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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GS홈쇼핑의 기업벤처캐피털(CVC) 전략

“고민 뭔가요?” 스타트업과 대기업
‘육성 & 융합’으로 전략적 가치 창출하다

강신형,조진서 | 262호 (2018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대기업의 벤처투자 모범 사례로 꼽히는 GS홈쇼핑 CVC의 특징

1. 간접투자-직접투자-M&A로 이어지는 계단식 접근
2. 웬만한 투자는 본부장 선에서 처리하는 빠른 의사결정 프로세스
3. 쇼핑몰 상품군 확대 & 데이터 분석 기술 확보라는 명확한 투자 방향 설정
4. 도움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찾아내 사내 전문가의 컨설팅을 제공
5. 공동 워크숍, 기술 협업을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 DNA를 사내로 자연스럽게 이식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정윤(미 텍사스대 방송학과 졸업) 씨가 참여했습니다.


해수욕장이 붐비는 여름휴가 시즌. 건강관리 스타트업 ‘다노’에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올여름을 앞두고 이 회사 고객서비스 팀에는 다소 비장한 기운이 돌았다. 이애리 팀장은 두려웠다. 올해도 지뢰밭을 건너야 하나. 딱 1년 전, 새로 출시한 PB(자체 브랜드) 다이어트 식품들이 기대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 활활 팔리면서 고객서비스 담당자들은 새로운 인생 경험을 한 바 있었다.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하는 강성 고객이 늘어난 것이다. 그냥 환불해달라, 반품해달라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몸이 아픈데 이 제품 때문인 것 같으니 책임지라는 사람도 있었다. 컴플레인을 해서 보상해줬는데 다시 구매하고 다시 컴플레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트 구성품 중에서 일부 상품만 환불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어디까지 응해주고, 어디서부터 거절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했다. 다이어트 식품을 팔면서 고객뿐 아니라 직원들의 살도 쪽쪽 빠질 판국이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했던 GS홈쇼핑의 CoE팀 이승준 스페셜리스트(이하 ‘님’) 생각이 났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구조요청을 보냈다. (‘다노’ 사례 참고.) 결국 다노는 고객서비스 20년 경력을 가진 GS홈쇼핑 양현자 부장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무사히 피크 시즌을 넘길 수 있었다. 대기업의 잘 정리된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의 힘이었다. 강성 고객에 대한 대응법을 준비해놓고 나니 훨씬 수월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고 고객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고객서비스 조직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컨설팅도 받았다.

GS홈쇼핑은 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 스타트업을 도와줬을까. 이런 스타트업 육성 활동이 이 회사의 CVC(기업주도 벤처캐피털, Corporate Venture Capital) 전략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13년 7월 창업한 다노에 2015년 12억 원을 투자해 9.2%의 지분을 받았다. 다노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다이어트 분야의 대표적인 앱으로 자리매김했다. 서로 윈윈 관계를 만든 셈이다.

GS홈쇼핑은 2018년 말 기준으로 국내외 약 400여 개 스타트업에 직간접으로 투자하고 있다. 액수로는 약 2800억 원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누적 수익은 402억 원이다. 삼성이나 네이버 같은 IT 산업이나 금융투자업에서는 자체 벤처캐피털을 운영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GS홈쇼핑이 선도적이다. DBR은 이미 2017년 2월 1호(218호)에서 이 회사의 CVC 전략을 상세히 소개했고 이후 수많은 기업, 개인 독자의 질문과 관심을 받았다. 국내 대기업의 CVC 모범사례로 꼽히며 강연 요청도 끊이지 않는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빠르게 변한다. 하루가 한 달처럼, 1년이 10년처럼 흘러가는 곳이다. 케이스 스터디를 한 지 약 2년이 지난 지금, GS홈쇼핑의 CVC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더 발전했을까. 어떤 성과를 냈을까. 문래동 사옥을 다시 방문했다.

그림1 GS홈쇼핑 현황                                         

GS 홈쇼핑
● 브랜드명: GS SHOP
● 직원: 1024명
● 상품취급액I : 4조373억 원
● 매출액: 1조863억 원
● 영업이익: 1413억 원
● 주요주주: GS(36.1%)
● 대표이사: 허태수


지난 케이스 스터디 업데이트
한국의 TV홈쇼핑 산업은 1995년 케이블 TV 개국과 함께 시작했다. GS홈쇼핑(당시 한국홈쇼핑)이 한국 최초다. 현재는 총 17개 업체가 경쟁 중이고 그중 GS홈쇼핑과 CJ오쇼핑,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이 엇비슷한 크기의 ‘빅 4’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 이런 식의 산업 구분과 시장 분석은 무의미해졌다. 영역별 장벽이 무너지며 홈쇼핑 업체들도 TV 채널 위에서만 경쟁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전장이 확대됐다. 사실상 홈쇼핑과 인터넷쇼핑, 대형마트 등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GS홈쇼핑도 브랜드명을 ‘GS샵’으로 변경하고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활용하고 있다.

GS홈쇼핑은 인터넷 초창기였던 2000년에 이미 인터넷쇼핑몰을 열었던 만큼 디지털 역량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모바일 쇼핑 시장의 성장은 이 회사를 긴장시켰다. 스마트폰이 너무 급속도로 유통시장 구도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DBR 케이스 스터디 시즌1이 나왔던 2016년 3분기만 해도 이 회사의 TV/모바일/인터넷/기타 채널의 상품 취급액 비율은 6대2대1대1이었다. TV 채널을 통한 판매가 모바일보다 세 배나 컸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인 2018년 3분기에 모바일 취급액이 TV 취급액을 뛰어넘었다. (그림 1)

젊은 세대는 TV를 보지 않는다. 온 국민이 하나의 제품만 보고 다 같이 그걸 사는 건 싫다는 식이다. 아예 TV가 없는 집도 많아졌다. 모바일 역시 과거 온라인(PC) 쇼핑몰을 열었던 것처럼 사내의 자원을 이용해 대응하려 했지만 불안감이 있었다. 웹 쇼핑몰은 소비자의 구매 패턴과 구매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TV 쇼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객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MD가 엄선해서 넓은 화면에 깔아놓으면 고객은 집에 앉아서 그걸 보고 주문한다. 그래서 비핵심 영역인 IT 개발은 외주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바일은 달랐다. 쿠팡과 티켓몬스터 같은 기업들은 처음부터 모바일로 시작했고 그래서 IT 개발 인력을 모두 인하우스에 배치했다. 매일, 매시간 소비자 반응에 따라 화면 배치를 바꿨다. IT를 아웃소싱하는 대기업은 따라가기 어려운 속도였다. 실제로 창립 이후 꾸준히 올랐던 매출은 2011년 이후 성장세가 꺾이며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 됐다.

그즈음부터 대표이사 허태수 부회장을 비롯한 전 임직원이 ‘모바일 퍼스트’라는 주문을 외우고 다니기 시작했다. 변화의 필요성은 조직 전반에서 느꼈지만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업계 1등, 직원 1000여 명 규모의 조직이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不定)하고 백지에서 새 출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TV와 웹 쇼핑몰 사업은 20여 년 노하우가 응축된 제품 소싱 능력과 고객서비스를 바탕으로 여전히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최적화된 사업구조를 섣불리 바꾸기 어려웠다. 임시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런 이유로 경영진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힘,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14년경의 일이다. “기존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어 성장 동력을 외부에서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TV, 모바일 등 기존 사업부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극심한 경쟁환경에 노출돼 있다 보니 대부분 내부 운영에 바빠 외부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 대응할 여유가 많지 않다. 이때 CVC팀이 나서서 실무 사업부를 서포팅해 줄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미래사업본부 박영훈 전무의 말이다.

다행히 GS홈쇼핑은 2011년경부터 자사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버즈니(홈쇼핑 가격 비교), 텐바이텐 등의 벤처회사에 투자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엔 새로운 분야와 새로운 시장을 탐색한다는 의미였으나 2014년 컨설팅사 액센추어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 등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 사례를 벤치마팅하고 이를 토대로 GS홈쇼핑에 맞는 전략을 수립했다. 그 결과로 미래사업본부라는 조직이 만들어져 본부장(전무)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게 됐고 그 산하에 벤처투자팀, M&A팀, 스타트업 육성팀(CoE, Center of Excellence) 등이 조직됐다. 이들 팀의 인력은 외부 전문가가 70%에 달했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은행, 컨설팅 업체, 대기업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을 뽑았다. 약 30%는 기존 사내 조직에서 수혈했다. 외부의 혁신을 안으로 가져와 기업 내부의 전략과 비전에 맞춰야 하는 두 가지 필요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회사는 지리적 시장 다변화도 추구해왔다. 2009년 국내 업계 최초로 해외(인도) 시장에 진출했고, 이후 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러시아 등에서 현지 사업자들과 공동 투자로 합작법인을 세웠다. 미래사업본부장 박 전무 역시 외부에서 왔다. 그는 액센추어의 전략컨설팅 대표로서 GS홈쇼핑과 인연을 맺은 바 있었다.

계단식 투자 전략
GS홈쇼핑의 벤처 투자는 CVC의 형태를 띤다. CVC는 기업주도 벤처캐피털을 뜻하는데 기업, 특히 대기업이 자체 투자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서 관리하고 육성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 투자기관이나 벤처캐피털은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재무적 투자자(FI, financial investor)로 불리는 데 비해 기업은 보통 전략적 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재무적 투자자들은 3년 내외에 지분을 털고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하나 대기업의 CVC는 시간적, 재무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3년 이상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구글이 운영하는 구글벤처스(GV)가 대표적이고 한국에서도 삼성, 두산, 한화, CJ 등 첨단산업과 문화산업 분야 여러 대기업이 CVC를 운영 중이다. 특히 GS홈쇼핑의 CVC 모델이 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매출 수천억대의 중견기업 중에서도 벤처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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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홈쇼핑의 CVC 투자는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이뤄진다. (그림 2, 표 1) 단숨에 덩치 큰 회사를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간접투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지분을 늘려가며 자사의 전략과 부합하는지를 보고, 옳다 싶으면 물심양면으로 경영을 도와주면서 보유 지분도 늘려가는 방식이다.

● 간접투자: 특정 사업 영역이나 특정 지역에 진입하고 싶은 경우 전문 벤처투자펀드를 통해 여러 스타트업에 간접 투자한다. 간접투자의 경우 개별 스타트업의 경영에 간섭할 수는 없지만 CoE팀 등을 통해 서로 교류하며 해당 시장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 GS홈쇼핑의 가장 큰 간접투자 파트너는 알토스벤처스와 스톤브리지파트너스다. 이들 VC는 자체 조성한 펀드에 GS홈쇼핑을 비롯해 여러 투자자와 정부 모태펀드 등의 자금을 합쳐 넣고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예를 들어 알토스1호펀드는 총 6000만 달러 규모인데 GS홈쇼핑은 그중 500만 달러를 맡았다. 6100만 달러 규모의 스톤브리지펀드에는 2000만 달러를 넣었다. 해외 투자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투자파트너인 시노베이션벤처스(Sinovation Ventures)에 1500만 달러, BRV에 총 4000만 달러, 동남아시아 고비파트너스(Gobi Partners)에 3000만 달러,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VC인 앤드리슨호로비츠(Andreessen Horowitz)에 900만 달러, 500 stratups에 1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간접투자의 경우 파트너 VC들의 판단에 맡기기도 하지만 특별히 GS홈쇼핑이 관심이 있는 기업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VC와도 긴밀한 팀워크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 직접투자: 자사와 협업해 바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지분에 직접 투자한다. 예를 들어 초기 창업 단계를 막 지나 사업모델을 구축한 시기의 스타트업(업계 용어로 ‘시리즈A’ 혹은 ‘시리즈B’)에 10억∼20억 원을 투자하고 지분 10∼20% 정도와 이사회 참여 권한을 얻는 식이다. 시즌 1에는 16개 기업에 직접투자 중이었으나 2018년 말 기준 21개로 늘었다.

● 인수합병: 흔하진 않지만 아예 지분 비율을 높여서 자회사로 편입하는 경우다. 온라인 쇼핑몰 텐바이텐과 에이플러스비(29cm.co.kr)가 이런 형태로 인수됐다. 이 중 에이플러스비는 2018년 약 300억 원에 매각했다. 사간 곳은 한국의 패션쇼핑몰 스타일쉐어다. GS홈쇼핑은 매각대금 중 일부를 스타일쉐어 주식으로 맞교환했다. 전략적 투자자로 시작한 만큼 이 회사와의 끈을 완전히 놓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일쉐어가 상장회사가 아니므로 시장가 계산은 어렵지만 GS홈쇼핑은 이 매각의 차익을 2018년 상반기 실적에 132억 원의 영업외수익으로 반영했다. 같은 기간 회사 전체의 총순이익이 748억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에이플러스비 매각만으로 꽤나 쏠쏠한 이윤을 남긴 셈이다. 1

이렇게 계단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국내와 해외 VC를 적절히 이용해 균형을 맞추는 한편 투자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적 장치도 만들었다. 단순히 돈을 투자하고 지분을 사 오는 데 끝난다면 CVC가 일반 재무적 투자자와 다를 바가 없다. 기업이 원하는 시너지 창출을 위해서는 투자사, 그리고 스타트업 커뮤니티와의 인적 결합이 필수다. 즉, GS홈쇼핑 미래사업본부는 투자자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역할, 거기다가 ‘대가족의 맏형’ 같은 역할까지 맡기로 했다. 그 장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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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E(Center of Excellence)팀
스타트업을 돕는 동아리 선배 같은 존재, 별동대, ‘어벤저스’ 역할을 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전문가들을 모아 놓았다는 의미에서 CoE라 불린다. IT 설계 전문가, 데이터베이스 전문가, UX/UI 전문가, 스타트업 성장(growth hacking) 전문가, 커머스 전문가 등이 소속돼 프로젝트 단위로 투입된다. 항상 사람이 부족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성장을 가로막는 ‘보틀넥’ 이나 골칫거리가 있어도 그 문제를 해결할 만한 역량을 가진 고급 전문가들을 채용할 재무적, 인적 자원이 없다. 그럴 때 GS홈쇼핑의 CoE팀이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 정도 함께 일하며 통쾌하게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컨셉이다.

CoE 팀원들은 각자 자유롭게 활동하며 월요일에만 사무실에 모여서 회의를 한다. 협업을 위해 2년 전에는 슬랙, 구글캘린더 등을 사용했고 2018년 말 현재는 트렐로(Trello)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트렐로는 여러 프로젝트를 여러 구성원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유/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툴이다. 이 팀의 경우 프로젝트를 트렐로상에서 6단계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다. (Develop / Design / In Progress / Completion / Hold / Drop)

시즌 2에 접어든 CoE팀은 자신들의 역할을 확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외국의 3개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의 유명 VC인 앤드리슨호로비츠다. 이들은 지분을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오래 생존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인력, 홍보 측면에서 도와준다. 김보름 과장은 “앤드리슨호로비츠의 경우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팟캐스트와 블로그를 통해서 스타트업을 홍보해주는데 그것만으로도 그 스타트업의 영업이나 인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되더라. 우리 역시 그렇게 GS홈쇼핑 생태계 내 스타트업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벤치마킹하며 연구 중이다”라고 말한다. 두 번째 벤치마킹 대상은 중국의 유명 벤처캐피털 시노베이션벤처스다. 자신들이 투자한 스타트업들 간의 시너지를 내고 스타트업들끼리 서로 필요한 인재를 교류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 측면에서 독보적인 회사라는 것이 김 과장의 말이다. 세 번째 벤치마킹 대상은 구글벤처스다. 구글벤처스는 CoE와 같은 스타트업 도우미 조직을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CoE팀 내에서만 전문가를 찾는 게 아니라 구글이라는 회사 전체에서 전문가들을 찾아내 파트너로 일해달라고 섭외하기도 하고, 회사 밖에 있는 전문가들을 프리랜서 컨설턴트 형식으로 모셔 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글이 투자한 스타트업에 파견하는 것이다. GS홈쇼핑의 CoE 역시 이렇게 보다 유연하고 외향적인 방향의 팀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실제로 타 부서의 전문가를 활용해 스타트업을 돕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다노’의 고객서비스 컨설팅 사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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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IR(Entrepreneur in Residence) 프로그램
관심 있는 스타트업을 아예 GS홈쇼핑 회사 내부로 데려와 업무 공간을 준다. 시즌1 당시 (2016년 말)에는 2팀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현재는 잠정 중단 상태다.

3. GWG(Grow With GS) 파티
GWG는 GS홈쇼핑의 벤처투자 생태계 일원이 모여서 벌이는 네트워킹 모임이다. 보통 분기당 한 번꼴로 개최된다.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고, VC는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다. 때로는 외부 연사를 초대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네트워킹 행사 성격의 GWG를 개최하곤 한다. 베이징과 베트남에서 중국 파트너인 시노베이션벤처스와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한 바 있고 2019년엔 중동 지역에서 개최를 준비 중이다. GS그룹 계열사들과의 소통도 이뤄진다. 2016년 11월 자매회사인 GS리테일과 함께하는 행사도 열었다. GS홈쇼핑이 투자한 스타트업 중 GS리테일의 사업(편의점 등)과 연관 있는 곳을 연결해주기 위한 자리였다.

GWG의 규모는 쑥쑥 커지고 있다. 2018년 10월에는 한국무역협회와 공동 주최로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14회 행사를 가졌다. 맘먹고 치른 대형 행사였다. 193개 스타트업이 참가했고 자체 집계로 242건의 상담이 진행됐다. GS칼텍스, GS리테일, GS글로벌, GS건설 등 GS그룹의 4개 계열사도 각자 투자 상담 부스를 차렸다. 정형권 알리바바 한국 대표, 한 킴 알토스벤처스 대표 등 스타트업 업계 거물들의 강연도 있었다. GS홈쇼핑은 앞으로 연 6회 GWG 행사를 치르고 이 중 1∼2회는 해외에서, 1회는 이렇게 그룹 차원의 행사로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모범적인 대기업-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4. 사회공헌 활동과는 거리를 두다
수년 전부터 정치권의 입김이나 여론의 압력을 받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스타트업 지원에 나섰던 몇몇 대기업과는 달리 GS홈쇼핑은 스타트업 투자를 사회공헌이나 기업 이미지 개선의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잘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언론홍보도 하고 IR(주주 대상의 홍보)도 할 수 있지만 이런 효과는 부수적일 뿐이다. “사회적 기여는 우리의 주목적이 절대 아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하다 보면 청년 창업에 기여한 것으로 비춰질 수는 있겠지만.” 박 전무의 말이다. 이 팀은 오히려 대외홍보에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울 때도 있다. CVC 스타트업 투자는 그 본질상 단기간에 재무적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공보다 실패하는 투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몇몇 스타트업의 실패 사례만 부각하며 ‘GS홈쇼핑의 벤처투자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식으로 가볍게 다루는 언론 보도들이 팀에 골칫거리를 주기도 한다.



CVC 시즌 2의 변화
그렇다면 2년 전 DBR이 처음 이 회사의 케이스를 다뤘을 때와 비교해 현재의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조직 확장이다. 미래사업본부 내에 두 개 팀이 더해졌다. 첫째, 사업개발팀이 생겼다. 이 팀은 스타트업 투자를 통한 신사업개발뿐 아니라 회사 전체의 신사업 개발을 맡는다. 그만큼 미래사업부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반영한다. 또 재무회계와 법무 이슈를 담당하는 투자관리팀도 생겼다. 예전에는 전사 재무조직에서 미래사업본부의 투자 관련 업무도 맡았었지만 이제는 본부 내 별도의 재무팀을 만들어 관리하게 됐다.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직간접 투자 규모도 커졌고, 관리해야 할 투자 파트너의 수도 늘었다. 투자 대상 지역도 5개 대륙으로 확장했으며 컴플라이언스(규제)와 각종 공시 이슈 등 할 일이 많아졌다. 이 팀에는 변호사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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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외형도 확장됐지만 CVC의 철학과 방향성, 세부 전략도 더욱 정밀하게 가다듬었다. 크게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변화 1 투자 포트폴리오 전략의 구체화
GS홈쇼핑의 벤처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은 전사 전략에 연결돼 있다. TV에서 모바일로 쇼핑의 중심이 이동함에 따라 스타트업 투자 역시 전략 방향을 ‘모바일 중심 고객 확대 및 미래 성장 기반 조성’으로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시즌 1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시즌 2에서는 이 전략을 구체화했다. 투자 대상을 크게 두 방향으로 잡은 것이다. (1) 상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스타트업 (2) 데이터 분석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는 스타트업이다.

(1) 상품경쟁력 확보
일방향적 정보 제공 중심인 전통적인 TV 쇼핑과 달리 모바일 쇼핑은 多대多 성격의 쌍방향 플랫폼으로 고객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해서 활용하는지가 핵심적인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GS홈쇼핑 CVC는 모바일 거래에서 상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품군에 전략적으로 선정해 투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 관련 제품군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시장을 선점해 ‘반려동물’ 하면 바로 GS홈쇼핑이 떠오르게 한다는 전략이다.

2018년 4월 GS샵 모바일 사이트 톱 화면에는 ‘반려동물 전문관’이 만들어졌다. 서울시내 어디든 주문 2시간 안에 사료를 배송해주는 펫프렌즈, 펫시터(애완동물 돌보미) 이용권을 파는 도그메이트, 개별 동물 맞춤형 사료를 파는 펫픽 등이 이 채널에 입주한 투자사들이다. 또 주문형 TV홈쇼핑 채널인 ‘GS마이숍’에는 반려동물 전용 CCTV 앱봇 라일리가 등장했다. 집 안에 혼자 남겨진 강아지가 잘 지내고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이다. 싱글 펫맘들에게 히트를 쳤다. 8월부터 9월까지 약 2억 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시중에서 15만∼20만 원대에 팔리는 이 제품의 제조사는 바램시스템이라는 대전 소재 벤처기업으로 2017년 GS홈쇼핑으로부터 3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2) 데이터 경쟁력 확보
두 번째 투자 영역은 유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 데이터 분석 역량이다. 이른바 AI, 빅데이터, 추천 알고리즘 등의 분야다. 국내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페이코(간편 결제 및 마케팅 데이터), ab180(모바일 마케팅 성과 분석툴 서비스)가 있고 로플랫, 레블업, 오드컨셉 등은 스톤브리지펀드를 통해 간접 투자했다.

투자 대상의 방향성을 가다듬는 동시에 해외투자 전략에도 기틀이 잡혔다. IT의 핵심적인 발원지인 미국에는 자회사(GSL Labs)를 뒀고 투자 파트너인 앤드리슨호로비츠를 통해 기술 변화를 탐색하기 위한 초기 단계 스타트업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픽스리(Pixlee), ODK미디어 등이다. 데이터 분석 관련 원천기술을 탐색하기 위해서다. 중국에서는 원천기술보다는 원천기술을 시장에 활용하는 측면(애플리케이션)에 강점을 가진 스타트업들을 접촉한다. 예를 들어, 최신 머신러닝 기술에 대해서는 미국 쪽 스타트업들을 들여다보지만 머신러닝 기술을 실제 모바일 쇼핑몰에 적용해 제품 추천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프로젝트는 중국 쪽 스타트업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중국이 온라인 상거래 규모도 크고 개인정보보호와 같은 측면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가다 보니 최신 IT의 시장 적용 측면에서는 미국보다 중국이 앞서갈 때가 많다는 것이 박 전무의 관찰이다. 중국 스타트업들과 다리를 놓아주는 것은 주로 시노베이션벤처스이지만 미래전략본부 내 중국인 직원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에서 학습한 사항들을 한국 시장에 접목하고, 이를 재적용하려는 곳이 동남아 및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실제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커머스 스타트업에 관심을 두고 투자한다. 2017년 8월 동남아를 중심으로 후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메란티펀드에 총 3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메란티펀드는 AI 기반의 커머스 업체인 ‘세일즈톡’, B2B 온라인 여행 에이전시 ‘Goquo’ 중고차 거래 플랫폼 ‘Carsome’에 투자했다.

변화 2 딜 소싱 프로세스의 세밀화
일반적인 VC 업계의 딜 소싱(deal sourcing, 투자 대상 발굴)은 투자 심사역 개개인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뤄진다. 따라서 경험 많은 심사역을 확보한 VC일수록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으며 투자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대기업, 특히 한국의 대기업이 운영하는 CVC의 경우 투자 경험이 많은 심사역을 외부에서 영입하기 어렵다. VC 업계에 통용되는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VC 업계의 심사역은 일정 기준 초과 투자 수익의 20%를 성과급으로 지급받는다. 그러나 GS홈쇼핑처럼 내부 부서가 직접 투자활동을 하는 경우 인사제도 등의 한계로 VC 업계 수준의 성과 보수 지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기업 CVC의 투자팀은 회사 내 다른 사업부의 인력을 데려오거나 외부에서 경력이 짧은 주니어급 심사역을 채용해 투자팀을 구성한다. 즉, CVC가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심사역의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딜 소싱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환경적 제약 때문에 GS홈쇼핑은 약 30여 개의 VC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을 투자 대상 발굴에 적극 활용한다.

변화 3 내부 투자 심의 프로세스 단순화
국내외 대기업이 운용하는 CVC의 한계로 자주 지적되는 것이 있다. 대기업 특유의 관료주의 때문에 투자 심의 과정이 복잡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VC의 경우 펀드에 출자하는 단순 투자자(Limited Partner, LP)는 투자 심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담당 심사역이나 그 위의 파트너(General Partner, GP)들이 모여 투자를 직접 심의하고 결정한다. 따라서 빠르고 간결하다. 그러나 대기업이 운용하는 CVC는 담당 투자 심사역과 부서장 간의 의견 조율은 물론, 투자 심의에 참여하는 경영진의 숫자도 많고 전문 기능 분야에 따라 요구하는 정보의 수준도 제각각이다. 투자 심의에 주요 경영진이 모두 참여하는 경우 사실상 스타트업의 모든 기능 분야에 대한 철저한 사전 자료가 준비돼야 한다. 또한, 각자 맡고 있는 기존 업무와 회의, 출장으로 바쁜 경영진을 한날한시에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만약 한 번의 회의에서 통과하지 않으면 투자가 상당 기간 지연되곤 한다. 이 경우, 공동 투자를 하는 다른 VC들이나 해당 스타트업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투자 커뮤니티 안에서 그 CVC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GS홈쇼핑의 투자 심의 과정은 외형적인 측면에서 다른 CVC들과 큰 차이가 없다. 내부의 투자 심사역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 심의회가 개최된다. 주요 사업부장과 CTO는 상시 멤버로 모든 투자 심의회에 반드시 참여하고, 의사결정 사안에 따라 관련 임원진 혹은 팀장 등이 추가로 참여한다. 투자 심사역과 스타트업 대표가 심의회에 사업계획서를 발표하고, 해당 스타트업과 GS홈쇼핑이 전략적으로 얼마나 부합하는지, 전략적 임팩트가 어느 정도인지를 중심으로 심의가 진행된다. 투자 금액이 아주 큰 경우(수백억 원대)에는 이사회 의결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세부적인 운영 측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투자 금액이 100만 달러 미만일 경우 미래사업본부장이 직접 결정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소액의 초기 투자를 공격적으로 진행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또한 벤처투자팀은 투자 심의회에 참여하는 각 분야의 경영진을 사전에 만나 필요한 보고를 미리 진행하고 본 심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변화 4 내·외부 교류를 통한 전략적 가치 창출
CVC 시즌2에서 GS홈쇼핑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내·외부 교류를 통한 전략적 가치 창출이다. 다시 말해, 스타트업 생태계와 GS홈쇼핑을 보다 밀접하게 엮는 일이다. 이는 대기업 내부의 역량을 가지고 외부의 젊은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육성(fostering)’, 반대로 외부 스타트업 사람들의 혁신성을 대기업 내부로 가져오는 ‘흡수(absorption)’의 쌍방 작용으로 일어난다.

스타트업 육성을 주도적으로 맡고 있는 것이 앞서 언급한 어벤저스팀, CoE다. 이 팀의 최근 활동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육성’과 ‘흡수’ 활동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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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육성 사례 1
건강 관리 스타트업 다노의 고객서비스 컨설팅

서론에서 잠깐 설명한 다노는 다이어트 및 건강 관련 스타트업이다. 창업자 이지수 공동 대표는 20대 초반에 체중을 약 20㎏을 감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다이어트 노트를 페이스북에서 지인들과 공유했는데 예상 밖의 인기를 끌면서 사업화하기로 마음먹었다. 2013년 정범윤 공동 대표와 함께 건강 정보 앱 다노를 설립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다노샵을 개설해 다이어트 식품 판매를 시작했고 2015년 GS홈쇼핑의 투자(12억 원, 9.2%)를 받았다. 당시 1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다노의 식품 비즈니스가 성장하며 고객서비스 이슈도 함께 커졌다. 다이어트 관련 식품은 시즌별 판매량 변동폭이 크다. 보통 사람들이 새해 다짐을 하는 1월, 그리고 비키니 수영복이 많이 팔리는 여름휴가 시즌에 급격히 많이 팔린다. 2017년 여름 다노가 론칭한 PB 다이어트 식단 세트가 예상 밖의 큰 인기를 끌었다. 전례 없이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무리한 반품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강성 고객들의 수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전까지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고강도 항의들이 들어왔다.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좋았지만 담당 직원들의 감정노동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시 찾아온 2018년 여름 시즌을 앞두고 다노의 고객서비스를 담당한 이애리 팀장은 고민에 빠졌다. 올여름도 악몽을 겪어야 하나 싶었다. 다노의 고객서비스 실무자는 5년의 관련 경력이 있으나 식품산업은 처음이었기에 100% 대응할 자신은 없었다. 이 팀장은 인터넷을 뒤져보고 지인들에게도 의견을 구했지만 어디에도 식품 관련 고객 컴플레인 응대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업체들은 고객서비스 노하우를 꼭꼭 숨긴다. 그리고 이 팀장이나 다노 직원들의 지인들은 비슷한 나이대의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험은 적었다. 이 팀장이 ‘아무래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평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말했던 GS홈쇼핑의 CoE팀 이승준 님이 생각났다. 구조요청을 보냈다. 이승준 님은 흔쾌히 응했다.

2018년 7월, 문래동 GS홈쇼핑 사옥을 찾은 이애리 팀장과 실무자는 놀랐다. 기다리고 있던 것은 CoE팀만이 아니었다. GS홈쇼핑에서 20여 년간 온갖 종류의 고객 컴플레인을 다루며 잔뼈가 굵은 업계 최고 전문가, 양현자 부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된 ‘회의(knowledge transfer session)’에서 그 전문가는 이 팀장이 가져간 질문지에 대해 답을 해주는 것은 물론 조직 구성과 상세한 업무 매뉴얼까지 가르쳐줬다. 예를 들어 고객서비스 담당자의 연봉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몇 년 경력자가 좋은지, 구인공고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반품기준과 회계 처리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의 디테일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다노의 이 팀장은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서 GS홈쇼핑에 도움을 요청했다. ‘대기업은 아무래도 웬만하면 고객 요청을 들어주는 방식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경하게 대처하라는 부분이 있어서 놀랐다. 고객 응대에도 나름의 룰이 있더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보상을 해주기로 했을 때는 반드시 ‘같은 문제로 다시 컴플레인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는 점, 구입한 식품을 먹고 탈이 났다고 주장하는 고객에게는 병원의 진단서가 아니라 진료기록을 요청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됐다. 또 강성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았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말투는 어때야 하는지 등이다.

이렇게 준비해놓은 덕분에 2018년 여름 시즌은 이전 해에 비해 고객 응대 담당자들이 훨씬 감정 소모를 덜 할 수 있었으며 사업 역시 지속 성장했다고 이 팀장은 말한다. 이 교육 세션을 성사시킨 GS홈쇼핑 CoE팀의 이승준 님은 다노가 상당한 시행착오를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서비스는 홈쇼핑 업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특히 우리 회사는 초창기부터 경영진의 철학에 따라 고객서비스를 핵심 경쟁력으로 키워왔다. 스타트업이 아무리 고객서비스를 열심히 한다 해도 GS홈쇼핑이 하는 정도의 운영 디테일까지는 알기 어렵다.” 고객서비스 전문가인 양현자 부장 역시 자신의 지식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 보람을 느끼고 현업에 바쁜 중에서도 CoE팀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이렇게 GS홈쇼핑 사내의 전문 역량을 활용하는 형식의 스타트업 육성은 앞으로 더욱 확장할 예정이다. 다노의 사례를 통해 GS홈쇼핑 사내에 숨은 고수들이 많이 있고, 그들의 역량이 스타트업에서는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스타트업 육성 사례 2
반려동물용품 쇼핑몰 펫프렌즈와 함께한 디자인 스프린트 및 UX/UI 리뉴얼

2015년 9월 사업을 시작한 펫프렌즈는 ‘서울 전 지역 반려동물용품 최대 1시간 내 배송’이라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눈길을 끄는 업체다. 슬로건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반려동물 심쿵배송’이다. 업체 측에 따르면 고객 재구매율이 85%에 달한다. GS홈쇼핑은 2018년 초 이 회사에 직접 투자했다. GS홈쇼핑의 반려동물 전용관에 입점시킨 것도 물론이다. 2

로켓 성장을 하고 있던 다노와 마찬가지로 펫프렌즈에도 고민은 있었다. 이들의 고민은 IT와 UX였다. 특히 모바일 앱의 편의성이 아쉬웠다. 앱을 리뉴얼해서 고객 편의성을 높이고 구매를 촉진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하루하루가 미친 듯이 돌아가는 스타트업 특성상 차분히 앉아서 고민할 시간도 부족했다. 문제가 뭔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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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팀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UX/UI 전문가인 서예령 님의 차례. 그는 잡플래닛 등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으며 이후 CoE팀에서는 구글의 ‘스프린트’ 방법론을 여러 스타트업에 활용해서 성과를 거둔 바 있었다. 펫프렌즈에서도 스프린트를 활용해보기로 했다. 스프린트(Sprint)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경영서로 유명해진 구글의 제품개발 방법론이다. 1주일, 정확하게는 월화수목금 딱 5일 동안 미친듯이 일해서 아이디어 구상부터 시제품 완성과 사용까지의 한 사이클을 끝내는 것이다. 빨리 실행해보고 빨리 실패해보는 것이 핵심이다. ‘스피드’를 생명으로 생각하는 펫프렌즈의 기업 문화와도 잘 맞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스프린트 프로젝트는 2018년 4월 시작했다. 펫프렌즈 김창원 대표와 기획자, 디자이너가 들어왔고 서예령 님까지 포함해 참가자는 4명이다. 의사결정권자가 반드시 포함돼 있어야 시간 낭비가 되지 않는다고 설득해 대표를 참여시켰다. 다만 현업 업무가 많아서 원래 방법론처럼 5일이 아닌 4일 안에 3단계, 즉 ‘가장 좋은 솔루션 결정’ 단계까지 끝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우선 궁극적인 목표는 ‘더 많은 반려동물 상품을 사용자가 쉽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게 한다’로 정했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어떤 것이 좋은 질문인지 투표를 하고, 소비자 구매 지도를 그려보고, 스토리보드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서비스가 어떻게 구성돼야 할지 디자인까지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주니어급이었던 펫프렌즈의 디자이너에 대한 코칭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시간상 제약으로 4일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물류센터 완공 일자 등의 이슈가 있어서 시스템 구현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스프린트 프로젝트를 통해 펫프렌즈 사업 리모델링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그는 한 콘퍼런스에서의 발표를 통해 “GS홈쇼핑 CoE의 UX/UI 전문가와 함께하며 불편함을 개선한 결과, 월평균 실이용자 수는 3배, 고객이 실제 결제까지 이어지는 수치는 2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후 2018년 여름 이 회사는 여러 벤처캐피털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았다. 그중 하나인 뮤렉스파트너스는 보도자료에서 펫프렌즈를 “차별화된 배송 서비스와 독보적 UX로 성장 중인 스타트업”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다노와 펫프렌즈 사례처럼 GS홈쇼핑이 ‘육성’해줄 스타트업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의외로 투자금액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CoE팀 이승준 님은 말한다. “지분율을 따지기보다는 핏(fit)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팀은 항상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받아들이는 스타트업 쪽에서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의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쪽을 원하는 곳들도 물론 있고, 그런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혁신 DNA 흡수 사례 1
디스트로 도조 워크숍

CVC를 하면서 투자한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들의 활력과 역량, 혁신 DNA를 기업 내부로 가져오는 일이다. GS홈쇼핑 역시 CVC 초기부터 이런 측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7년 늦여름에 개최한 ‘디스트로 도조 문래(Distro Dojo Mullae)’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디스트로 도조는 미국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500 Startups’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스타트업을 ‘레벨업’시켜준다는 슬로건을 갖고 있다. 구글의 스프린트 모델과 비슷하지만 뒷 단계에 적용하는 성장 모델이다. 어느 정도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3개월(12주) 동안 집중적인 코칭과 멘토링을 통해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업모델까지 완성시켜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이라 불리는 방법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기 참여하는 멘토들은 다들 스타트업 업계 베테랑이다. ‘디스트로’는 ‘distribution’의 줄임말로 여기서는 마케팅이라는 뜻이 강하다. ‘도조’는 일본말로 도장(道場)이다. 소림사에서 수련하듯이 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면 사업이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돼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반영된 이름이다. 유료 프로그램이다.



GS홈쇼핑의 CVC는 2015년 베를린, 2016년 두바이에서 있었던 디스트로 도조 프로그램에 각각 한 개 팀을 참여시킨 바 있었다. 이번엔 GS홈쇼핑만의 커스텀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2017년 여름, 여섯 명의 멘토들을 서울 사옥으로 데려왔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다. 초대에 상당한 비용이 들었고, 준비도 철저히 했다. 사옥 한 개 층을 완전히 비웠고 사내 조율을 통해 각 본부의 신청 및 지원을 받아 6개 팀을 참여시켰다. 사내 팀 4개(모바일 마케팅팀 2, 방송편성팀, 고객서비스팀), 투자사 팀 2개(텐바이텐, 29cm)였다. 각각의 팀은 목표가 달랐다. 예를 들어 모바일 마케팅2팀은 휴면 고객 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고, 방송편성팀은 TV홈쇼핑 고객의 행태에 맞추는 편성을 하자는 목표를 갖고 프로그램에 임했다.

프로그램을 주관한 미래사업본부 박영훈 전무에 따르면 팀별로 초기 반응에는 차이가 있었다. 모바일 관련 부서는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는 데 비해 TV 쪽은 다소 미심쩍어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바일의 경우는 사업 초기부터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A/B 테스트를 진행하고 마케팅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었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진 TV홈쇼핑의 경우는 상품을 소싱해오는 담당자의 개인 역량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영어도 심리적 걸림돌이었다. 멘토들이 모두 외국인이다 보니 영어 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직원들은 소통에 어려움을 느꼈다. 역으로 디스트로 도조 멤버들도 아시아 대기업과의 협업은 처음이라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마찰이 굉장히 많았다. 우리 쪽 직원들은 우리의 20년 경험과 비즈니스 특성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불만스러워했고, 디스트로 도조 측은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쪽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불만이 많았지만 그래도 해보자고 밀고 나갔다. 해보자, 해보자 하다 보니 점차 느끼게 됐다. 린(lean)한 업무 방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데이터드리븐(data-driven)이란 이런 것이구나, 부서의 의사결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로스해킹이라는 방법론을 회사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강의를 100번 듣고 각자 밖에서 배워오는 것보다 회사 내에서 실제 프로젝트를 잡아서 석 달 정도 돌려보는 게 더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 전체적으로 교훈을 얻었다.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에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빨리 검증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처음에 한국 대기업 경영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디스트로 도조 팀도 점차 재미를 느꼈고 많은 걸 배웠다는 반응이었다. 사업을 대하는 태도가 극과 극으로 다르다 보니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한국 대기업 임직원들이 개개인으로는 매우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다고 그들도 인정했다는 것이다.

혁신 DNA 흡수 사례 2
이미지 인식 기술 가져온 미국 스타트업 픽스리

혁신기술 그 자체를 외부에서 가져오는 방식의 협업도 CVC를 통해 진행한다. 그중 하나가 픽스리와의 협업이다.

픽스리는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마케팅 서비스 회사다. 각종 SNS상에 올라오는 사진들 중에서 특정 브랜드와 관련 있는 사진들을 찾아준다. 예를 들어,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의 SNS 사진들을 모아 나이키 쇼핑몰 안에서 보여주는 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고자 하는 상품의 ‘실착샷’을 볼 수 있으므로 큰 도움이 된다. GS홈쇼핑은 2014년 미국 지사를 통해 픽스리에 투자했다. 이미지 인식 기술이 탐났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몰은 검색이 중요하다. 검색이 잘돼야 구매율이 올라간다. 패션 상품이라면 ‘청바지’ 같은 검색어 외에도 ‘파랑’ ‘가을’과 같은 검색어로도 다양한 아이템을 볼 수 있게 하면 매출이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누군가가 사진마다 검색 태그를 일일이 달아야 한다. 귀찮고 부정확한 작업이다. 픽스리는 그 이미지 태깅 작업을 자동화하는 서비스를 개발한다. 사진 속의 인물이 가죽 잠바를 입었는지 아니면 파란 드레스를 입었는지 등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인식해 #파랑 #드레스 #가을옷 #시크 등의 태그를 달고, 또 그것이 광고인지, 일반인들이 올린 사진인지까지 분간해주는 시스템이다. 픽스리와 GS홈쇼핑은 GS홈쇼핑이 보유한 상품 이미지 수백만 건을 가지고 이 자동 태깅 시스템을 시험했다. GS홈쇼핑의 검색팀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상품팀, IT팀, CoE팀도 참여했다. 테스트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현재는 실사업 적용을 준비 중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핫’하다는 이 업체와의 협업은 일찍부터 CVC를 통해 지분 투자를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로 비용은 들지 않았다. 투자를 할 때부터 이런 류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몇 개 같이 진행하자는 약속을 맺었다. 그쪽 입장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좋고, 우리는 아웃풋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박영훈 전무의 말이다.

검색뿐 아니라 상품 추천 영역에서도 외부 혁신 기술의 이식을 시도 중이다. VC를 통해 간접투자한 중국 스타트업과의 협업이다. 이 중국 회사는 소비자 개개인의 구매 이력과 연관 상품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새로운 상품을 추천해주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만든다. GS홈쇼핑은 자사의 데이터를 가지고 머신러닝을 통해 새로운 추천 모델을 만들도록 이들에게 주문했다. 새 알고리즘이 완성되면 실제 쇼핑몰 사이트에 적용해 기존의 알고리즘과 성능을 비교하는 A/B 테스트를 수행할 예정이다. 새 알고리즘이 기존 알고리즘보다 더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 스타트업에 보너스를 지급하게 된다.

타 기업에 주는 시사점
정리해보자. GS홈쇼핑이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스타트업을 육성해서 그들이 가진 혁신적인 제품군이나 기술을 내부 사업에 직접 활용하는 방법이다. 반려동물 사업이 대표적이다. 펫프렌즈, 도그메이트, 펫픽, 바램시스템 등과 함께 2018년 4월 모바일 앱에 ‘반려동물 전용관’을 열었다. 아직 전체 매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품목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기술 분야 스타트업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실시간 앱 마케팅 성과 분석 툴 개발업체인 ‘ab180’이나 오프라인 데이터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인 ‘로플랫’, 인스타그램 등 SNS의 데이터 분석 정보를 브랜드와 쇼핑몰 등에 제공하는 ‘픽스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스타트업 투자 경험을 토대로 신사업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혁신이란 이 세상에 전혀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재결합하는 것이다(Fleming, 2001). 따라서 다양한 외부 지식에 노출된 조직일수록 더 많은 혁신 활동을 수행한다(Levinthal & March, 1993). 마찬가지로, GS홈쇼핑의 경우도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실무 담당자가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경우가 더러 있음을 강조한다.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미래 변화를 감지하고 예측할 수 있는 조직 내 역량이 축적된 것이다. 이 중 사업 가능성이 높은 두 가지 아이템은 실제 사업화를 추진 중이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사업개발팀도 신설했다.

셋째, 투자 활동을 통해 접한 외부의 혁신적인 역량 강화 기법을 내부에 소개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GS홈쇼핑은 2017년 여름 ‘500 Startups’의 디스트로 도조 프로그램을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개선했다. 스타트업의 기법을 대기업에 적용한 최초의 시도였다. ‘500 Startups’과 같은 주요 액셀러레이터는 자신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역량 강화를 위해 AARRR과 같은 분석 프레임워크를 직접 개발한다. 디스트로 도조 역시 ‘500 Startups’이 개발한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 3 기법 중 하나다. GS홈쇼핑의 경우 ‘500 Startups’과 공동 투자를 진행하며 이 기법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됐고 디스트로 도조 전문가를 초청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암묵적인 관행으로 진행되던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데이터 기반으로 제로베이스에서 재설계할 수 있었다.

GS홈쇼핑의 CVC 운영 사례는 벤처생태계의 혁신을 기업 내부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많은 기업에 어떻게 CVC를 운영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이 조직은 자신이 벤처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우선 인식하고 철저하게 이 관점에서 CVC를 운영해 왔다.

시사점 1 스타트업의 성공을 우선하는 CVC 운영 철학
많은 경우 CVC는 스타트업의 성공과 사업부의 전략적 목적 달성을 놓고 딜레마에 빠진다. 일반적인 VC들은 스타트업의 기술 사업화를 통한 투자 수익 극대화를 목표한다. 그러나 사업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CVC는 투자 수익보다는 기존 사업의 전략적 가치 창출을 우선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CV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일수록 기술 사업화보다는 기술 개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CVC는 일반적인 VC와 달리 펀드 예치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사업부의 전략적 목적에 부합하는 장기적 R&D 과제를 스타트업에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CVC의 투자를 많이 받은 스타트업일수록 성공적인 엑시트(Exit)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Kang, 2018). 문제는 이런 CVC의 행태가 벤처캐피털 커뮤니티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GS홈쇼핑은 차별화된 CVC 운영 철학을 지니고 있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우선시했다. 기존 사업과 보완적인 관계에 있거나 자사가 구매자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우선적으로 투자한다. 또한, 기술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더라도 기술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경쟁사가 스타트업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직적으로는 스타트업의 성공을 최우선적으로 육성하는 CoE를 운영 중이다. CoE는 사업부와의 전략적 시너지 창출보다는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는 데 주력한다. GS홈쇼핑의 벤처투자팀이 짧은 투자 이력에도 불구하고 외부 VC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벤처캐피털 커뮤니티에서 입지를 탄탄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스타트업과 상생 관계를 지향하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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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점 2 스타트업과 내부 조직과의 자연스러운 융합
두 번째 성공 요인은 스타트업과 내부 조직 간의 자연스러운 융합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외부 혁신을 내재화해 내부 운영 프로세스를 바꾸고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이 외부 혁신을 거부하는 NIH(Not-Invented-Here)신드롬을 극복해야 한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이 외부 혁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GS홈쇼핑의 경우 CoE를 매개로 스타트업과 내부 조직 간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이끌어냈다. 우선 CoE 멤버가 스타트업 대표와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사업상의 어려움이나 니즈를 파악한다.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인 다음 CoE 멤버가 스타트업에 투입돼 운영상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GS홈쇼핑 내 전문가를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내부 조직 구성원은 직접적인 홍보나 교육 없이도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의 실험과 혁신을 이해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또한 매월 미래사업본부가 주관하는 미래성장회의는 경영진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미래성장회의는 CVC 투자 현황이나 주요 이슈 등을 논의하는 자리지만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나 기술을 소개하기 위해 CEO나 VC 등을 초청하기도 한다. 실제로 벤처 생태계에 대한 경영진의 관심이 높아져 CoE 멤버가 내부 조직의 지원을 얻는 것이 예전보다 수월해 졌다는 측면이 있다. 이런 조직 구성원의 전반적인 태도 변화는 스타트업의 기술을 내부 사업에 활용하고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는 데 기반이 됐다.

시사점 3 지속성을 위한 투자 수익 확보
지속적인 CVC 운영을 위해 투자 수익 확보에도 일정 부분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이다. CVC는 내부의 유보 현금을 동원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VC처럼 특정 기간 내 투자금을 회수할 필요는 없다. 특히 CVC는 그 특성상 투자 수익보다는 전략적 가치를 우선하므로 전략적 가치가 존속하는 한 투자사 지분을 매각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일단 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가시적인 재무적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음을 박 전무는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버즈니의 지분 일부를 소프트뱅크벤처스에 매각했고, 에이플러스비를 스타일쉐어에 매각하며 현금화했다. GS홈쇼핑의 미래사업 투자로부터 발생한 투자 수익은 총 402억 원에 달한다. 투자 수익 실현은 어려운 시기 주가 버팀목 역할을 하는 등 증권사도 GS홈쇼핑의 투자 활동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
과제 1 인력 유출
스타트업 생태계는 인력 순환이 빠르고, 여기에 맞물려 있는 GS홈쇼핑 CVC 조직 역시 이런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CoE팀이 대표적이다. 2016년 말 처음 취재했을 때 이 팀에 소속돼 있던 인원들은 모두 퇴사해 창업하거나 스타트업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다. 최대 8명이었던 조직이 4명까지 줄었다가 2018년 말 다시 9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이런 순환은 외부의 새로운 시각을 계속 수혈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또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GS의 동문들을 심어놓는다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팀의 역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투자 부서도 마찬가지다. 벤처 투자는 인적 네트워크와 담당자 개인 역량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일반 스타트업 생태계와는 보상구조가 다른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 하는 점은 GS홈쇼핑뿐만 아니라 CVC를 운영하는 모든 기업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숙제다.

과제 2 스타트업과의 융화(전략적 투자자에 대한 거부감)
GS홈쇼핑은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스타트업과의 자연스러운 융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화를 거부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어떻게 지원을 하며 이끌어 나갈지가 고민이다. CVC 담당 직원 역시 자신과 말이 잘 통하는 스타트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전략적 중요도와 스타트업에 대한 자원 배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GS홈쇼핑의 경우 CoE를 통한 적극적인 육성으로 벤처캐피털 커뮤니티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조직의 테두리에 있기 때문에 사업부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스타트업과 이해가 충돌되는 경우 딜레마에 직면한다.

해외 기업에서는 CVC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스타트업의 사업 피봇팅을 유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들 때문에 ‘과연 전략적 투자자의 조언이 우리에게 최선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전략적 투자자보다 재무적 투자자를 찾는 게 낫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펴는 VC들이 있다. 대기업 주도 벤처 투자가 갖고 있는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숙제다.

과제 3 실패한 투자에 대한 처리
스타트업 투자는 본질적으로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 성공할 경우 ‘대박’이 나서 실패를 메워줄 뿐이다. 재무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업계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대기업의 경우는 각각의 투자 실패 사례가 회사 이미지에, 그리고 경영자 개인에게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손해를 보고 매각하거나 손실 처리해버릴 경우 여론의 부정적 시선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 가치가 떨어진 스타트업 지분을 언제까지 계속 손에 들고 있을 수도 없다. 직접투자 포트폴리오의 수가 늘어나고 CVC가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을수록 GS 스타트업 생태계 내 실패 투자건에 대한 처리 문제가 앞으로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내부 가이드라인 확립을 고려해볼 시기다.

참고문헌
1. Fleming, L. (2001). Recombinant uncertainty in technological search. Management Science, 47(1), 117-132.
2. Kang, S. (2018). The impact of corporate venture capital involvement in syndicates. Management Decision.
3. Levinthal, D. A., & March, J. G. (1993). The myopia of learning.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14(S2), 95-112.

필자소개 강신형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david.kang98@gmail.com
강신형 교수는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G전자 본사 전략기획팀에서 신사업기획, M&A, J/V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에서도 근무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영 혁신으로 개방형 혁신, 기업벤처캐피털(CVC) 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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