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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chain & Business

초국가 디지털 은행을 꿈꾸는 페이스북

김지윤 | 281호 (2019년 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9년 페이스북이 자체 가상화폐 리브라(Libra)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백서를 공개했다. 미국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거센 규제 역풍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즈니스계에서는 그 함의를 분석하고 향후 어떤 비즈니스가 펼쳐질지 전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위챗’이 금융 서비스로 발전했듯 페이스북 역시 초국가 디지털 은행이 되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들도 상황 변화를 지켜보면서 재빠르게 리브라를 받아들이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메신저 앱을 포괄하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에 도전하거나 각종 암호자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 본격 진입할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편집자주
한때 ‘투기’나 ‘사기’ 정도로 취급받던 암호화폐와 그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다시 경영계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IT 전문기자로 오랜 시간 활동하고 최근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에서 현장 취재와 연구를 하고 있는 김지윤 기자가 ’Blockchain & Business’를 연재합니다.


지난 6월, 페이스북이 자체 가상화폐 리브라(Libra) 내용을 담은 백서를 공개했다. 거센 규제 역풍과 별개로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예전 싸이월드 사이버머니인 ‘도토리’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24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거대 소셜미디어만으론 부족했던 걸까. 한국 특허청에도 리브라 상표등록출원서를 접수한 걸 보면 페이스북의 ‘도토리 행보’가 그저 농담이라고 보긴 어렵다.

모바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2019년에 싸이월드 애플리케이션이 ‘잘나가는 소셜미디어’였다면 어떨까. 그 시절 우리가 미니홈피 스킨, 배경음악(BGM)을 사기 위해 충전했던 도토리가 지금의 네이버페이, 쿠팡페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도토리가 콘텐츠부터 책까지 판매하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의 거점이 되는 미래도 상상해볼 수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앱으로 전동 킥보드도 대여하는 지금, 이미 국경을 넘나드는 페이스북의 가상화폐 도전은 의미심장하다.

페이스북 리브라는 모바일 시대, 메신저를 중심으로 이미 디지털 금융을 개척하는 중국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위챗에 없는 서비스는 중국에 없는 서비스’라는 말도 있다. 위챗은 메신저로 시작해 간편 결제를 기반으로 택시비 결제, 계좌 이체, 소셜미디어까지 섭렵하고 있다. 위챗 그룹 채팅방은 전자상거래 창구, 인플루언서는 ‘디지털 중개상’이 됐다. 알리페이는 신용등급도 분류해 개인 대출 상품도 제공한다. 과거 인터넷이 사업의 수단이었다면 이제 인터넷은 말 그대로 돈이 흐르는 시장 그 자체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이 리브라와 메신저를 결합해 위챗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북 메신저가 전자상거래 판을 벌인다면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하는 이커머스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리브라 전자지갑 앱은 그간 은행 고유의 영역이었던 고객 금융 데이터도 제공할 수 있다. 누구나 이 전자지갑 앱을 개발해 리브라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융 정보를 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핀테크 서비스를 하는 미래도 불가능하지 않다. 인터넷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사람이라면 리브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페북 코인’, 9년 만에 부활하다

2019년 3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등으로 분산된 메시징 플랫폼을 통합하겠다”며 ‘프라이버시에 중점을 둔 소셜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공식적으로 설명했다. 그간 뉴스피드라는 형태를 중심으로 광고 수익을 얻었던 비즈니스 모델을 메신저 기반으로 크게 재편하겠다는 포부였다. 페이스북을 무대로 일하는 사업자 입장에선 이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리브라는 지난해 12월 ‘굴뚝의 연기’처럼 등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페이스북이 아닌 왓츠앱의 송금 및 결제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개발된다고 보도했다. ‘페북 코인’은 페이스북의 노선 변경을 예견했던 셈이다. 실제로 페이스북 자회사에서 개발하는 리브라용 전자지갑 앱 칼리브라는 저커버그 대표가 언급한 메신저 앱에 모두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2.0의 중심은 메신저, 리브라는 간편 결제 기반으로 이 지각변동을 알려왔다.

페이스북이 디지털 간편 결제 시스템에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0년 미국 핀테크사 멘로파크는 ‘페이스북 크레디트’라는 가상화폐를 개발한 바 있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로 1크레디트당 10센트에 살 수 있는 ‘페북 도토리’였다. 페이스북에서 무언가 구매할 때 이 크레디트가 결제 수단 역할을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이 가상화폐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로스 샌들러 애널리스트는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가 사업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며 “특히 대규모 소액 결제에서 이게 이슈가 됐다”고 진단했다. 아직 모바일 간편 결제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점에 페이스북 크레디트는 실험적인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9년이 흐른 지금 페이스북은 3가지 전환점을 포착했다. 먼저, 사용자들이 점점 뉴스피드 기반의 플랫폼을 떠나 메신저 앱으로 옮겨가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2016년 페이스북은 유저의 소셜미디어 소비 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올해 들어 그 지분은 44.6%로 줄었다. 반면 지난해 하반기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사용자의 60%가 왓츠앱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50% 미만이었던 것보다 더 무게감을 얻은 상태다.

더불어 간편 결제는 모바일 속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필수템’이 되고 있다. 신용카드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애플페이, 삼성페이뿐 아니라 아예 인터넷 은행 역할을 자처하는 위챗페이, 알리페이를 떠올릴 수 있다. 카카오페이, 토스카드, 네이버페이, 쿠팡페이 등 IT 기업에 미리 현금을 예치(충전)해 쓰는 고객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바코드, QR코드, 근거리 무선 통신(NFC), 홍채나 지문 인식을 통한 생체인증 등도 모바일 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이제 20대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옷을 사고, 페이스북에서 마약 베개와 같은 기이한 ‘바이럴 제품 1 ’을 사는 데 익숙하다. 구글플레이에서 게임 아이템을 ‘현질’하고 포인트를 쌓는 것도 예삿일이다. 좋아하는 아프리카 BJ나 트위치 스트리머에게 현금 포인트를 쏜다. 불과 9년 전이었던 2010년, 가수 이효리는 인터파크 광고에 나와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는 말을 모두 믿지 않았다”고 웃어 보였다. 이젠 인터넷에 더 많은 현금이 흘러들었다.

리브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심지어 2000년대 중후반에도 싸이월드는 개당 100원짜리 도토리로 국내에서 1000억 원 이상의 연 매출을 올렸다. 세월이 흘러 디지털 비즈니스가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고객은 갈수록 모바일 앱에 돈을 넣어두고 간편하게 쓰는 걸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다.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은 리브라가 될 것이다. 이 가상화폐를 통해 결제망, 인터넷 은행, 전자상거래 메신저 플랫폼을 모두 노린다. 은행, 카드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이다.



미국발 글로벌 위챗, 초국가 디지털 은행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도입해 준비하는 청사진은 위챗,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플루언서/콘텐츠 마케팅. 여기에 리브라가 접목된다면 어떨까. 이 인플루언서에게 페이스북 단톡방이 생기면 어떨까. 처음에는 쇼핑 목적으로 충전한 리브라를 택시비, 공과금 결제에 쓰는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리브라를 사용할 수 있는 페북 메신저 앱들은 제품 홍보부터 커뮤니티 관리, 간편 결제가 한 큐에 연결된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페이스북의 미래이자 위챗의 현재이기도 하다. 중국의 IT 3대장으로 불리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중 텐센트는 위챗 메신저로도 국내에서 많이 알려져 있다. 중국인 절반가량이 위챗 메신저를 기반으로 친구가 친구에게, 혹은 인플루언서가 그룹채팅방을 통해 제품이나 물건을 판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쇼핑뿐 아니라 송금, 결제, 금융상품 구매도 한다. 김명신 코트라 중국 다롄무역관 관장은 칼럼을 통해 “위챗에선 구성원 사이에 친밀감과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처음 보는 제품이라도 의심이 훨씬 덜하고, 친구가 추천한 제품이 그룹대화방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더 신뢰감을 주는 것으로 여긴다”며 “위챗은 이제 필수 사업 도구가 됐다”고 설명했다.

단지 전자상거래 메신저를 넘어 위챗은 디지털 금융 플랫폼이 된 상태다. 자본시장연구원 간행물에 따르면 텐센트는 알리페이에 이어 중국 2위 모바일 결제 플랫폼 위챗페이뿐 아니라 생명보험, 손해보험 온라인 서비스도 제공하는 금융사다. 위뱅크라는 자체 인터넷 은행을 통해 개인 소액 대출도 해준다. 이미 뮤추얼펀드 라이선스도 획득해 중국 내 자산관리 사업까지 확장했다.

일각에선 페이스북도 이 전철을 밟아 디지털 중앙은행이 되려 한다고 내다본다. 현금을 미리 넣어두고 쓰는 방식은 모바일 간편 결제에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선 어디서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현금 포인트로만 인식돼도 무방하다. 반면 페이스북 입장에선 각국에서 예치될 각종 통화를 하나하나 관리하기보단 이를 하나의 통일된 가상화폐로 수렴해 플랫폼 내에 돈이 활발하게 오가도록 하는 게 사업상 유리하다. 리브라를 받는 여타 앱에 가상화폐를 옮겨 쓸 수도 있으니 폐쇄적인 포인트보다 더 유연한 편이다.

DBR mini box I : 페이스북 리브라는?

페이스북 리브라의 구조는 크게 사용자, 전자지갑 및 환전 파트너, 리브라 네트워크(블록체인), 리브라협회, 리브라 준비금으로 나눌 수 있다.

사용자는 전자지갑 앱이나 암호화폐 거래소 등의 현지 환전 파트너를 통해 리브라를 산다. 이렇게 산 리브라를 블록체인이라는 공동 장부를 기반으로 마음껏 쓸 수 있다. 사용자가 입금한 법정통화는 리브라 준비금으로 들어간다. 기존 간편 결제에서 현금을 내고 포인트를 충전하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다만 리브라를 다시 현금화할 수 있다거나 열린 생태계에서 쓸 수 있다는 점은 큰 차이점이다.

리브라 준비금은 미국 달러 등의 여러 법정통화와 단기 국채로 구성된다. 준비금 구성이 너무 복잡하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담보자산과 별개로 어느 자산을 가격 기준으로 삼을지 모호하다는 의견도 있다. 담보자산은 이자가 발생하는 저위험군 자산에 역으로 투자될 수 있고, 이때 발생한 투자 수익은 리브라협회 운영 비용 등으로 쓰인다.

리브라협회는 리브라 준비금으로 1000만 달러를 낸 설립 멤버로 이뤄졌다. 비자, 리프트, 이베이, 스포티파이, 우버, 페이팔, 칼리브라, 마스터카드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여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리브라 준비금과 공동 거래장부 관리, 통화 및 네트워크 세부 정책 변경 논의 등의 의무를 진다. 설립 멤버가 낸 초기 투자금 외에도 추가 투자금이 리브라 준비금에 포함될 수 있다.


페이스북 자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리브라용 전자지갑 앱 칼리브라는 ‘페북 뱅크’의 심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앱은 앞서 저커버그 대표가 말했던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메신저+왓츠앱’ 통합 앱에 연계될 가능성이 크다. 리브라 간편 결제뿐 아니라 고객의 금융 데이터를 토대로 관련 광고나 금융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 삼성페이가 고객의 신용카드 소비생활에 관심이 많은 것과 유사하다. 『비트코인 제국주의』를 쓴 한중섭 저자는 “리브라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진 미래에는 리브라 신용등급을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거나 데이팅 앱에서 이 등급이 높은 사람을 데이트 상대로 보는 모습도 포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텐센트는 올 초 ‘위챗 신용점수’를 공표했다. 개인 신용등급에 따라 공유 배터리, 우산 대여 시 보증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무인 편의점 및 판매대 이용 시 자동 결제도 가능해진다. 중국에선 위챗 신용점수가 ‘즈마펀’이 점유한 개인 신용평가 시장을 얼마나 뺏어올지 주목한다. 즈마펀은 알리페이 운영사 앤트파이낸셜 산하 신용평가 기구 즈마신용이 앞서 선보인 신용 측정 기준이다. 디지털 발자국에 따라 이 IT 플랫폼을 쓰는 사람은 일상에서 여러 할인 혜택을 받거나 해외여행에 제약을 받게 된다.

지난해 독일 시장 조사 기관 스태티스타 보고서에 따르면 위챗 실사용자 수는 페이스북의 절반에 못 미치는 10억 명 정도였다. 하지만 위챗 전체 매출 규모와 이익은 페이스북의 규모와 비슷했다. 뉴스피드 광장에서 메신저로 자리를 옮기는 전환기에 페이스북은 수익원 다각화를 필요로 한다. 페북2.0은 전자상거래 영향력도 강화하면서 금융 데이터 시장도 개척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리브라는 이 판을 벌이기 위한 주춧돌에 가깝다. 우리가 페이스북을 쓰던 방식은 앞으로 완전히 전복될지도 모른다.



DBR mini box II: 리브라와 규제 문제

페이스북 리브라는 기존 은행 망에 의존해 핀테크 서비스를 선보이던 행보에서 진일보한 형태다. 기존 금융 인프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전자결제망을 구비하는 차원이다. 이는 곧바로 각국 중앙은행과 규제 당국의 반발을 샀다. 백서 공개 한 달 만에 미국 의회가 릴레이 청문회를 열 정도였다.

미 의회는 리브라가 미국 경제의 금융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의 수익 모델이었던 예금, 대출 등의 금융상품이 리브라 경제로 이동한다면 은행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리브라 준비금에 은행과 동일한 기준의 재무건전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부터 리브라협회가 무슨 권리로 자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느냐는 힐난도 이어졌다.

게다가 리브라의 구체적인 요건은 아직 모호한 상태다. 여러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리브라가 정확히 어떤 단위에 가격 기준을 둘지, 뱅크런 i 발생할 시 준비금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불투명하다. 외환 거래에 따른 자금세탁 이슈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화폐는 자본의 가치가 이동하는 수단이다. 권력 문제와 결부될 수밖에 없다. 리브라가 국경을 넘나드는 기업 화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국 규제 당국의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리브라 출시가 한없이 연기된 맥락이다.

물론 이슈는 단순히 리브라를 허용하느냐, 폐지하느냐에 머물지 않는다. 7월 청문회 당시 칼리브라의 데이비드 마커스 대표는 “미국이 디지털 통화와 결제 영역에서 혁신을 리드하지 않으면 다른 국가가 할 것”이라는 방어 논리를 폈다. 이미 중국 인민은행(PBoC) 관계자가 “리브라를 참고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출시할 수 있다”고 언급한 후였다. PBoC는 2014년부터 CBDC를 연구해왔다.

화폐 싸움에서 미국이 디지털 금융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논리는 미국발(發) 리브라가 결국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여지로 읽힌다


리브라에서 엿볼 수 있는 사업 기회는?

한국에 사는 우리는 페이스북 리브라를 어떤 징후로 받아들여야 할까. 리브라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에 더 많은 상거래가 이뤄지는 흐름에서 탄생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제품 광고뿐 아니라 결제까지 이뤄질 것이다. 페북 메신저가 서비스를 알리고 콘텐츠 구독료를 내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리브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리브라 신경제’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도 떠올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인터넷 비즈니스를 섭렵해야 한다는 신호다.

페이스북은 한국 미디어 산업의 구조를 바꿨다. 아침마다 배달된 신문을 통해 뉴스를 접하던 방식에서 앱을 켜면 어떤 소식이든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됐다. 미디어 산업은 소셜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뉴스 중 하나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정보가 흐르던 방식이 파이프라인에서 플랫폼 형태로 바뀐 데 따른 결과다. 클릭 수에 따라 광고비를 벌던 콘텐츠는 종이신문 시절만큼 트래픽을 독점할 수 없었고 네이버나 페이스북에 좌우되는 사업모델에 갇히게 됐다.

리브라도 이와 유사한 변화를 만들어 낼 여지가 있다. 24억 명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된 앱에서 이미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사람도, 자기 콘텐츠를 노출하려는 사람도 넘쳐났다. 여기에 페이스북 간편 결제가 붙는다고 이해하면 어떨까. 칼리브라에 현금을 예치한 사람들은 점차 리브라를 활용해 간단한 송금부터 쇼핑, 콘텐츠 소비, 공과금 납부 등 일상을 보낸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이 돈을 쓰던 방식을 더 간편하게 하고, 또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메신저 전략이 더해진다. 페이스북에서 페이지를 운영해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 인플루언서를 통해 제품 리뷰를 노출했던 방식은 더 긴밀해진다. 서비스의 질만큼 디지털 공간에서 이 서비스가 소비자와 맺는 관계가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자기가 호감을 느낀 브랜드, 좋아해서 믿는 채널에 기꺼이 리브라를 건넨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인스타그램에서 샴푸 광고를 하고, 그 사진을 눌러 리브라로 바로 결제해 배송받는 미래가 머지않았다.



나아가 리브라는 더 과감하게 핀테크 서비스를 시도해봄 직한 토양을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리브라 전자지갑 앱은 누구든지 개발할 수 있도록 코드가 공개돼 있다.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앱에 리브라 전자지갑을 자체 개발 및 탑재하거나 리브라 전자지갑 앱을 만들어 손쉽게 모바일 간편 결제 시장 문을 두드려 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이 가상화폐를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면 이로부터 파생하는 금융 서비스도 연결할 수 있다. 삼성페이가 고객 카드 사용 내역을 토대로 관련 광고를 보여주고, 토스가 P2P 투자 상품을 추천해주는 것처럼 전자지갑 앱을 개발해 리브라 경제 안에서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는 그림이다.

리브라 전자지갑 앱 서비스는 점차 전반적인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지 현금-리브라만 바꿔주는 게 아니라 리브라-비트코인을 교환해주는 가교 구실이다. 반드시 호가(呼價)창을 띄운 코인거래소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리브라뿐 아니라 여러 암호 자산을 고객이 보관하도록 운신의 폭을 넓히는 방향이다. 이는 각 암호 자산과 연결된 앱 서비스, 자산 거래, 분산 투자 헤징 등의 수요와 연결된다. B2B 전자지갑으로 기술력을 갈고닦거나 B2C로 기존 금융자산부터 디지털 자산 정보까지 알려주는 종합 자산 관리 앱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리브라 신경제는 분명 한국에 상륙한다. 재빠르게 리브라를 받아들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메신저 앱을 포괄하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시장에 도전하거나 각종 암호자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자산 시장을 건드리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리브라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새 가상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겠으나 이벤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리브라의 저력은 가상화폐라는 형태 이전에 거대한 가상현실을 구축한 ‘페이스북 월드’에서 비롯된다. 대체할 수 없다면 보완자로 공존해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인터넷에서 돈 버는 법을 빨리 학습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소개 김지윤 블록인프레스 기자 jinny.kim@blockinpress.com
필자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학사를 거쳐 YTN 디지털국 콘텐츠 제작자(CP), IT 매체 아웃스탠딩 기자로 재직했다. 현재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블록인프레스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분산형 플랫폼, 디지털 화폐, 데이터마켓을 비롯한 ‘분산경제(deconomy)’를 취재,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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