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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꿈꾸는 대기업에

최윤섭 | 274호 (2019년 6월 Issue 1)
최근 몇몇 대기업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뛰어들지 말지 고민하는 것을 목격했다. 보통 이런 대기업의 실무자는 ‘무엇’을 할지 경영진에게 보고할 만한 ‘하나’의 문장으로 뽑고 싶어 한다. 유망한 사업 분야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거나 우선순위를 매겨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좁히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이렇게 해야 의사결정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데 있다. 새롭게 태동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헬스케어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가 5년 뒤, 10년 뒤에 어떻게 될지, 어디에 기회가 있을지를 세부적으로 미리 잡는 것은 위험하다. 더욱이 헬스케어는 기술뿐만 아니라 규제, 보험 등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앞날을 가늠하기가 더욱 어렵다.

몇 년 후까지 갈 것도 없다. 올해 이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매우 불확실하다. 미국에서 벤처투자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연일 유니콘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으며, 글로벌 대기업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뉴스를 내놓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규제는 계속 변하고 환자, 의료계, 보험사 모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산업화 때처럼 좁고 세부적인 방향을 미리 설정하는 것은 실패 확률이 높다.

정말 디지털 헬스케어를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구글처럼 해보면 좋을 것이다. 구글은 현재 버릴리, 칼리코, 구글X, 딥마인드, 구글벤처스 등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자의무기록(EMR) 분석 인공지능, 유방암/전립선암 병리 인공지능부터 스마트 콘택트렌즈, 자동수술로봇 개발, 베이스라인 프로젝트, 신약 개발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도 광범위하다. 또 실리콘밸리에서 구글벤처스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벤처투자사다. 암유전체 분석 회사(Foundation Medicine)나 유전정보 분석 스타트업(23andMe), 원격진료 스타트업(Doctor On Demand), 보험사 스타트업(Lemonade, Oscar) 등 투자사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구글이 헬스케어 분야에 마구잡이로 진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회가 생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큰 방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여러 시도를 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정 주제를 미리 선별해 회장님의 지시사항으로 내려보내는 하향식은 이 분야에서 통하지 않는다.

물론 구글이 최근 혈당 측정용 스마트 콘택트렌즈 사업 포기를 선언했듯 다양한 시도 과정에서 실패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뛰어들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온갖 이해관계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새로운 기회에 눈을 뜨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직접 하는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구글벤처스나 다국적 제약사의 CVC처럼 스타트업에 투자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할 수도 있고, 전문성 있는 벤처캐피털이나 액셀러레이터에 LP로 참여할 수도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스타트업만큼 빠르고 린(lean)하게, 때로는 과감한 피버팅(pivoting)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기업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유의미한 움직임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부디 한국에서도 격동의 시기에 좋은 기회를 포착하는 기업이 나오길 바란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필자소개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
필자는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 시스템생명공학부에서 전산생물학으로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탠퍼드대 방문연구원, 서울의대 암연구소 연구조교수, KT 종합기술원 팀장,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연구조교수 등을 거쳤다. 현재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의 소장이며, 헬스케어 스타트업 전문 액셀러레이터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의 공동 창업자 및 대표 파트너를 맡고 있다. 성균관대 디지털헬스학과 초빙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 최윤섭 | - (현) 성균관대 휴먼ICT융합학과 교수
    - (현)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소 소장
    - (전) 스탠퍼드대 방문연구원
    - (전) 서울대 의과대학 암연구소 연구 조교수
    - (전) KT 종합기술원 컨버전스 연구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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