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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켄 시걸(Ken Segall) 인터뷰

단순화가 ‘손쉬운 방식’ 뜻하진 않아
고객 입장서 불필요함 덜어내는 것

이미영 | 260호 (2018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조직 내부의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제거하면 직원들이 기업이 추구하는 핵심 목표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소수의 제품과 서비스에 자원을 집중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애플도 조직 내부, 제품, 고객과의 관계 설정을 단순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성공했다. 이는 애플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데 적합한 인재를 뽑고, 직원과 리더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관료주의와 위계질서에 허덕이는 대기업도 단순화를 이뤄낼 수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종수(연세대 창의기술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애플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와의 회의는 고단하고 힘들었다. 울상을 하며 그의 회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직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대답은 하나로 모였다. “심플 스틱(simple stick)으로 맞았다.” 스티브 잡스는 비효율적인 회의나 프로젝트라 판단되면 회의 중간에 프로젝트를 없애기도 했으며, 알맹이 없는 내용이 반복되면 회의를 하던 사람을 곧바로 퇴장시키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혹자는 스티브 잡스를 괴짜, 냉혈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지독하리만큼 단순화를 추구한 스티브 잡스의 경영 원칙, 심플 스틱이 오늘의 애플을 만든 원동력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품, 광고, 내부 조직, 고객과의 관계 등 모든 업무를 단순화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자’는 핵심 가치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켄 시걸(Ken Segall)은 이런 스티브 잡스를 지근거리에서 목격했다. 그는 17년간 잡스와 함께 넥스트와 애플의 광고와 마케팅을 이끌었다. 1997년 잡스가 11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위기를 겪고 있는 애플에 복귀했을 때에는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광고 캠페인을 기획해 애플의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에는 ‘아이맥(iMac)’이란 제품명을 고안해 아이튠즈, 아이폰 등 애플의 ‘i’ 시리즈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직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상을 저해하는 관료적인 위계질서나 복잡다단한 프로세스를 제거하고자 하는 애플의 경영방식이 기업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 비결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그는 애플과 같이 단순화에 성공한 40여 개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플과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DBR은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화에 성공한 기업들의 생생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에게 국내 기업들이 단순화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물었다.


최근 단순함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리는 복잡한 사회에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 이후 제품과 서비스는 더욱 복잡해졌다. 이 과정 속에서 기업의 프로세스와 활동도 마찬가지로 번거롭고 많아졌다. 이때 더 정교하고 복잡한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울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해 소비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으로 만들 때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객은 전에 없던 새로운 단순함을 보여주는 기업에 더 열광하기 마련이다.

이 단순화하는 과정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단순화에 성공한 기업의 리더들의 말은 모두 같았다. 바로,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객의 경험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지켜봤던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다. 이 목표에 한해선 어떠한 타협도 없었다. 웹사이트, 광고, 포장, 제품 경험, 기술 지원까지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이 고객이었다면 이걸 봤을 때 어땠을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든 이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인간에겐 단순함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 더 간단한 경험에 더욱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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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은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가?
사명(社命)에서 시작한다. 기업은 자신의 미션과 브랜드의 본질(가치나 성격)을 정의해야 한다. 아주 짧은 문장에 불과하지만 사명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기업의 사명에 모든 제품과 프로젝트를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명을 통해 기업은 직원이 20명이든, 2000명이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회사를 성장시켜 나갈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만난 단순화에 성공한 기업들은 훌륭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이 자신의 사명에 맞지 않는 사업을 시작할 때 ‘복잡함’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예를 들어 달라.
아마존의 사명은 “클릭 한 번이면 된다”이다. 제프 베이조스는 이 세 마디로 고객들이 아마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보여줬다. 클릭으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상품을 검색할 수 있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들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이 사명은 단지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마존 직원들이 회사가 추구하는 목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한다. 제품, 서비스, 의사소통, 마케팅뿐만 아니라 회사 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결정적 기준이 된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 앞에서 한 첫 연설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도 사명이다. 그는 “소비자들이 오직 애플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의미 있고 강렬한 해법을 제시하라”는 글귀가 적힌 슬라이드로 시작했다. 이 미션에 맞춰 조직과 제품 라인을 개선했다.

이후 애플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꼽히는 ‘애플 스토어’ 프로젝트도 훌륭한 사명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론 존슨은 애플의 사명과 부합하면서 애플스토어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사명을 고민했다. 그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사명을 내놨다. 고객은 물론 직원의 삶까지 높인다는 것이다. 매장 내 디자인, 직원 행동, 서비스 모두 이 사명에 부합하도록 했다. 애플스토어는 가장 번화한 상점가에 있는데 그 이유는 고객들이 애플스토어를 찾기 위한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비스의 품질을 위해 스토어 내 직원을 최대한 많이 배치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애플 수리센터를 ‘지니어스 바(genius bar)’라고 이름 붙였다. 그냥 수리팀이라고 불렸을 때보다 직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됐다.

사명 하나만으론 단순화를 달성하기 부족해 보인다.
결국 이 사명이 기업의 조직 문화로 이어져야 한다. 조직 문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직원들이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는 것이다. 이때 직원들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것은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의 어떠한 행동 방식이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나만 확실하게 해두자. 우리는 리더의 ‘성품’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리더가 어떻게 사명에 부합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얼핏 보면 조직 문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간 리더들은 괴짜 같고, 고집불통이거나 냉혹하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단순하고 일관성 있다. 이를 통해 회사와 직원을 하나의 목표로 이어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들을 만나 본 내가 생각하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단순화에 성공한 리더들은 ‘가치관’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인터뷰한 호주 부동산 기업 맥그래스(McGrath Ltd)의 창업주인 존 맥그래스도 자신이 세운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진행시키지 않는다. 고급 매물만을 취급하는 이 회사는 2015년 말 기준 매출 10조 원을 기록했고 직원만 1300여 명에 달한다. 맥그래스 회사가 돌아가는 원리는 간단하다. 부동산을 팔고 싶은 사람을 찾고, 좋은 제안을 하고, 그 매물을 시장에서 제시하는 좋은 가격에 팔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이 원리를 지키기 위해선 올바른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존중, 진실함, 탁월함이 그것이다. 이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그 어떤 것에도 타협하지 않는다. 부동산 매물로 올라가는 사진의 품질이 일정 수준을 넘기지 않으면 무조건 다시 찍는다. 단기간의 수익을 더 내기 위해서, 가격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러한 가치관을 통한 사명을 리더가 솔선수범하게 되면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이를 따르게 된다.

또한 이 리더들은 좋은 말로 사람을 현혹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사람들과 공유한다. 이들은 좋고 싫음이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다. 남들의 기분을 생각해 에둘러 말하거나 일부의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내가 소속된 ‘아미라티 앤 퓨리스’가 넥스트의 광고대행사가 된 후 가진 첫 미팅에서 “당신이 한 TV 광고는 좋았지만 인쇄 광고는 별로더군요”라고 말해 나를 당황시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나는 받아들였다. 결국 회사가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선 이렇게 명확한 기준과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리더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제품이나 서비스의 방향이 맞지 않거나 납득이 안 된다면 그 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해소하는 것도 공통적인 특성이다. 이 과정을 통해 리더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집단이 사명에 어울리지 않는 프로젝트나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리더들은 직원들을 ‘감시’하지 않는다. 대신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리더는 최종적으로 결정만 내리는 자리가 아니다.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질책하는 역할도 아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함께 일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명에 부합한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빠르게 의사결정을 진행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만약 자신이 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참여하지 못할 경우에는 적임자를 찾아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유사하게 나타난 특징이다.

이런 리더의 역할이 직원들의 실질적인 업무 프로세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나?
물론이다. 우선 회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시간도 짧아진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할까 한다. 예전에 내가 스티브 잡스가 주재하는 제품 마케팅 관련 회의에 막 들어갔을 때다. 이때 이전에 못 봤던 젊은 직원 한 분이 회의실 의자에 앉아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그 여성에게 회의에 왜 들어왔냐고 물었고, 그가 이번 주제와 크게 관련이 없고, 특별히 참여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냉정하게 그를 사무실에서 내보냈다. 당시 그 직원은 민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효과적인 회의를 위해선 꼭 필요한 인원만 회의실에 있어야 한다는 게 스티브 잡스의 지론이다.

회의 횟수도 줄어든다. 리더가 처음부터 회의에 참석하면서 의제를 같이 논의하게 되면 대기업이 그렇듯이 단계적으로 승인을 받는 회의 자체가 없어진다. 그와 함께한 회의실에서 의논하고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델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니 확연히 차이가 났다. 델은 우리가 잘 아는 관료주의적 대기업이었다. 실무자끼리 회의를 해서 결정하면 다음 팀장급에서 이 아이디어를 검토받고, 그 아이디어는 임원들 회의실로 올라간다. 이전 회의는 다음 회의로 넘어가기 위한 자격을 갖추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좋은 아이디어에 다른 아이디어들이 누더기처럼 보태진다. 더 큰 문제는 윗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실행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의사결정을 하는 시간도 훨씬 더 많이 걸린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바빠서 관련 일을 챙기지 못할 경우 적임자를 뽑아 그 자리에 배치했고 철저히 그를 신뢰했다. 물론 검증의 과정은 필요하다. 초기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를 이끌었던 론 존슨과 e메일, 전화 등으로 밤마다 회의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론 존슨의 프로젝트가 잘 맞아 들어가는지 확인했다. 론 존슨이 애플스토어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이끈다고 생각하자 그는 론 존슨을 철저히 믿었다. 1년에 한 번 회의를 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과 e메일을 상시 주고받으면서 소통하기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가능했던 이야기인가?
나도 그와 e메일을 통해서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 실제로 답도 몇 분 안에 왔다. 신기한 일이다. 근데 그 안에는 그만의 법칙이 있다. 우선 그는 e메일을 비서가 처리하도록 두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보면서 판단했다.

그다음 가치 있는 e메일을 솎아낸다. 소비자가 보낸 것 중에 가치가 있다면 곧바로 답을 한다. 직원들이 보낸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애플 내부인이든, 외부인이든 가장 적절한 사람에게 전달했다. 일례로 누군가가 우리가 만든 애플의 대표적인 광고 문구인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라는 문구가 문법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하자, 그 e메일을 곧바로 나에게 토스해 처리하도록 했다. 그가 회신을 일일이 하지 않더라도 그 업무가 처리될 수 있도록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명확한 메시지와 적임자를 적절히 찾아내 권한을 위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추가로 업무를 단순화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나?
한 IT 기업 부사장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대표는 “대체 애플의 혁신 비결이 무엇인가? 좀 알려 달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한마디로 답했다. “결과물을 검증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부사장은 매우 놀랐다. 결과물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시험해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넘어갔다.

애플은 직원들을 신뢰하고 리더가 자신의 판단을 믿기 때문에 검증하거나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애플은 대부분의 기업이 신봉하는 포커스그룹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 과거 분석 자료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은 사람들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료나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한 소비자들의 의견보다 직원들의 자신감과 프로젝트를 밀고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로세스가 창의성을 훼손하는 일을 막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품을 평가하거나 제품을 기획하는 리더는 자신과 직원의 판단을 믿는다. 서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대화하면서 얻은 결론을 빠르게 실행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컨셉을 만들고, 수정하고, 승인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없다.

왜 IT 대기업에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할까? 예를 들어, 미국 우주항공국(NASA)의 우주왕복선 건설 투자에 맞먹을 규모의 돈을 제품 개발과 연구에 투자할 만큼 대단한 회사인 인텔도 이 일을 해내지 못하는 걸까? 인텔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 때문이다. 인텔은 ‘무결점’을 추구한다. 실수나 구멍이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개개인의 판단이나 능력을 믿기보다 모든 프로세스를 철저히 운영하고 검증한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태도도 자유롭지 못하고 경직될 수밖에 없다. 더 최악은 이렇게 프로세스를 따라가다 보면 나중에 결점이나 개선의 여지가 발견돼도 더 이상 수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과 돈, 인력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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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단순화라는 것이 이전보다 일을 ‘대충’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단순화를 이뤄내면 사람들은 더 이상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회사의 목표나 기준에 맞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는 일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거나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결과물의 질이 떨어져도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다.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회사가 주력해야 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치열한 시도 끝에 남들과 차별화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화는 이전보다 ‘손쉬운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화는 더 열심히 일해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단순화를 위해선 인재를 잘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그래서 이런 리더들은 단순하고 빠르게 일하기 위해 ‘똑똑한 소수 정예(smart small group)’를 활용한다.

똑똑한 소수 정예는 천재나 공부 잘하는 스펙 좋은 직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회사의 가치관과 잘 맞고, 목표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직원들이다. 물론 외과의가 필요한 자리에 자격증이 없는 사람을 앉힐 수는 없는 것처럼 특정 자격증이나 능력이 필요한 직업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단순화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킨 회사들은 어떠한 획일적 기준으로 인재를 뽑지 않는다. 2조 원 손실을 앞두고 있는 현대카드를 심폐 소생해 카드업계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데 기여한 정태영 사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나에게 서비스와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카드를 개발하는 인재를 영입할 때 금융이나 회계 전문가로 못 박지 않았다. 오히려 카드산업과 전혀 관계없는 철학과 출신 직원도 있었다. 이들에게 발견된 공통점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배울 의지가 있으며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대체로 내가 만난 리더들이 지닌 공통된 생각이었다. 지원서에 적힌 경력이나 특기보다 회사와 잘 맞는 인재인지를 더 중점적으로 봤다. 이 인재들은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출한 솔루션을 곧바로 실행한다.

이 때문에 단순함을 신봉하는 리더들은 기업의 미션과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이 들어오는 것만큼 회사에 치명적인 위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기껏 세워놓은 조직 문화를 망치는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한 유통회사는 이러한 인재를 찾기 위해 면접만 7∼8번 보는 경우도 있다. 진절머리가 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고 회사를 이해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스티브 잡스도 사람을 고용할 때 엄청 공을 들였다. 그가 인재를 평가하는 공통된 기준은 이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인가’다. 한 번은 진짜 훌륭한 마케터가 채용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미국 유수 기업의 마케팅 총괄로 있을 만큼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에게 “당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뭘 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이 면접자는 열심히 자신의 경력을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가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채용되지 않았다.

적정한 수의 직원과 함께 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스티브 잡스는 맥(Mac)을 만드는 직원 수가 10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믿었다. 회의를 하는 사람도 아무리 많아야 20명 이하였다.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일해야, 또 반대로 자신이 잘 알고 이해하는 직원들과 일을 해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위계질서가 강한 대기업에서는 단순화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신 대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대기업은 관료주의가 강하다. 관료주의적 환경에서 회의를 많이 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복잡함만 더 증대시킨다. 그럴 때에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을 활용해 단순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자 호주 업계 2위인 웨스트팩은행(Westpac Bank)의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하처는 톱다운 방식을 신봉하는 대표적인 리더다. 그는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가 모든 사람을 참여시켜 지난한 절차를 거친 끝에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리더가 나서서 빠른 시간 안에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리 위에선 한 명의 대장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주택대출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하처는 고객들이 주택담보 승인을 받기까지 몇 주나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처는 주택대출상품을 관리하는 팀에 승인 속도를 빨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 독려했다. 이 팀은 ‘한 번에 주택담보대출 받기’라는 과제를 들고 나왔다. 하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 팀에게 한 시간 내에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목표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처음엔 불가능한 일이라 팀이 발끈했다. 하지만 결국 이 상품을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하처는 리더가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해 직원들이 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처는 이 한 시간 내 주택담보대출 서비스를 받는 상품에 만족하지 않고, 10분 추가 대출상품도 만들자고 제시했다. 추가 대출은 고객이 주택담보대출을 일정 부분 갚았을 때 주택 개조 등의 비용을 대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한 경우 신청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승인 절차가 복잡하거나 오래 걸릴 이유가 없는 작업이었다. 직원들은 결국 달성했고 고객을 확대할 수 있었다. 뜻밖에 효과가 파생된 것이다.

이때 톱다운을 ‘내가 시키는 건 무조건 해’ 식의 일방적인 방식과 구분해야 한다. 방향을 정해주고 함께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결정해주는 역할인 것이다. 특히 단순화 과정이나 필요성에 대해 직원들이 대체로 공감한다는 사실도 숙지해야 한다. 만약 우리 회사 구조가 복잡하니 기업과 고객을 위해 일을 단순화하자고 하면 모두 공감하고 동참할 것이다. 하처는 실제로 나에게 “단순화는 어머니와 같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시도는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여전히 톱다운 방식을 활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델과 인텔 등 대기업이 조금이나마 이뤄낸 성과를 소개해보겠다. 크게 두 가지 경우다. 첫 번째는 기업의 복잡한 절차의 일부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2013년 브라이언 크러재니치가 인털 대표가 된 후 ‘빠른 것이 완벽함을 이긴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1 기존에 인텔이 했던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직원들에게 속도(speed)와 변화속도(velocity)의 차이를 강조하며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라 특정 목표를 향해 움직일 것을 촉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의 의사결정 절차는 간소화됐고 제품 개발 시간도 축소되는 성과를 얻었다.

두 번째는 회사 서비스의 복잡함을 인정하고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다. 2005년 당시 IBM의 CEO였던 루이스 거스너는 PC사업부를 과감히 없애고 기업서비스 부문에 자원을 집중해 크게 성장했다. 이 IBM 제품은 은행 업무나 보험회사와 같은 금융 시스템, 항공 예약 시스템 등과 같이 복잡하고 고도화된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이 프로세스들이 복잡하게 이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IBM은 이를 인정하고 이 복잡한 프로그램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고객을 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당시 거스너가 ‘더 구매 가능한 상품을 만들자’라는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 결과다.

단,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새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기존의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오히려 더 복잡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인텔의 단순화 과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크러재니치는 (대기업이 늘 그러는 것처럼) 마케팅 조직의 혁신을 꾀한다는 이유로 기존 인력을 모두 내보내 버렸다. 결국 중요한 마케팅 인력들까지도 사라져 처음부터 모든 일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단순화가 고객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고객에게 많은 선택권을 제공하면 좋아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결정 내리기를 더욱 어려워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내리길 희망한다. 옵션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계속해서 의심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데 주력한다.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를 모두 충족해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2015년 말 기준 HP가 내놓은 컴퓨터가 총 몇 가지인지 아는가? 데스크톱 컴퓨터가 57종, 노트북 컴퓨터가 61종이다. 델도 각각 30종과 23종이나 내놨다. 이 컴퓨터 모델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져 있다. 소비자를 위한 모델명이 아니다. 많은 제품을 구분해야 하니 기업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붙인 모델명이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도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모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제품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딱 맞는 제품을 권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기 어렵고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진다.

반면 1998년 스티브 잡스는 제품 라인을 대폭 줄였다. 잡스는 전체 상품이 테이블 하나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 노트북 모델은 다섯 손가락 안에 셀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애플은 소수 제품에 집중해 품질과 디자인에 더욱 신경쓰도록 했다. 이를 통해 애플 브랜드는 더욱 강화됐고, 소비자들은 이전에 없던 노트북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인앤아웃버거도 메뉴를 단순화해 소비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더 적은 일을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 6가지 메뉴에 집중하되 음식의 질, 신선함, 서비스를 더 잘하는 것이다. 옵션을 구성하는 것은 하나의 전략이다. 소비자들이 보다 더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고 이에 만족하게 되면 그 어떤 기업보다 더 많은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단순함을 추구하다 보면 시장 고객의 일부만 만족시킬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지적한다.
매년 많은 애널리스트와 전문가가 애플의 추락을 예견한다. 애플이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결국 다양한 경쟁자(중국, 한국 등의 스마트폰)들로 인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도 예측한다. 나도 애플이 영원한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의 숙명이 그렇듯 언젠가 1위 자리를 내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가까운 미래는 아니라고 본다.

애플의 성공 요인은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것 때문이다. 2017년 기준 애플의 영업이익이 전체 스마트폰 산업의 7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이가 시장 확장을 위해 저가형 스마트폰을 내놔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애플의 정체성에 먹칠을 하는 꼴이다. 실제로 2013년 저가형으로 출시한 아이폰 5c는 실패했다. 고객들이 가격보다 아이폰의 품질, 이미지, 서비스에 열광한다는 것을 증명해낸 셈이다. 결국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충성도 있는 고객을 얼마나 거느리는가다.

품질과 서비스 측면 외에도 진보적인 가치관을 내세워 충성 고객을 확보해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미국 아이스크림 기업 벤앤제리스(Ben&Jerry’s)가 대표적인 예다. 벤앤제리스는 2014년 유전자조작식품 첨가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에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식품업체 대부분이 반대했기에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2000년 그들을 인수합병한 모기업인 유니레버도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벤앤제리스는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게 바로 그들이 파는 제품과 서비스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소비자들은 이러한 벤앤제리스에 매우 불편함을 느끼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벤앤제리스의 이러한 행보에 열광하는 충성스러운 고객들도 많다. 이 고객들이 하겐다즈와 같은 글로벌 아이스크림 브랜드에도 밀리지 않는 아이스크림 기업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단순화 과정을 추구하다 실패한 사례는 없는가?
급진적인 변화가 오히려 단순화의 거부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앞서 애플스토어를 성공적으로 이끈 론 존슨을 기억하는가? 2011년 그는 미국 백화점 체인인 JC페니의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영입됐다. 시장에선 그가 쿠폰과 할인제품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백화점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실제로 그는 단순화 정책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상품 중에서 더 싼 제품을 찾기 위한 고객들의 수고를 덜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인과 쿠폰 정책을 중단하고, 인기 있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항상 낮은 가격으로 팔기로 결심했다.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기 있는 브랜드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등도 추진했다. 하지만 론 존슨은 실패했다. 1년 만에 손실이 1조 원에 달했고, 결국 그는 18개월 만에 JC페니에서 퇴출됐다.

분명 그의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그는 백화점의 목표와 컨셉을 모두 탈바꿈하길 원했고 즉시 실행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림은 한순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장 내 인테리어, 브랜드 구성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기존 정책을 매우 급하게 없애버렸다. 그랬더니 쿠폰과 세일을 기대했던 기존 고객들이 배신감을 느껴 JC페니에 발길을 끊었다. 새로운 소비층은 JC페니의 구색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 찾지 않았다. 론 존슨은 “소비자들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했고, 성급하게 추진한 게 패착이었다”고 자평했다.

보통 경영 환경이 급작스럽게 바뀌는 경우 기업들이 재빨리 목표를 바꾸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화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는가?
디지털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기업이 반드시 미션이나 목표를 재평가해야 할까? 반드시 그렇진 않다. 이때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트렌드와 새로운 툴들을 결합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회사의 미션과 잘 맞아떨어지는지 진단해보는 것이다. 만약 A 회사의 목표가 “소매업자들에게 최고의 툴을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확장해 나가는 편이 맞다고 본다. 이 경우 새로운 부서나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단, 이 경우 프로세스 위에 새로운 프로세스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프로세스를 더욱 단순하게 하면서 축소하는 방향이 함께 고려돼야 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트렌드나 시장 변화가 회사의 미션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의 목표가 더 이상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심지어 애플도 1997년 이후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회사 이름을 애플컴퓨터에서 애플로 바꾸고 가전제품 회사로 탈바꿈했다. 최근에 내가 투자하고 있는 회사는 원래 에어컨을 팔았는데 웹사이트 디자인업체로 바뀌었다. 아직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이 경우 새로운 미션이 절실했고, 그에 맞는 기업 구조로 재편해야 했으리라 본다.

일부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과정 자체가 더 적은 인력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한다.
완전히 틀린 얘기다. 단순화는 기업의 건강이 나빠져 강제로 사업을 축소하거나 인력을 줄이는 비극적인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다. 복잡함은 기업 내부에 항상 존재한다.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복잡성은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때 단순함을 추구한다면 자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그에 맞는 사람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회사의 경쟁력을 더 키울 수 있다. 트렌드와 환경이 바뀌어도 기업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단순함은 궁극의 완성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단순화는 궁극의 전략이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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