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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혁신, 저성장•고물가 이기는 힘

이재욱 | 16호 (2008년 9월 Issue 1)
한국경제가 저성장·고물가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는 성장에 대한 미련을 일단 접고 물가 상승 억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만큼 물가는 경제정책의 가장 최우선 과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한국은행은 7월 생산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12.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1998년 7월 생산자물가지수가 12.8% 오른 이래 최고 수준이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생산자의 판매가격이다. 이것이 오르면 소비자의 구매물가지수도 곧 오르게 된다.
 
생산자물가지수의 급격한 상승은 최근의 원유·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기업의 조달원가 부담이 판매가격에 전가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기업은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위한 판매가격 인상이 장기적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내외 시장의 소비자들은 다양한 기업의 수많은 상품을 접하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가능하다면 조달원가 부담을 자체적으로 줄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시장경쟁력 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시장물가 상승의 억제에도 도움이 된다.
 
선진기업의 조달혁신 사례
AT커니는 최근 미국·유럽·아시아의 세계적인 기업 295개를 대상으로 한 ‘2008년 조달역량 선도기업평가지수(AEP)’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1992년에 시작됐으며, 34년에 한 번 AT커니가 전 세계 기업의 조달역량 베스트 프랙티스를 연구해 발표한다. 한국 기업은 이 벤치마킹 연구에 참여하지 않아 객관적인 비교가 어렵지만, 해외 선도기업들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은행 부문을 살펴보자. 국내 은행들은 수익의 80%를 차지하는 예대순이자 마진이 2006년 2.8% 수준에서 최근 2% 이하로 떨어져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은행들은 ‘잃어버린 10년’ 동안 불황 극복의 수단으로 조달원가 혁신을 적극 활용해 수익성을 개선했다. 일본의 10대 은행은 연간 총 7조 6000억 원의 절감 대상 중 1조 2000억 원을 절감했고(15%), 이후 3년마다 조달원가혁신 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수행해 약 10% 이상의 원가절감을 지속적으로 달성했다.
 
제조업의 경우 산업별로 다양한 차이점이 있지만 조사 대상이 된 선도기업들은 평균적으로 매년 직접자재 5%, 간접자재 6%, 자본지출 8%, 서비스용역 6%의 비용절감을 각각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특히 요즘처럼 자원 부족이 심각한 글로벌 시장 여건을 고려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자원조달 전략을 직접 관장한다. 각국 대통령이 국가의 자원외교를 직접 챙기는 것과 비슷하다.
 
또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새로운 신제품을 개발할 때나 공급망관리(SCM) 혁신을 추진할 때 지금까지 판매 관점을 우선시한 것과 달리 최근에는 조달전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것을 리버스(reverse) SCM이라고 한다. 원자재 관점에서 벗어나 완제품 자체를 아웃소싱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의 하나다. 애플은 신제품을 아웃소싱으로 생산해 제품원가를 30% 이상 절감한다.
 
최근 선도기업 사이에서는 조달 부문에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핵심인재를 배치하고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조달이 기업 원가 전략을 넘어 공급과 품질 전략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비용절감 노력은 미흡
최근 한국 기업들도 화장실 비데 사용 중지부터 사무실 냉방온도 상향, 사장의 해외 출장 취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용절감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용절감 대책은 사실 효과가 미미하고, 단기적일 뿐이다.
 
반면에 조달원가는 기업 총원가의 5070%에 육박할 만큼 비중이 크고, 조달 혁신을 통해 지속적인 비용절감도 가능하다. 특히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수출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의 경우 이런 조달 전략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선도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조속히 도입해 저성장·고물가 시대의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약 19년간 다양한 산업에서 기업전략, 경영혁신, 재무전략 및 회계감사 등의 경영컨설팅 업무를 수행해 왔다. PwC 글로벌 파트너, 딜로이트컨설팅 코리아 대표이사를 거쳐 2007년 AT커니코리아 대표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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