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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8. 이름처럼 영원하지 못했던 재미 한인 기업 ‘포에버21’

기존 성공공식 반복에 협력업체·직원들에게 갑질
‘아메리칸 드림’이 와르르…

윤현종 | 287호 (2019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1984년 미국 LA서 창업한 재미 한인 기업이자 글로벌 패션 유통기업 포에버21은 인근 공급업체에서 트렌디한 제품을 최대한 다양하게, 그리고 저가에 사들여 재빨리 출시하는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기업이었다. 하지만 경영 환경이 변화하면서 경쟁사들이 자체 마케팅, 디자인 조직을 두고 고객과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반면 포에버21은 창업 초기 전략을 20년 넘게 고수했다. 그 과정에서 경영진은 성공을 과신했고, 역설적으로 내부에 ‘실패 요인’들을 축적해 나갔다. 1) 회사의 기반이 돼 온 협력업체 관리 부실 2) 공급선 이탈로 인한 제품 다양성 축소 3) 뒤늦게 구성한 사내 주요 조직 관리 소홀 및 그에 따른 성과 부진 4) 직원들과의 관계 자산 형성 실패 등이 상호작용하며 외부 고객이 이탈했다. 결국 포에버21은 지난 9월30일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연방파산법 제11장(챕터11)에 의한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2019년 11월13일 오후 7시께 서울 명동 포에버21(FOREVER 21) 매장에 들렀다. 회사는 국내 오프라인 영업 종료(24일)를 열흘여 앞두고 있었다. 퇴근 시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을 법할 때를 골랐지만 2290㎡(약 693평) 규모 1층 매장은 한산했다. 손님은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수십 명이 전부였다. 2, 3층 매장도 1층과 비슷한 넓이이지만 이미 영업을 중단한 듯 어두컴컴했다. 에스컬레이터도 멈춰 있었다. (사진 1)



박스에 담긴 발목 양말 여섯 켤레를 집어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갔다. 직원이 결제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1500원이고요, 교환-환불 안 됩니다. 봉투에 넣어드릴까요?”

250원짜리 양말 6개가 담긴 봉투를 살펴봤다. 회사를 상징하는 노란색이 아니었다. 로고도 없었다. 봉투 밑부분을 봤다. 기독교 기업임을 강조하려고 적었던 ‘JOHN 3:16(성경의 요한복음 3장 16절)’도 보이지 않았다.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제작됐던 쇼핑백은 이미 ‘포에버21’이 아니었다. (사진 2) 이 회사는 지난 9월30일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놀라운 성장: ‘영원한 아메리칸 드림’ 꿈꾼 포에버21

포에버21은 사실 회사 존재 그 자체로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의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해왔다. 장도원(65) 포에버21 회장 일가의 남다른 창업 스토리가 한몫했다. 장 회장은 27세가 되던 1981년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넓은 땅에서 기회를 잡고자 했다.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그는 ‘투잡’도 아닌 ‘쓰리잡’을 하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서울 명동에서 커피 배달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미국에서도 커피숍에 들어가 일을 했고, 건물 경비원과 주유소 종업원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이민 4년 차에 접어들던 1984년, 장 회장은 부인 장진숙 씨와 함께 LA 하이랜드 파크에 10대를 타깃으로 한 84㎡(약 25평) 규모의 작은 옷가게를 내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포에버21의 전신인 ‘패션21’이었다. 부부는 ‘새로운 옷을 싸게 사서 싸게 판다’는 장사 원칙을 세웠다. 패션21은 첫해 매출 3만5000달러를 찍었다. 이듬해엔 70만 달러를 기록했다. 부부는 사업을 늘려갔다. 6개월마다 하나씩 새 매장을 열었다. 회사 이름도 ‘포에버21’로 바꿨다. 창업 11년 만인 1995년엔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나 마이애미주에도 매장을 열며 미국 전체로 판매 영역을 넓혔다.



전미소매협회(NRF, National Retail Federation) 등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포에버21의 사업 확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다. 2001년 회사는 2230㎡(약 675평) 규모 플래그십 스토어 4개를 시카코, LA, 마이애미, 텍사스, 캐나다에 세웠다. 이 해에 매출 1억 달러를 기록했다. 창업 20년째를 맞은 2004년엔 6억4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이듬해엔 9억2500만 달러, 2006년 1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림 1)

2010년대 초까지 포에버21은 전성기를 누렸다. 영국 버밍엄 매장을 시작으로 유럽에도 진출했다. 2005년 7개에 불과했던 해외 매장은 2015년 262개로 늘었다. 이 해 회사 매출은 44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 직원은 4만3000명이었다.



영원하지 못했던 성공: 신화에 가려진 실패의 조건들

포에버21이 경쟁사 어느 곳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창업주 일가 중심 경영진1 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경영진이 수십 년간 확고하게 밀어붙였던 전략, 즉 ‘매출 증가’와 ‘확장’으로 요약되는 성공 뒤엔 회사를 파산 법원까지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요인이 잠재돼 있었다.


1. 경영진의 세밀하지 못했던 전략: 25년 넘게 반복한 초기 성공 패턴
포에버21의 사업 전략은 비교적 단순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손님이 ‘탐내는 옷’을 최대한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받아 싸게 판매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고객 행태 조사였다. 패션 문외한이었던 장 회장 부부는 창업 초기 자신의 옷 가게를 찾는 젊은 고객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고 한다. 2 손님들은 옷을 살피기 전에 언제나 가격표를 먼저 확인했다. 부부는 가격만 보고 사지는 않는 손님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파악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합리적 가격대에 맞춰 가게에 갖다 놓겠다고 약속하며 ‘시점’을 못 박았다. 이를 위해 장 회장 부부는 자신들 근거지인 LA의 의류 생산 공장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색감과 색상이 독특하고 트렌디한 제품을 최대한 다양하게, 그리고 저가에 사들여 빠른 속도로 매장에 전시했다. 색다른 옷을 대량으로 들여와 파는, 즉 ‘저가 구매 → 매출 증대 → 매장 확장’의 방식을 반복했다.

문제는 장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이 같은 전략을 2010년대 초반, 즉 창업 25년이 넘도록 특별한 변화 없이 유지했다는 점이다. 업계 글로벌 경쟁자들은 달랐다. 자라(Zara)나 유니클로, H&M 등은 비교적 빠르게 자신만의 전략을 짰고 포지셔닝했다.

자라는 수백 명의 디자이너를 동원해 스타일로 승부했다. 명품 브랜드 셀린과 프라다의 컬렉션을 참고한 제품을 신속히 매장에 깔았다. 독창성은 부족했지만 유명 디자이너 패션을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찬사를 받았다.3 

유니클로는 소재와 개발의 힘으로 경쟁사와 맞섰다. 2006년 시장에 내놓은 발열 속옷 ‘히트텍’이 대표적 사례다. 유니클로의 인기 상품 대부분은 업계 가치사슬의 가장 상단에 있는 섬유회사와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만들어졌다. 4

H&M의 경우 패스트패션에 ‘컬래버레이션’을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 회사는 2004년부터 10여 년간 최소 17회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 9회, 브랜드와의 협업 6회, 스타일 아이콘 협업 2회 등이다. 거의 매년 열린 H&M의 이런 컬래버레이션은 상대적으로 싼값에 명품을 갖고 싶은 소비자 공략에 주효했다. 5

이처럼 경쟁자들은 패스트패션이 고객을 ‘길들일 수 없는’ 대표적인 비즈니스라는 점을 면밀히 파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 애썼다. 반면 포에버21의 변화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매일 400개의 신상품을 쏟아냈지만 전문 디자이너팀조차 없이 작업한 결과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창업 20년이 넘은 회사인데도 전문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이 없었다. 이 기업은 연간 1억 벌 넘는 옷을 구매(2009년 기준)하고 있던 와중에도 유행에 민감한 제품들조차 여전히 LA 공급 업체에 주문했다. 최저임금으로 운영되는 공장들이었다.


2. 이해관계자 관리 부실: 협력업체 잃고 신규 조직 방치
포에버21이 창업 초기의 확장 정책을 20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저렴한 제품을 대량 공급해주는 협력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 서부 섬유 및 의류 생산 ‘허브’로 불리는 LA 남부 자바(Jobber) 시장 상공인들이다. 서울의 동대문 의류시장을 연상시키는 이곳 2500개 점포 가운데 한인이 운영하는 점포는 약 2000개다. 이들은 크게 도매, 커팅, 봉제, 원단 업체로 구성돼 있다. 포에버21이 발주하는 완제품을 저가에 납품하는 한인 업체는 약 500개다. 6 그 결과 회사는 2010년대 들어서도 매장 제품 평균 가격을 15달러 내외로 유지할 수 있었다.7 그러나 회사는 이들과 잦은 파열음을 일으켰다. 노동법 위반과 관련한 일련의 소송은 이들 이해관계자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① 각종 노동법 위반 소송 : 창업 초기 공급선 이탈. 포에버21은 미국 전역에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따라 개장하고 매출 1억 달러를 넘기던 즈음부터8 각종 노동 관련 소송에 시달렸다. 송사의 절대다수는 포에버21에 제품을 공급하던 LA 인근의 협력업체발(發)이었다. 2001년 아시아태평양법률센터(Asian Pacific American Legal Center)와 의류노동자센터(The Garment Worker Center)는 업체들의 피해 상황을 종합해 포에버21을 고소했다. 사유는 노동법 위반이었다. 당시 소송에 참여한 포에버21의 봉제 하청 노동자 19명은 포에버21이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지불했고, 초과 근무 수당 없이 초과 근무를 시키는 등 근로 조건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해당 노동자들을 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미국 전역에서 3년간 포에버21 보이콧 붐이 일었다. 이 3년간의 운동은 ‘Made in L.A.’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기록됐다. 해당 작품은 에미상(Emmy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2004년 12월 합의로 종결됐다.

이후로도 포에버21은 노동법과 관련해 더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2년에는 5명의 직원이 소송을 제기했다. 점심시간 휴식을 보장하지 않았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가방 검사’를 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여기서 가방 검사는 도난 방지를 위해 포에버21이 미국 전 지점에서 행하는 관례다. 퇴근하는 구성원의 소지품을 검사한다는 뜻이다. 계약 조건 외 업무 시간에 추가 수당이 제공되지 않았던 문제도 불거졌다.



이에 미국 연방노동부는 포에버21에 관련 정보를 제출하라는 내용의 소환장을 발부했다. 연방 공정근로기준법(FLSA)상 최저임금 시간 외 근무수당, 기록 보존 등의 법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당시 노동부는 보도 자료를 내고 “포에버21에 발부된 소환장 집행을 촉구한다”며 “FLSA는 고용을 보장받는 직원에게 모든 근무 시간에 대해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주당 40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한 시간에 대해 수수료, 보너스 및 인센티브 급여를 포함한 정규 임금의 절반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피소 기업이 재미교포 회사임을 감안해 해당 자료는 한국어로도 게재됐다. 이례적이었다.

다수의 근로관계 소송을 ‘합의’라는 관행으로 해결해 온 포에버21은 결국 패소했다. 연방법원은 소위 ‘핫굿(hot goods)’ 규정(최저임금 및 초과 근무 수당 지급, 미성년자 노동 금지 등 공정한 노동 관행을 따르지 않고 생산한 제품에 대한 주(州) 간 배송 제한 규정)을 적용해 FLSA를 어기고 생산된 섬유 제품은 배송 자체를 금지했다. 쉽게 말해 법원은 단가를 낮추기 위한 하청업체의 노동법 위반도 원청(포에버21)의 책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2016년 연방 노동부의 단속 결과에서도 포에버21은 ‘규정 최다 위반’으로 1위를 차지했다. 봉제업 근로자 최저임금이 당시 캘리포니아주 최저 시급이던 7달러보다 3달러 모자랐다고 한다. 이때 포에버21과 함께 거론된 로스 드레스 포 레스(Ross Dress for Less)와 TJ맥스까지 총 3개 기업이 미지급한 노동자 임금은 110만 달러로 파악됐다. 이에 연방 노동부는 해당 기업들에 총 130만 달러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포에버21이 법정 다툼을 통해 잃은 것은 추징금만이 아니었다. 1984년 창업 이후 길게는 20년 이상 함께해온 공급선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포에버21에 대한 악평 중 하나가 바로 “말 잘 듣는 공급 업체만 끌고 간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회사는 지속적인 공급가 인하 요구와 환불 규정, 결제 지연으로 악명이 높았다. EZ와 같이 자발적으로 공급을 끊는 업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업주는 “유니클로는 핵심 공급 업체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 H&M은 동남아시아 지역 공급 업체들에 적정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며 “반면 포에버21은 여전히 공급 업체들에 지속적인 단가 인하와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9

이처럼 협력업체들이 이탈하는 현상은 포에버21에 큰 악재였다. 회사가 공급받을 수 있는 일종의 ‘샘플 사이즈’는 다양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독특한 디자인과 10∼20대 취향에 맞는 값싼 아이템으로 승부하는 포에버21 특유의 고객 접근 방식도 지속가능성을 잃기 시작했다.

② 뒤늦게 만든 마케팅-디자이너팀도 ‘관리 부실’. 경영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포에버21은 특히 사업 규모가 정점을 향해가던 2010년대 들어 상대적인 고가 정책을 꺼내 들었다. 조직 변화도 있었다. 장 회장의 첫째 딸 린다 장(Linda Chang)이 2008년 회사 경영에 합류하며 마케팅부서가 처음 만들어졌다.10 2007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자체 디자인팀도 이 무렵 구성됐다.

그러나 회사는 새롭게 영입한 이해관계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우선 디자이너들의 크리에이티브가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회사에서 근무했던 익명의 디자이너는 “독창적인 제품 디자인을 위해 고용됐지만 회사가 ‘저렴하고 복제품에 가까운 것’을 훨씬 더 빨리 매장에 내보내기 때문에 내 디자인이 쓸모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디자이너는 자신의 상사가 스케치한 새 디자인 역시 8개월간 방치됐다고 털어놨다. 11

마케팅 부서를 비롯한 새 조직과 경영진의 관계 설정도 미흡했다. 포에버21 전직 임원들은 “창업주 가족은 경험 있는 임원진을 고용했지만 이런 외부인을 불신했다”며 “(회사는) 최근 몇 년간(2010년대 이후) 각 분야 전문가를 영입했으나 신기술부터 마케팅까지 충고했던 모든 내용을 무시했다”고 증언했다.12 결국 프리미엄 전략도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포에버21은 2016년 1월 220달러짜리 옷을 매장에 내놓기도 했다. 기존 제품 평균 가격보다 10배 가까이 비쌌다. 그러나 같은 시기 경쟁사 H&M은 셀러브리티들과 협업해 500달러 이상의 고가 아이템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이해관계자 관리 부실이 외부 고객 유지 및 창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3. 관계자산 형성 실패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의 관계가 좋아지면 이것은 기업의 자산이 된다. 바로 관계자산(Relationship Equity)이다. 캔 두 개에 맥주가 들어 있다. 하나는 하이네켄 로고가 붙어 있다. 다른 하나엔 아무것도 없다. 내용물이 같더라도 소비자가 하이네켄 로고가 붙은 것을 택한다면 이는 브랜드 자산(Brand Equity)이 위력을 발휘한 결과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경험하는 종업원과의 관계도 일종의 자산이다. 이것을 관계자산이라고 한다. 즉, 종업원과의 관계 때문에 그 가게에 갔을 때 기분이 좋고, 그 직원 덕분에 하나라도 더 얻은 기분이 들어 매장을 찾는다면, 그것은 그 기업이 지닌 관계자산이다. 원래 B2B 시장에서 많이 연구됐던 분야지만 지금은 소비자 개인과 기업의 직원 간 관계로도 범위가 확장됐다. 직원과의 관계가 소비자 구매욕구를 자극할 뿐 아니라 웃돈 등 프리미엄을 얹어서라도 그 제품을 사겠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 13

포에버21이 관리에 실패한 이해관계자 집단 중엔 2만 명 넘는 매장 직원들도 있다. 회사가 이들과의 ‘관계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것 또한 경영진의 실책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했다. 실책의 핵심은 회사가 대중에게 소구하려 한 기업 문화가 정작 직원들의 공감은 전혀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포에버21이 나름대로의 관계자산을 갖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회사는 홈페이지에 “(전략) 이렇듯 비즈니스가 거대한 규모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포에버21은 가족 경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서 가능한 끊임없는 대화와 격려는 다양한 민족이 소통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포에버21을 찾아온 매장 직원들은 ‘가족처럼 소통하고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누리고 싶어서 회사에 지원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포에버21 창업 초기 회사가 추구하던 사업 방식을 배우고 익혀 ‘자기 장사’에 적용하기 위해 취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포에버21은 창업 초기 ‘다양하고도 색다른 아이템’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장 직원들을 비롯한 일반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이들 제품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있었다. 포에버21 본사의 아이템 공급 구조를 체화하는 게 가능했다. 임금이 낮고 처우가 좋지 않아도 나름대로 학습할 요소는 많은 직장이었던 셈이다.

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구인구직 플랫폼 글라스도어(Glassdoor)에 회사 전·현직자들이 내린 평가 내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최근까지 기록된 포에버21 리뷰 5490여 건 가운데 가장 먼저 올라온 2008년의 평가는 직원들이 포에버21의 어떤 점을 좋게 보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 경력자는 “비주얼 머천다이징 분야에서 포에버21은 커리어를 시작하기 좋은 회사다. 패션과 트렌드 관련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다. 패션계 선두주자 격인 회사”라고 적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회사의 단점 또한 확실히 지적했다. 그는 “직원 교육 시스템이 안 좋다. 회사는 매장 직원들을 돌보지 않는다. 급여, 직원 혜택 모두 좋지 않다”고 남겼다. 이어 경영진을 향해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 상호작용의 부족은 매장에서부터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이 아닌, 11년 전의 지적이다. 포에버21이 400개 넘는 매장을 두고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과 1억 달러 넘는 순이익을 내며 1만3000명에 달하는 구성원을 두고 있던 시기였다.

이후에도 직원들은 끊임없이 이 회사의 문을 두드렸고, 평가를 남겼다. 회사의 단점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역대 최고 매출을 찍던 2015년에도 포에버21은 직원들이 꼽은 ‘미국 최악의 직장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회사 특유의 장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파산, 날개 없는 추락

이처럼 성공의 그늘에 가려진 다양한 실패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포에버21의 매출은 2016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7년엔 34억 달러로 2년 만에 25%가 빠졌다. 파산 보호를 신청한 올해는 2015년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 외부 고객들이 떠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미 손님들에겐 포에버21을 찾을 이유보다 ‘굳이 찾을 필요 없는’ 요인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2005∼2010년 사이만 해도 고객들은 포에버21 상품을 두고 “저렴하긴 하다”고 평했다. 구매 이유 하나는 확실했다. 그러나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손님들은 “저렴하지도 않다”고 혹평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외부 요인은 회사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온라인 마켓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한편 경쟁사들은 이미 ‘슬로 패션’이라는 새로운 추세에 올라타고 프리미엄 전략을 본격 실행하고 있었다.

현재 고객이 떠난 포에버21 매장 곳곳은 문을 닫고 있다. 파산 보호 절차에 돌입한 뒤 미국 내 매장 178개의 폐점을 예고한 상태다. 캐나다 매장 44개 전부와 일본 매장 14개도 사라진다. 직원 수의 감소폭은 매장 폐점 추이보다 더욱 가파르다. 포에버21 측이 제출한 파산보호신청 서류에 따르면 본사와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9월 말 기준 약 2만8500명으로 2015년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가운데 풀타임 직원은 약 5000명, 파트타임과 계약 직원은 2만3500명이다. 회사는 이들 피고용인(Employee) 외에도 전 업무 영역에 걸쳐 독립계약직(Independent contractors)과 임시 파견근로자(Temporary workers from staffing agencies)를 채용한 상태다. 포에버21은 공식적으로 약 500명의 임시 파견직을 유지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금전적 손실도 만만찮다. 회사는 이미 아시아, 유럽, 캐나다 매장에서 매달 1000만 달러씩 손해를 보고 있었다. 2018년(과세 연도) 기준 회사의 순운영손실(NOL, Net Operating Losses)은 약 5억6760만 달러였다. 미지급 임금과 건강보험(Health Benefit Plan) 등 직원들에게 미처 주지 못한 보상액도 3712만 달러(최종 금액 기준)다. 미국 파산법 전문가들은 구성원들에게 지급했어야 할 자금조차 모자라는 단계에서 회사가 회생을 위한 ‘골든아워’를 놓쳤다고 평가한다. 포에버21은 이름처럼 영원하고 싶던 꿈을 이렇게 접고 말았다.

필자소개 윤현종 인터비즈 기자 albertyoon07@gmail.com
필자는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LG상사에서 근무했고 이후 헤럴드경제에서 수년간 새롭게 등장하는 국내외 비즈니스 플랫폼 현장을 취재해왔다. 현재 동아일보와 네이버 합작법인 ㈜인터비즈 기자로 일하며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포함한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 기사를 주로 작성하고 있다.


DBR mini box : 분석 및 시사점
팔고 싶은 제품에 ‘스토리’를 담지 못했다

포에버21의 파산보호신청은 전략적 의사 결정, 경영진 구성 및 역할, 경영 수준 개선, 그리고 비시장 전략 측면에서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1. 전략적 의사 결정 측면
1) 새로운 고객 가치 트렌드에 둔감했다.
포에버21은 2010년 전후로 자사 핵심 고객층을 형성하기 시작한 태생적 디지털 인류(Digital Native)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성과 하락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디바이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 디지털 원주민은 1990년대 포에버21이 잘나갈 때의 주요 고객들처럼 단순히 값싸고 디자인이 좋은 옷을 선호하지 않았다. 가성비를 넘어 진정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색깔을 표현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최근 국내에 등장한 ‘참이슬 백팩’ ‘곰표 패딩’ ‘메로나 운동화’ ‘새우깡 잠옷’ 등은 모두 새로움과 복고가 결합한 뉴트로 열풍에 유희적 소비가 더해진 결과라고 한다. 특히 이런 태생적 디지털 인류를 핵심 고객층으로 하는 기업은 이들 삶의 새로운 트렌드, 즉 일상 속 표현, 중시하는 생각, 너무나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일, 그리고 간절히 원하는 꿈을 알아차리는 데 부단한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포에버21은 이런 흐름을 완전히 놓쳤다.

2) 적절한 전략적 움직임의 선택 미흡.
포에버21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전문가들은 무리한 사업 확장의 가속화를 꼽는다. 고유한 포지셔닝을 기반으로 브랜드 정체성 재구축에 노력을 집중시켰던 여타 패스트 패션 기업들의 전략적 움직임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자라는 본연의 스타일을 강화했고, H&M은 강렬한 색감에 집중했으며, 유니클로는 기본 제품 라인의 소재 고급화를 강조했던 반면, 포에버21은 핵심 입지 중심의 매장 대형화와 글로벌 시장으로의 지리적 확장에 많은 공을 들였다.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걷는 동안 포에버21은 크게 내달렸고 얼음판은 결국 깨져 버렸다. 새로운 제품 특성과 시장 지위를 창출함으로써 저성장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던 경쟁 업체들의 틈바구니에서 과거 방식을 그저 대규모로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조차 담보하기 어렵다.

2. 경영진 구성과 역할 측면
1) 자기 과신을 극복하지 못했다.
2012년부터 몇 차례 경영 성과의 부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에버21의 경영진은 자신의 판단을 굳게 믿었다. 사실 포에버21은 매장 대형화와 지리적 확장을 지속했을 뿐 전략 차원의 변화를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쳐 뉴올리언스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 얼마 직전, 미국 국토안보부 통제센터 책임자였던 매튜 브로데릭 장군은 해병대사령부 등에서 30년 동안 비상 작전을 많이 해봐서 잘 안다고 말하며 문제없이 대처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흔히 업계에 큰 족적을 남긴 경영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판단을 내리게 된 과정과 논리에도 크게 애착을 보이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전략적 의사 결정에서 몰입의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 현상이 발생한다. 과거 성공 전략에 오랫동안 집착하는 맹목적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경영 환경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이 급증하는 가운데 올바른 의사 결정을 위해 경영자는 비판적 사고 능력(critical thinking ability)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기존 의사 결정 규칙을 재점검하고 반대 그룹의 논리와 의견을 경청하며 닥쳐올 실패를 철저히 예측해 미리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 다양성, 개방성이 부족했다.
겉으로 드러난 규모나 사업 특성과는 달리 포에버21에는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임원이나 전문 경영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들 한다. 창업자와 가족들은 외부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으며 영입된 전문가들 역시 자신의 제안과 충고들이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아이디어를 개진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영진 내부의 파행과 활력 저하는 효과적인 전략 수립과 실행을 가로막는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창업자가 최고경영자로서 사업과 조직을 총괄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과 함께 조직 내부의 복잡성이 커지고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최고경영자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의 전문 경영자나 임원들로 구성된 최고경영진(top management team, TMT)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의 경우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에 대처하고 경영 실패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경험과 스킬을 지닌 전문가들로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3. 경영 수준(Quality of management)의 개선 측면
1) 고성과 창출 동인의 규명과 관리
포에버21의 과거 고성과 창출은 유행을 중시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젊거나 어린 여성들의 틈새시장을 공략함으로써 이뤄졌다. 가격은 10달러 이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시선을 끄는 특이한 유행을 짙게 반영하던 디자인이 포에버21의 핵심 역량이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최근 포에버21이 추진한 주요 활동과 의류 산업 전문가들의 분석 내용을 비교해볼 때, 아마도 포에버21은 자신들의 고성과 창출의 근원적인 내부 동인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기 직전의 포에버21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보다는 다소 럭셔리한 디자인을 추구했으며 가격 수준 역시 그다지 낮지 않았다. 즉, 자신들에게 초기부터 높은 매출과 수익을 안겨줬던, 성공을 이끌어줬던 기본적인 동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성과 창출의 핵심 동인으로 기업의 내부 특성을 강조하는 자원기반이론(resource-based theory)에서는 일차적으로 보유한 핵심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고 관리하는 기업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지나치게 고착됨 없이 핵심 역량을 집중하거나, 축적하거나, 보완하거나, 유지하거나, 회복시키는 활동을 통해 기업은 산업 평균 이상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대로 된 핵심 역량 관리가 필요하며 노력의 시작은 바로 기업이 보유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에 있다.

2) 전략적 합치성 확보 및 향상
포에버21은 기존의 성공을 이어 가기 위해 더 빠른 속도로, 더 낮은 원가에, 더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했지만 속도 하나를 빼면 대부분 충실하지 못했다. 더 낮은 원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급업체들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를 발전시켜야 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더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을 대우하고 협력이 극대화되도록 이끌어야 했지만 그들의 크리에이티브는 제쳐 두고 모방 제품 등에 상당 부분 집중했다. 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매장 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이 필수적이었지만 그들을 원가 동인으로 파악하며 매몰차게 압박하고 험하게 다뤘다.

포에버21이 해내야 할 것과 실제로 했던 것 사이에는 긍정적 상호작용이 보이질 않는다. 오로지 상충과 갈등만이 있었을 뿐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여러 활동이 높은 합치성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서의 지위를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더 차별화된 것을 더 효율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인 개념의 역설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혁신이라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비시장 전략 이슈 측면

포에버21은 내부 고객 만족과 외부 이해관계자 관리에 크게 실패했다. 기업은 구성원에게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구성원들은 기업을 상대로 여러 차례 소송을 걸었다. 기업은 공급업체들의 고혈을 짜냈다. 공급업체들은 결국 자발적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포에버21은 명성과 평판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10년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에버21에서 일자리를 찾았던 구성원들과 수요처를 발굴했던 공급업체들 역시 포에버21에 헌신할 마음은 처음부터 아마 크지 않았을 것이다.

포에버21의 경우 전략만 없었던 것이 아니다. 좋은 사람, 구조, 시스템, 프로세스, 그리고 동반자 네트워크 역시 갖추질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업의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경제적 이익을 달성하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성장하며 사회적 가치를 혁신해내는 전략적 공유가치 창출이 결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의 주도나 사회 구성원들의 희생이 아니라 모든 생태계 구성원들의 진정한 배려와 협력을 통해 전략적 공유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권기환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kkh1212@gmail.com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창의성학회 부회장, 한국전략경영학회 이사, 한국중소기업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기업 변신, 비즈니스 혁신, 벤처 글로벌화 등이 주요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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