신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공장을 높은 수준의 자동화 레벨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추가로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 관점의 최적화가 선행돼야 한다.

공급망 관점의 최적화는 신뢰할 수 있는 제품 기준 정보 확보, 다양한 유사 제품 모델을 생산하기 위한 플랫폼 기반의 설계, 부품의 적시 조달과 외주 업체 협업이 적기에 완벽하게 뤄지는 구조, 그리고 원가 절감 관점의 부단한 노력이 수반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탄탄한 설계-생산-조달의 서플라이 체인의 기본기를 갖춘 회사여야 진정한 스마트 팩토리를 추진할 수 있다. 단위 공정을 최신의 다관절 로봇이 자동으로 처리한다 해도 전체 서플라이 체인 관점의 최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보기 좋은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도배된 SF 영화나 다름이 없다. 최근 무인 로봇 커피숍에서는 로봇이 빠르게 커피를 만들어 주지만 소비자가 결제하고 커피를 손에 쥐기까지의 리드타임이 길어진다면 결국 전체 최적화 관점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 자동화 수준은 약 25년간의 꾸준한 운영 혁신의 결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걷기가 수월해지기 전에 뛰거나 나는 일은 아이언맨이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명확한 디지털화의 목적 설정과 로드맵 기반의 추진이다.

일부 디지털 기술 공정만 시범적으로 도입해놓고 스마트 팩토리가 구현됐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많다. 또한 상당히 장기적인 투자가 수반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회사들도 많다. 최근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한 많은 회사가 실패를 겪는 이유는 바로 목적이 불분명하고 스마트 팩토리 구현까지의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리는 점 때문이다. 현재의 기술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체 최적화를 할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최근 아디다스가 4년여에 걸쳐 추진했던 ‘스피드 팩토리의 가동을 중단하고 다시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개인화된 소비자의 요구 사항을 맞춘 수억 개의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3D 프린팅 기술이 아직 사람의 손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 공정의 속도가 자동화로 인해 빨라지겠지만 대량 생산이 이뤄질 때에도 그 속도가 유지될 수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디다스 같은 경우 ‘Speed’보다는 ‘Mass Production’이 스마트 팩토리 구현에 맞는 방향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아디다스가 대량 생산에 초점을 두고 일정 기간 사람과 기계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협업하는 스마트 팩토리 모델을 구현했다면 차기 기술이 등장하기까지 충분히 시장과 고객의 니즈에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디다스의 행보를 볼 때 ‘궁극적으로 사람이 없는 ‘무인’ 공장을 지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조직의 자신감과 몰입할 수 있는 환경

하버드대 교수인 에이미 에드먼슨의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조직의 특징 중 하나는 ‘Speak-Up’이 자유로운 회사라고 설명한다. 사실 이렇게 쉽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수직적 계층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기업 문화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무리 ‘90년생이 온다’ 한들 쉽게 자기주장을 펴기 어려운 것이 우리 기업의 현실이며 특히 B2B 제조 기업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품을 생산하는 B2B 기업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일반적으로 하드웨어 제품의 안정성과 스펙 일치가 중요하며, 대량 생산과 납기, 품질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이유로 일반적인 B2B 기업들은 창의성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둔 분업화된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단위 기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목표(KPIs)가 설정돼 있으며, 하향식 위계질서와 부서 간 칸막이인 사일로가 조직화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구성원은 그저 거대한 조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톱니바퀴 하나를 돌리는 역할에 그치기 쉽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 내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습관 때문에 결여된 창의성과 조직 이기주의다. 그렇기에 고객보다는 조직장의 생각 위주로, 창의적인 도전보다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조직 내 관성이 생겼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기업들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최근 대기업 중심으로 애자일(Agile) 경영 기법이 급속하게 도입되고 있다. 애자일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해외 대표 기업들도 많고, 국내 기업들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필자는 직접 경험했던 LS그룹의 애자일 실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국내 대기업에서의 애자일 근무 환경이 가져다줄 수 있는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LS그룹은 2019년 9월부터 애자일을 본격적으로 조직에 이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진 조직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거의 제품과 서비스는 더욱더 고객맞춤형을 요구하며 단위 제품보다는 토털 솔루션(Total Solution) 형태를 요구한다. 다양한 부서와의 수평적인 협업은 이제 생존의 DNA가 됐다. 생존의 DNA를 조직에 이식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바로 그 기업의 10년 후 생존 여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조직의 자신감과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바로 B2B 회사에 꼭 필요한 조직 마인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필요성을 깨달은 조직원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객 관점으로 제품 개발 과정을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고객과의 소통을 위한 MVP(Minimum Viable Product) 기반으로 반복적인 소통을 지속한 결과, 고객으로부터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새로운 해결 방안들이 쏟아졌다. 기존 제품의 업그레이드, 기술 정교화 등에 집중했던 제품 개발 방식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는 제조기업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애자일 방식을 도입한 과제는 △LS산전 스마트 배전 솔루션 △LS산전 스마트 팩토리 플랫폼 △LS엠트론 iTractor 서비스 3가지로 좁혀졌다. 제품 기반에서 솔루션 기반의 상품과 서비스가 과제 대상이 됐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방식이다. 초기 LS그룹의 애자일팀은 사원부터 부장까지 다양한 직급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자유롭게 소통하는 방법조차 잘 몰랐다. 영어 닉네임으로 소통하고, 자기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애자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공간은 기존 사무실 공간에서 완전히 분리했으며 가끔씩 임원들이 방문하더라도 서면 형식의 중간보고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문서 작업은 애자일 이론에 따라 고객 여정에 따라 벽에 빼곡하게 붙여놓은 포스트잇만으로 이뤄졌다. 고객을 만나고 계속해서 MVP를 수정하는 일이 팀의 주된 업무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상품 설계에 필요한 핵심 인력들이 대부분 프로젝트 룸에 상주해 있다 보니 팀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즉시 검증할 수 있었다. 업무 프로세스가 바뀌니 소통방식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이렇게 보낸 약 3개월의 시간 동안 사무실에만 앉아서는 나올 수 없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제휴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자 비로소 애자일 방식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내부에 생기기 시작했다.

조직 내 애자일팀은 스프린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기존 조직에서 일하는 업무 강도보다 훨씬 강했지만 수평적인 환경 속에서 고객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회사생활 중 오히려 가장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무엇보다도 고객 지향으로 일하는 애자일 방식을 통해 고객의 숨은 니즈(Unmet Needs)를 발굴해 사무실에서 떠올릴 수 없는 새로운 솔루션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떠한 아이디어라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미래혁신단장의 강력한 스폰서십은 조직에 자신감을 더해주는 데 큰 몫을 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열린 애자일 데모 데이는 페스티벌 형식의 과제 발표회 스타일로 이뤄져 조직에서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필자가 최근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컨설팅하며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이나 소위 대박을 터뜨리는 영업 프로젝트에 사원과 대리 직급의 젊은 직원들이 많이 포진됐다는 점을 느꼈다. 이들이 소신 있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인재들은 회사의 일하는 문화와 조직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회사의 네임밸류보다 중요시할 것이다. 더불어 이 모든 정보가 SNS에서 손쉽게 공유되고 있는 세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1. B2B Digital Transformation 2020, Forbes
2. “저탄고지 식품이 뜬다. 미국은 지금 키토 다이어트 열풍”, 2019, KOTRA 해외시장뉴스
3. 두려움 없는 조직, 에이미 에드먼슨, 2019
4. Amazon 사례, 인터뷰
5.Fox 사례, 2018 Dreamforce, Salesforce


김평호 ㈜LS 미래혁신팀 부장 phkim@lsholdings.com
필자는 LG전자, HP, PwC 등 16년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 컨설팅을 수행해 왔으며 현재는 ㈜LS 미래혁신단에서 업무를 맡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4호 The Centennial Strategy 2020년 4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